임해림
Lim Hae-lim / 林海林
본명
임장석 (Lim Jang-suk)
출생·사망
1922 ~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풍운의 궁전 1957
활동년대
1930,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필모그래피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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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형사 Duelist (이명세, 2005) 탕촌 노인
알바트로스 (이혁수, 1996) 송노인
학생부군신위 (박철수, 1996) 일가붙이
돈을 갖고 튀어라 (김상진, 1995) 노인
불의 태양 (강문수, 1994) 승정의 아버지
무정의 제3부두 (이혁수, 1993) 구사장
봉성부인 (진석모, 1992)
뽕 3 (이두용, 1992)
사랑스런 이웃집 여자 (박용준, 1991)
바람불면 일어서는 숲 (임정수, 1991)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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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39년 영화 <귀착지>와 <성황당>에 단역으로 출연
1940년 홍순숙 등과 극단 인생좌 창단
1942년 예원좌 입단
1945년 극단 아리랑 창단, 연극 <아리랑>에 영진 역으로 출연
1946년 극단 청춘극단 입단
1954년 박철, 윤일주와 극단 청춘좌 창단
1955년 박노식, 윤일주와 스타쇼 출연
1960년 <진주탑>, <폭풍의 언덕>, <아, 백범 김구 선생> 출연
1961년 <지평선>, <마부>, <임꺽정>, <군도> 출연
1962년 <폭군연산>, <성웅 이순신> 출연
1963년 <애란>, <검은 불연속선> 출연
1964년 <5인의 독수리>,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출연
1966년 <오복문>, <흰벽 검은벽> 출연
1968년 <남> 출연
1969년 <포옹> 출연
1970년 <원한의 검>, <국경의 밤> 출연
1972년 <하얀 수염> 출연
1975년 <감격시대> 출연
1978년 <상처> 출연
1979년 <77번 아가씨>, <시라소니> 출연
1980년 <복부인>, <병태와 춘배>, <돌아와요 부산항> 출연
1981년 <0번 아가씨>, <악마의 사촌>, <해결사>, <돌아온 쌍룡>, <사후세계> 출연
1982년 <하와이 행방>, <옥녀>, <영자의 전성시대(속)>, <소림사 왕서방> 출연
1983년 <인생극장>, <돌아온 용팔이> 출연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 감사 역임.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1932(일제시대) 어릴적부터 극단에 연극으로 따라다니면서 활동하였다. 당시(인생좌)극단이었으며 해방후 청춘극장등에서 활동 후, 6.25때 대구로 피난 간 후에도 연극 생활을 계속하였으며 청춘좌라는 극단을 창단하기도 하였다. 영화는 그 당시 연예계쪽에서는 크게 분류가 나눠지지 않는 시기였으며 1937년 이귀환 감독의 권유로 '귀착지'로 영화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
귀착지(1939,이영춘감독)
풍운의 궁전(1957,장창화감독)
검지도
군도(1961,유심평감독)
임꺽정(1961,유현복감독)
지평선(1961,정창화감독)
성춘향(1961,신상옥감독)
암행어사 박문수(1962,이유웅감독)
오인의 독수리(1963,이규웅감독)
석가모니(1964,장일호감독)
나는 속았다(1964,이강천감독)
신화를 남긴 해병(1965,설봉감독)
남편(1969,조문진감독)
1970 월하의 검(1970,임권택감독)
중원 제일검(1970,사병록감독)
철면객(1974,이형표감독)
병태의 감격시대(1975,이두용감독)
피막(1980,이두용감독)
앵무새는 몸으로 울었다(1981,정진우감독)
불의 태양(1994,강운수감독)
돈을 갖고 튀어라(1995,김상진감독)
알바트로스(1996,이혁수감독) 외 500여편
주요기타작품
■ 주요작품(연극)
1945년 <아리랑>
1946년 <단종애사>, <미륵왕자>, <대원군>, <어머니의 힘>
1947년 <이차돈>, <검사와 여선생>, <귀신이 웁니다>, <평강공주와 버들애기>
1948년 <소년 대통령>, <사명당>, <임그려>, <백제성>, <괴도 일지매>, <살인마>, <운현궁의 봄>
1949년 <요부와 바보>, <동명성왕>, <한글 춘향전>, <무쇠탈>, <세 공주>, <풍운아>, <깜장새>, <사랑>
1950년 <그리운 황성>, <비밀 지하실>, <12시 20분>, <72호의 죄수>, <봉이 김선달>

■ 주요작품(TV)
암행어사
이야기 속으로
긴급출동 119에 출연.
애착작품 및 사유
저는 1970년에 촬영한 용호풍과 중원제일검이 영화작품으로 애착을 느낀다. 이 작품에서 평소 갈고 닦은 검술을 마음껏 펼칠수 있었으며, 이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작품이었다. 그 후로도 한 작품에 모두 애착이 간다. 영화라는 것은 주어진 배역이 크든지 작든지 본인에게는 다 소중한 작품들이다.
하고싶은 말
영화를 하려면 우선 겸손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스타성이라는 것은 잠깐이다. 윗사람을 알아보고 또한 친밀감 있게 생활하면서 예의범절을 지켜 나간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영화속 명소
영화명: 월하검, 중원 제일검. 장소: 전국의 명승지, 사찰. 설명; 사극을 촬영하면서 전국 많은 곳을 다녀보았다. 설악산, 오대산, 쌍계사등 누구나 많이 다녀가는 이 곳이 사실 많은 볼 거리가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풍광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크게 뒤질 것이 없다 본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주로 맡았던 연기는 액션배우로서 그 스타일이 굳어져 있다. 검술, 승마 이것이 기본이 되어서 사극에 많은 작품을 하였고, 시대물에 따른 작품도 하였다. 이제는 많은 작품에는 한계가 있는 것같다. 그러나 아직도 역할이 주어진다면 열심히 할 자신이 있으며 노역역할과 영화속에서 카메오라도 출연하고 싶은 바램이다.
자기소개 및 취미
그동안 많은 작품활동을 해왔다. 연기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많다. 나이가 비록 먹었지만 주어진 역할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제 역할을 다 할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여력이 있는 한, 노역과 작은 배역이라도 하고 싶다.
수상내역(영화)
▣기타 영화관련 수상내역/
1982년 제21회 대종상 영화제 공로상 (김소동 외 29명)/
1994년 제32회 대종상영화제 대종상 특별연기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임해림은 어린 시절 우연히 <귀착지>(1939), <성황당>(1939)에 아역(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연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개성에서 극단 인생좌를 창단해 활동했다. 인생좌에서 그는 ‘다찌니마이’(立ちにまい)라고 해서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구해주는 조연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인생좌가 해산되고 난 후 당시 흥행 극단이었던 청춘극장에 입단해 연극 「단종애사」, 「미륵왕자」, 「대원군」, 「어머니의 힘」 등에 출연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청춘극단이 해산하면서 청춘좌라는 극단을 창단하였다. 청춘좌에서는 임무영이라는 예명으로 연출을 하기도 했다. 연극이 사양길로 접어든 195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배우로 활동했다. 검술에 능했던 그를 눈여겨본 정창화 감독의 초빙으로 <풍운의 궁전>(1957)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풍운의 궁전> 이후로는 무술안무가로도 활동했다. 무술실력을 바탕으로 한국홍콩 합작영화 <용호풍운>(1970), <중원제일검>(1970) 등에 출연해 뛰어난 액션을 선보였다(한국영상자료원). 승마와 검술이 특기이다(영화백과).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 이채, 2004, 230~251쪽.
영화백과 편집위원회, 『영화백과』, 정치평론사, 1975, 129쪽.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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