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
Choi Sung / 崔星 / 1928  ~  2009
본명
최영준 (Choe Yeong-jun)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다정도 병이련가 1957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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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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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아홉살 인생 (윤인호, 2004) 교장
하늘정원 (이동현, 2003) 백구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 영화배우 박노식 (조명화, 2003) 인터뷰
연애소설 (이한, 2002) 택시손님
한우정,전쟁영화의 설계사 (박상홍,양창주, 2001) 인터뷰
고수 (김춘식, 1997) 노무라
베이비 세일 (김본, 1997) 회장
나쁜 영화 (장선우, 1997) 폭주진압짭새3
투캅스 2 (강우석, 1996) 어르신
학생부군신위 (박철수, 1996) 아버지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어린시절 충무에서 지낸 우리식구는 형제중에 아무도 예능에 관심이 없었지만, 유독 나만 호기심이 넘쳐 악극단의 무용선생으로부터 탭댄스를 배우고 중학교 때는 합창단에 들어가 예체능에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전에는 없었던 연애동아리, 연극동아리를 창단하여 규율이 심했던 당시 학생처장과 다투면서까지 동아리를 키워나갔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건 유진 오닐의 "집행선 넘어"로써 작품이 너무 좋아 소화하기는 어려웠지만, 나름대로 뜻깊은 일이었다. 그 후 6.25로 인하여 서울의 많은 시인, 문학인, 영화인들이 대구,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의 광복동에 '비원', '태백다방'으로 모여 그들만의 작품을 구상하였다. 지금은 없어진 '동아극장'의 주인인 학교 이사장 정재환씨의 추천으로 '윤봉춘'선생님한테 눈에 띄어 "논개"촬영에 단역으로 처음 출연하게 되었다. 조형기씨의 부친이신 조황씨와 친해져 서울로 따라가서 상경하여 배우생활을 시작하였다.
주요 영화작품
"순정의 문을 열어라" " 다정도 병이련가" "돌아온 항구" "돌아오지않는 해병"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라" " 내 주먹을 사라" "맨주먹 청춘" "조용한 이별" "흑발의 청춘" "허무한 마음" "신화를 남긴 해병" "최후전선180리" "귀신잡는 해병" "제독과 수병" "제 3공작" "공포의 18일" "5인이 사형수" "0시의 부르스" "흑수도" "그림자" "검은베레모" "국제암살단" "훼리호를 타라" "한양건달" "어머님의 사랑" "비바리" "소림사의 결투" "특별수사본부 3편" "원산공작" "푸른교실" "수병과 재독" "심봤다" "10대의 반항" "건드리지마" "외각지대" "야시장" "누가 용의발톱을 보았나" "시라소니" "투캅스 2" "학생부군신위" "베이비 세일"
애착작품 및 사유
존경하고 있는 '이만희'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가장 애착이 간다. 당시, 형은 이북으로 나는 군에 가지 않아도 되어 남다른 기분으로 이 작품에 임하였다. 남성적인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이유로 설레였고 두려웠으며 주연급은 아니었지만 한 병사로서의 역할에 난 만족하며 최선을 다했다. 촬영 첫날 기술이 좋지 않던 우리에게는 실탄을 가지고 몸으로 부딪치며 연기를 했는데, 갑자기 떨어진 수류탄으로 난 흙더미에 파묻히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스텝들이 날 찾을때까지 난 죽음을 경험한 것이다. 겪어보지 못했던 군의 생활, 전쟁 등 많은 것들이 생각나며 몸서리를 쳤던 그날 이후 더욱 연기에 몰입하게 되었다.(영화 찍을 당시 스텝 몇 명이 사망하고 다리를 절단하는 사건이 있었다)
하고싶은 말
자신의 인생관에 대해 "나의 생활은 영화다.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그래서, 영화와 자고 깬다. 만약 영화 출연이 없으면 감상에 젖어서 산다. 출연 교섭이 있어 아무리 적은 역할이라도 맡으면 그 역을 소화하는데 열중하며 행복해 한다. 이 지구상에 영화가 없어진다면 나는 사라질 것이다. 영화가 영원히 지속되면 내가 죽어도 내 존재는 영원할 것이다."
영화속 명소
"돌아오지 않는 해병"- 김포에서 고생하며 찍어 지금도 김포공항 위로 뜨면 자신도 모르게 창문 넘어 그 때를 생각하게 된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착한 사람은 멀리있어도 온 누리에 덮여있는 하얀 눈처럼 눈에 띈다. 그러나, 불순한 사람은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이걸 주축으로 모든 영화출연에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임하는 게 자신의 뜻.
자기소개 및 취미
어렸을적 배웠던 탭댄스를 즐긴다.
수상내역(기타)
■ 연극
2000년 대종상 특별연기상 수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8년에 충청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영화배우였던 조항의 권유로 윤봉춘 감독의 1957년작 <다정도 병이런가>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한다(영화백과). 1960년대와 1970년대 액션 영화에서의 조역으로 주로 활약했으며, 그 출연작으로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홍콩의 왼손잡이>(1965), <불붙는 대륙>(1965), <돌아온 팔도 사나이>(1969), <명동잔혹사>(1972),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등이 있다. 배우 활동은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 이어지는데, <학생부군신위>(1996), <나쁜 영화>(1997), <연애소설>(2002), <아홉살 인생>(2004) 등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약 5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영화배우로 활동한다. 2009년 8월 24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 참고문헌
영화백과 편집위원회, 『영화백과』. 정치평론사, 1975, 134쪽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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