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다큐 시간여행: 초-현실의 다큐멘터리(계속)

2020-10-30 ~ 계속
인디다큐 시간여행: 초-현실의 다큐멘터리(계속)
영화는 틀에 박힌 경험 그 이상의 것과 마주하기 위한 실천의 산물이다. 영화는 늘 현실과 함께하면서 동시에 현실 너머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숨어 있는 갈등을 추적하고, 현실이 구성되는 방식에 질문을 던져 또 다른 삶을 구상하는 것. 그러한 시도들에서 현실은 실증적으로 분석해야 할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한한 호기심과 질문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신비롭고, 매혹적이고, 불안한 대상에 가까웠다.

이번 ‘인디다큐 시간여행’은 현실을 넘어서는 다큐멘터리적인 실천과 상상을 경험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지배해 온 객관성의 신화는 잠시 제쳐두고, 다큐멘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나 언어화하기 힘든 대상에 접근하고 있음에 주목해보자. 이번 기획전에 소개되는 작품들에는 무의식 속에 웅크리고 있던 말들이 터져 나오고, 분열된 나의 모습 혹은 또 다른 나의 모습과 만나고, 다른 세계의 다른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이처럼 초-현실과 맞닥뜨리는 다큐멘터리들은 현실이 단일하거나, 이상적이거나, 총체적일 것이라는 신화적 상상을 거부한다. 오히려 그것들은 현실에 틈을 내거나, 현실을 조각내거나, 현실을 녹여버리려고 한다. 이번 기획전을 통해서 불가능성의 세계를 상상할 때 현실이 새롭게 발견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실험적인 기록들을 만나보자.

※ 공동주최: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 <나와 인형놀이> 대담(김경묵 감독 x 이도훈 영화평론가): https://youtu.be/yuPShFYgOvA
※ <완성된 몸> 대담(문소현 감독 x 정지혜 영화평론가): https://youtu.be/_zjAY6EqSow
※ 인디다큐페스티발: http://www.sidof.org
※ 본 상영은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아 진행되며, 한국영상자료원 KMDb VOD 기획전을 통해 제한적 관람 가능합니다. 영상 다운로드는 불가하며, KMDb VOD를 통한 즐거운 관람 되시길 바랍니다.


상영작품
  • 01. 나와 인형놀이 김경묵, 2004
    어린 시절의 난 인형놀이를 좋아했다. 그리고 엄마의 화장대를 놀이터 삼아 화장을 하고 치마와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가 돌아다녔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모든 것은 달라졌다. 학교에는 규칙들이 있었다. 그 규칙들은 축구와 고무줄, 바지와 치마를 나누었고 난 그곳에서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혼란스러웠다. 
  • 02. 골든라이트 임철민, 2011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도 여전히 방안은 어둡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방문을 열고 거실로 향하던 중에 창유리로 비치는 빛무리를 보게 된 나는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창문을 연다. 창밖엔 해가 지고 있다.
    -아니다. 뜨고 있나?
  • 03. 환호성 정재훈, 2011
    나는 이름도 없고 정체성도 없는 불가해한 힘을 영화 속에 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기 위해 이 영화 속 형상이 지닌 사회적 관계, 감정의 변화, 상징성, 성별 등은 영화 안에서 모두 깎아내고자 했다. 우리의 삶은 실상 체계적인 틀만으로는 잡힐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배 속의 꼬르륵거리는 소리와 밤하늘의 번개, 잠꼬대 같은 감각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길을 따라가야 했다. 그 길은 픽션으로 통했고 이러한 상상적 틀로 만든 인물 형상을 다큐멘터리적 순간들로 담는다면 그 힘은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생생한 모든 형상이 허기지고 부서지고 일그러지는 힘을 따스하게 발휘하기 발하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SF 공포영화이자 다큐멘터리이다. 
  • 04. 폐경 폐경 1 홍이현숙, 2013
    정확히 작년, 2011년 1월부터 생리가 멈추었다. 처음엔 으하하하 이게 웬 떡이냐며 좋아했다. 그러나 생리가 멈춘 뒤 처음엔 다리, 어깨, 그다음엔 목소리조차 생소한 느낌으로 내 몸이 차츰 변해가는 걸 느꼈다. “너,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온몸이 뜨거운 기운으로 확 휩싸였다. 위, 심장, 신장, 뇌…… 내 몸의 장기 하나하나가 나 여기 있다며 차례로 뜨거워졌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더워서 윗옷을 벗어젖혀야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신경이 곤두섰다. 뭔가가 온몸을 한바탕 휘저어놓았다. “이건 뭐지?” 사실 이 나이 되도록 크게 아픈 적이 없었으니 나는 내 몸이 항상 거기 있는 것으로 여겼다.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런데 내 몸이 이럴 줄 몰랐다 정말 몰랐다.
  • 05. 순환하는 밤 백종관, 2016
    시간은 이음매에서 어긋나고, 밤의 어둠 속에 유령이 다시 나타난다.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이다.
  • 06. 초현실 김응수, 2017
    김광배 씨는 참으로 극성스런 아빠다. 그는 아들 건호가 다니는 대학교의 MT를 따라간다. 아들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아들은 아직 철없는 고등학생이다. 건호는 죽었고, 우석대학교에 상담심리학과에 영혼입학을 하였다. 그에게 아들은 살아있다. 그는 아들이 성인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성인이 되면 아빠 품을 영원히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속을 썩여도 좋으니 말썽꾸러기 고등학생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편, 그는 아들을 자기 품에서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언제까지나 품에 안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녁때, 그는 아들을 MT에 혼자 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들이 성인이 되었음을 받아들인다. 아들은 혼자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어린 아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 07. 거대 생명체들의 도시 박군제, 2018
    도시의 소리가 있다. 그것은 끊임없는, 꾸밈없는 기원을 담은 망(望)의 음성이다. 개인의 소리가 있다. 그것은 조용한 편견의 혼잣말이기도 하고 나지막한 분노의 내뱉음이기도 하다. 
    더 작은 소리가 있다. 그것은 낮은 곳에 존재하여 아무렇지 않게 여겨져 왔지만, 긴 시간 동안 겹겹이 쌓여져 온 그것은 순간 공진한다.
    소리가 함성이 되는 그 순간,
  • 08. 완성된 몸 문소현, 2019
    신체는 고체처럼 견고하고 안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그게 지겨워 액체가 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미끄러지고 회피하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자유를 누리다가 지금은 고체도 액체도 아닌 슬라임이 되어버렸다. 어느 정도 형태가 있을 수는 있지만 단단하지 않으며, 물처럼 보이지만 흐르지 않아,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을 수 있다. 탄성이 있어, 탱탱하고, 말랑거리며. 쫀득하다. 그리고 촉촉하며, 반질반질하다. 그것은 원래 투명하지만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다양한 질감도 가질 수 있다. 어떤 종류 슬라임들은 탄성이 떨어지고 아주 천천히 흐르는 특성이 있지만, 물처럼 무언가를 띄우지 못하고 오히려 저 밑으로 가라앉힌다. 슬라임들은 서로의 신체를 공유하며 자유롭게 결합과 분리를 할 수 있다. 그 신체는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으며 될 수 없기도 하다. 얼마나 살았는지 알 수 없으며 그들은 곳곳에 태어나고 흐트러진다. 그것은 관객이고 배우며 작가이다. 여자이고 남자이다. 또한, 아이이다. 최초며 최후이고.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한 그 육체는 결코 버림받지 않는다. <폴 엘뤼아르 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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