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 이후 미국의 대한원조 기록영상 - 폐허에서 재건까지(종료)

2023-07-27 ~ 2023-08-26
한국전쟁기 이후 미국의 대한원조 기록영상 - 폐허에서 재건까지(종료)

변화무쌍한 국제관계의 속성을 감안하면 한국과 미국이 70년 째 적극적인 형태의 안보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특별하다.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합종연횡이 펼쳐지고 있는 국제관계 속에서 이토록 오랜 기간 원조국가로, 우방으로, 동반자로 함께 해 오고 있다는 것은 두 나라가 일정 부분 공동의 운명체로 결속되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됐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 한 측면에서 한국전쟁기와 그 이후 10여 년 이상 지속됐던 대한미군원조 활동은 동아시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군사적 평화와 사회 안정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다시 말해 안보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된 ‘군사원조’의 성격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미군과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의 대한원조체제는 주한 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 한국민사원조처(KCAC) 등의 체계로 변모하며 한국에 대한 구호, 재건, 복구 지원사업을 꾸준히 수행했다. 특히 미군대한원조(AFAK) 프로그램은 미군이 물자와 장비, 그리고 가능한 수준의 군 인력을 지원하고 지역에서 인력을 투입하는 소규모 지역사회 재건 프로그램으로서 1953년 11월부터 시작해 1971년까지 총 6,695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프로그램 성격상 주로 미군 부대 주둔 지역을 중심으로 학교, 병원, 고아원 등의 지역사회의 공공시설을 건설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여 선보이는 이번 KMDb VOD 기획전은 그간 국내에 공개된 적이 없거나 공개됐더라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6개의 미군 촬영 영상으로 구성하여, 한국전쟁과 폐허, 대한 원조, 그리고 재건된 모습까지의 흐름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 영상들은 체제 홍보와 보고의 목적으로 촬영돼 상당 부분 연출의 느낌이 농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로 통제할 수 없는 정서적인 순간들이 예상치 못하게 숨어 있다. 또 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한국 지역민들이 원조를 수동적으로 받는 태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의하고 고민하여 재건 프로젝트를 일궈나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도와 사실, 연출과 진실을 갈라 헤쳐 놓고 영상 바깥의 맥락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기록영상을 감상하는 묘미 중 하나일 것이다.



상영작품
  • 01. Seoul destruction and Inchon cemetery , 1950
    ¶ 한국전쟁 초기,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1950년 10월 8일에 미 해병대 1사단이 16mm 컬러 리버설 필름으로 촬영한 서울 도심의 모습이 영상 초반에 담겨 있다. 해방 이후 불과 5년, 이제는 전쟁으로 삶의 터전이 잿더미가 되었다.

    이후로는 북한군 포로 행렬, 차를 타고 이동하는 맥아더 장군의 모습, 인천 유엔군 임시묘지의 미 해병대 1사단 전사자 애도식 장면이 이어진다.
  • 02. FAR EAST REPORT SERIES TV, 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KOREA (UNCACK) TEAMS, SEOUL AREA, KOREA , 1952
    ¶ 한국전쟁 기간 중의 원조 활동

    이미 휴전회담이 9개월 째 지리하게 진행되면서 소모전의 양상으로 흐르던 1952년 4월 14일, 미 극동사령부 영상팀이 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 서울팀의 재건 활동을 담았다. 서울 영등포의 영등포국민학교와 경성방직 공장에서 미군 특파원의 인터뷰 동시녹음으로 촬영된 이 영상은 미국 등‘자유진영’의 시청자들에게 한국의 전시/전후 재건 활동을 소개하고 냉전기 사상심리전의 도구로서 활용할 목적으로 TV시리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군 특파원은 UNCACK의 재건 계획과 활동 방향을 소개하면서 전쟁 중 교육 시설의 피해 실태와 교사의 부족, 교실이 없어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700명의 학생들 등 당시 실상을 보고하고 있다. 전쟁 중에도 이미 후방지역에서의 대한 원조 활동이 진행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글자막을 켜고 영어로 진행되는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세요. 식별이 어려운 음성을 제외하고 번역했으므로 미묘한 촬영현장의 분위기와 당시 대한원조 상황의 대강을 더 느낄수 있습니다.
  • 03. KCAC CIVILIAN REHABILITATION CAMP, WONJU, KOREA , 1953
    ¶ 정전, 본격적인 재건의 시작

    정전협정 3일 전인 1953년 7월 24일의 원주 제2피난민수용소와 그곳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집을 짓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어 정전협정 당일인 7월 27일에 초등학교 6학년 국어책 인쇄본을 운반, 배부하는 장면이 뒤따른다. 어린이들은 교사의 지도로 춤과 노래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하다. 학교 재건과 교육 정상화는 대한원조활동의 최 우선 사항이었다. 정전 직후 재건 사업이 곧바로 시작됐던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영상. 대한원조 주관 조직은 1953년 7월을 기점으로 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에서 유엔극동사령부(UNFEC) 산하의 한국민사원조처(KCAC)로 변경됐다. 
  • 04. Armed Forces Assistance Korea (AFAK), South Korea , 1963
    ¶ 지역 특화 원조 프로젝트 사례 (1)

    1963년 11월 12일, 대한미군원조(AFAK) 프로그램으로 지어진 파주여자상업고등학교와 금촌지방병원 건물의 모습이 보인다. 인근 기지의 미군 장병들이 파주여상을 방문하여 배구 경기를 한다. 미군과 여고생들이 섞여 팀을 구성하고 우호를 다진다. AFAK 프로그램은 지역 특성을 고려한 소규모 재건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미군 기지와 인근 지역사회 간에 사회 문제들을 상쇄시키려는 목적 또한 있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군 촬영 기록영상은 컬러로 바뀐다. 
  • 05. Armed Forces Assistance Korea (AFAK), South Korea , 1963
    ¶ 지역 특화 원조 프로젝트 사례 (2)

    1963년 11월 13일, AFAK 프로젝트와 관련한 문산학교, 상광보린원, 박애원의 모습이 기록됐다. 미군 병사가 어린 아이들과 함께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거나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담겨 있다. 연출 의도가 짐작되는 모습들과,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함께 나타난다. 그 수많은 프로젝트의 현장에서 실제로 한국인들의 반응이나 정서가 어땠는지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영상에서만큼은 국가 대 국가, 조직 대 민간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있었으리라 상상하게 된다. 
  • 06. AFAK (ARMED FORCES ASSISTANCE TO KOREA) , 1964
    ¶ 재건된 서울

    1964년 2월 25일, 재건된 서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밤의 네온사인이 이채롭다. 정비된 서울의 도로와 숭례문의 모습. 재건 프로그램을 통해 신축됐던 국립보건연구원 건물의 모습 등은 파손된 건물과 잿더미로 가득했던 첫 번째 영상 속 서울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와 같이 한국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미국의 각종 원조를 통해 재건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반대로, 미국이 아무리 안보 차원의 원조 동기가 충분했더라도 한국인들의 강한 의지와 호응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장기 무상 원조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 원본 필름이 붉은 기운이 도는 세피아톤에 가깝게 변색되어 최대한 색보정 작업을 한 버전입니다. 색의 균형이 맞지 않더라도 최선의 결과물임을 감안하고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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