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도이 노부히로, 2020

by.김봉석(영화평론가) 2021-12-07조회 1,569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를 보기 전, 주목한 이름은 감독 도이 노부히로가 아니라 시나리오를 쓴 사카모토 유지였다. 도이 노부히로도 뛰어난 감독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를 연출했던 도이 노부히로는 영화보다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다. <이상의 결혼> <파랑새> <스트로베리 온 더 숏케이크> <운명의 사람> <잠자는 숲> <중쇄를 찍자> 등등. 화제를 모은 최근작으로는 2016년에 찍은, 연애와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남녀의 다정하고 은근한 사랑 이야기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가 있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정작 실천에는 힘들고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과 현실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사카모토 유지는 일본 드라마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은 <도쿄 러브 스토리>(1991)의 각본을 쓴 작가다. 당시 월요일 밤 9시가 되면 거리에서 젊은 여성을 볼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였고, ‘게츠큐’라고 불리는 월요일 밤 9시의 후지드라마는 최고의 인기 드라마 산실이 되었다. 1967년생이니, <도쿄 러브 스토리>를 쓴 것이 25세. 자기 세대의 일과 사랑을 리얼하게 그려내 찬사를 받았고, 트렌디 드라마 열풍을 가져왔다. 그런데 정작 사카모토 유지는 밝게만 그려내는 TV 업계에 질렸다며 96년, 돌연 일을 그만둔다. 한동안 연극과 소설 등을 파고들던 사카모토는 2002년 다시 각본을 쓰며 돌아온다. <라스트 크리스마스> <우리들의 교과서> <마더> <그래도, 살아간다> <최고의 이혼>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콰르텟> <아노네> 등 화제를 모은 작품이 즐비하다.

복귀 이후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은 화제작보다 문제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사카모토가 다루는 드라마의 소재는 이지메, 아동학대, 싱글 마더, 직장내 괴롭힘 등등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을 그대로 보여준다. 트렌디 드라마의 원점이 사카모토 유지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사카모토의 드라마는 마주보기 불편한 이야기를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대중의 눈앞에 들이민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둡기만 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어둠에 먹히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사카모토 유지가 쓴 드라마를 좋아했기에, 그가 보여주는 청춘의 사랑은 어떨지 궁금했다. 영화 작업은 오랜만이었다. 사카모토는 2004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당시 일본 영화계의 흐름을 바꾼 역작으로 평가된다. 이후 <김미 해븐>(06)과 <서유기>(07)의 시나리오를 쓴 후 15년 만에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로 영화에 돌아왔다. 도이 노부히로와는 이전에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와 <콰르텟>을 함께 작업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20대 초반 남녀의 사랑을 그린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지는 작은 사랑 이야기. 대단할 것 없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울림이 큰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스물한 살의 키누는 말한다. 토스트를 바닥에 떨어트리면, 늘 버터를 바른 면이 바닥에 닿는다고. 살면서 유별난 행운이 찾아온 적 없고, 누군가 관심 있게 쳐다봐 준 적도 없는 평범한 인생. 그래서 언제나 조용히 지내고, 흥분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무리 좋아하고, 열광해도 나에게 좋은 일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무기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 대학생이다. 구글 스트리트 뷰를 보다가 자신이 찍힌 것을 보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한 흥분이 있을까 생각한다. 좋아하는 동급생은 자기를 무시하는 듯 관심 있는 듯 거리를 두며 지낸다. 키누도, 무기도 눈에 띄지 않는 유형이다.

그렇다고 아주 보통은 아니다. 키누와 무기는, 일본식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문화계다. 책, 영화, 만화, 음악, 전시 등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전철 막차를 놓치고, 우연히 같이 있게 된 그들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심야 카페에서 ‘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있던 직장인 남녀는, 마니아로 불릴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면서도 오시이 마모루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은 <마녀 배달부 키키>를 실사로 보고 좋아하는 부류다. 함께 있던 자리에서 뭐라 말할 수 없었던 키누와 무기는, 밖에서 ‘오시이 마모루’를 떠올리며 즐겁게 대화한다. 그들의 대화는, 만남은 이렇게 ‘문화’로 시작되고 흘러간다. 좋아하는 작가가 같고, 같은 만화를 보며 즐거워하고, 마침 신고 있는 신발도 같은 브랜드다. 무기의 집에 간 키누는 마츠모토 타이요와 나난 키리코, 모치즈키 미네타로,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만화와 나가시마 유, 호무라 히로시, 이시이 신지, 오가와 요코의 소설이 꽂힌 책장을 보며 말한다. ‘거의 내 책장이잖아’라고. 같은 것을 보고 듣는다는 호감으로 시작된 사랑은 같은 것을 함께 경험하면서 점점 커져간다.
 

그러나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2020년에서 시작한다. 카페에 앉은 남녀가 음악을 듣는다. 이어폰을 한쪽씩 자신의 귀에 꽂고, 같이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뒤편에 앉은 키누가 말한다. 저건 음악을 듣는 게 아니야. 다른 자리에 앉은 무기가 또 말한다. 엔지니어는 섬세하게 양쪽에 다른 소리를 배치하여 함께 들으면 하나의 음악이 완성되는 거야. 키누와 무기의 옆에는 다른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미 헤어진 것이다. 관객은 두 사람이 이제는 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어떻게 동거를 하는지 보게 된다.

궁금하다. 이렇게 비슷한 취향을 가진 남녀는, 어떤 과정을 통해 헤어지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이 서로 다른 길을 택하게 한 것일까. 키누와 무기는 보통의 남녀다. 키누는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업을 하려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프리터가 된다. 무기는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하지만 대가가 너무 작다. 자신의 꿈을 찾겠다는 무기의 말에, 니이가카에 사는 아버지는 이제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고 답한다. 동거를 시작한 키누와 무기는 알바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을 유지해간다. 하지만 알고 있다. 알바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러스트 일만으로 안정적인 미래는 없다는 것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현실에서 조금씩 지쳐가는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같은 경험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방식으로 온전하게 각자의 생활을 유지해야만 ‘동거’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삶 없이 함께 하는 삶은 가능하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무기는 영업직으로 취직한다. 키누는 회계 자격증을 따서 병원에서 일한다. 무기의 바람은 현상유지다. 키누와 함께 이대로 주욱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책도, 영화도, 게임도 이제는 즐길 여유가 없다. 봐도 재미가 없다. 일하는 틈틈이 핸드폰 게임을 하는 정도다. 키누는 책을 보고, 영화를 보기 위해 일한다. 되도록 좋아하는 것들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림도 못 그리고, 글도 못 쓰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가깝게 지내며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면서, 현상유지를 하고 싶지는 않다.
 

‘꽃다발 같은 사랑’ 이야기다. 빛나는 순간,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 하지만 그들의 매순간이 완벽해서 그런 아름다운 사랑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키누가 좋아하는 미라 전시를 무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는 가스탱크이지만 무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키누는 함께 보러 간다. 모든 것이 똑같기 때문에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지 않아도, 즐겁게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으니까.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사랑의 미묘한 순간들을 부드럽게, 정서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서서히 어긋나는 과정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사건과 충돌이 아니라 미묘하게 어색하거나 낯선 공기를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키누는 엄청 좋아할 때도 막 흥분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 영화도 그렇다. 그렇기에 더욱 진하게 감정이 밀려든다. 관객이 그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영화 속 일상의 공간에 채워 넣는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사랑의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대신, 함께 하는 것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스쳐 지나가며 관객이 상상하게 만든다. 스스로 깨닫게 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서서히 잠겨드는 영화다. 키누와 무기가 사회의 완강한 벽에 부딪쳐 좌절할 때에도, 세상 안에서 키누가 자신의 ‘취향’을 붙잡고 종종걸음을 칠 때에도, 공감을 느끼며 바라보게 된다. 이건 멋진 사람들의 화려한 연애담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작고 흔들리는 순간들의 이야기다. 결코 끝나지 않을 인생의 이야기. 언제나 내 주변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은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그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키누와 무기는 헤어지고도, 여전히 같은 취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서로의 행복을 빌어줄 뿐이다.
 

사카모토 유지는 67년생, 도이 노부히로는 63년생. 둘 다 50대 중반의 나이다. 이제 장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지금 20대의 이야기를 너무나 신선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연구조사취재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언제나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20대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언제나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가 만드는 세상은 언제나 경이로우니까. 여전히 젊음이 사카모토 유지에게는 있다. 사카모토 유지의 젊은 대사, 장면을 보는 것은 너무나 생생하고, 마음이 끌린다.

젊다. 젊음의 빛나는 순간이 한껏 나의 세상에 비치는 영화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다. 그래서 즐겁고, 또 슬프다. 그들의 사랑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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