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바람에 흔들리는 도시  아부자르 아미니, 2018

by.김영우(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 2019-12-10조회 7,124
카불 바람에 흔들리는 도시 스틸
지옥에서 보낸 한철

올해 많은 주목을 받았던 다큐멘터리는 시리아 내전, 그 중에서도 알레포 봉쇄작전을 아이를 둔 엄마의 시선과 극적인 스토리로 담아내며 큰 화제를 모았던 <사마에게>(와드 알-카테아브 , 에드워드 왓츠, 2019)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카불, 바람에 흔들리는 도시>(아부자르 아미니, 2018)일 것이다. 중동의 석유와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들의 복잡한 셈법과 종교적 갈등이 겹치면서 늘 혼돈과 부침을 겪고 있는 지역이지만, 특히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대립, 그리고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득세로 혼전의 양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시차를 두고 유사한 진행과정을 거쳐온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의 최근 상황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주목을 받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카불, 바람에 흔들리는 도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아프가니스탄 출신 감독이 연출한 아프간에 대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에서 1979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1979년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오랜 혼돈의 중동역사에서도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해로 기록된다. 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동정세와 정치적 격변의 시발점이 되는데, 당시 미국이 중동의 교두보로 삼고 있던 이란의 친미정권이 혁명으로 무너지자 중동의 패권을 노리던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시작된다. 하지만 소련에 맞선 이슬람 무장세력 ‘무자헤딘’의 전면적 항전으로 10년 동안 전쟁을 치르게 되고, 이 기간 동안 소련에 맞서는 탈레반을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미국이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가 이후 이 세력들과 적으로 만나면서 다시 맞서게 된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잘 알려진 사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이슬람 원리주의와 무장투쟁의 확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1996년부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기도 했는데, 역사적으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강대국들의 침략을 겪어온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영국과의 전쟁에 이어 소련,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강대국들의 침략과 항전으로 늘 부침을 겪어왔다.
 

<카불, 바람에 흔들리는 도시>이 보여주는 카불은 총성과 포탄으로 가득한 지옥도가 아니다. 자살폭탄의 위협이 상존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늘 가까이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는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우선 낡은 버스를 몰며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버스운전사 아사드. 할부로 버스를 구매한 아사드는 고장 난 버스를 수리하기 위해 낡은 부품을 구하러 다니고 여기저기 돈을 빌리는 처지. 빨리 버스운전으로 돈을 벌어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지만 고장 난 버스를 수리할 제대로 된 부품을 구매할 자금이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낙천적인 성격이기도 하다. 살아오는 동안 10% 정도가 평화로운 시절이었다고 말하는 아사드에게 자살폭탄과 전쟁보다 더 위협적인 건 생활고. 하지만 적당히 비열하고 잔머리를 굴리는 아사드의 면모는 아내에게 숨겨둔 돈이 없는지 떠보고 친정으로부터 돈을 구해올 수 없는지 은근히 강요하는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영화의 중반, 중도금을 지불하지 못하자 버스를 돌려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일부러 버스엔진을 망가뜨렸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영화의 압권으로,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여전한 인간적인 욕망과 이해타산을 잘 보여주는 인간미 넘치는 장면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카불을 떠나야 하는 아버지로부터 가장의 역할을 떠안게 되는 소년 아프신과 동생. 일상이 된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2018년 화제를 모았던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와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시몬 레렝 빌몽, 2017)는 2014년 크림반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이 촉발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성향의 분리주의자들이 벌인 내전의 주전장이 되었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총성과 폭발음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들의 일상과 공포를 다룬 영화. 공간은 다르지만 소년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상의 공포와 척박한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절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 것’과 ‘꼭 나무에 물을 줄 것’을 당부하고 떠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아프신은 동생과 놀아주고 아버지를 대신해 사회봉사에 참여하고, 어머니를 대신해 시장에 나가 설탕을 사오곤 한다. 그래서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는 어린 아프신 형제의 꿈과 공포에 대한 독백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영화의 마지막. 자연의 순환을 따라, 겨울이 다가오고 내린 눈은 카불을 뒤덮는다. 결국 버스를 고치지 못한 아사드는 버스 안내원이 되었고, 아프신과 동생은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운다. 그렇게 또 한 계절이 지나가고 그들은 여전히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영화는 늘 존재하는 자살폭탄과 위험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전혀 담아내지 않는다. 다만 2016년 발생한 ‘데 마장 광장 자살테러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무덤과 그들에 대한 친구들과 가족들의 기억이 간간히 언급될 뿐이다. 최근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아프간 내부의 상황을 2015년부터 카메라에 담던 감독은 2016년 ‘데 마장 광장 자살테러사건’을 목격한 후, 폭력적인 장면을 영화에 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중국계로 네덜란드에서 활동중인 프로듀서 지아 자오와 팀을 이루며 제작초반단계부터 주목을 받았던 프로젝트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제작 초반단계에서 지원을 받았고 이후 유럽에서도 상당한 관심과 제작지원을 받으며 완성되었다. 2018년 11월 2018년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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