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아들 라즐로 네메스, 2015

by.장영엽(씨네21 편집장) 2015-12-10조회 5,665
사울의 아들 스틸 이미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수많은 올해의 영화들이 존재하지만, 이 지면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헝가리 감독 라즐로 네메즈의 데뷔작 <사울의 아들>이다. 개인적으로 더 강렬한 감흥을 받았던 허우샤오시엔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아름다운 영화, <자객 섭은낭>과 <찬란함의 무덤>을 제쳐두고 이 작품을 소개하려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두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관람 기회가 요원할 것 같았다(고 적었으나 이 글을 쓴 이후 <사울의 아들>이 내년 2월경 개봉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둘째. 홀로코스트라는 위험한 소재 속으로 대담하게 뛰어든 이 영화의 용감함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셋째. 아직은 낯선 라즐로 네메즈라는 이 신인감독의 이름을 더 많은 한국 관객들이 기억했으면 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사사로운 이유를 들자면, <사울의 아들>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중 무언가 새로운 것이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내게 처음으로 줬던 작품이었다. 영화제 초반부 상영작이긴 했지만,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사울의 아들>로부터 받았던 방식의 충격과 감흥을 선사하는 작품은 보기 드물었다. 

<사울의 아들>은 1944년,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손더코만도로 일하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사울의 이틀을 조명한다. ‘손더코만도’라는 낯선 용어에 고개를 갸웃할 틈도 없이,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사울이 이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 어떤 일을 해오고 있었는지 알려준다. 한무리의 유대인들이 알몸으로 샤워실에 들어간다. 사실 그들이 샤워실인 줄 알았던 그곳은 가스가 뿜어져나오는 살육의 공간이다. 이윽고 문이 닫히고, 끔찍한 비명과 절규가 들려온다. 모든 것이 끝나면 사울의 업무가 시작된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수감자들이 벗어놓은 코트에서 귀중품을 챙기고, 알몸의 시체들을 가스실 밖으로 끌어낸다. 온갖 분비물로 더럽혀진 가스실 바닥을 닦는 것 역시 사울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손더코만도들이 가스실을 비워내면 또 한 무리의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학살은 그렇게 도돌이표처럼 계속되고, 유대인 포로이지만 수용소 안에서 나치에 의해 고용된 잡역부(손더코만도)인 사울은 기계적으로 죽음의 흔적을 지우는 일을 반복한다. 그에게 죽음은 일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초점 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사울에게 뚜렷한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 찾아온다. 수용소에서 한 남자아이의 시체를 보고 나서부터다. 사울은 그 소년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소년에게 유대인으로서 합당한 장례를 치러주고 싶어한다. 사울은 아이의 시체를 화장터로부터 빼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수용소 안에서 아이의 장례를 치러줄 랍비를 백방으로 찾아다닌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용소 안에서 나치에 대한 반란을 준비하던 손더코만도 일행을 돕는다. 

사울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극영화를 통틀어 가장 당혹스러운 주인공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미 죽은 자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죽은 자의 육신을 합당한 방식으로 거두기 위해 종종 동료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그의 행동은 홀로코스트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윤리의 질문 저 너머에 있다. 사울에게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가 반드시 해내야겠다고 결심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것이다. 그 임무가 이치에 맞지 않고 때로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처럼 느껴지더라도, 인간성이라곤 절멸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울의 행동은 가장 인간적인 제스처로 다가온다. 

홀로코스트를 재현하겠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도 여타의 홀로코스트 영화와 <사울의 아들>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행해진 수많은 살인과 잔혹 행위들의 참상을 재현하고 기록하는 건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곳에 무엇이 있게 될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울의 아들>의 접근방식이다. 라슬로 네메즈가 이 영화를 위해 4:3의 화면비를 취한 건 바로 그러한 선택에 따른 게 아닌가 싶다.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사울의 얼굴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사울의 아들>은 주인공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을 최대한 협소하게 보여준다. 충격적인 오프닝 시퀀스의 가스실 학살장면이나 포로들을 구덩이에 모아놓고 무차별적으로 총살하는 야밤의 비극적인 사건은 오직 사울이 체험하는 범위 안에서만 관객들에게 보여질 뿐이다. 

프레임 밖으로 잘려나가거나 흐릿하게 처리된 이미지들의 공백을 메우는 건 사운드다. 단언컨대 <사울의 아들>은 올해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사운드를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철컹거리며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가스실에 갇힌 이들의 소름 끼치는 비명, 감독관들의 호령 소리, 폴란드어, 독일어, 유대어 등 수많은 언어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정체불명의 화음은 관객이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사운드 디자이너 타마스 자니가 만들어낸 <사울의 아들>의 음향은 날카롭고 명확하기보다 강렬한 울림과 긴 여운을 지니고 있는데, 이처럼 풍성하게 연출된 사운드가 제한적이고 압축된 시각적 이미지와 맞물려 효과적인 대구를 이룬다는 건 이 영화가 이뤄낸 기술적 성취를 짐작하게 한다. 

장편영화 데뷔작 <사울의 아들>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쥔 라슬로 네메즈는 벨라 타르의 2007년 작 <런던에서 온 사나이>의 연출부를 맡았던 경험이 있다. 유려한 페이스의 롱테이크 이외에도 그가 스승에게 물려받았다고 짐작되는 유산이 있다면, 그건 바로 대담함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런 것들을 용감하게 표현하는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는 스승의 말대로, 라슬로 네메즈는 여전히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를 소환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금기의 질문들을 용감하게 돌파해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사울의 아들>은 기억되어야 할 영화고, 지지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사울의 아들>과 더불어 선정한 영화들에 대한 소감도 이 지면을 빌려 간략하게 전한다. 허우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은 과연 글이라는 형식을 빌어 이 영화의 미학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색감과 앵글, 리듬과 호흡. 허우샤오시엔의 그 모든 선택과 감각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 영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찬란함의 무덤>은 올해 본 가장 인상적인 설치물이 등장하는 작품이자 아피찻퐁의 최근작 중 가장 감상적으로 다가온 영화였다. <스파이 브릿지>는 <사울의 아들>과 정확히 반대되는 이유로 좋았는데, 예민한 소재를 누구나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풀어내면서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영화로 만들어낸 스필버그의 연출력을 기억하고 싶었다. <캐롤>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배우 때문이다.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늠하면서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두 여자의 심리 묘사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영화다. <산하고인>은 시간과 사람에 대한 지아장커의 애상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폭스캐처>는 스티븐 카렐의 괴물 같은 연기와 베넷 밀러의 차분한 연출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알프스 산맥처럼 정교하고 미스터리하게 흘러가는 내러티브의 묘미, 그리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예상외로 꽤 매력적인 조합이었던 세 여배우-크리스틴 스튜어트, 줄리엣 비노쉬, 클로이 모레츠-의 앙상블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선정했다.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필립 가렐의 신작인데, 대사의 날카로움은 여전하고 흑백화면은 여전히 파리 특유의 정서(지금은 다른 이유에서 좀 더 특별해졌다)를 머금고 있다. 마지막으로 루카 구아다니노의 <비거 스플래쉬>는 정말로 사사로운 이유 때문에 선정한 작품이다. 이 리스트를 선정하기 위해 고심하는 순간, 풀장으로 첨벙 소리를 내며 뛰어들던 <비거 스플래쉬>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프랑소와 오종의 <스위밍 풀>과 같은 원작을 공유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여인의 육신보다 입수 장면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몸과 물이 맞닿는 순간의 마찰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비거 스플래쉬’를 몹시도 감각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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