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OST]영화음악감독 인터뷰4: 이재진

by.문상윤(영화음악 수집가) 2014-07-11조회 17,193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2000년 새해,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던진 잔향은 크고도 묵직했다. 한 40대 남자의 자살을 시작으로 찬찬히 과거를 되짚어 올라가는 비선형적인 서사와 개인의 상흔을 통해 굴곡진 현대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담담하고도 대찬 시선은 지금껏 봐온 영화와 또 달랐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변곡점보다 조금 더 흘러간 어느 일상을 통해 남자의 과오와 고통을 짚어내는 기억의 편린들은 잔인하지만 솔직하고, 메말라 버린 감정의 남자가 원래는 순수하고 평범했음을 고백하는 여정은 슬프지만 현실적이다. 이를 위로하는 건 중간 중간 거꾸로 가는 기찻길 풍경에 흐르던 이재진의 음악이다. 그의 찬란하고 애달픈 선율은 등장인물을 위로하고, 아픈 우리네 현실을 위로하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환멸과 기만이 가득했던 그 시절, 박하사탕처럼 하얗고 순수했던 모습을 찾아 보사노바 리듬은 부유하고 꿈을 꾼다. 갑작스런 등장이었다. 크레딧에 새겨진 그의 이름은 낯설고 새로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수학한 작곡가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재진은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하고 현장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음악가다. 이창동 감독과 함께한 기념비적인 데뷔작 <박하사탕>을 필두로, 자신의 영화적 동반자가 될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과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SF 대작 <내츄럴시티>의 음악을 담당하며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주목받았다. 필모그래피 초기에 위치한 그 작품들은 신인 영화음악가가 들려줄 수 없는 내공과 신기를 보였고, 또 놀랄 만치 다양한 스펙트럼과 폭넓은 궤적을 지녔다. 그 뒤 보여준 행보 또한 그의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의미했다. 다양한 상업영화들로 범주를 넓혀가면서도 그는 영화음악에 대한 본질과 이유를 잊지 않았고, 섬세하고 탁월한 멜로디와 풍부한 감성을 얹은 오케스트레이션, 치밀한 분석과 계산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나섰다. 이재진의 스코어는 일종의 영화에 대한 음악적인 모범 답안인 셈이다. 송해성 감독을 기점으로 이한, 황인호, 정지우, 홍지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또 허진호김대우, 변혁, 육상효, 변승욱, 김민석 등 다양한 감독들의 부름에 응했다. 여전히 뜨겁고 정열적으로 활동하며 영화와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인간중독

먼저 최근 개봉된 <인간중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클래식컬한 사운드에 기조를 둔 작품이었어요. 바흐의 곡(오보에를 위한 현 콘체르토 Concerto In D minor BWV974)을 전면에 배치했는데, 이는 김대우 감독님의 의견이라 들었습니다.
네, 그 곡을 피아노와 기타로 연주했죠.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쓸 때 음악을 많이 들으시고, 또 영감이 떠오르곤 하셨다는데, 그 중 몇 곡의 레퍼런스가 있었어요. 그 음악들이 실제 영화에 그대로 반영될 순 없더라도,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쓴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인간중독>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은 이 음악에서 왔다, 그런 걸 알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바흐의 ‘오보에를 위한 현 콘체르토’는 마르첼로라는 사람의 곡인데요 그걸 바흐가 편곡해서 유명해졌죠. 그 중 글렌 굴드가 연주한 피아노 솔로 버전은 다른 버전에 비해 색깔과 질감이 완전히 달라요.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있는데, 감독님은 그 곡의 정서를 좋아하셨죠. 결국 그 곡을 영화의 어떤 부분에 붙인 상태로 편집실에서 넘어 왔어요. 이걸 무시하고 제가 다른 곡을 만들면 되는데, 그러기엔 너무 좋았어요. 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감독님 이 곡은 (그대로) 가시는 게 좋을 거 같다. 중요한 장면에 쓰자. 그렇다고 두 번 반복해 쓰는 것 보다는 한 번은 피아노, 한 번은 기타로 하는 게 어떨까요, 했던 거죠. 차 안에서의 정사 씬에서는 기타로 했죠. 그런데 중요한 건 그냥 연주하면 글렌 굴드 냄새가 안 나요. 그의 연주 방식은 기본적인 클래식 어법에서는 어긋나는 방식이거든요. 그렇다고 글렌 굴드의 방식을 클래식 연주자에게 그대로 부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지인을 통해 부탁하게 됐어요. 결국 글렌 굴드의 연주 호흡과 똑같이 제가 메트로놈을 만들었어요. 글렌 굴드처럼 빠르게 느리게를 중간에 다 넣고, 그걸 들으면서 연주를 해서 더 유사한 느낌이 나도록 했죠. 기타도 그렇게 했고요. 그럼 글렌 굴드 버전을 그냥 쓰면 되지 않을까도 싶지만, 글렌 굴드 버전은 노이즈가 너무 많고요, 또 본인이 스캣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연주를 하거든요. (웃음) 그대로 붙이면 문제가 있었죠. 저작권 라이선스 푸는 문제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인간중독> 버전을 만들자, 그렇게 하는 게 영화와 너무 잘 맞는 거 같았어요. 공교롭게 그 장면 이후로 음악 감상실 장면으로 공교롭게 잘 이어지기도 했고요.

김대우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제가 전에 TV 드라마 할 계획이 있었어요. 규모도 꽤 있는 작품이었고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또 해보고 싶은 매체였는데 시스템 자체가 영화와 많이 다르더라고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까 완전히 다른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 화면에 음악이라 비슷할 거 같은데, 그래서 누군가는 영상음악 이렇게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결과물이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제도가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힘들었고, 결국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하겠다고 하는 순간 <인간중독> 제안이 왔고, 그래서 (감독님을) 뵀죠. 그런데 그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저를 아티스트로서 존중해주셨고, 저보다 연배도 많으시고 경력도 많으시지만 스태프로서 존중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제 입장에선 너무 좋았죠.

필모를 보면 멜로 장르가 두드러집니다. 물론 조금씩 다르긴 했는데 <인간중독>에서 고민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필모 중에서 멜로가 끊긴 지점이 있어요. 아마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 <호우시절> 이후이죠. 그 이후에 우리 영화계가 많이 바뀌었어요. 템포를 중요시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스릴러 장르가 굉장히 많이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를 하게 됐는데, 전 개인적으로 멜로를 좋아해요.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리고 음악적으로 역할이 가장 큰 장르가 멜로인 것 같아요. 멜로라는 게 ‘멜로스’, 음악에서 온 게 아니냐는 말도 있으니까요. 다른 장르라고 해서 음악이 두드러질 수 없는 건 아니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며칠 전에 <고질라>를 봤어요. 전 (음악을)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했다고 해서 봤는데, 아쉬웠던 게 뭐냐면… 왜 <고질라>를 했을까. 굳이. 돈을 많이 주면 할 수 있겠지만 (웃음). 돈도 많이 쓴 거 같더라고요. 풀 오케스트라에... 첫 번째 이유. 물론 제 추론이에요. 자신의 한계성에 대해 주변을 의식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런 거(장르)밖에 못하는 거 아니야? 이런 시선 때문에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 했을 수도 있다 라는 거죠. 그래서 그전의 필모와 약간 다른 걸 한 이유가,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어, 한스 짐머나 존 파웰처럼 할 수 있어, 이런 걸 보여주려고 했던 거 같아요. 두 번째 이유, 본인의 한계를 스스로 시도해보고 싶었지 않았을까. 하나는 의식해서고 하나는 스스로. <색계> 이후로 음악들이 굉장히 비슷비슷해요. 특유의 멜로디와 코드 쓰는 방식이 항상 비슷해요. <색계>는 굉장히 신선하잖아요. <킹스 스피치>까지는 괜찮았나? 그다음부터는 비슷비슷… 하죠. 그래서 스스로 도전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 <고질라>는 실패다. (웃음) 하지만 옹호해주는 입장에서는 이래요. 누가 해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건 장르의 특성상 음악의 역할보다는 사운드의 역할이 큰 거죠. 관습에 의한 음악을 만들었다 뿐인 거죠. 장르 영화라는 게 관습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해도 특별할 게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나름 데스플라가 뭔가 해보려고 했던 시도가 보여요. 그게 중간중간 조용한 장면에서 음악이 삭 나오는데 상당히 언밸런스해요. 한스 짐머처럼 쉽게 쉽게 가면 되는데 본인의 특유의 냄새를 넣은 게 언밸런스해지더라고요. 아무튼. 멜로가 아닌 다른 장르는 그냥 관습으로 인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멜로는 무조건 멜로디로 승부를 봐야 하는 거거든요. 그 하나가 귀에 꽂히거나 역할을 해야 하는 거기 때문에, 그리고 뭔가 마음에 있는 걸 표현해야 하고, 그래서 어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했을 때 쾌감이 훨씬 많죠. <우행시>에서는 이나영씨가, 거기선 유정이죠. 유정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강동원이 죽을 때, 음악 나오면서 사악 갈 때, 마무리될 때, 음악을 붙였을 때 쾌감이 있거든요. 그런 건 멜로에서밖에 못 느껴요. 그런 것 때문에 많이 했고 좋아했는데, 그 이후에는 그런 장르가 영화계에서 사실은 많이 안 만들어졌고, <인간중독>은 오랜만에 한 정통멜로였죠. 감독님도 그러셨어요. 음악감독님의 필모에서도 잊혀지 않은 대표적인 OST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하셔서 굉장히 힘이 됐죠. 자신 있는 장르였고요.

인간중독

정사 씬에서 음악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두 번째 정사 씬이 벌어지는 경 대위의 집에서 음악적 쓰임이 인상적이었어요. 정적으로 음악이 없다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음악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두 사람의 감정이 폭발하는 것처럼. 그리고 수류탄이 터지는 장면으로 넘어갔고요. 그러면서 삭 사그라지는 마무리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계산이 있었던 건지요?
원래 콘셉트는 정사 씬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있는 거였어요. 근데 감독님께서 음악으로 쭉 가니까 신음 소리와 같은 사운드를 통한 미묘한 감정, 성적인 무드가 감쇄된다, 라고 하셔서 음악을 뒤로 완전히 밀어봤는데, 그러니 또 생각만큼 느낌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다시 앞으로 배치하고 중간을 비우는 방법을 택한 거죠. 신음소리가 나는 부분부터, 아마 팬티를 만지나? 그 부분부터 음악이 사악 없어지고 나중에 탁 잡으면서, “아!” 하면서 음악이 팍 터지죠.

음악 감상실에서 유해진과 송승헌의 춤곡으로 쓰인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의 선곡도 감독의 의견이었나요?
네. 원래 거기도 쓰고 나중(춤추는 장면)에도 사용하려고 했는데, 제가 보니까 뒤에 두 사람이 춤을 추는 왈츠에서는 이 곡을 쓰기가 조금 곤란했어요. 앞 이야기에 로맨스를 보여주는 데이트가 없거든요. 절절하게 아름다운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춤이 굉장히 강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 가려고 했던 걸 제가 만든 곡으로 하자, 했고, 아니다 맞다, 하다가 결국 제가 만든 왈츠로 하게 됐죠.

인간중독

1969년이란 시대를 다뤘음에도 그 시대의 곡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독특한 분위기랄까. 관사의 폐쇄적인 특수성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유가 있는지요.
첫 번째 이유는 쓸 곳이 없었어요. 음악 감상실에서는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설정이었고, 뒤의 춤 추는 장면들은 창작으로 가는 거였고, 나오려면 두 군데, 의상실이나 미용실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사용하려면 7~8개 씬을 다 음악으로 해야 해요. 굉장히 많은 음악이 필요한 거죠. 한 번 할 거면 다 해야 한다는 거죠. 의상실이나 미용실의 첫 날은 음악이 있고, 둘째 날은 없고 그럼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작권료가 만만치 않은 거죠. 저작권과 음반 사용료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한 곡당 미니멈 1,500만원 정도 들어야 할 거예요. 그럼 그것만 해도 5곡이면 얼마예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꼭 그 당시의 음악으로 시대를 환기시켜야 할 만큼 시대 환기가 안 되고 있느냐. 아니다. 그럼 굳이 필요 없다, 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기존의 음악을 넣어보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잘 안 맞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사를 계속 하거든요. 그냥 춤추고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안 들리다 보니까 과감히 빼자, 가 된 거죠. 처음부터 안 넣을 작정을 했던 거예요.

엔딩에서 배트 미들러의 ‘The Rose’가 나옵니다. 선곡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설마 음악감독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선곡을 하자고 하겠습니까? 딱 누가 봐도 몇천만 원 짜린데? (웃음) 저 같으면 제 음악으로 밀고 갔겠죠. 영화를 보면 한 번밖에 안 나오는 음악이 있거든요? 자살할 때 나오는 음악은 딱 한 번밖에 안 나와요. 그건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들어 하는 곡이고, 왈츠곡도 한 번밖에 안 나오는 곡이고. 그런 곡 편곡해서 쭉 가면 되죠. 그럼 더 좋아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계속 촬영하시면서 고민도 많이 하시더니 어느 날 ‘더 로즈’라는 곡 알지 않느냐, 그 곡을 한번 고민해봤음 좋겠다. 하시는 거예요. ‘더 로즈’ 딱 하는 순간에 가사가 그렇잖아요. 누군가는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는 그 가사가 딱 가은이의 마음 같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는 온주완이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송승헌이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가은이가 생각하는 사랑이 있어요. 여러 가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그래서 노래는 잘 어울리는데, 배트 미들러의 버전은 아니고, 테시마 아오이의 ‘더 로즈’가 떠오르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요. 가수 중에 목소리가 악기인 사람이 있어요. 김현식 씨, 김광석 씨도 그런 사람이었죠. 어떤 노래를 불러도 그 사람 것이 되는, 테시마 아오이의 목소리가 저에겐 그래요. 그런데 테시마 아오이 버전 ‘더 로즈’의 편곡 중 안 좋은 부분도 있고, 당시 반일감정이라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죠. 그래서 ‘더 로즈’로 하되 새로 녹음하죠, 해서 가장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떠오르는 가수가 국내에 있어서 접촉을 해보려 했는데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감독님이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테시마 아오이도 훌륭한데? 해서 야마하 뮤직에 연락해서 테시마 아오이 버전을 하게 된 겁니다.

박하사탕

그러시군요.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데뷔작이 이창동 감독님의 <박하사탕>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웃음)

변승욱 당시 조감독님의 소개로 하게 됐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요.
승욱이 형은 옛날에 음악을 했어요. 대학교 때. 한양대에서 (노래) 동아리를 만드셨어요. 제가 그 동아리에 들어가던 거죠. 그분은 나이 차도 많이 나는 대선배인 거고, 소위 말하면 레전드인 거잖아요. 실력도 상당히 좋으시고, 기타도 잘 치시고요. 그분이 음악을 그만두시고 CF를 찍으셨다가, 유학을 갔다가 촬영, 영화공부를 하시고 거의 다 끝나갈 때, 제가 보스턴(버클리)으로 유학을 간 거예요. 제가 영화음악 공부하는 걸 알게 되셨고, 그러다 승욱이 형의 아는 분을 소개시켜줘서 그 분의 졸업 작품 음악을 제가 했고, 그분도 만족하셨고. 그래서 어 쟤가 영화음악도 잘하네? 그러다 한국에 와서 <박하사탕> 연출부가 된 건데 연락이 저에게 온 거에요. 1999년 1월 1일이에요. 날짜도 잊질 못해요. 이런 작품이 있는데 네가 한번 해볼래?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아서 보고 10곡을 만들어서 페덱스로 보냈어요.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연락이 왔어요. 글쎄 특별히 말씀이 없으신데? 더 보내봐, 그러는 거예요. 전 감독님 이야기도 없고 그래서 막막하다 못하겠다, 그랬는데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하셨다는 거예요. 10곡을 또 만들어서 페덱스로 보냈어요. 아 당시 유학생에게 페덱스는 비쌌어요. 그러다 또 시간이 흐르고 3월이 됐어요. 연락이 없는 거예요. 아 형 이제 안 할래요. (웃음) 학교도 바쁘고 아직 학생이고 기회는 또 있겠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많이 관심 주는 영화다, 해서 좋은 기회다 해봐 라고 하는 거예요. 알았어요, 그러고 있다가 그때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해 먹었는데 거기선 행운의 과자(포츈 쿠키)를 주잖아요. 저 그런데 굉장히 민감해하거든요. (웃음) 그래서 안 보려고 했다가 봤는데, 거기에 “당신은 지금 당신의 명성을 쌓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 거예요. 운명인가보다 해서 또 10곡을 해서 보냈죠. 연락이 또 없어요. (웃음) 4월인가 5월 즈음 연락이 왔어요. 감독님이 너 들어오래. 그래서 짐을 싸고, 5월에 학기가 끝나니까 갔어요. 그때도 계속 음악을 또 만들고 또 만들고 그랬던 거예요. 커뮤니케이션은 특별히 없어요. 제 안에 숨어있는 그걸 다 꺼내는 거죠. 미치죠. (웃음) 전 촬영장 가서 잠깐 현장을 보고… 너무 힘든 거예요. 이 사람이 이걸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거. 그다음을 못 나가는 거예요. 악몽을 막 꾸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그러다가 최후 편집 끝나고 중간 중간 기차가 거꾸로 가는 장면의 브릿지 음악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OK가 많이 됐어요. 그런데 메인타이틀 하나, 엔딩까지 해서 그 하나가 계속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 최종 믹싱 전날 OK가 됐어요. 그런데 그 곡이 데모에 있던, 미국에서 보냈던 곡 중에 있던 거예요. (웃음) 다른 어떤 분이 팁을 주시더라고요. 감독님이 그 곡을 따라 부르시더라는 제보를 해준 거예요. 그래서 그 곡을 어떻게 해봐라, 힌트를 준 거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그 곡에 보사노바 리듬을 얹어서 작업해 보냈더니 바로 OK가 난 거죠. 그날 밤에 녹음하구요, 다음 날 믹싱하고 내일 아침 갖다 줘야 하는 거예요. 밤 꼴딱 새고 음악 얹히고 붙이고 나와서… 화장실 가서 오바이트를 다 해버렸어요. 분명한 건 제가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영화를 굉장히 깊이 읽는 거라든지, 미장센 놓치지 않는 거라든지, 영화음악 하는 사람 보면 단순히 영상에 음악을 붙이는 작업, 음악을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만 집중을 해요. 근데 놓치는 게 뭐냐면 영화 자체를 읽는 걸 소홀히 해요.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영화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창독 감독님의 영화는 쇼트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잖아요. 미장센도 훌륭하고. 상당히 많은 걸 배웠죠. 제가 음악을 많이 듣진 않아요. 근데 꽂히는 음악은 굉장히 오랫동안 많이 들어요. 그 음악 하나에도 작가의 수많은 히스토리가 있을 거 아니에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아느냐가 중요한 건데, 그런 면에서 초기의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 등은 지금까지도 밑천이 될 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박하사탕 기찻길
<박하사탕>, 기차길 브릿지

<박하사탕>의 메인테마에 보사노바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 멜로디를 이용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계속 머리에 생각난 게 뭐였냐면 ‘기차’예요. 계속 기차 이미지를 떠올리며 작업했거든요. 기차가 간다, 뭔가 움직인다, 과거로 간다... 리드미컬한 게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보사노바를 좋아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그쪽에 접목이 된 거예요. 그 작업 자체는 굉장히 금방 했어요. 멜로디는 있죠, 보사노바는 익숙하니까 그 작업은 하루도 안 걸려서 했어요. 해놓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일단 찾고 난 다음의 과정은 너무 쉬우니까, 허탈한 거예요. 이것 때문에…!! (웃음)

<박하사탕>은 일반적인 영화와 다르게 음악이 쓰였습니다. 오프닝과 엔딩 그리고 챕터 사이사이 기차가 나오는 부분에만 30초 정도씩만 브릿지 음악이 주로 사용됐는데, 드라마 부분에서는 음악이 거의 절제되고 있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아, 일부러 안주는 거죠. 아마 그건 감독님의 의도가 큰데…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라는 게 아니었을까요? 중요한 건 제일 마지막.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 기승전결이 있는데, 여기에 다 집중해주면 밸런스가 망가질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쉽지 않은 어법이니까요.

그래서인지 브릿지에서 감정들이 고조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브릿지도 브릿지마다 느낌이 좀 달라요. 점점 브릿지의 음악들이 아름다워질 거예요. 처음에는 패닉 같은 음악이었다면 나중 브릿지는 멜로적인 감성으로 가요. 왜냐면 점점 순수해지니까.

제7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해 대상이 나원주 씨, 금상이 김연우 씨이기도 한데, 대중음악으로 나갈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나요?
아 잘못 만난 거예요. 1등이 나원주, 2등이 김연우니까. 아 참나. (웃음) 원래 대중음악 하고 싶었어요. 지금 이 이력이 특이한 거고요. 고등학교부터 주말마다 친구들 만나서 노래 부르고 기타도 치고, 또 서로 가르쳐주고 그랬거든요. 그 당시 유행했던 게 동물원이에요. 딱 떠오르는 게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웃음) 아, 대학교 가서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 그래서 대학교에 갔다가, 노래 동아리(소리로 크는 나무)에 들어가게 되었죠. 이것도 에피소드인데, 전 그 동아리가 공연을 하는 줄 알고 보러 갔었는데, 알고 보니 오디션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가 오디션이라는 말도 잘 몰랐던 거죠. 그러다가 저도 오디션을 보게 됐죠. 그렇게 들어가게 됐는데, 넌 곡 쓸래 노래할래? 해서 전 곡도 쓰고 노래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했더니 우리는 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 둘 중 하나만 택해. 해서 노래를 택했어요. 제가 만든 노래 부르면 되는 거니까. 당시 승욱이 형은 나이도 제일 많은 대선배였는데 어느 날 동아리 방에 와서는 너 곡 쓴다며, 한 번 해봐, 해서 기타 들고 한 거죠. 그런데 나를 굉장히 멋진 말로 칭찬해준 거예요. 그러고는 슥 나가는 거예요. 그러고는 꼭 나가. (웃음) 그러니까 거기 앉아있던 선배들이 우와~ 했던 거죠. 레전드한테 이런 칭찬을 듣다니. 그렇게 동아리에 있으면서 노래 만들고 각종 가요제도 나가게 됐던 거죠. 명지대 백마가요제, 광운대 월계가요제 등... 그러면서 인정받고 기성 작곡가들에게 칭찬받고, 그러니까 우쭐해지는 거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여러 번 나갔어요. 그 가요제가 지금은 좀 다르지만 십몇 회까지는 작곡 작사 연주까지 다 했어야 하는 거였잖아요. 거길 몇 번 나가서 안 되다가 군대 갔다 와서 3번째 나가서 된 거예요. 그 가요제를 통해서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좀 지쳐있을 때에요. 군대도 다녀왔고. 그러다 유재하 가요제에서 된 다음 한 번 해보자가 되었는데, 한계 같은 게 오더라고요. 난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는데… 너무 훌륭한 뮤지션들을 너무 많이 본 거죠. 그래서 난 이들을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사운드 엔지니어링 프로듀싱을 하려고 유학을 갔죠. 거기서 피아노 레슨 하는 선생님이 제가 만든 음악을 들어보시고 나서,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하면 너 다시는 작곡 못한다. 이건 다른 거다. 너 곡 같은 거 안 써도 괜찮겠냐?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 하고 싶더라고요. 그 분께 제 곡도 들려드리고 유재하 CD를 선물로 드렸어요. 그랬더니 유재하란 사람이 아직 살아있으면 버클리에 왔을 거 같고, 영화음악을 했을 거 같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너도 영화음악을 해봐라. 그때까지는 솔직히 영화음악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과 이름이 필름 스코어링이잖아요. 뭐 하는 과인지도 몰랐던 거예요. 결국 전공을 바꾸게 되었죠. 사운드 엔지니어링 쪽은 2학년 올라가기 전, 1학년 2학기 때 인터뷰를 보게 되어 있어요. 실습을 위한 부스 컨트롤 룸도 한정되어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파트라 해서 인성을 본다는 것도 있어서 인원 제한이 필요한 과였거든요. 인터뷰까지 통과하고 나서 2학년 올라가서 필름 스코어링, 영화음악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죠. 그때가 97년이었어요.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했는데, 당시 국내엔 영화음악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작곡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메리트가 있지는 않았나요?
반대죠. 없었죠. 제가 들어갔을 때가 막 버클리에서 사람들이 들어올 때였어요. 그때 버클리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았었어요. 국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선한 것을 기대하는 입장도 있었지만, 수구적이 입장에서는, 대단한 거 있겠어? 봤더니 뭐 별 거 아니데? 이런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영화음악도 별 거 없지, 그랬던 거고. (웃음) 제가 좀 더 특출 나고 잘하고 그랬다면 버클리 나온 후배들에게 더 좋았을 텐데 제가 더 잘하지 못해서 그건 좀 아쉽죠. 하지만 분명한 건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 초기 이 세 작품, 특히 <박하사탕>은 제가 겁이 없었어요. 어떤 작품? 누구? 이런 거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전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전 선례가 없잖아요. 사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영화음악이 어떤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비교할 대상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제 뜻대로 하게 됐죠. 그 첫 반응이 신선하다, 라는 것이었어요. 기존 한국영화음악에서는 보지 못했던 냄새인데? 라는 거였어요. 지금 보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혼자 생활하고 한 게 반영된 음악이라 신선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국내의) 다른 음악가, 다른 영화음악에 영향을 받았다면 다른 음악이 나왔겠죠. 사실은 그런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머리 식히러 나갔다 올까 그럴 때도 있어요. 지금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잖아요.

파이란

두 번째 작품이 <파이란>이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선 자주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이 작품을 시작으로 송해성 감독님과 파트너 쉽이 이루어졌어요.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5 작품을 함께 해왔는데. 감독과 작곡가 간의 협업이란 어떤 느낌인가요?
커뮤니케이션이죠. 이창동 감독님은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기쁘지만 기쁘지 않게, 라고 하신단 말이죠. 하아… 네 (웃음) 그 당시 제가 29, 30살이었거든요.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당시는 정말 답답했을 거 같아요. (웃음) 그런 게 쌓이면, (파트너와 함께) 나이도 같이 먹어가고 연륜도 같이 쌓여 가면 어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갈 수가 있거든요. 송해성 감독님은 처음에 어 이게 뭐지? 무슨 말씀이시지? 이런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다 계속 같이 가니까 감독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알게 됐고, 그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어렵지 않다. 그다음은 디테일이잖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작업을 같이 하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버리고 그다음에는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죠.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거죠. 그런 게 좋은 거 같아요.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영화음악을 전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업. 제 온 정열과 온 피와 땀을 쏟으면 좋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죠 분명히, 하지만 목숨을 바칠 정도로 저 이거 하지 않아요. 이건 그냥 직업이에요. 우리가 살았던 시기 동안에 같이 재미있고 놀았다. 뭔가를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울고 웃겼다. 이런 거면 행복한 게 아닌가?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단순히 감독과 음악감독으로 만다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형과 동생으로 만나서 친해지는 거죠.

<파이란>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박하사탕>을 보셨겠죠? 보시고… <파이란>의 프로듀서가 안상훈 피디, 지금 상상필름 대표고, 송해성 감독님도 한양대 나오셨고, 뭐 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한양대 나왔다면서요? 그런 거 있잖아요. (웃음) 첫 날 만났을 때 근처의 허름한 호프집 가서 싼 생맥주 3잔에 소주 넣어서 말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했죠. 그러다 연락이 와서 하게 됐어요. 제가 음악 데모를 만들어서 영화사를 줬어요. 그때 제작 보고회라는 게 막 시작되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튜브(<파이란> 제작사) 쪽에서 뭘 보여줘야 하는데, 스틸들을 디졸브해서 보여줬고, 거기에 음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요즘 같으면 그걸 내가 왜 합니까? 하겠지만 본편도 아닌데 그걸 왜 해요? (웃음) 그때는 해서 줬어요. 송해성 감독님이 옆방에 있다가 그때 그 음악을 들으셨나 봐요. 저 음악이 뭐야? 해서 만든 음악이라고 했더니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봐요. 그 음악을 계속 들으시면서 시나리오도 마무리 하시고. 그래서 그렇게 하면 돼, 해주셔서 그렇게 작업했고, 그 음악들을 최민식 씨가 들으면서 감정 잡으시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프리 작업이 먼저 시작된 거죠. 그 음악을 들으면서 찍기도 하고. 민식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감정 안 잡힐 때 네 음악 들으니까 좋아. 그때는 민식이 형이나 공형진 씨나 에너지가 많을 때였잖아요. 그때 굉장히 가족적이었어요. 거의 같이 있고, 참 좋았죠.

<박하사탕>과 달리 정통적인 스코어링을 구사한 첫 번째 극 영화였는데,
맞습니다.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는지요.
정서를 따라가는 거죠. 강재의 마음을 따라가고. 그때는, 벌써 13년 전이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 훨씬 더 계산적이겠죠. 그때는 마음 가는 대로 했어요. 느껴지는 대로 했고. 아쉽고 불쌍해 보이면 그렇게 만들고, 장백지가 “세탁 세탁” 하면 그대로 화면 보면서 만들었어요. 편하게. 그래서… 감정 흐름에 주안점을 뒀고요. 들어보시면 테마라는 게 없어요. 테마를 만들어서 반복하는 방식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그때그때 맞는 음악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 반면 <인간중독>은 테마가 있죠. 멜로디가 반복되는 게 있고. 계산적이지 않았던 거 같아요.

파이란
<파이란>, 비디오 화면 속의 파이란

막문위가 부른 노래 ‘애정’의 선곡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요? 장백지가 마지막 장면(비디오 속)에서 그 노래를 부르잖아요. 어떻게 보면 ‘항해’라는 트랙하고 대구를 이루는 거 같거든요. 어떻게 선곡을 하시게 되었나요?
맞습니다. 잘 아시는데요? 그 선곡은 촬영 전부터 되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극 중에 파이란이 불러야 하니까. 지금은 얼마든지 외국 음반을 들을 수 있잖아요. 유튜브도 있고 아이튠즈도 있고 아마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중국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때는 한국에 락레코드라고 있었어요. 그게 대만 거였을 거예요. 국내에 유일한 통로가 되는 락레코드에 연락을 했어요. 당신네 음악 쓸 만한 게 있나? 그럼 (샘플러를) 주잖아요. (웃음) 지금은 안주죠. 락레코드에서 많이 가지고 온 거예요. 그걸 다 들었죠. 그러면서 막문위의 그 곡이 딱 걸린 거예요. 너무 좋았어요. 가사가 일단. 그래서 이걸 가지고 있다가 어떻게 했냐면. 리딩하는 날, 배우 다 오잖아요? 인사 하고… 나중에 민식이 형이 그러는 거예요. 음악감독님 계신데 여기서 파이란이 무슨 노래 부르냐? 그러 길래 아 예, 가지고 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걸 틀고, 가사를 프린트 해 왔어요. 그랬더니 다들 딱이네, 해서 진행한 거예요. 그러다가 문제 생겼죠. 막문위는 광둥어로 부른 거예요. 장백지는 북경어로 불러야 하거든요? 그걸 촬영 전날 안 거예요. 그래서 급하게 막 통역하는 분이 바꿔서 쓴 거예요.

마지막에 최민식 씨를 죽이러 지대한 씨가 들어갈 때 그때부터 스코어처럼 나오잖아요. 그러다 카메라가 안으로 들어가면 (그 스코어가) 이 노래의 반주가 돼요. 정확하게 반주로 맞아 떨어지다가, 그리고 노래가 딱 끝나면 공형진 씨가 “오! 남편이 좋아하겠는데”(비디오 속 대사) 그러면 반주(스코어)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런 식이거든요. 계산을 하긴 했는데, 그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어요. 놀랐어요. 그걸 음악을 아시거나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거 어떻게 저렇게 갔지? 하시는데, 모르는 분들은 그냥 봐요. 다른 음악감독 초대해서 보여줬더니 저걸 어떻게 맞췄냐고 하더라고요. 사실은 우연찮게 잘 맞은 거죠. 소가 뒷걸음치다가 그런 거처럼 (웃음). 그때 음악 확인하려고 감독님이 노량진 제 작업실로 전화하신 거예요, 감독님, 음악 확인하러 오셔야죠, 어 그래, 내가 말야 음악 맘에 들면 고기 사줄게, 그러시더니 공형진 씨랑 같이 왔어요. 마지막에 눈물 글썽글썽하면서 야, 고기 먹으러 가자! 진짜 맛있게 고기 먹었어요. 삼각지에 진짜 고기 맛있는 데가 있더라고요. 지금도 그래요. 감독님 음악 마음에 드시면 고기 사주세요, 그래서 지난번 <고령화 가족>때도 고기 먹었어요. (일동 웃음)

<파이란>은 아사다 지로의 『러브레터』란 소설이 원작이었어요. 이후에 작업한 <모던보이>나 <주홍 글씨>,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고령화 가족>까지 원작이 있는데,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원작이 많은 도움이 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요.
참고로 전 원작을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아, <우아한 거짓말>은 읽었다. 근데 읽고 나서 깜짝 놀랐어요. 이거 어떻게 만들지? 그러면서 다 잊어버렸어요. 그리곤 다시 보지 않았어요. 거의 안 봐요. 선입견 때문에요. 의도적으로 안 보는 거죠. 시나리오가 다라고 생각해요. 전 선입견을 받지 않기 위해 영화도 거의 최종 편집본만 봐요. 최초 편집본이 3시간이 넘어가고 그러잖아요. 그 버전을 편집하면서 드러내지는 장면들을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장면이 남거든요. 어떤 스태프들은 그 삭제된 장면들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기억 속에 남기는 거죠. 없는 데 느끼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죠. 그것 때문에 실수를 할 수가 있어요. 전 최종 편집본만 거의 보니까, 그들에게 남아있는 (드러내진 장면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거죠. 그들이 느끼는 걸 전 모르는 거고. 제가 관객 입장이 되는 거죠. 그래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원작을 접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원작을 읽으면 너무 잘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영화에 없는데 느끼게 되는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요.

오아시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창동 감독님과 <오아시스>를 작업했습니다. 아쉽게도 음악은 문소리 씨가 부른 ‘내가 만일’, 춤곡, 탱고 풍의 메인타이틀인 엔딩곡 세 개만 사용됐어요. 원래 작업을 다 하셨는데, 다른 곡들은 반려된 건가요?
어떠신 거 같아요? 설마… 필요한 데 안 쓰셨을까요? 이창동 감독님은 그런 걸 포기하실 분이 아닌데요. 제가 <파이란>을 하고 났을 때, 감독님이 사람들에게 <파이란>을 보고 와라, 그랬다고 해요. 그 이유는 나중에 듣기로 음악 때문인 거 같다는 거예요. 그러다 연락이 왔어요. <파이란> 음악보다는 적고, <박하사탕>보다는 많을 거 같다, 가 <오아시스>의 음악 콘셉트였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전 시나리오를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요. 음악 생각이 나고 비주얼이 떠오르면서 진도가 잘 안 나가요. 근데 <오아시스> 시나리오는 읽고 있는데 음악이 안 들리는 거예요. 촘촘하게 붙어 있는 게 음악 들어갈 틈이 없어요. 음악이 없어도 될 거 같은 거예요. 이걸 어떻게 말씀드리지? 난 안 들리는데? 그래서 만났는데, 그날은 제가 출연을 하는 날이었는데…

아, 나오셨어요?
전 영화에 지금까지 많이 나왔어요. <박하사탕>에서는 의사, <파이란>에서도 의사, <오아시스>에는 닭갈비 먹고 있다가 경구 형이랑 말다툼 하는 일반 시민. 그러는데 감독님이 부르는 거예요. 시나리오 봤냐고. 네. 그런데 말야 내 생각에는 음악이 많이 안 들어갈 것 같애, 그러시는 거예요. 사실 저도 그 말씀 드리려고 했다. 음악이 안 들리더라. 그래도 만들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했어요. 그래서 음악을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쓸 계획이 없었어요. 제가 10곡의 데모를 만들어서 들려드렸어요. 이번엔 음악이 다 좋다… 다 좋은데, 그 중에 난 요게 어때, 라고 집어주신 게 지금의 엔딩 타이틀이었어요. 그렇게 진행된 거고 ‘내가 만일’은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문소리 씨가 같이 생활하면서 (연기에 도움을 얻은) 장애인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문소리 씨, 한공주가 부르는 곡으로 그 곡이 어떨까 했는데, 그 곡이 (그 장면에서는) 안 어울리잖아요. 안치환 곡 중에서 더 생각하다가 ‘내가 만일’을 떠올린 거고요. 그때는 저작권자하고 비용적인 조율이 가능했거든요. 마침 저작권자가 우연찮게 아는 분이기도 했어요.

오아시스
<오아시스>, 청계천 고가도로에서 인도 음악과 함께 나오는 환상 장면

청계천 고가도로에서도 인도음악이 나오잖아요. ‘페스티발 송 오브 아썸’이라는.
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쌈차 페스티벌 음악이에요. 인도 음악이 시나리오에 있어요. 그러면 저도 또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모던보이> 때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음악들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선곡을 하더라도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 그때는 인도(음악)공부를 한 거예요. 그러다 음원을 찾아봤는데, 그때 마침 제가 1년 동안 BBS 라디오에서 영화음악실 패널을 했었어요. 친하니까 작가에게 부탁해서 라이브러리에서 빌린 거예요. 다 들으면서 5곡을 골랐어요. 그 중 한 곡이 그 곡이에요.

사실 이창동 감독님이 <밀양>에서는 크리스티안 바쏘의 곡을 사용했고, 이후 <시>에선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음악감독의 입장에서 이런 음악의 최소한의 사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전혀 상관없어요. 이미 영화에 음악을 넣지 말자는 도그마 선언도 있었고요. 음악이 사족일 수 있다, 이런 의견은 있을 수 있죠. 저도 제가 감독이라면 때에 따라 음악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음악이 있어서 더 좋을 수 있는데 안 쓰였다면 아쉬울 순 있죠. 음, 전 의도적으로 음악을 배제하는 도그마 선언 같은 건 좀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도그마를 선언했던 감독도 뒤이어 음악이 풍부한 <어둠 속의 댄서>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웃음)

피아니스트 이루마 씨가 <오아시스> 이미지 앨범을 작업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혀 관계없는 프로젝트였는지요?
그때 문제가 있었어요. 마케팅 쪽에서 진행했던 건데, 의견은 제가 냈었어요. 이미지 앨범을 내보자. 그런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3자와 이루어지고 있었고, 홍보가 나갔고, 기사에서는 이루마가 영화음악을 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오보가 나갔고, 전 정정을 해달라고 했고, 그런 오해들이 있었죠. 좀 안타깝죠.

내츄럴시티

그다음으로 작업한 건 국내에서 보기 드문 SF블록버스터 <내츄럴시티>였습니다. 당시 국내에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나오고는 있었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다양한 장르에 대한 갈망이나 도전 의식이 있었는지요.
아니요. 순서상으로는 그때가 (<오아시스>보다 앞이었어요. 아직) 미국에 있었을 때에요.

이야기는 먼저 되고 있었나요?
네, 제가 데모를 먼저 만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음악 좀 부탁드릴게요, 해서 연락이 왔고, 미국에서(<박하사탕>을 마치고 버클리에 복학한 시기) 음악을 만들어서 보냈는데, 바로 콜이 왔어요. 민병천 감독님이 메인 테마를 듣고서요. 그래서 진행됐던 거고, 장르에 대한 욕심은 늘 있죠. 더 잘됐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죠.

체코에서 체코 필하모닉 멤버들과 레코딩을 했어요.
네 처음으로. 체코에서 이 작품과 <역도산>을 했죠. 체코도 일장일단이 있어요. <내츄럴시티>와는 잘 안 맞는 곳이에요. 그쪽 동유럽의 냄새가 SF와는 잘 안 맞는 거 같더라고요. 다음에 이런 장르를 한다면 체코는 안 갈 거 같아요. 오히려 <인간중독> 같은 영화가 체코를 가면 좋았겠죠.

굉장히 할리우드 스코어 느낌이 들었어요. <내츄럴시티>를 들어보면 대규모 스트링에, 격정적인 피아노, 혼과 같은 웅장한 금관악기가 어우러지며 한국에선 보기 드문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특히 낮은 피아노의 활용은 마치 제리 골드스미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네 맞습니다. 이 작품도 레퍼런스가 한국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했었어요. 신선한 것들. 민병천 감독님하고 가까워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가 있었는데, 제작과정이 길어지면서 엄청 오랫동안 작업한 거예요. 지쳤죠. CG가 늦게 나오기도 하고, 회사가 바뀌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하게 진행된 영화였어요.

<내츄럴시티>에 처음으로 영화 주제가가 쓰입니다. ‘무요가’라고요. ‘낯선 사람들’ 출신의 차은주 씨가 불렀는데 주제가를 의도적으로 작곡하신 건가요?
그럼요. 제가 만들겠습니다! 해서요. (웃음) 만들고 싶었고. 제가 노래를 만드는 것이 못 다 이룬 꿈이잖아요. 그걸 영화를 통해서 이루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츄럴시티>에서 만들고, <화성에서 온 사나이>와 <그녀를 모르면 간첩>도 다 제가 노래를 만들었죠. 감독님도 듣고 좋아하셨고, 이제 가수를 붙이자 해서 차은주와 함께 한 거죠. 그때부터 제가 꿈에 그리던 세션맨들, 존경하던 뮤지션들, 앨범 자켓으로만 보던 분들을 제가 클라이언트가 되어 부른 거죠. 조동익 씨, 함춘호 씨, 박용준 씨, 신석철 씨, 이 분들과 함께 한 거죠. 좋았죠. (웃음) 세 편을 다 같이 그분들과 함께 했어요.

드림팀과 함께...
그쵸. 근데 동익이 형은 (세션을) 잘 안 하세요. 그런데 제가 유재하 출신이고 해서 흔쾌히 해주셨죠.

그 뒤 작업한 두 작품, <화성으로 간 사나이>와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약간 의외의 선택처럼 느껴집니다. 앞에 작업하셨던 것들에 비해서요.
아 그래요? 하하. 다 좋아요.

다 상업영화잖아요?
그렇죠.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더 그런데,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전 음악적으로는 좋았고요, 테마와 송도 모두 잘 만들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고요.

어떻게 보면 <파이란>이나 <오아시스>보다 더 극단으로 간 영화였어요.
그렇죠. <그녀를 모르는 간첩>은 정말 제 필모에서는 튀는 영화죠. 감독이 제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예요. 어떤 영화사 개업식에서 우연히 만난 거예요. 어 너 여기 왜 있냐? (웃음) 그렇게 만났고, 그 친구가 자기가 준비하는 게 있으니까 도와줘, 해서 하게 됐어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굉장히 과장된 로맨틱 코미디였습니다. 말 그대로 간첩이란 설정이 이용돼서 여러 장르가 혼용돼 구사되고 있는데요, 첩보, 멜로, 코미디.. 작업은 어떠셨는지요.
좀 더 영화도 잘 나왔으면, 음악도 더 잘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죠. 작업 과정이야 친구니까 소통의 문제는 없었지만, 처음 결과물 자체가 좋질 않았어요. 다들 풀이 죽은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본인도 그걸 아니까, 풀이 죽어있고. 끝까지 그 상태로 갔어요. 아쉽죠. (감독도) 재기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재기해주길 바라요. (웃음)

이 작품은 송 트랙의 비중이 큽니다. 재즈가수 신예원, 김도연, 2BE, 김범수(김영국),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주제가를 부른 조성빈, 한동준 씨 등 여러 가수들이 참여했는데요, 프로듀서로 역할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맞습니다. 이런 인터뷰 처음인데요, 준비를 많이 해오셔서 감사합니다. 프로듀싱 개념으로 갔어요. 스코어 보다는 송으로 가자. 그래서 주변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이런 역할을 해봐, 이런 식으로 작업했죠. 여러 분들과 함께 작업 했죠. 김범수(김영국) 씨가 (앞에서 말한) ‘내가 만일’을 작사 작곡하신 저작권자분이에요. 재미있게 만들었어요.

주홍글씨

다음이 변혁 감독님의 <주홍 글씨>입니다. 이 영화도 삽입곡이 많은 경우였어요.
아주 버라이어티 하죠. 삽입곡이 넘치는 영화죠. 배경 자체가 클래식 오케스트라고, 첼리스트(이은주)와 재즈가수(엄지원)가 나오고요. 심지어 한석규 씨도 첫 장면에서 클래식을 듣잖아요.

네,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 그 곡이죠.
네 맞습니다.

선곡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일단 기본적으로 변혁 감독님이 클래식 마니아예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감독님이 직접 지휘를 하시더라고요.
오 아셨네요? 왜 하셨는지… (웃음) 그런데 그냥 하신 건 아니고요, 변혁 감독님의 친형님이실 거예요. 실제 오케스트라 지휘자세요. 그 곡 큐를 드리고 지휘하는 걸 찍어서 똑같이 한 걸로 알아요.

그럼 감독님이 그 많은 곡을 다 선곡하신 건가요?
감독님도 하고 저도 하고 그랬죠. 그리고 엄지원 씨 첼로 치는 것도 거의 똑같아요. 하나도 못 켜시는 분이었는데, 그렇게 트레이닝 해서 촬영했죠. 이은주 씨가 바에서 노래하는 장면 있죠. 그 뒤의 밴드가 저와 많이 작업하던 밴드(재즈밴드 ‘더 버드’)에요. 그분들이 실제 연주하신 거예요. 레코딩까지. 처음엔 좋다고 하시더니 나중엔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주홍글씨

이은주 씨가 부른 ‘Only When I sleep’가 화제였습니다.
마지막 곡이 됐죠. 아주 열심히 불러줬어요. 이은주 씨가. 그 곡을 세 번 불렀어요. 한 번 부르고 다 끝냈는데, 다음번에 좀 아쉽다, 해서 친구 바다 씨를 데리고 와서 같이 해보고 싶다, 그래서 또 하고, 그래도 아쉽다 해서 한 번 더 하고. 그렇게 3번을 했죠. 피아노도 잘 치시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쾌활했던 분인데...

많은 삽입곡들 사이에서 스코어는 어떻게 배치가 궁금합니다. 주로 성현아 씨와 관계된 사진관 사건에 스코어들이 몰려있는 듯 합니다. 다른 두 여자 캐릭터들은 재즈 가수와 첼리스트이기 때문에 스코어의 영향에서 벗어난 건지요?
음.. 글쎄요. 제 기억으론, 관심 자체를 이 사건과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거든요. 이쪽의 미스터리한 것을 액자의 느낌으로… 영화 속의 영화 느낌으로, 좀 더 영화적이라고 할까요? 나머지 두 인물들은 리얼리티 적이라면 그쪽은 약간의 판타지 느낌이 나잖아요. 혼자 이야기하고, 약간 연극 같고. 그걸 좀 더 강조하려고 조금 오바했다면 오바한 음악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전반적으로 음악이 풍부한 영화잖아요.

이은주

송해성 감독님과 두 번째 작품은 <역도산>이었습니다. 제작비 100억대의, 일본과 합작한 큰 영화였는데. 음악적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는지요? 역도산에 대한 테마보다는 아야에 대한 노래가 더 부각된 것도 같습니다.
누가 봐도 아야가 불쌍하잖아요. 역도산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은 건데 거기서 무슨 페이소스를 느껴야 하나. (웃음) 그런 게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전 정서가 아야에게 많이 가더라고요. 그리고 보신 버전은 아마 국내 버전일 텐데 일본 버전은 중간에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역도산이 귀국해서 성공했어요. 그다음에 자전거 끌고 집까지 가요. 거기서 아야가 같이 들어가자고 했는데, 안 들어가요. 역도산이. 왜 안 들어가냐, 했더니 나 지금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올 거 같아. 어떤 의민지 아시겠죠. 내가 지금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지금 집에 들어가면 책임질 가족이 생기고… 그러면 성공을 못 할 거 같다. 미안해. 그리고 가는 모습을 아야가 쭉 봐요. 그때 음악이 쭉 가죠. 그 장면도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전 아야에 정이 더 많이 가더라고요.

여배우 나카타미 미키가 허밍도 직접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엔딩 노래를 만들었어요. 만들 때부터 처음부터 허밍을 생각했었어요. 다 만들어놓고 제가 허밍해서 감독님께 들려드리고, 한 번 해봐 했던 거죠. 나카타미 미키와 하고 싶다고 하니까 데모를 일본에 보냈어요. 그게 OK가 나온 거예요. 제가 아침 첫 비행기 타고 가서 녹음실 정하고 녹음 다 하고 그날 밤 비행기 타고 왔어요. 다시는 그런 짓 안 해요. (웃음) 거기선 더 있으라고 했는데, 후반 작업이 남아 있잖아요. 제 입장에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하고 그다음 다음날 체코로 간 거예요.

프로레슬링을 처음 접하러 갈 때 흐르던 게르하르트 빙클러의 ‘에스파뇰라’는 어떻게 선곡하게 된 건가요? 몽타주를 보면 희극적인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네, 제가 선곡을 했죠. 처음부터 웅장한 음악이 들어가기에는 좀 그래서...

사랑니

다음이 정지우 감독님의 <사랑니>입니다. 작지만 섬세한 사랑에 대한 영화였어요. 감독님이 요구한 방향성이 있었는지요?
작업할 때, 우리 영화음악은 이랬으면 좋겠어 이런 분도 계시지만 그런 이야기 할 것도 없이 그냥 막 진행되는 영화들이 있거든요. <사랑니>가 그랬던 거 같아요. 정지우 감독님하고는 <오아시스> 끝나고 만났었어요. 차이가 한 3년 정도 나는데. <파이란> PD였던 안상훈 (상상필름) 대표와 정지우 감독님이 대학교 선후배 관계거든요. 제가 <해피엔드>를 너무 좋게 봐서 상훈이 형한테 정지우 감독 작품 해보고 싶어요, 그냥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래? 그럼 해. 그러는 거예요. 알고 보니 지금 진행 중인 작품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다음번에 해봅시다. 그때 거기서 처음 진행했던 게 <두사람이다>였어요. 음악도 많이 준비했는데 엎어지고. 다른 시나리오가 나오고, 우여곡절을 겪었죠. 그러면서 (정지우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 사이에 시나리오가 몇 개 더 있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영화인데, 리얼리티 속에 판타지가 있어요. 키스 씬 중간에 몸이 뜨든지 하는 장면도 있고요.
<사랑니>는 먼저 곡을 많이 만들었어요. 음악을 많이 만들어 드리고, 정지우 감독님은 편집할 때 관여하시거든요. 그래서 편집할 때 음악을 붙이면서 작업하는 거였어요. 또 하나는 현재 영화에선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진 않지만 원래는 전화벨 소리가 큰 역할을 하는 영화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표현이 잘 안돼요. 전화벨을 위해서 곡을 많이 만들었죠. 전화벨 테마가 많아요.

이 작품에선 단출하지만 북촌이란 공간과 계절을 잘 드러내는 악기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나 캐릭터, 내용에 맞춰 악기 선택이 이루어지는 건가요? 또 주로 어떤 악기로 작곡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악기도 음악의 한 부분인 거죠. 최종적으로 완성될 음악을 어떤 악기로 연주할 것인가의 결정은 작곡의 한 부분이고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음악을 만들기 전에 악기 구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이것은 비단 한 큐의 음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에 관한 고민이기도 하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송해성 감독님과 세 번째로 만난 <우행시>를 하셨는데요, <파이란>처럼 아슬아슬하게 신파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함몰되지 않고 절제미랄까 중용을 지키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송해성 감독님 영화를 보면 멜로인데도 구구절절 풀지 않고 지점들을 잘 포착하시는 거 같거든요.
글쎄요. 일단, 송 감독님 영화를 보면 막 오바하고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절제하고 담백한 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악도 그렇게 가야 하는 거였고. 그래도 엔딩의 음악은 신파적으로 가잖아요? 그것도 사실 감독님의 원래 의도는 아니고 제 의도에요. 감독님은 훨씬 더 담백한 걸 원하셨어요. 그래도 여기선 울려야죠, 했고 주변의 수많은 설득, 그래도 감독님의 의지를 안 굽히셨어요. 감독님은 사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원하셨어요. 전 안된다고 했고. 결국 음악 컨펌할 때, 사람들 불러놓고 비교를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한참 뒤에야 네게 낫다! (웃음) 그래서 가게 됐죠. <우행시> 같은 경우는 음악적으로 참 만족스러운 영화였어요. 영화음악적으로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그런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시간과 공간을 엮는 듯한 음악. 이 영화가 제일 어려웠던 게 매주 목요일 1시에 만나야 해요. 그러면 그 사이에 뭘 채워야 하잖아요. 시간이 지나가니까. 그런데 그걸 채우자니 감정이 끊기고, 그냥 붙이자니 뜬금없이 그다음 날이 마치 바로 일주일 후 같지가 않고. 그런 게 많았어요. 그런 것들을 음악이 시간의 경과와 감정의 이음을 해주는 시퀀스들이 많아요. 그게 참 좋았고. 그리고 유정이에게는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엄마의 ‘월광 소나타’ 피아노가 계속 나오거든요. 그것도 굉장히 고급스럽고 좋았었던 거 같아요.

최창환 감독님의 <울어도 좋습니까?>는 아직도 개봉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영화인지 궁금합니다.
그 영화는 어떻게 아세요?

감독님이 제 선배 분이시라서요. 아직도 개봉 못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네 못할 거 같아요. 영화는 참 좋아요. 영화가 개봉하려고 준비할 때 즈음에 영화사가 넘어갔어요. 그럼 누가 사서 할(개봉)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사를 사 간 쪽이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곳인가 그럴 거예요. 그래서 영화도 매물인가로 취급되더라고요. 그래서 불가능하대요. 안타깝죠. 영화는… 이런 감독님도 우리나라에 활동을 쭉 했으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섬세하고 따뜻한 정서가 좋았어요. 아쉬워요. 음악도 참 좋았는데. 다 만들어놓고. OST까지 다 나왔거든요. 출시를 못 한 거예요.

변준석 감독님의 <에일리언 밴드> 역시 일반적인 개봉을 하지 못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만 상영되었는데요. 밴드를 다룬 음악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업하신 계기나 방향에 대해 궁금합니다.
아, 잘 만든 음악 영화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서 진행됐죠. 하면서 느꼈던 것은 현재의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는 잘 만든 음악영화를 만들기가 참 쉽지 않다, 라는 거였어요. 작업하면서 그것들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계기가 됐죠. 최선을 다해 준 스태프들과 음악팀에게 감사한데 개봉이 안 된 것이 아쉬워요.

모던보이

정지우 감독님과 두 번째로 작업한 <모던보이>도 규모가 큰 영화였어요. <역도산>처럼 일제 강점기를 다룬 시대극인데, 그 시기에 맞춘 재즈, 빅밴드 (그리고 왈츠) 사운드가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음악) 공부를 했죠. 당시의 상류층 음악이 뭘까? 했더니 의외로 재즈인 거예요. 그 당시에는 이미 재즈가 상류층에선 즐겨듣던 음악이고 심지어 놀란 건 이미 그 당시에 미국에서 지난해 유행한 게 우리나라에 1년도 안 되어 유행하고. 그 당시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상상을 초월하더라고요. 그래서 재즈를 기반으로 음악을 해도 문제가 없겠다. 재즈를 더 화려하게 하자. 그 당시에는 재즈가 상당히 화려한 음악이었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했고, 또 하나는 카페에도 클래식이 나올 법한데, 그냥 클래식이 아닌 그걸 재즈로 편곡해서 하고 그렇게 했죠. 조난실이 부르는 노래(개여울)도 제가 선곡을 했는데요, 재즈로 편곡해서 영화에 쓰고. 그렇게 재즈를 기반으로 했어요.

‘개여울’이라는 곡 자체는 30년대 곡은 아니죠? ‘색채의 블루스’도 그렇고요.
네 맞습니다.

선곡을 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단 일본 노래여야 한다. 안 그래서는 가짜다. 음악이 그 당시보다도 더 화려해야 한다. 또 살롱 느낌이 나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곡들 중 하나가 ‘색채의 블루스’였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개여울’은 독립운동가 조난실이 불러야 하잖아요. 어떤 노래 부를까, 하다가 실제 있는 부를 법한 노래를 찾아본 거예요. 그걸 편곡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당시의 동요나 가요들 (작곡가들이) 거의 대부분이 다 친일 명단에 있어요. 그럼 도대체 무슨 노래를 해야 해. 하다가 김소월은 일찍 죽어서 친일 논란에 해당이 없으니까, 김소월 시를 가지고 노래를 찾아보자, 해서 ‘엄마야 누나야’ 부터 시작해서 뒤지다 보니 ‘개여울’이 있는 거예요. 1960년대에 작곡된 노래지만 뿌리는 여기에 두고 있지 않은가, 해서 선곡해서 재즈로 편곡한 거죠. 영화에는 일본어로 번안해서 트로트로 부른 버전도 있죠.

호우시절

허진호 감독님과 함께 한 <호우시절>은 의외의 작품인데요, 그동안 조성우 음악감독과 오랜 파트너 쉽을 이뤄왔었는데, 감독님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조성우 음악감독님께서 그 당시 작업을 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연락이 왔어요. 전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이 작품부터 조금 음악적인 색이 바뀐 것 같아요. 기존의 피아노와 스트링 위주의 스타일에서 기타가 많이 사용되어 또 다른 느낌입니다.
아, 기타가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요. 악기 선택은 일부러 써야지 이런 건 아니라 잘 어울릴 걸 찾는 거죠. 그 앨범은 다 기타 위주죠. 어쿠스틱 녹음이고. 앨범도 공을 많이 들였어요. 예전에 작업을 함께 하던 CJ 엠넷에 계셨던, 일 잘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퇴사를 하시고 독자 레이블을 만드셨어요. 그 회사에서 거의 초창기에 만든 앨범이 바로 이 <호우시절> 앨범이고요. 공을 많이 들였어요. 거기가 바로 지금은 유명한 인디 레이블인 미러볼이에요. 일 잘하셨던 그 분이 이창희 대표님이시고요. 그게 인연이 됐는지 지금도 종종 영화음악 앨범을 내기도 하더라고요.

이때 전까지는 대부분 스플래쉬 뮤직에서 냈어요. 그것도 어떤 연이 있었는데요, <박하사탕> OST를 못 냈어요. 아무도 안내준 거예요. 아니 노래가 없잖아, 이러면서. (웃음) 그때 어렵게 냈어요. 난장이라고, 거기 대표님과 연결돼서 어렵게 내긴 했어요. 그다음엔 너무 힘들어서 제가 고민하고 있는데 <오아시스>인가를 낼 때 그 분에게 연락이 왔어요. <박하사탕>의 어떤 곡을 한 앨범의 컴필레이션으로 넣고 싶다, 한 거죠. 그래서 OK 하고 <오아시스>도 내고 싶다, 했는데, 그 분도 퇴사(하고 스플래시 뮤직을 설립)하셨다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당신이 좋아서 연락한 거니까 계속 작업하고 싶다, 고 해서 그 분과, 스플래시 뮤직이 문 닫을 때까지 계속 거기서 냈어요.

의리가 있으시네요. (웃음)
사람하고 일하는 거니까요. 서로 믿고 맡기면 제가 편한 거죠.

배창호 감독님의 2009년 작<여행>은 단편 세 개로 이뤄진 옴니버스 작품이었는데, 단편 3개를 작업하듯 따로따로 작업하신 건가요? 배창호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배창호 감독님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안이 왔을 때 무조건 하겠다고 했습니다. 만남은 너무 좋았구요. 기존 감독님들과 음악을 대하고 다루시는 방식이 많이 다르시더라고요. 많이 배웠죠. 단편 3개가 모두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에 각각에 맞춰진 작업을 했어요.

단편 작업들은 장편 상업영화와 많이 다른가요?
상업이란 표현을 빼면... 달라요. 그러니까 영화의 물리적인 길이라는 건 이야기의 함축과 표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음악도 그 호흡을 따라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음악 접근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상업과 비상업이 장편과 단편의 구분점은 아니구요.

초능력자

그다음 김민석 감독님의 <초능력자>는 <내츄럴시티> 이후 모처럼만에 맡은 SF 계열 장르물이었습니다.
네, 그런데 좀 다르죠. 막 달리는 영화입니다. 처음부터 김민석 감독과 그랬어요. 달리자. 신나게 갑시다!

일렉트로닉이 사용됐어요.
네, 제 음악적인 콘셉트는 100% 일렉트로닉. 엔딩 음악은 잘 안 쓰는 음악도 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해봤죠. 신났어요. 감독님도 굉장히 신뢰해주고 했죠.

CD는 안 그렇지만 음원으로 풀린 걸 보면 초인과 규남 버전으로 각각 앨범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건 이창희 대표의 아이디어였어요. 그러니까 20곡을 냈다고 하면 시기를 둬서, 투 탑 영화였으니까, 10곡은 초인(강동원) 버전으로 오픈하고, 며칠 후에 규남(고수) 버전으로 10곡을 시기의 차이를 둬서 오픈하는 거죠. 마케팅을 한 거죠.

원래 두 캐릭터에서 맞춰 스코어를 구분한 건가요?
그렇진 않아요. 캐릭터에 맞춰 스코어를 작곡한 건 아니에요. 미러볼에서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송해성 감독님과 네 번째로 작업한 <무적자>는 <영웅본색>의 리메이크였습니다.
아 <무적자>... 그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죠.

그래서인지 송해성 감독님과 한 작품 중에 유일하게 음원이 없어요. (시중에 발표된 <무적자> 앨범은 삽입곡들을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낼 수가 없어요. OST는 만들었는데, 복잡한 판권 문제가 있어요. 투자가 일본이잖아요. 그쪽하고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지 말자 이렇게 된 거죠.

고가휘가 작곡한 ‘당연정 當年情’이나 TV에 자주 나오는 오리지널 테마곡이 워낙 유명한데, 오히려 2탄의 주제곡인 ‘분향미래일자 奔向未來日子’가 사용되었는데요.
예 맞아요. 아… 말씀드렸지만 <무적자>는 제 영화라고 말하기가 애매한 뭔가가 있어요. 전체적으로 시스템 자체가 이상하게 어떤 힘에 의해서 막 흘러가는 거예요. 아쉬움이 많아요. 제 의견을 표현을 잘 못했고. 감독님도 좀 혼란스러웠던 거 같고. 그래서 그런 음악들도 감독님께서 쓰자고 하시면, 이 음악은 <영웅본색>의 후속작 음악이고 하면 충분히 쓸 수 있다. 영화사에서도 저작권 사겠다 그러니까 저야 방법이 없죠. 여러 가지로 이상한 힘에 의해 흘러가서 저도 뭐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뜨거운 감자와 같은 영화였죠.

완득이

이한 감독님의 <완득이>는 <호우시절>처럼 기타가 메인이 되는 스코어입니다. 청춘영화답게 경쾌 발랄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데요, 이는 특별한 서사구조나 악인이 없는 에피소드 구조의 영화에 음악으로 방점을 찍어주는 듯합니다.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건가요?
<완득이>는 이한 감독님과 연이 있었어요.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모던보이>를 하느라 여력이 없었죠. 감독님은 그래도 이 사람하고 해봐야지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연락이 왔어요. 감독님하고 정서가 유사한 게 있어서, 음악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가 포인트가 있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음악 넣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작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 자체가 좋았어요. 그래서 착하게, 엄마의 마음처럼 그렇게 했어요. 대신에 뛰거나, 권투 하거나 그럴 땐 음악이 몽타주처럼 들어가잖아요. 그땐 사실 노래를 넣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다시 노래를 만들어서 하려고 보니까 우리말이잖아요. 그게 좀 안 어울릴 거 같아서 제가 직접 프로듀싱을 해서 영어로 노래를 만들었죠. 그래서 거기서 나온 노래들이 다 작곡된 노래들이에요, 선곡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영어노래 나오면 선곡인 줄 알잖아요. 그게 아니고 일부러 팝송을 만든 거예요. 제가 뮤지션들을 데리고 그 곡을 만들고 녹음도 하고, 뮤직비디오도 제가 제작해서 유튜브에도 올리고 그런 걸 제가 다 했죠.

굉장히 노래가 신나고 좋았던 거 같아요.
네, 그런데 미국 애들이 들으면 발음이 안 좋아서 잘 못 들어요. (웃음) 물어보니까 이게 무슨 영어 같긴 한데 잘 안 들린다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그런 거야 일부러. (웃음)

오싹한연애

황인호 감독님과도 작업을 하셨는데요, <오싹한 연애>와 <몬스터> 두 작품 모두 범상치 않은 영화들이었습니다. 모두 하나 이상의 장르가 섞인 퓨전 영화였는데 <오싹한 연애>는 로맨틱 코미디와 호러의 조합이었고, <몬스터>는 스릴러와 코미디의 조합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오싹한 연애>는 괜찮죠. 로맨스와 코미디가 붙는 건 원래 (로맨틱 코미디) 있던 거고. 거기에 호러가 있는데, 호러는 로맨스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존재하는 거라, 기본적으로 로코든 멜로든 결과가 비극이냐 희극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나 편견이나 장애물을 넘어가는 순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여기선 호러가 그 역할(장애물)을 한 거죠. 그래서 믹스 같지만 어떻게 보면 믹스가 아닌 장르였어요. 굳이 구분하자면 호러로맨스코미디라지만 사실은 그냥 로맨틱 코미디에요.

그런데 굉장히 무서웠어요. 그런 영화치고는... (웃음)
그죠. 무섭게 찍었어요. 근데 <몬스터>는… 섞인 짬짜면이에요. 짬뽕 국물에 짜장 넣으면 못 먹잖아요. 두 가지 장르가 다 매력적이긴 하지만 황인호 감독님 입장에서는 <오싹한 연애>가 됐으니까 또 해보자 이렇게 된 거였죠.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싫다, 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비평가들 입장에서는 과했다, 섞임이 너무 과했다는 거였고요. 전 아무 정보 없이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죄송한데요, 이게 뭐예요? 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다 그런 분위기. (웃음) 근데 감독님은 그걸 의아해하고.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어요. 근데 아쉬웠던 게 많았죠. 가령 둘 다 몬스터여서, 몬스터 대 몬스터여야 하는데, 하나는 몬스터이기엔 캐릭터가 작아 보이고. (마침 카페 벽에 붙어있던 마동석 배우의 사인을 가리키며) 마동석 씨나 <황해>의 김윤석 씨가 하거나, 그래서 여자는 더 가냘픈 사람이 하거나. 그래서 딱 둘이 섰을 때 상대가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될 거 같거든요.

시작할 때 ‘개잡년이다’ 송이 나오는데요.
네 맞습니다. 감독님이 가사 쓰신 거예요. 제가 안 썼습니다. (웃음) 그걸 딱 써놓으신 거예요. 다 욕으로 구성된, 그런데 말이 안 되는 욕인 거죠. 그게 콘셉트에요.

그래도 그걸 맞춰보셨을 거 아니에요? (웃음)
제가 불러서 데모를 줬죠. 감독님, 가사가 이렇게 가야 해요? 감독님은 왜요? 좋다고… 심지어 감독님께서는 이걸로 마케팅도 가자고 하셨어요. 버전도 많아요. 한 4갠가 있어요.

사람들이 일명 텔레토비라고 부르는 할머니 태양 씬도 나오고요.
나중에 급하게 집어넣은 거예요. 가면 갈수록 혼돈이 생겼던 거죠.

음악 역시 그런 관용도에 있어서 고심한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마찬가지죠.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개의 눈

<오싹한 연애>에 이어 바로 진짜 호러영화, 변승욱 감독님의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와 <무서운 이야기>까지 하셨어요.
원래 승욱이 형 데뷔작인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을 했어야 되는데, 같이 못 해서 많이 아쉬웠고, 그래서 제가 막 뭐라 그랬어요. 다음 작품은 꼭 나랑 같이 해야 돼, 해서 <고양이>를 하게 됐는데, 잘 안 됐죠. (웃음)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죠. 제가 거기에 대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건데, 승욱이 형 입장에선 그만 고마워하고 그만 부담 가져도 된다, 충분히 알고 있고, 결국 그 기회를 잡은 건 너였기 때문에 내가 그 기회를 주지 않았어도 너는 했을 거다, 그렇게 말씀하시죠.

호러를 연달아 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계속 들어왔어요. (웃음) 뭐 딴 게 있나요? 호러가 시기적으로 맞물려서 들어온 거죠. 음, 재미있게 작업하면 되게 재밌어요. 내가 어떻게 하고 안 하고에 따라 관객이 놀라고 안 놀라고, 수위 조절이 확실하거든요. 근데 작업할 때가 힘들어요. 대부분 호러영화는 개봉이 7~8월이잖아요. 그럼 작업이 3~4월부터 시작돼요. 그때 막 봄비 내리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작업하고 있으면 번개 치고 그러면 뒤돌아보고 그런다니까요. 안 좋아요. 심적으로는. (웃음)

호러는 음향하고 구분이 모호하기도 한데요?
그래서 혼동이 많이 되죠. 그걸 충분히 조율해야 하는데 조율이 안 될 경우에는 큰 문제가 생길 수가 있어요. 서로 안 할 수가 있는 거죠. 귀신이 나오는데 이건 음향이지, 이쪽에서는 이건 음악이지 그래서 안 해. 그런데 (무음 속에) 갑자기 귀신이 콩! 하고 나오는 거예요. 이건 누구 책임인가 하는 거죠. 그걸 미리 조율하고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시스템이 아직 그러질 못해요. 체계적이지 못한 거죠. 전문 조감독, 전문 제작실장이 빨리 나와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그게 없잖아요. 가졌던 노하우가 다 없어지는 거예요. 답답할 때가 있죠.

해와달
<해와 달>, 버스 안의 아이들

<무서운 이야기>에서 4개의 에피소드 중 정범식 감독님의 <해와 달>, 홍지영 감독님의 <콩쥐팥쥐> 음악을 담당하셨는데요. <해와 달>에서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부분을 정범식 감독님이 작곡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정범식 감독님이 피아노도 잘 치시고 노래도 부르시고. 제가 보기엔 음악 잘하시는 분이에요. 저한텐 자꾸 모르신다고 하시는데... 어느 날 갑자기 꿍짝꿍짝 만들어 오신 거예요. 이건 팀 버튼적으로 편곡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곡이에요. 누가 봐도 그렇게 나온 곡 같잖아요. (웃음)

<콩쥐팥쥐>에서는 결혼행진곡이 나오고요.
맞아요 맞아요. 결혼행진곡을 변주해서 갔죠.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결혼전야>를 같이 하게 된 거고요.

그러고 보면 <결혼전야>와 같은 코미디 영화도 많이 하셨습니다. <어린 왕자>나 <청담보살>,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미나 문방구>도 모두 코미디인데, 다만 이들은 비평이나 흥행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작품 선택에 대한 기준이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죠. 그리고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확인하고 지향하는 바에 대한 공감이 생기면 결정하게 돼요. 영화의 흥행과 비평만을 위해 결정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시나리오를 받으시면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편집이 된 영상을 보고 나서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작업방식에 대해 궁금합니다.
대부분은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음악의 톤과 악상이 바로 떠올라요. 그래서 (<오아시스> 이야기 때 말씀드렸듯이) 시나리오를 읽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는 편이에요. 그리고 어떤 경우는 화면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음악 작업이 이루어지는데요. 매번 작업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일단 시나리오를 정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다시 코미디 영화로 넘어가서요. 이들 스코어에선 조금 과장되어 음악이 부각된다던지, 미키마우싱 효과들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코미디 음악 작업은 어떠셨나요?
코미디 영화도 그마다 다른 음악적 접근이 있어요. 절제를 통한 반전의 웃음이라던가, 전통적 방식의 코미디도 있구요. 그 상황에 맞춰서 작업하기 때문에 코미디 영화라서 특별한 작업은 아니에요.

이진혁 감독님의 장편 다큐멘터리 <>의 음악도 담당하셨는데 극영화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고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제안이 왔을 때 흥미롭게 작업했어요. 크게는 차이가 없더라고요. 결국 영화를 보는 관람자들에게 정보 혹은 정서를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음악을 사용하기 때문인가 봐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꾸준히 해 볼 생각입니다.

고령화가족
<고령화 가족>, 가족들

송해성 감독님과의 5번째 호흡을 맞춘 최근작이 <고령화 가족>입니다.
<고령화 가족> 네, 참 좋은 영화인데.

역시 기타 선율이 두드러져요. 쿵짝거리는 집시풍의 스코어인데 어떤 콘셉트였는지 궁금합니다. 키치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더라고요.
이 사람들에게는 어울리는 게 그거밖에 없겠더라고요. 막장까지 간 가족이잖아요. 피아노나 클래시컬한 걸로는 안 되겠고 약간 집시풍으로 했죠. 그래서 엔딩 타이틀에는 ‘초우(원작에서도 패티 김이 부른 이 곡이 잠깐 등장한다)’를 올리고 싶었어요. 누가 좋을까 하다가, 원래 ‘초우’는 엄마가 거기서 혼자 부르고 마는 거였어요. 그러다 감독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악어떼)’ 들어봤냐고. 한 번 들어보라고. 그래서 웃긴데요? 했더니 그걸 우리 엔딩으로 쓰면 어떨까 하시는 거예요. 아 이건 아닌 거 같은 데요 하다가 아 그럼 감독님 아예 ‘초우’를 이 팀에게 부르라 하면 어떨까요. 해서 또 미러볼 소속이니까, 리더인 조까를로스를 만났더니 좋다 해서 하게 된 거예요.

역시 최근작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의 이한 감독님과 작업한 두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기타 위주의 <완득이> 때와는 달리 피아노와 스트링이 전면에 부각된 게 <우행시>나 <화성에 간 사나이>의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어떠한 점에 주안점을 두셨나요?
<우아한 거짓말>은 음악의 톤을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러 고민들을 한 결과 현재의 음악이 나왔죠. 하지만 몇 음악은 초기부터 확정되었어요. 가령, 만지와 엄마가 천지에게 달려가는 만지의 꿈 장면과 엔딩 타이틀이 그건데요. 이들을 기초로 설계하고 나머지를 짜맞추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이 영화가 가진 본연의 색채와 의도를 최대한 맞추도록 했고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의 본래 의도라고 생각했죠. 영화 내용이 조심스러웠습니다.

2009년부터는 1년에 2~3편씩 꾸준히 하시게 되는데, 그때부터 시스템이 구축이 되신 건가요?
네. <모던보이> 이후부터 서서히 팀을 꾸려서, 사실 고 시기가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폭삭 주저앉을 때였어요. 굉장히 어려웠을 때예요. 그 이후에 음악 개런티도 많이 내려갔어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분위기였던 거예요. 일단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런 분위기였으니까요. 또 하나는, 조금 조금씩 하는 것 보다는 작품 수를 늘려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천천히 팀을 만들어가면서 작품수를 늘렸죠.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은 크레딧 보시면 페임이라고 되어있거든요. 약자로는 Film And Music Entertainment인데 영화에서는 제 이름을 계속 쓰는데, 작곡팀으로는 페임으로 있고, 인디영화나 게임, CF, 다큐, 예술영화는 페임으로 갈 거 같아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 작업을 계속 하고 있고요. 그러면서 스펙트럼을 넓혀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기회가 되면 다른 나라 것을 할 수도 있고요. 제가 영화음악을 하다 보니까 창작 자체에 힘을 너무 많이 뺐던 거 같아요. 알고 보니 영화음악이란 건 창작 자체 보다는 음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활용하려면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 컷 한 큐에 맞춰진 음악을 계속 만들다 보면, 힘들게 만들다 보면 나중에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제력을 잃어버려요. 그러면 감독이 빼자, 길이를 맞춰달라든지 음악 자체에 변형을 가하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해요. 이 음악이 아니다라고 하면 거기서 못 헤어 나와요. 한두 발 물러나야지, 빼볼까요? 잘라볼까요? 할 수도 있고, 그래야지 다양한 음악 작업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제가 창작도 계속 하지만, 전 멜로디만 주고 팀원이 편곡을 하거나. 전 그럼 일이 하나 줄잖아요. 그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여유가 생기는 거죠. 영화라는 게 10명만 보는 게 아니라, 천만까지도 볼 수 있는 거다 보니 객관화를 시켜야 하는 거거든요. 창작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꾸 내 음악인데, 내 음악을 왜 이해 못하지? 하는 혼란이 생겨요. 그런 것들을 컨트롤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

국내 영화에서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요?
장르요? 한 번도 안했던 거가 퓨전재즈. 퓨전재즈 영화음악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거랑 뮤지컬? 이런 것들. 하고 싶은데… 둘 다 음악이 강조 되는 영화죠. 당연히 음악감독으로는 음악이 빛나는 영화가 좋죠.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이런 영화 말고는 더 이상 (퓨전재즈가 잘 어울릴 수 있는) 도시적인 냄새가 나는 영화는 안 나오는 거 같아요.

감독님께서 직접 그런 스타일을 요구해 보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영화의 음악을요? 안 맞는다고 하겠죠. (웃음) 우스갯소리로, 예전 송해성 감독님과 작업할 때도 감독님, 여기선 이런 음악이 어떠세요? 하면 그건 네 영화 만들 때 해.(웃음) 그러는 거죠.

사운드트랙 발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09년 <호우시절>까진 꾸준히 발매도 하셨는데, 최근 음원 시장으로 바뀐 후엔 <완득이>, <오싹한 연애>, <고령화 가족>, <비밀애> 정도만 시장에 소개됐습니다.
<결혼전야>는 발매가 되었지요.(웃음) 사운드트랙의 발매 여부를 제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겠죠. 물론 아쉽지만... 그것이 현재 한국 영화산업에서 사운드트랙을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아요.

작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음… 가장 중요한 거? 영화를 위한 것? 절대로 음악이 먼저 나서지 않기. 음악은 확실히 주종관계에서 종이다. 그게 확실하거든요. 뮤직비디오랑은 정반대죠. 음악이 훨씬 돋보이고 영상이 서포트해야 하는데, 영화는 안 그렇거든요. 영상과 내러티브가 맞아야 하고 서포트를 음악이 해줘야 하거든요. 가끔 음악이 욕심을 내서 올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그냥 자기 음악 하면 되거든요. 그건 전 좋은 어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음악으로 어디까지 작곡가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에 비하면 한계나 제약이 많을 텐데요.
이 질문은 아마 제가 영화음악을 그만 둘 때까지 하게 될 고민이네요.(웃음) 이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은 한 학기 동안의 수업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 확신이 없고, 혼란스러워하는 감독님들도 많은 편인가요?
글쎄요. 아마 제가 감독이 되고 음악을 직접 만든다고 해도 그런 확신을 갖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을 혼란이라고 표현하는 것 보다는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이 맞는 것 같네요. 문제는 끝까지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마무리하느냐 아니면 그런 혼란과 조심 후 그것이 확신이 되어 마무리가 되느냐의 문제인데, 이런 확신을 주는 것이 음악감독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 불안을 해소시켜 주느냐죠.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가와 영향 받은 음악에 대해 골라본다면?
다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작품 때문에 좋아한다기 보다는 마인드가 좋아서 좋아하는 경우? 예를 들면 히치콕 영화의 버나드 허먼. 제리 골드스미스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작품할 때마다 고민을 하거든요. 이 영화음악만을 위해서, 이 영화에 맞는 콘셉트를 잡아서 하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배경이 있잖아요. 왜 이렇게 했는지. 그런데 그걸 이야기 못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냥 화면에 맞춰 한 거거든요. 저는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이야기꺼리가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다면?
분명하지 않은데 아마도 멜로가 되지 않을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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