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OST]영화음악감독 인터뷰2: 모그

by.문상윤(영화음악 수집가) 2013-12-17조회 13,662
영화음악감독 인터뷰2: 모그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에서 발견된 건 비단 인간의 내재된 흉폭성과 잔인함 그리고 그간 터부시 되어왔던 고어의 미학뿐만이 아니었다. 이 영화로 처음 상업영화에 모습을 드러낸 ‘모그’라는 괴물 신인 영화음악가의 등장 또한 반겨야 했다. 그 진한 피칠갑의 향연 속에서, 또 뜨겁고 차디찬 복수의 공방 속에서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두 남자를 애달프게 지켜보고 대신 눈물 흘려야 했던 모그의 비정하면서도 감성적인 사운드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공명이었다. 이 논란 많은 영화에서 만장일치의 갈채를 이끌어낸 모그의 영화음악은 강렬하고 아름다웠으며 동시에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이미 정점에 올라선 탁월한 베이시스트로서 특유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솜씨였다. 프로 연주자이자 아티스트였던 그는 재즈와 라틴, 록과 블루스, 일렉트로니카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리쉬하고 새로운 시도들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어려서부터 여러 환경 속에서 본능적으로 연주해온 덕택에 탄력적인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을 지녔으며, 야성적인 그루브 밑에 숨겨진 애수와 특유의 서정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구사했다. 베이스라는 악기의 한계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그의 앨범들은 트렌디한 감각과 열정, 실험과 모험이 가득한 퓨전의 정수였고, 낭만의 끝이었다. 음악 시장이 눈에 띄게 개편되던 2000년대 중후반 몇몇 단편들과 다큐를 시작으로 영화음악에 뛰어든 그는 임필성, 김지운, 장준환, 황동혁 등의 감독들 눈에 띄었고, <플래닛 비보이> 이후 5년이 갓 넘은 시간 동안 착실히 필모를 쌓아가며 자신의 지장을 확실히 남겼다. 길이와 장르, 공동작업과 국적을 가리지 않은 전천후 행보였다. 모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Hot)한 영화음악가다. 2010년 <악마를 보았다>를 필두로 2011년 <도가니>, 2012년 <광해>, 2013년 <화이>로 데뷔 이후 4년 연속 국내 영화 시상식 음악상을 거머쥐었고, <도가니>와 <광해>는 도합 1,700만에 이르는 관객몰이에 성공하며 많은 공감대를 얻어냈다. 게다가 <라스트 스탠드>로 한국 영화음악감독 최초의 할리우드 상업영화 스코어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을 사로잡고, 영화감독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비밀이 궁금했다.
 
화이

최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하셨고, 역시나 꽤 센 영화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하드보일드와 스릴러 장르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일로서 하려면 영화라는 거 자체가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잖아요? 진행되기 위해서 투자도 필요하고. 네임 벨류 있는 감독이 네임 벨류 있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드림팀을 짜듯이 하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처음 했던 게 <악마를 보았다>였어요. 그때 이런 배우와 이런 감독이 아니면 평생 못해보겠다 싶었는데, <화이>도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볼 때 이런 조합이 아니면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캐스팅 전에 먼저 시나리오를 받아보신 건가요?
아뇨, 캐스팅이 어떤 어떤 분들이 되었다는 것만 대략 알고 (있었고), 그 전에 <카멜리아 프로젝트> 중 ‘러브 포 세일’을 장준환 감독님과 함께했었기 때문에 왕래가 간혹 있었어요. 근황을 묻다가 <화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책 보내줄게’ (해서 작업하게 되었죠). 장준환 감독님은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소개로 알게 되었어요. 홍경표 감독님은 영화 일 하기 전부터 지인을 통해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러브 포 세일> 때 소개받고 작업을 같이 하게 됐죠.

장준환 감독님과 작업은 어떠셨어요? 작업 스타일이나.
감독님들이 다 다르세요. 작업하면서 감독님들이 연기에서 끌어내고자 하는 것들이 있고, 음악에서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디렉션을 어떻게든 잘 따르려고 많이 노력했죠. 기대치라는 게 생기니까, 그 영화의 기대치 때문에 더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는 거고, 제가 저를 더 괴롭히게 되죠. 이 정도면 됐는데 하는 지점이 점점점점 상향 조정 되다 보니까.

부담감이 좀 있으시겠어요.
그죠. 끝나고 나면 허탈해 하고.

장준환 감독님이 좀 천재과라 하잖아요. 꼼꼼하게 디렉팅 하시는지?
네, 되게 꼼꼼하신 편이에요. 장준환 감독님은 지점 지점마다 집착이 강하세요. 그래서 그 집착을 채워주는 게 제일, 늘 어려웠어요. <화이>에서는 한 번 보면 안 보이는 부분들이 되게 많아요. 저도 여러 번 보다가 발견한 지점들이 되게 많고요. 편집본을 보면서 여기서 왜 이 컷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이 소리가 왜 나는 건지. 소리까지도 (신경을 썼죠). <지구를 지켜라!>때도 한번 보여주셨지만 상징적인 것들을 좋아하세요. 뭐 (예를 들어) <화이>에서는 탄피가 떨어져서 굴러가는 씬(중반의 병원)에서 보면 사운드 디자인하고 믹싱할 때 탄피 굴러가는 소리만 제가 몇 시간을 찾고 그랬어요. 그게 굴러감과 동시에 화이 생모를 죽이러 오는 살인청부업자의 휠체어 바퀴 소리가 딱 물리는, 그런 묘한 상징적인 지점들을 많이 만들어놔서요. 그 음향을 피해서 또 음악은 존재를 해야 하고.


괴물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괴물이 된 자와, 괴물이 되어가는 자가 싸우는 이야기인데. 그전에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어요. 음악이 전체적으로 강하고 파괴적일 거 같은데 그보단 애수 어리고 서정적인 거 같습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감독님이랑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서 그 주제들로 두 시간 동안 화면 안에서 관객들에게 밀어붙이면 불편한 것들이 많이 생기고 그러니까, 음악으로 이런 (감정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거죠. 귀에 들리는 건 멜로적인 음악이 많이 들리는 거고, 그 사이 사이에는 미니멀한 음악이라든지, 제 나름대로 장치적으로 구성해놓은 음악들이 전체적인 드라마와 사건을 끌고 가는 데 힘을 보태주는 거죠. 처음에 설계를 할 때는 작정하고 비틀려고 많이 설계를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극장에서 두 시간 동안 그 뒤틀림을 볼 때, 상업 장편영화다 보니 대중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어쨌든 <화이>라는 영화가 소년이 킬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으로 슬픈 인간의 모습이라 감정적인 지점을 계속 건드릴 필요도 있었어요. 관객들이 호응할만한 상황을 만들 필요도 있었고요.

주제가를 요조가 작사 작곡을 했는데요, ‘앨리스 인 위어드 랜드(Alice in weird land)’요. 그건 어떻게 선택하게 된 건가요?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제가 요조 씨에게 의뢰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빠져있던 70~80년대 영화에는 주제가라는 게 있잖아요. 아카데미에서도 주제가상이란 걸 따로 주고 스코어 부문이 따로 있는데. 제가 주제가를 작업한 적이 없는 거 같더라고요. 근작 중에도 007를 보면 잭 화이트가 주제가를 따로 작업하고, 스코어는 데이빗 아놀드가 맡고 했었는데, 그런 것처럼 곡을 써서 가수에게 주는 것 보다는 장면을 보여주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곡 작업을 해보자, 가사도 이렇게 써보고 하면서. 그래서 ‘위어드 랜드’라는 게 이상하다 못해 공포감을 주는거잖아요. 공포감을 주는 이상한 느낌의 영화 <화이>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앨리스’가 소년 ‘화이’의 얘기를 담아낸 거죠. 그 음악이 들어가는 씬에 그런 스타일의 곡이 필요했기 때문에, 요조가 작사 작곡을 한 것을 제가 편곡했어요. 그 장면과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전체적인 편곡이나 악기 사운드를 통해 배가하려고 했죠.

엔딩 크레디트의 그림들과 곡이 잘 어울렸어요.
장 감독님이 소년 감성을 놓치고 싶지 않아 했어요. <아저씨> 같은 영화 보면, 인간 감성이 별로 안 느껴지는데, ‘화이’라는 캐릭터는 그렇지만 항상 소년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킬러와 소년 감성을 교차하고 싶어 했죠.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교복 입고 그렇게 동년배 아이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보여주니까, 교복을 입고 총을 쏘는 장면 같은 것들도 뒤틀리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생기는 거잖아요.

<화이>는 음원으로만 출시됐어요. CD로는 발매 계획이 없으신 건가요?
결국은 CD를 사려고 돌아다녀도 살 곳이 없더라고요.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상점이 안 보이다 보니까 별로 그렇게 의미가 안 생겨서요. <화이> 같은 경우는 비매품으로 소량 만들긴 했어요.

사운드트랙 CD들이 말씀하신 대로 오프라인에서 구매하기가 힘들잖아요. <광해>같은 경우는 벌써 절판이 됐더라고요. <회사원>이나 <남자 사용 설명서>는 음원조차 없고요.
음원을 출시할까 생각을 했었는데요, 영화 자체가 어느 정도 흥행을 하고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동의를 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회사원> 같은 경우는 그 당시에 음악저작권협회와 문제가 있을 때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 배급사에서 약간의 리스크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은 하더라도 나중에 (하자 했어요). 근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김지운 감독님과는 작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단편부터 쭉 하셨는데요. 어떤 부분에서 호흡이 잘 맞는 거 같으세요?
제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공부가 많이 돼요. 영화적인 설명이나 디렉션을 굉장히 잘 해주세요. 상황 상황, 여기서 필요한 게 무엇이다, 라는 걸 잘 가르쳐 주시죠. 일단 제 영감이나 상상력에 맡겨 놓다가 그게 일치하는 부분은 그냥 가고, 어떤 부분들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프로페셔널한 것들을 체크해주세요. 저 같은 아티스트 베이스가 있는 영화음악감독들은 가다 보면 한없이 옆으로 빠질 수 있는데 그걸 잡아주시죠.

장영규 감독님도 김지운 감독님과 작업을 하셨는데, 굉장히 많이 들려주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레퍼런스 같은 게 확고하신 듯하고요.
김지운 감독님은 음악을 평소에 이것저것 많이 찾아 들으시면서, 이런 류의 음악을 꼭 써보고 싶다, 클래식도 이런 건 어떤 장면을 찍을 건데, 거기 쓰면 좋지 않겠냐, 미리부터 염두하는 부분도 있어요. 찍어놓으시고 나서 이렇게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이런 것도 있고요.

도가니

상업 데뷔작이었던 <악마를 보았다>는 수위가 셌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으셨을 때부터 애초에 그렇게 센 수위를 예상하셨나요?
전 그게 그렇게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어할지 몰랐어요. 제 입장에서는 인간의 내면을 미학적으로 다른 지점에서 다뤄주는 것들, 예전에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같은 것도 살육하는 게 적나라하게 나오진 않지만, 주인공의 악마와도 같은 패륜성을 끝까지 보여주잖아요. 그런 걸 현실로서 접할 수 없고, 문학과 같은 예술로 접할 수 있고, 또 그걸 비주얼의 세계로 옮겨오기도 하는데, 사진과 그림도 그런 게 많이 있죠. 그런데 유독 영화이다 보니까 더 생생하게 다가갔던 거 같아요. 이만하면 상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저도 점점 바뀌게 되는 거 같고요. 대중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나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절감하는 거죠. 그러니까 <악마를 보았다>도 피드백을 통해서 그게 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못 보겠더라’ 하지만 난, 왜 못 보지? 그런 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오페라를 지루한지 모르고 봤는데, 어떤 사람들은 보다 자기도 하듯이 사람들마다 예술을 이해하는 폭이 다양하고 다르니까요.

그럼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서 감독님의 대중적인 수위가 일반 대중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신 거잖아요. 그 이후에 음악 작업에 있어서 영향이 있었던 건가요?
그죠, 작품을 보는 시각이 계속해서 저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는 거 같고요. 계속 환경으로부터 생기는 학습이 쌓이니까요.

그래도 상업영화 첫 작품에서 그런 충격이랄까, 그런 게 왔었네요.
네, 전 잘 될 줄 알았어요. (웃음) 그 영화가 <아저씨>와 1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는데,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하면 <아저씨>가 2위가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여자가 아니다 보니 원빈 씨가 그렇게 멋있다는 데이터도 없었고요. (웃음)

이 영화도 영화가 센 만큼 음악이 무척 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화이>처럼 감성적인 접근은 하신 게 있으신 거 같더라고요. 보사노바 음악도 사용되었고요.
음악 감독으로서 일반 고어무비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시나리오 때부터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일반 고어무비와는 다른 지점들이었어요. 고어무비에서는 인간의 내면 같은 거 생각도 안 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의 주제는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 샘솟아 나오는 처절한 복수심 때문에 잘근잘근 한이 풀릴 때까지 몰아붙이는 영화거든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악을 구체적인 형상화로 잘 만들어 놓은 영화였고, 그걸 전달해야 했어요. 어떻게 보면 내면이 가지고 있는 악도 슬픔의 한 종류죠. 그게 없으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면에서 그런 선과 악이 싸우기 때문에 그냥 법에 맡기자, 쟤도 인간인데, 그렇게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택하고 느끼는 지점으로 계속 복수하는 걸 찍은 거기 때문에 슬픔이 더 강하게 전달되도록 했고, 음악 자체가 멜로적인 끈적임을 많이 느껴지도록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의 제목은 <아열대의 밤>이었어요. 그래서 처음 음악 스케치 할 때는 열대의 후끈한 열기와 끈적함을 지점으로 삼았죠. 남미영화들 있잖아요. 전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이런 영화를 꼭 해보고 싶었다라는 영화가 <성스러운 피>였거든요. 그 음악도 좋고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렬함을 좋아해서요.

OST 속지를 보면 ‘스릴러의 백미는 영화음악’이라고 적혀있는데, 스릴러 음악이 관객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기능적인 음악일 수도 있는데요, 어떻게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전에 음악을 하면서 다다르고 싶었던 지점이 형이상학적인 음의 배열과 어떤 리듬과 화성 같은 부분이었어요. 항상 스릴러 영화, 특히 고전으로 갈수록 히치콕 영화 같은 데 보면 클래식 쪽의 현대음악, 컨템포러리 같은 그런 기법부터 해서 재즈 쪽의 프리뮤직 같은 스타일도 많이 쓰이니까, 그런 영화들을 보게 되면 제가 동경했던 음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흥미가 있었죠). 버나드 허먼의 <택시 드라이버> 음악을 들으면 되게 격조 높고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가다가 갑자기 형이상학적으로 틀어지면서, 그때 주는 엄청난 충격과 파장이 있잖아요. 그래서 <악마를 보았다> 음악도 되게 서정적으로 가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뒤틀기도 하고요. 녹음할 때도 일반 클래식 녹음할 때 같이 따뜻하게 녹음되는 걸 최대한 피하려고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가 할 때 쓰이지 않는 마이크나 장치들을 사용했어요. 들을 때 뭔가 이렇게 기분이... 나빠진다기보다는 불편한 지점들이... 왜 그랬을까? 그런 거 있잖아요. (웃음) 과도한 리버브 사용이라든지. 과도한 저음의 사용이라든지. 그런데 영화음악이 아니라면 제가 따로 음반 작업을 하면서 그런 작업을 하기는 힘들어요.

어떤 스릴러를 좋아하세요? 80년대 이전 스릴러들이 많이 참고가 되었다고 하셨던데요.
<택시 드라이버>도 있고요, 히치콕 영화들 많이 좋아해요. 버나드 허만이 작업한 스코어가 있고 모리스 자르가 작업한 <토파즈>같은 작품이 있는데, 전 버나드 허만 보다는 모리스 자르를 더 좋아했어요.

(히치콕의) 후기 음악들이 어떻게 보면 더 낭만적인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프렌치 커넥션>도 좋아해요. 그 영화에선 재즈에서 사용되는 악기들을 가지고 형이상학적인 음들을 많이 만들었죠.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 큐들을 짧은 편입니다. 영화음악은 그런 식으로 시간의 제약이 강한데 그에 대한 한계나 불편함은 없으셨나요?
처음에는 불편하다 생각을 했는데요, 나중이 되니까 그에 대한 재미가 있더라고요. 도전이 생기니까요. 되게 짧게 큐를 구성해놓고 효과가 극대화될 때 내가 작업을 잘하고 있구나. (웃음)

40여 곡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요, OST에 다 실으신 건 아니시죠?
네, 엠비언스 같은 음악들을 많이 썼기 때문에 그런 곡들을 감상하시라고 내놓기는 좀 그렇죠.

시나리오를 먼저 받으셨죠?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에는. 보통 촬영 중에 편집이 끝난 다음에 작업을 하시는 편이세요? 아니면 시나리오 받자마자...
그것도 영화마다 다른 게,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게, 상업영화로서는 심플한 상황도 아니고 김지운 감독님도 스릴러를 처음 도전하시는 거니까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작업을 하면서 감독과의 정서를 상의하며 여기선 유혈이 낭자한데, 이런 느낌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음악 설계가 먼저 들어갔죠. <라스트 스탠드> 같은 경우는 파이널 편집이 다 끝난 상태에서 (들어갔어요). 할리우드 영화 같은 경우는 특히 음악이 끊이지 않고 계속 들어가기 때문에 신나게 처음부터 끝까지 팝콘무비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 음악도 마찬가지로 연속성 있는 느낌 필요했던 거죠. 영화마다 다 다른 거 같아요. 어떤 방식이 유리한지는 감독님과 제가 고민해서 정하게 되는 거죠.

모그

그다음 작품은 좀 편한 작품을 하시나 했더니 <도가니>였습니다.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작품이었는데, 감정적으로 지치시지는 않았는지요?
음식도 그렇잖아요. 막 매운 걸 먹고 나서는 다신 먹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또 다음 날 되면... (웃음). 굉장히 징하게 작업을 하고 나서 한동안 허탈해 하다가 <도가니> 시나리오를 보는데, 내가 아직 완전 연소가 안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 게 있구나. 결혼도 안하고 아이들과 가까이 있을 일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도가니>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까 이 안에서 막... <악마를 보았다>를 읽을 때 같은... (웃음) 또 다른 <악마를 보았다>를 보는 느낌. 감독님들은 다 다르신 데, 저 혼자 <화이>까지 ‘악마’ 삼부작을 작업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발극이고 사회 드라마라서 톤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초반에는 스릴러 느낌도 나고, 후반의 법정 장면은 자칫하면 신파로 빠질 수도 있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과잉이 될 수 있는데, 음악이 절제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항상 음악을 부족하게 쓰는 영화가 좋지 않을까, 하는 편이에요. 특히 어떤 주제 자체가 엄청나게 센 파장이 있는 경우는 더더욱이요. <도가니>에서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스타일로 스케치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도가니>는 피아노곡이 많던데요.
네, 너무 레퍼런스를 받은 게 있으니까 그걸 치환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피아노로 치환하고, 기타라는 악기보다도 아이들과 매치시키기 좋은 악기가 피아노라고 생각해서 작업하고, 중간 중간에 약간씩 기타 연주를 넣었죠.

황동혁 감독님의 전작이 <마이 파더>였는데, 아무래도 신파에 대한 강박이 있었나요?
<도가니>가 상업적으로 울리는 것도 필요한 작품이죠. 중요한 것은 실화를 다룬 거기 때문에 이 작품을 작업할 때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사람들의 아픔을 우리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요. 어떤 부분은 다큐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음악이 존재감 없는 것도 좋겠다. 황동혁 감독님도 워낙 머리가 좋으신 분이라 수 싸움을 잘한 거 같아요. 다른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들보다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많이 만들려고 하셨어요.

원작에서 보면 조성모의 노래라고 되어 있었는데, 영화에서도 직접 조성모의 ‘가시나무 새’를 넣으셨어요. 감독님의 의견이셨나요?
그건 황동혁 감독님이 소통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대중가요가 여기선 필요한 시점인데, 원작 책에도 조성모가 있으니 가시나무 새’를 쓰는 게 가장 좋지 않겠느냐고 했던 거죠. 제가 <남자 사용 설명서>같은 영화에서는 선곡에도 관여를 많이 하게 되는데 <도가니>에서는 워낙 대중과 소통하는 지점이 필요해 (감독님이 직접 하셨고), ‘가시나무 새’ 뿐 아니라 노래방 룸살롱 장면이 있는데, (교직원들이) 여자들이랑 술을 마시고 흥건히 취해서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르는 장면도 모두 감독님의 선곡이에요. 가사와 정반대의 상황인 거잖아요.

실질적인 데뷔작은 단편 <멋진 신세계>였죠? 2006년에 작업하셨으니까요.
그땐 그런 스타일의 영화들이 나의 영화다, 라고 생각했었죠. (웃음)

그 영화가 개봉을 못 하고 <인류멸망보고서>로 묶이게 되었잖아요. 단편들을 모두 따로따로 작업하신 건가요?
네, 그 프로젝트가 변형이 많이 됐어요. 한재림 감독님까지 세 분의 감독님(김지운, 임필성)이 작업을 하게 됐다가 아무래도 일반 상업영화가 아니라 실험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성이기 때문에 투자가 흔들릴 때마다 상황이 많이 바뀌게 되었죠. 그래서 결국 <인류멸망보고서> 패키지로 나오게 된 거죠.

그럼 한 작품 끝나고 시간 지나서 또 한 작품을 하시고... 그럼 작품 간격이 굉장히 길게 있었겠네요.
- 네. 뭔가 그런 영화들을 작업해야 내 삶이 진짜 예술을 하는 느낌도 들고, 몸도 더 건강해지는 거 같고. 회복도 잘되고... (웃음)

쉽지 않은 SF물, 좀비물도 있고 그랬는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것들이 매력적이었고요, 좀비물들,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보면서 이건 좀비물인데 이런 블랙코미디가 많이 생기고, 또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같은 좀비물들을 보며 거기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들 뽑아서 (참고했죠).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 형사들의 칠판 보셨죠? (벽면에 사진과 메모가 붙은)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거든요. 작업이 다 끝나면 꼴도 보기 싫고 그래서 다 버리지만요. 집착증 환자처럼 보드에다 영화라든지 OST의 관계도들을 점점점 그려 나가요. <화이>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데가 아닌, 저만 볼 수 있는 벽장 안쪽에 보드를 설치해서 매일 그거 들여다보면서 작업을 했어요. 또 우리나라 흥행 영화의 데이터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놓고 이 영화와의 간극, 이것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 이런 걸 색깔로 해서 신파적인 요소가 강하다, 하면 빨강색. 이런 식으로 보드를 만들어 나갔어요. 감독님이 영화를 비주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지만 저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두 시간짜리의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한 큐가 끝나면, 쉼표를 길게 줄까 짧게 줄까, 아니면 끊지 않고 갈까를 설계를 해놓게 되죠. 여기서 여기까지는 최근 영화들이 클리셰들을 많이 써서 소통이 된 거 같으면 이번에는 클리셰를 좀 써주자. 그런 식으로.

단편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장편하고는 많이 다른 데, 그런 부분들이 어떠셨나요?
장편은 항상 대중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방금 말씀드렸던 복잡한 관계도를 만들어 작업을 하게 되는데, 단편은 오히려 관계도 없이 리액션만 가지고 할 수 있으니까 덜 정치적인 작업을 하게 돼요. 음을 덜 정치적으로 쓰게 되는 거죠. 아무래도 상업영화는 무서운 게 소수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드는 영화는 거의 없으니까요, 단편영화는 그렇지 않으니까 소수만 볼 수 있는, 소수에게 그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툭툭 던질 수 있는 기회인 거죠. 거의 프리토크와 같은 작업인 거죠. 그림 보면서 한 번에 보고 끝내버리기도 하고. 오히려 그런 게 덜 정교해도 더 맛이 있는 지점도 있어요.

<사랑의 가위바위보> 같은 경우는 특이하게 음원이 출시됐습니다.
그런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만약 장편이었으면 하다 지칠 수도 있는 건데 단편이라 즐겁게 할 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보다는 제 추억을 하나 남기는 걸로 (작업을 했죠). 그게 왜냐하면 <라스트 스탠드>로 김지운 감독님이나 저나 만신창이가 된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가볍게 해보려고 해서, (웃음) 풋풋한 느낌의 나의 기념품이 되었으면 하는 작품이었어요.

광해

무엇보다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있는데요, 특이하게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김준성 음악감독과 공동 작업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하계 되셨나요?
장영규 음악감독님 작업하시는 걸 보면 달파란 음악감독님과 공동작업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혼자 외롭기도 했어요. 그러다 김준성 음악감독님의 작품을 듣게 되었고, 저는 정식 음악 공부의 길을 걷지 않고 음악을 한 사람인데, 김준성 음악감독님은 클래식을 전공하셔서 뭐랄까... 저의 동경을 살 수 있는 분이었죠. 마침 저작권협회 관련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을 수도 있었고요.
<광해>는 제가 먼저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저의 음악 포인트는 음악을 최소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의 기대치는 스펙터클의 끝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있었고, 제가 해석했던 방향을 감독님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다크 나이트>와 같은 해외 대작 영화들이 개봉을 하게 된 거예요. 결국 음악이 너무 많이 필요한 작업이 되어 버린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저는 이걸 빨리 마치고 <라스트 스탠드>를 하러 넘어가야 했고, 그래서 이럴 때 공동작업을 해보지 언제 해보겠냐는 결론에 도달했고요. 원래는 김준성 음악 감독님께 부탁드리며,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한테는 제가 요 정도까지 했으니까 이러저러한 분이 작업을 하게 되셨고 전 이제 사라지겠습니다,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그냥 같이 공동작업 하는 상황이 되어서 클래시컬한 사운드를 김준성 감독님이 하셨죠. <광해> 인트로를 보시면 완전히 제 스타일이고요,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악사들의 정서고, 중간중간 클래시컬하게 귀족 냄새가 나는 음악들은 죄다 김준성 감독의 작품이죠. (웃음)

영화 시작할 때 이병헌이 손질 받던 장면에 나오던 음악도 꽤 클래시컬하게 들렸는데요.
그게 사실은, 전 그런 음악들은 그렇게 클래시컬하다고 생각 안하고요. 어떻게 보면 탱고나 유럽 변두리 지방 왈츠가 많이 가지고 있는 정서고, 정말 클래시컬한 건 오스트리아 느낌? 의 그런 음악들인 거죠. 맘 단단히 먹고 콘서트를 가야 할 거 같은 그런 음악이요. (웃음)

사극이었는데 애초에 국악은 전혀 고려 안 하신 건가요?
제 의도는 변두리 지방, 집시 클래식 느낌으로 다 밀고 가려고 했어요. 왜냐면 시나리오 자체에서 왕이 주인공이 아니라 광대가 주인공이고 광대가 왕의 자리에 앉으면서 벌어지는 일인데, 전 그 재미를 음악적으로 배가시키려면 장중하거나 우리나라의 국악 같은 느낌보다는 약간 하이브리드가 필요한 게 아닐까. 제 해석은 그랬어요. 저는 이 작품을 사극이라 생각하지 않고, 일본 애니메이션 보듯이, 일본 애니메이션 보면 이탈리아 음악도 나오고 온갖 스타일이 나오고 그러잖아요.

어떻게 보면 할리우드 대작 느낌이 좀 들었어요. 클래시컬한 느낌.
김준성 감독님이 베이스가 단단하셔서 그런 걸 진짜 잘 잡으세요.

베이시스트였던 경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에 대한 감각이 좋으신 것 같아요. <화이>나 <도가니>, <악마를 보았다> 모두 현의 부분들이 굉장히 센 데, 오케스트레이터 작업은 따로 하시는 건가요?
<악마를 보았다> 때는 제가 거의 다 했고요, 점점점 가면서 저와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과 나눠서 (하게 되죠). 저는 주로 피아노 건반에서 화성적으로 제가 구현하고 싶은 것들을, 일반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화성 진행을 눌러가듯이 만들고 그 후 현으로 치환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저와 같이 작업하는 음악팀 친구들 중에는 클래식 전공한 친구들이 있어서, 어쨌든 음악은 보는 관점이랑 접근하는 시선이나 지점에 따라서 다른 정서를 뿜어낼 수가 있으니까요. 처음엔 제가 작가주의적인 음악감독이 될 줄 알고 그렇게 살아야지, 하고 영화음악감독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너무 필요한 것들 많더라고요. 영화라는 게. 내가 좋다고 느끼는 지점보다도 남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많으니까요.

산업화, 기능화가 되어가는 거 같아요.
그렇죠. 점점 그게 더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기능화에 대한 압박도 심해지고요.

그 스트레스를 어쩌면 단편으로 풀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단편으로 푸는 게 가장 건전한 방법인 거 같아요. (웃음)

이병우 음악감독님과도 약간 비슷한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음악을 시작할 때 많이 힘이 됐던 선배님들 중에 한 분이세요. 왜냐하면 그 분도 연주자였고. 연주자와 영화음악 모두 가장 호황일 때 활동하신 선배님이시죠. (웃음) 그런 선배 음악감독님들의 작업들을 많이 참고해서 작품마다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어서 작업을 하게 돼요. 이병우 감독님은 아티스트 베이스이지만 조영욱 감독님은 선곡과 프로듀싱 능력을 가지고 작업을 하시니까 그 분만의 시각을 작업하는 데 참고를 많이 하려고 하고 있죠. 달파란, 장영규 감독님은 또 다른 지점에서 오신 분들이고. 영화 나올 때마다 보면서 이런 한 수가 있었구나, 이런 것들을 확인하곤 해요. (웃음)

라스트스탠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라스트 스탠드>에 대한 질문인데요, 결과만 놓고 보면 많이 아쉬웠어요. 이정도 참패하리라고 생각하셨나요?
처음에는 이렇게 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못했어요. <라스트 스탠드> 개봉이 1월 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개봉 전까지 수도 없는 총기사고가 일어나고 그 때 총기에 관한 모든 영화가 다 망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전주에 개봉한 영화 <갱스터 스쿼드>도 망하고 <브로큰 시티>도 잘 안되고. 그것 때문에 요즘 <컨저링>같은 영화의 붐이 일어난 것도 같아요. 더 이상 총은 사람들이보고 싶지 않다는... 제 입장에서는 어쨌든 총 쏘는 영화를 언제 해보겠냐 했었는데, 저도 서부영화를 동경하면서 자란 세대였고요. 그 영화 자체가 지극히 서부영화적인 상황이었어요. 말 없고 자동차 이런 식이었거든요.

메인 테마를 들어보면 정말 웨스턴 느낌이 납니다.
표현하고 싶었던 게, 21세기의 웨스턴 음악이란?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어요. 처음에 김지운 감독님이 영화에 대해 짧게 설명할 때, <하이눈>과 함께 비교해 주셔서 머릿속에 딱 들었던 생각이 옛날 서부영화음악 작곡가와 같은 스코어를 만들고 싶은데, 그런 스코어는 현대물에는 잘 붙이기 어렵기 때문에 전자음악과 잘 믹스된 새로운 웨스턴 음악을 해보자고 했던 거였어요. 흥행까지 잘 됐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웃음)

전체적인 음악을 들어보면 할리우드 음악 같아요. 큐들이 굉장히 길고, 스피디한 질주 씬에선 일렉트로닉도 나오고요. 엔딩 타이틀, ‘모그 심포니’에서는 오케스트라 작업도 하시고요.
‘모그 심포니’는 영화에 나오는 곡들의 하이라이트들을 다 모아서 리믹스 버전을 (만든 거죠). 요즘 음악 추세가 리믹스가 많이 나오잖아요. 예를 들면 다프트 펑크 앨범이 하나 나오면 리믹스 버전, 혹은 어레인지된 버전만 한 100개 이상 나오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쓰였던 큐를 잘 이어서 리믹스 버전 하나로 만들어서 마지막 엔딩롤 올라갈 때 쓰려고 ‘모그 심포니’를 OST에 집어넣었죠.

국내 영화음악과는 다른 거 같아요. 국내 영화음악은 큐들이 짧게 들어가는 데 할리우드 음악들을 길게 사용하고 있잖아요.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정서가 없잖아요.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건데, 워낙 그쪽 산업시스템이 글로벌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감정이란 것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동양에서 슬픈 것이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음악으로는 감정을 주는 것보다 속도감을 높여줘야 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리고 동기부여 같은 기능들이 필요한 거고요.

한국영화들보다 훨씬 더 기능적으로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거군요.
그렇죠. 한국영화들이 훨씬 더 음악의 오리지널리티 쪽에 가깝고 할리우드에서는 어차피... 제일 어려운 게 그거예요. 저랑 감독님이랑 이렇게 하자 해서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고, 특히 음악 같은 경우는 임직원분들 중의 관리하시는 분들이 다 컨펌을 해요. 할리우드는 말이나 음악을 들려주고 시작하는 게 아니고 제가 항상 문서를 만들어요. 질문사항이 딱 있으면, 큐 24-A의 시작점에 대해서 모호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반성문 쓰듯이 글짓기를 해야 해요.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 이런 건데 너희들의 생각이 그러면 요렇게 만들어 줄 수 있고, 그런 걸 다 글로 설명을 하고 작업을 해서...

완전히 논리네요. 논리적인 피드백을 거쳐서 음악이 나오게 되는.
그렇죠. 제가 그렇게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어요. (웃음) 아침마다 이메일을 열면 그런 몇몇 담당부서에서 답변을 달라는 메일이 와있어요. 그런 그 답변을 쓰고 작업실로 가면 낮 한 시쯤 돼요. 집에서부터 산타모니카에 있는 작업실로 가게 되는데, 한스 짐머의 작업실에 세 들어 있다 보니까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오전에 이야기하면 오후에는 다 와있어요. 그.. 산업의 첨병에는 항상 유통이 있는 거 같아요. 보도 듣도 못한 기타도 관심이 있다고 하면 어디서든지 오후에 다 와있더라고요. 그런 좋은 것이 있는 반면에 수많은 글짓기를... (웃음) 작가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될 정도였죠. 어휘력과 글에 대한 한계를 매일매일 절감했거든요. 제가 스마트폰, 구글링, 어플리케이션 같은 거에 되게 경계가 많았는데 바로바로 번역을 해주니까 다 쓰게 되더라고요. 거기서는 음악감독이 아니고 그냥 컴포져잖아요. 뭔가 어떤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거리도 생기고, 존경심도 부르고 그렇게 되는데, 컴포져 composer, er은 별로 그런 걸 수반 안하는 거 같아요. (웃음) 그냥 직책인 거 같아요.

<라스트 스탠드>는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안 나왔고요, 해외에는 나왔는데 조금 늦게 발매가 됐더라고요. 영화 개봉이 좀 지난 다음에.
그 영화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있어서 DVD 같은 게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참 사람 욕심이 특이한 게 존 카펜터 영화 같은 경우는 극장에서 보고 싶진 않은데, 꼭 비디오나 DVD, OST를 다 사서 모으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라스트 스탠드>도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존 카펜터 영화처럼 그런 컬트 레전드가 되어가고 있다, 좋은 거다, 고 하더라고요. 전 뭐 좋을 수도 있죠. 아티스트가 볼 땐 제가 작업한 영화가 컬트 레전드야... (웃음) 옛날에 80년대 그런 영화들 많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나 제작사는 극장에서 수입을 만들지 못해서... 어디 OST 오덕들의 차트를 보니까 그런덴 워낙 게임 OST가 많아서 전체 순위는 100위 중에서 13위 였는데, 지난주까지 <라스트 스탠드>가 영화중에서 3위였어요. 감독이나 제작사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라스트 스탠드> 음악 작업한 게 있거든요. 컬트스러운, 일반 할리우드 영화음악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들이요.

씨네21 인터뷰를 보면 뮤직 에디터의 필요성을 지적하셨어요. 뮤직 에디터란 정확히 어떤 직책인가요?
작곡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곡에 칼을 잘 못 대요. 원곡이 있는데, 영화의 편집에 따라 순서를 바꾸는 게 영화적으로 도움이 된다, 하면 그걸 하는 거에 있어서 전 굉장히 거리감이 있고 불편한데 그걸 뮤직 에디터가 편하고 합리적으로, 음악 감독이 이해할 수 있고 또 감독이나 스튜디오에서도 이해하괏옥졀?큐레이터 같은 역할을 해주는 거죠. 또 제가 음악 작업을 하기 전에 템프 뮤직(편집자 주: 영화를 편집하고 작곡가에게 음악을 의뢰하기 이전에 감독이 의도하는 음악의 분위기를 지정해 주기 위해 임시적(Temporary)으로 사용하는 음악)을 필요한 곳에 적재적소 배치를 해서, 음악이 이런 형식으로 연결돼서 이어지는 효과를 스튜디오와 감독에게 보여주는 역할도 하게 되고요.

우리나라에서 현장편집과 같은 느낌이네요.
그렇죠. 미국은 현장편집이 없어요. 대신 뮤직 에디터가 있어요. (웃음). 재미있는 게 뭐냐면 암암리에 미국에서는, 할리우드에서는 음악의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을 하고,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현장의 중요도가 높고 후반작업의 중요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후반 쪽에 가면 미국에서는 에디터들 있잖아요. 총 슈퍼바이저 같은 역할을 해요. 믹싱하는 데까지 가서 소리도 지르고. 감독이 편집권을 못 갖게 되면 에디터가 왕이 되는 거죠. 그처럼 할리우드는 후반작업에 힘을 굉장히 많이 실어주고, 또 그쪽에 투자, 배분이 많이 되어있는 거겠죠. 미국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음악은 오케스트라 어디서 녹음할래, 그런 얘기들을 쉽게 해요. 베를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웃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물론 시장의 사이즈 때문에. 그래서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영어로 만드는 영화가 세계적으로 가다 보면 언어적으로 전달 못하는 뉘앙스들을 사운드와 음악으로 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그런 쪽에 더 힘이 실리고 투자가 많은 게 아닌가 싶어요.

미국영화 말고 일본의 타케 마사로 감독의 <에덴>이란 작품도 작업 하셨는데, 영화는 못 봤는데, 게이 바의 드래그 퀸이 나오는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건가요?
한국에서 씨네콰논 극장을 하시던 이봉우 대표가 오랜만에 제작하신 작품이고, 일본 영화도 작업을 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시기가 잘 맞아서 하게 된 거죠. <도가니> 딱 다음에 작업을 하게 됐어요. 제가 정말 모르는 다른 나라의 이상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죠.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셨어요. <플래닛 비보이>와 <뒷담화>.
<플래닛 비보이>는 좀 더 다큐고, <뒷담화>는 페이크 다큐였죠.

어떻게 보면 장르적이지도 않고 내러티브도 없고, 캐릭터도 약간 흐릿한데 작업하실 때 극영화와 차이점이 있나요?
다큐멘터리는 덜 계획적으로 소스를 수집한 다음에 관객들이 가장 보기 좋은 지점으로 조화롭게 배열하며 만들어가는 거여서 해프닝이 많이 생겨요. 해프닝에 대한 재미가 있는데, 예상하고 작업하는 게 아니고, 마음가짐에 없다가 문득 이런 게 부각되면 더 재미있을 거다 그런 게 있죠.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들이 내는 작은 아이디어들부터 고민을 하다 보면 하나의 큰 얼개가 나오게 되기도 해요.

좀 더 작업방식이 자유스럽네요.
<플래닛 비보이>는 아무래도 미국 영화니까 템프 트랙을 깔고 시작하다 보니까 (그렇게 자유스럽진 못해요).

다큐멘타리인데도요?
네. 그런데 한국에서 이재용 감독님과 함께 작업할 때는 훨씬 자유스럽죠. 작업기간은 좀 더 길수밖에 없죠. 처음부터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작정을 하고 끌어가는 게 아니다 보니까.

촬영 전부터 콘셉트를 잡지 않고 후반에 하게 되는 건가요?
전체 콘셉트를 잡아놓는데, 중간 중간 계속 소스나 상황에 따라 이걸 더 부각시키는 게 괜찮겠다 하면, 처음 콘셉트와는 좀 다르게 되는 경우가 생겨요.

남자사용설명서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는 코미디를 하셨는데, 굉장히 음악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어요. 약간 B스러운 코미디와도 잘 어울렸고요. 음악이 얼마나 사용되었나요?
<라스트 스탠드>보다 더 썼을 거예요. 짧게 짧게 계속 쓰였거든요. 이원석 감독이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했고, 미국 B무비에 대한 동경이 많았어요. 사실 영화 자체도 한국에서는 구현하기가 힘든 상황의 영화잖아요. 결국 만들어내면서 미국 B무비를 하듯이 그런 주묍엔였?해서 음악 작업을 하다 보니까 거의 그만큼의 음악을 쓰게 된 거죠.

이 영화에서 보면 마카로니웨스턴에서 나올법한 음악들도 나와요. 어떻게 보면 더 <라스트 스탠드>보다 더 서부극 같은...
네, 아예 대놓고. (웃음) 그래야지 더 B무비의 코미디가 가지고 있는 질펀함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으니까요. 모든 씬들의 오리지낼리티를 최소화 하다보면, 그 다음에 그런 것들을 모두 합쳐놓고 보면 오리지낼리티 있게 영화가 나오는 게 사실 B무비거든요. 그런 실험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동생으로 가깝게 지내던 감독이어서 그런 요구가 사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 부드럽게 오는데 전혀 뭐... ''형 이거 우리 해줘야 돼!!'' 이렇게 와서 (웃음). 이런 거 있잖아요. ''아 왜 그거 그렇게 안돼~??'' (웃음)

이원석 감독님이 굉장히 상상력이 많으신 분 같아요. 웨스 앤더슨 같기도 하고 미쉘 공드리 같기도 하고.
그런 세계를 워낙 동경했던 감독이고,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있고, 음악도 많이 알고 좋아하고요. 이원석 감독이 재밌는 게, 어렸을 때 디제이도 했었어요.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때, 파티들이 많으니까. LP 시절의 디제이를 하고, 아직도 그때 당시의 향수가 있더라고요. 사실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저와 작업하시는 감독님들, 김지운 감독님, 장준환 감독님, 이원석 감독님, 임필성 감독님. 영화감독이라기에는 음악을 너무 많이 들어요. 너무 많이 알고. 그래서 그게 좋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디테일한 걸로 들어가다 보면 두루뭉술하게 할 수가 없는 (애로사항이 있죠). 김지운 감독님은 소리에도 굉장히 예민하셔서 제가 스트링에 톤만 조금 트래블을 올렸다고 하면 그걸 감지하시면서 고음이 좀 더 올라간 거 같애, 하시니까 그게 어떤 면으로는 섬뜩할 때가 있죠. (웃음) 되게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아니, 음악 하는 사람도 이런 건 잘 판단 못 하는 데. 그래서 제가 훨씬 더 치밀하게 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저음부를 2Db를 올렸다면, 그걸 안 적어 놓으면 ‘저번엔 이렇지 않았다니까’ 이런 말을 듣고 되돌릴 때 힘들죠.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는 삽입곡도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나체로 활보하다가 검문 당했을 때는 ‘네순도르마’도 나오고요, 엔딩에서는 고리엘라의 ‘리가야’도 쓰였고요. 그럼 곡들은 디제잉을 하셨던 이원석 감독님이 선택하신 건가요?
저랑 그런 의견을 조율하는 거죠. ‘리가야’ 같은 경우도 저희 어렸을 때 클럽에 가면 (항상 나오던) 파티 음악이었거든요. (그 곡을 부른) 고리엘라가 듀엣인데 그 중 한명이 티에스토였어요. DJ였던 그가 데뷔한 그룹이기도 한데, 그런 것들 때문에 (사용하게 됐죠). 이런 음악들은 만드는 것보단 이 파티 음악을 그대로 쓰는 게 낫겠다고 감독도 강하게 주장을 했죠. 그런 선곡을 하면 항상 예산이 발생이 되기 때문에 제작자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곱지만은 않은 (입장이에요).

사운드트랙이나 음원을 기대했는데 안 나와서 섭섭했습니다.
예, 저도. 원래 제작하셨던 대표님이랑 300만 넘어가면 OST를 내주시겠다 했었는데... (웃음) (흥행이란 게) 배급시기라든지 배급의 힘 등에 좌지우지 많이 되는 거 같아요. 그 영화는 어떤 극장에서는 첫날부터 교차 상영이 되기도 했었어요.

굉장히 코미디 장르도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 코미디가 거의 없으세요. 코미디를 하시고 싶은 계획이 있으신가요.
<화이> 다음으로 하는 작품이 <수상한 그녀>라는 코미디에요. 심은경, 나문희 선생님 주연작이고요. <남자 사용 설명서>와는 다른 지점의 좀 더 대중적으로 소통하기 좋은 작품이에요. 제가 우울증이 심하고 평소에는 정서 자체가 가라앉아있기 때문에, 조증이 갑자기 생길 때가 있어서 <화이> 작업할 때도 어떻게든 에너지를 조증을 만들면서 버티고 했었는데, 코미디 장르를 다음 작품으로 하니까 덜 가라앉아서 음악을 하게 되지 않을까.

굉장히 기대가 큽니다. 삽입곡 같은 경우도 보니까. <회사원>에서는 이미연 씨가 전직 가수로 나왔는데, 부르던 곡도 따로 작업하셨다고요.
네. 그건 제가 사이드로 아는 뮤지션 친구들과 습작 같은 작업을 해놨다가 영화와 매치가 잘 돼서 그걸 여기다 쓰자, 했던 거죠.

직접 이미연 씨가 부르신 건가요?
네, 이미연 씨가 부른 파트가 있고요, 어떻게 설정이 되느냐면, 전직 여가수의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구간은 이미연 씨가 부르시고, 몽타주로 이어지면서 영화의 느낌을 부각시켜줘야 하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그런 게 튈 수가 있으니까 가수분이 불러주셨죠. 그걸 리믹스하듯이 절묘하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 작업할 때 조금 어려웠었죠.

음악이 좀 80년대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았어요.
<회사원> 영화의 그런 톤들을 감독이 만들고 싶어 했어요.

인터뷰에서 보면 좋아하시는 작곡가로 데이빗 샤이어나 랄로 쉬프린을 꼽으셨어요. 어떻게 보면 70년대 가장 핫했던 분들인데요.
장르영화들을 많이 하시던 분들이었죠. 제가 볼 때는 70~80년대가 영화음악의 황금기였던 거 같고요, 그 뒤부터 워낙 좋은 사운드 시스템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영화음악은 훨씬 더 입지가 좁아진 거 같아요. 사운드가 음악의 역할을 많이 대체하게 되는 상황이 되니까. 그분들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의 음악들은 한 큐 때문에 주먹을 불끈 쥐게 해주고, 또 그런 역할을 해주던 그 시기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죠. 정말 좋은 시절을 사셨구나. (하지만) 막상 저 같은 사람이 그 시기에 영화음악을 하라고 하면 못했겠죠. 이분들은 거의 악보를 탈곡기에서 뽑아내듯이 작곡을 해내시니까. (웃음) 자기 빅밴드와 오케스트라와 녹음하고 막. 또 빌 콘티와 같은 작곡가도 좋아했었어요. <록키>는 그냥 음악 나오면!!

개인적으로 좀 더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으신가요? 영화음악가 중에서요.
요즘에는 (소더버그와 작업한) 클리프 마르티네즈 같은 요즘 작곡가 좋아하고요. 미니멀한 작업하시고요. 산타올라야 같은 분도 좋아하고. 기타 하나 가지고... 한국 영화음악 하시는 분들의 음악도 많이 들어요. 한국 감성을 채우는 방식은 또 다르니까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꾸준히 작업하셨는데, 작업 속도가 빠르신 것 같아요.
그렇게 팀을 셋업을 해놨어요. 처음에 혼자 작업할 때는 정말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어떤 형태를 끄집어내기 전에 내가 그 형태를 잃어버릴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아예 팀을 셋업하고 파트를 나눠서 이쪽에서는 에디팅만 하게 하고, 이쪽에서는 소스만 컬렉팅하게 하고, 그럼 제가 아이디어가 생기면 필하모닉 한 60인조 소스 좀 해줘, 그럼 빨리빨리 그게 나오니까, 금방금방 제가 근사치를 확인해볼 수 있으니까, 훨씬 빨라진 거죠. <악마를 보았다>는 거의 혼자 했어요. 오퍼레이터 하는 친구와 둘이 하다가, 아무래도 영화음악을 계속 하고 영화 사이즈가 점점 커지고, 영화라는 게 저와 맞닥뜨렸을 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량과 인내심과 감정싸움이 필요하다 보니까, 그렇게 팀이 있으면 상처도 덜 받고, 덜 지치게 되더라고요.

모그에 있어서 영화음악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단독 개인앨범 작업보다는 점점 영화음악 쪽에 치중하시잖아요.
산업이 변화하는 것에 거스를 수도 없고요. 단독 작업이란 것 자체가, 앨범이란 것을 손에 쥘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공기처럼 떠다니게 하는 음악 작업이 힘들더라고요. 받아들이기가. 어쨌든 영화음악이란 작업은 제약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작업인 거 같아요. DVD라는 것도 만들 수 있고요. 손에 잡히는 결과물에 대한... 습관처럼 생긴 저의 집착인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 연주하면서 세션을 할 때는 그게 다 크레디트에 남는 세상에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느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해도 그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세상에 살아야 된다는 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음원을 보면 또 그런 게 안 나오죠.
그렇죠. 어떤 사람이 음악을 듣는데, 음반을 사서 그 안에 적혀있는 글부터 해서 이건 어디서 녹음을 했고, 누가 참여를 했고, 편곡은 어디서 했고, 이런 데이터들을 쌓고 음악을 들어왔다면, 요즘은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자체도 되게 힘든 세상이라는 것 자체가 감당이 안 되거든요. 특히 전 베이스를 치던 사람이라서 이런 걸(스마트폰)로 음악을 들으면 베이스는 들리지도 않아요. 존재감도 없고요. 스펙트럼이나 다이나믹한 것들이 전혀 안 느껴지고, 질감 같은 것들이 무시되는 세상에 살게 되니까요. 사실 영화음악이 그것의 피난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좋은 오디오 시스템에서 들을 수 있는 환경, 앨범이란 게 나올 때만 해도 아는 분들 중에서 마니아들이 있으면 좋은 앰프와 스피커가 구비되어 있으면 거기서 한 번 들어봐야지, 하면서 차 한 잔 마시며 음악을 듣곤 했었는데, 점점 그런 게 없어지죠. 음원이란 것도 정액제로 확 묶어놓다 보니 진짜 1회용이 되어버려서 사람들이 데이터(음원)를 넣었다가 공간이 차면 또 비워내고. 음원 공유 시스템 자체가 아티스트의 에고나 존재 자체를 지워놔 버려서요. 차라리 영화음악을 하는 게 그 아티스트 경계의 안과 밖에도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정말 아이덴티티가 안 생기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영화관이라는 좋은 시스템 안에서 음악을 들을 수가 있게 된 거네요.
그게 유일한 해소 지점이 된 거 같아요.

차기작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나요?
아까 말했던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가 내년 1월 중에 개봉할 거 같고요, 이재규 감독의 <역린>, 박흥식 감독의 <협녀>를 준비하고 있어요.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정말 몰랐습니다.

모그


_ 인터뷰: 문상윤
_ 정리, 사진: 유성관
_ 2010.10.17, 미래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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