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과 인간의 충돌 몽타주 사방지, 1988

by.조혜영(영화평론가) 2024-01-09조회 3,549

<사방지>는 1980년대에 양산되던 사극 에로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사방지>는 조선 세조시절 『실록』에 기록된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 『실록』에 따르면 양반가 종인 사방지가 주인집 과부 며느리인 이씨와 놀아난다는 소문이 돌아 조사해보니 그가 음낭과 음경을 갖고 있어 고발당했다고 한다. 이 고발은 세조가 자신의 사위인 정현조를 보내 살피게 할 정도로 큰 스캔들로 발전한다. 그리고 사방지는 여성과 남성의 성적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어지사지, 즉 간성임이 밝혀진다.

조정은 사방지를 시골로 쫓아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권력자들이 관대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기보다는 그를 기존의 인간 질서를 벗어난 존재, 즉 비-인간으로 봤기 때문에 큰 죄를 내리기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해당하는 법을 비-인간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방지는 추방된 곳에서 다른 여성들과 성 스캔들을 일으키고 이씨와도 다시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세조는 이 소식을 듣고 사방지를 관노비로 내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사람은 인류(人類)가 아니다. 마땅히 모든 원예(遠裔)와 떨어지고 나라 안에서 함께 할 수가 없으니 외방 고을의 노비로 영구히 소속시키는 것이 옳다.” 이씨 부인의 아들 역시 관직을 얻지 못하게 하는 등 불이익을 받았지만 그를 인간 범주에서 제외하지는 않는다. 이씨 부인의 행위는 그저 인간의 비도덕성으로 규정된다.

영화 <사방지>는 사방지(이혜영)의 존재를 처음부터 ‘비-인간’의 범주에 놓는다. 영화가 묘사하는 ‘비-인간’은 한편으로는 위계적으로 인간보다 못한 짐승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사방지의 출산 장면이 재현되는 오프닝은 몰아치는 비바람으로 불길한 기운을 강조하고, 영화는 그의 존재를 뱀, 달팽이 같은 짐승들로 직유한다. 사방지의 등장에는 늘 뱀이나 달팽이의 클로즈업 쇼트가 돌발적인 충격으로 삽입된다. 하지만 사방지의 비인간적 면모는 동시에 그가 보통의 인간을 넘어선 비범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걸 증명한다. 인간과 동물, 여성과 남성의 양가적 특징을 다 가진 그는 양성 모두를 홀리는 성적 매력, 세심함과 대담함, 자수와 같은 정교한 기술과 놀라운 체력, 아름다운 외양과 지성 모두를 갖춘 이로 묘사된다.
 

이소사(방희)와 사방지의 만남은 운명적인 사랑으로 묘사된다. 이소사는 처음부터 사방지의 비범함을 알아챈다. 이소사와 사방지의 만남은 성적 은유로 가득 차 있다. 폭포에서 몸을 씻던 이소사 앞에 똬리를 튼 큰 뱀이 등장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훔쳐보던 사방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채 나뭇가지로 그 뱀을 들어 무심하게 던져버린다. 이 장면은 낭만적인 구원자로서의 사방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의 남성 성기를 직접적으로 은유한다. 이소사는 뱀을 보고 놀라는데 이는 사방지의 남성성에 대한 매혹과 경탄을 장면화 한다. 이상할 정도로 뱀을 보고도 평정을 유지하는, 동물 근친적인 사방지의 태도는 그의 비인간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영화는 이소사가 사방지를 사랑하게 된 것이 단지 그의 남성 성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려 한다. 이소사의 사랑을 통해 사방지의 비인간성은 특별함과 비범함이 된다. 즉 인간 이하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평범함과 비루함, 세속적인 기준을 초과한 인간이다. 그는 ‘대물’로 성적으로 여성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여자를 보호하는 낭만적인 구원자이며, 천자문도 읽고 자수에도 뛰어난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졌다. 이소사 뿐 아니라 다른 여자와 남자들도 색다른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이소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절에서 밥이나 짓는 애인 줄 알았는데 이런 재주가 있다니. 날마다 너를 새롭게 보는구나.” 물론 이 영화는 에로영화로서도 충실한 기능을 하며 이 대사를 계기로 둘은 동침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계급 불평등과 그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멜로드라마가 되면서 일반적인 에로영화를 넘어선다. 이소사와의 관계가 들통이 나고 양반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이소사는 사방지를 배신한다. 사랑하는 두 여자 사이의 차이는 젠더나 섹슈얼리티보다 계급에서 두드러진다. 무녀 모화는 자신의 남편이 양반가의 씨내리로 사용된 후 살해된 복수를 위해 사방지를 이용한다. 자신을 도구화하려는 모화의 계략과 납치를 비난하던 사방지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함께 복수에 참여한다. 흥미로운 점은 둘 모두 자신들에게 직접 가해를 한 개인이나 가문이 아니라 양반이라는 계급 자체에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모화는 포주 노릇을 하며 양반가 마님들에게 돈을 받고 사방지와의 성적 관계를 제공한다. 그들의 재산을 갈취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성적 규범과 도덕성을 자신들의 우월한 특징으로 내세우는 양반의 계급적 위선을 폭로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 설정은 이소사에 순정을 갖고 있던 사방지가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 성애적인 씬을 만들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곧 사방지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복수를 하는 것이 자해 행위임을 깨닫게 된다. 성적 도구가 된 사방지는 그 자체로 비인간화 된다. 모화는 “넌 달팽이의 혼을 타고 나서 음지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그를 통제하려 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달팽이의 클로즈업 몽타주가 끼어든다. 사방지는 그렇게 여러 번에 걸쳐 비인간화된다. 하지만 그의 비인간성은 신체적 특징에 있다기보다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계급 등에 의해 그를 비인간화하고 그 행위들을 합리화하려는 ‘인간들’에 의해 구성된다. 사방지는 결국 “전 남자도 여자도 아니지만 짐승도 아니에요.”라고 절규한다. 그는 정체성의 혼란, 소속감에의 결여를 겪으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사방지는 “부처님이 계시다면, 왜 저 같은 저주받은 생명을 만드셨습니까. 남자도 여자도 아닌 병신을 말입니다.”라고 울부짖는다. 이소사와의 재회가 이뤄지지만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엔딩씬에서 자신의 남성 성기를 잘라 버리는 사방지의 신체훼손은 특정 성별로의 결정이나 ‘정상성’에의 순응이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둘 간의 사랑과 갈등은 단순히 가부장제 억압의 결과나 ‘에로 영화’의 성적 대상화된 장치로 설명되기 어렵다. 사방지를 여자로 알면서도 그를 사랑한 이소사의 섹슈얼리티, 사방지와 이소사의 주요 갈등인 계급과 신분, 간성에 대한 다채로운 반응 규범과 질서를 초과한다. 아마도 이러한 묘사가 가능한 것은 에로 영화라는 장르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영화는 이소사의 자살과 사방지의 성기 절단이라는 파격적 비극으로 끝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도 단순하게 분류되지 않는 그/녀들의 정체성과 섹슈얼리티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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