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얼굴, 다가가는 빛 다음 소희, 2023

by.조혜영(영화평론가) 2023-05-31조회 4,247

정주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음 소희>(2023)의 서사는 두 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정의감 넘치며 할 말 똑 부러지게 하던 소희(김시은)가 점진적으로 빛을 잃어가다 결국은 자살로 사라지는 전반부와, 이미 소진된 상태에서 직장에 복귀한 형사 유진(배두나)이 소희가 죽게 된 진실을 쫓는 후반부로 구성된다. 소희는 열아홉 살 특성화고 애완동물관리과 졸업반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이고, 유진은 어머니의 오랜 병간호 이후 복직한 경찰이다. 삶이 그다지 녹록치 않은 둘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생존을 넘어 살아가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자기 삶에 남겨두는 현명한 이들이다. 춤이 그렇다. 둘이 직접 만나는 순간은 실습 나간 콜센터 회사에서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후 힘들어하던 소희가 퇴근 후 댄스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가 유일하다. 소희는 말없이 함께 춤추던 옛 동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신입이어서 전혀 교류가 없었던 유진은 소희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전반부에서 둘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다. 유진이 콜센터와 학교에서의 극심한 압박과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유진이 소희의 사건을 담당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소희와 유진의 서사는 일종의 반복형식을 갖고 있다. 동일한 사건을 전반부는 피해 당사자의 시점으로 끌어나가고, 후반부는 소희를 죽음으로 몰고 간 폭력과 착취의 교육/노동 구조를 파악하려는 유진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두 개로 나눠진 서사구조는 윤리적 형식을 갖는다. 윤리적인 것이란 서로가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나와 타자의 자리를 상상하며 그 사건이 어째서 일어났는지를 파악하고 함께 ‘책임’지려는 태도다. 여기서 책임은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 응답-가능성(responsibility)과 설명-가능성(accountability)이다.
 

응답-가능성은 어떤 피해가 일어났을 때 응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응답하기 위해선 먼저 들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소희는 콜센터에 취직한 후 학생으로서 그리고 노동자로서 성실하게 직장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콜센터는 소희를 비롯한 직원들을 사람이 아닌 숫자로 환원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콜 수, 방어율, 성과 그래프 등으로 기입된다. 그들의 감정은 회사가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따라서만 표현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 된다. 사실 ‘해지방어팀’이라는 조직은 폭언을 구조화한다. 인터넷 해지를 하고자 하는 고객들이 해지를 하지 못하도록 수십 번씩 전화를 돌리고 고객들이 화가 치밀게 만든다. 콜센터 직원들은 그 폭언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끊임없이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감정노동으로 인해 노동환경은 열악해진다. 이 열악한 일은 본청의 관리를 받으면서도 본청이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하청회사에 맡겨진다. 회사는 노동자를 쉽게 대체가능한 소모품처럼 취급된다. 

심지어 이들은 학생과 노동자라는 이중적 구속에 놓인 실습생들로 그 자리를 채운다. 소희가 속해 있는 두 개의 조직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위계적이고 착취적이며, 신자유주의적인 성과주의와 능력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뼛속 깊이 내면화하고 있다. ‘본청, 하청, 본부장, 팀장, 직원/실습생 그리고 교육부, 지역 교육청, 교감, 교사, 학생’이라는 피라미드 구조에서 모두가 단일한 기준의 숫자로 평가된다. 이러한 구조는 표면적으로는 능력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누구의 능력도 키워주지 못하며,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다. 실습생뿐 아니라 팀장, 교사들도 피해자를 자처한다. 소희가 담임 선생님에게 여러 번에 걸쳐 콜센터의 부당함과 맡겨진 일의 부적절함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만 담임은 자신의 곤란함과 어려움을 핑계 삼아 소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의 입을 막는다. 심지어 소희가 회사를 그만두면 취업률에 문제가 생겨 반과 학교가 지원을 못 받을 수 있다고 소희의 죄책감을 부추긴다. 소희는 부모님에게도 말해보지만 그들 역시 들을 수 없는 조건에 있다. ‘비빌 언덕’이 되지 못하는 부모님은 삶에 지쳐있고 많이 피곤해 보인다. 피곤하고, 더 나아가 소진된 이들은 가능성이 다한 상황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다. 전 팀장은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을 견딜 수 없어 죽음을 통해 바꿔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무산된다. 소희가 논리적으로 따지며 항의하고, 회사가 원하는 서약서에 사인하지 않으며 행동으로 저항하고, 진심을 토로해보고, 눈물도 흘리고, 소동을 부리고, 심지어 자해를 해도 어른들 누구도 듣지 않으며, 파국의 상황을 멈추지 않는다. 학교와 직장이 피해자가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응답할 수도 없다. 실제 책임을 나눠가져야 하는 어른들은 타자의 자리를 상상할 여지가 없다고, 그러기엔 세상이 지나치게 경쟁적이라고 주장한다.
 

버티던 소희가 끝내 무너진 것은 전 팀장이 내부고발을 하며 자살을 했을 때보다, 그 자신이 회사가 원하는 감정과 이데올로기를 매뉴얼로만 읽는 것을 넘어서 내면화하기로 결심했을 때였을 것이다. 괴로워하던 소희는 동료와 비교하고 경쟁시키며 방어율을 높이는 새로운 팀장이 전하는 동기부여의 목소리를 받아들인다. 스스로 자신을 수단 삼아 회사가 정해준 목적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소희는 아들이 죽어 해지를 하려하는 고객조차도 성과를 위한 숫자로 대하게 된다. 단순히 감정을 관리하고 매뉴얼을 수행하는 데에서 심층적 차원에서 회사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감정노동을 하며 스스로의 인격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노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소희가 성과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했을 때 더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기 인격의 일부와 거래해 받을 대가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설명-가능성의 책임은 이러한 피해가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한다. 구조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그것에 책임이 있는지, 서로의 관계는 어떤 역학 속에서 맺어져 있는지 질문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 설명을 위해선 타자뿐 아니라, ‘나’ 역시도 설명해야 한다.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런 피해가 일어난 구조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나는 어느 위치에서 그 피해를 듣고 있는지 등을 포함한다. 유진은 모두가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들도 손해를 봤다고 억울해 할 때 소희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유진은 댄스 스튜디오에서 소희와 마주쳤지만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던 일을 기억해 낸다. 처음에는 단순 자살로 처리하려던 유진은 두 번째 만남에선 첫 번째처럼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착취적인 실습생 고용구조를 파헤친다.
 

이 영화에는 클로즈업이 많지 않다. 전반부는 주로 핸드헬드로 진행되는데 소희가 빛을 잃고 무너져갈수록 카메라는 점점 더 많이 흔들린다. 영화는 종종 소희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한다. 특히 전반부의 마지막 씬에서 소희의 클로즈업 얼굴은 빛, 물, 눈과 같은 자연적인 것과 교차편집 된다. 가게에서 맥주를 먹다 문틈 사이로 다가오는 빛이 차가운 맨발에 닿았을 때, 저수지 앞에서 물을 응시하는 뒷모습을 보여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리는 눈을 바라볼 때, 소희의 얼굴은 자연적인 것들과 교차된다. 눈 내리는 장면은 소희가 유진을 처음 봤던 댄스 스튜디오에서 계단을 오르는 장면에서도 동일한 구도로 반복된다. 그때 소희는 힘든 일이 있었지만, 까만 밤에 흩날리는 눈을 보며 잠깐의 위로를 받는다. 위를 올려다보는 소희의 클로즈업과 시점 쇼트로 잡힌 흩날리는 눈의 쇼트가 교차된다. 아름다운 것은 한번은 구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될 수는 없다. 소희는 저수지 앞에서 응답하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위를 바라보지만, 소희에게 내려온 답은 ‘견디고 참아라.’ ‘피해주거나 손해 끼치지 마라’ ‘나도 힘들다’이다. 위에서 층층이 책임져야할 어른들과 단위들은 그 위가 문제라고 말한다. 어디까지 올라가야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답을 들을 수 없는 소희는 사라져 간다. 소희가 저수지로 들어가는 전반부의 마지막 쇼트에서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다. 고정된 프레임에서 소희는 프레임의 아래쪽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카메라는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소희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면서, 응답하지 않았던 우리(사회)를 응시한다. 프레임 밖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 카메라는, 스페이스-오프에 또 다른 ‘다음 소희’가 사라지고 있을 수 있음을, 그리고 그들에게 응답하기를 요청한다. 

소희에게 다가와 주었던 빛은 실습을 나가며 소희가 잃었던, 사회가 대가로 내주기를 강요했던 빛들의 모음처럼 보인다. 그 빛은 유진이 소희가 마지막에 앉아있던 가게의 간이 테이블을 찾았을 때, 다시 한 번 다가와 응답과 설명을 요청한다. 그리고 소희의 휴대폰에 유일하게 남겨진 혼자서 춤을 추고 잘 해냈을 때 누구보다 기뻐하는 동영상으로 시처럼 응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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