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우드극장: 50여년의 역사를 거쳐 실버세대를 위한 메카가 되다

by.임수연(씨네21 기자) 2023-04-12조회 6,909

한국영상자료원이 2022년부터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한국영화 문화와 산업,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입니다. 과거로부터 전승된 기록을 잘 보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는 아카이브 기관이 해야 하는 역할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미래에 역사가 될 현재의 자료들을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일 역시 아카이브 기관의 중요한 임무라고 할 것입니다. 최근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의무제출제도를 통해 자료원에 보존되고 있지만, 그 외 다양한 한국영화와 영상의 자료들은 여전히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기획되고 만들어지며 논의되고 보여지는 곳, 그 장소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이에 영상자료원은 2022년부터 “한국영화현장기록사업”을 시작하였고, 그 첫 해에 허리우드극장, 오오극장(대구), 미림극장(인천), 애관극장(인천), 명동CGV씨네라이브러리, 아카데미극장(원주), 스튜디오 CELL 등 8개의 장소들과 관련된 분들의 증언을 기록하였습니다. 첫 해 사업이다보니 사라질 위기에 있거나 기록화가 시급하다고 판단된 (단관)극장들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오늘 한국영화 산업과 문화의 다양한 공간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획·진행: 조준형(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낙원상가와 함께 탄생한 극장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256(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28)에 위치한 낙원상가는 1960년대 후반 서울시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1969년 아파트와 상가가 공존하는 지상 15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완공됐을 때 볼링장, 당구장, 다방, 캬바레 등 다양한 상가가 입점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허리우드 극장은 낙원상가 4층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개관 당시의 운영주체는 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사였던 신필름이었다.  

낙원상가는 서울시 도시 계획으로 건축된 1세대 주상복합건물 중 하나로 1967년 10월 완공됐다. 지금도 남아있는 건물의 현판에는 ‘낙원삘딍’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당시 서울시는 종로구에 대규모 건물을 지을 만한 넓은 대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4차선 도로 위에 지상 15층 규모의 건물을 올리는 독특한 건축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낙원빌딩 1층은 주차장과 신호등, 건널목까지 있는 4차선 도로가 됐다. 이는 도로 관련법 체계가 완비되지 않았던 시절에 준공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지금은 공공도로 위에 민간업체가 건축물을 짓는 일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낙원빌딩의 지분을 소유한 법인이나 개인은 토지세가 아닌 도로 점용료를 내고 있다. 1970년대 말까지 낙원상가는 다양한 상가와 아파트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의 성격을 유지했지만, 1979년 탑골공원 정비 사업 이후 다수의 악기 점포들이 들어오면서 악기전문상가로 특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도심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한때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건물의 상징성을 인정받아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됐다.

씨네필의 메카였던 때

1980년대 강남이 개발되기 이전까지 낙원상가는 서울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찾는 인기 명소였다. 영화 애호가들과 음악인들이 찾는 중심지로 호황을 누리던 허리우드 극장은 1980년대 강남 개발 사업이 시작되고 1990년대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겨나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1997년 기존 2000여석 규모의 개봉관을 레드, 블루, 그린 3개관으로 분리하며 시대의 변화를 적응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대형 극장의 몸집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허리우드 극장은 예술영화관 전용관에 장소를 임대하는 곳으로 공간의 성격을 바꾸기 시작했다. 2005년 4월 필름포럼과 서울아트시네마가 나란히 낙원상가로 자리를 옮기면서 허리우드 극장은 ‘시네필을 위한 전당’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사단법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희가 위탁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며, 2002년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문을 열었다가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화사 이모션픽쳐스의 대관으로 운영됐던 필름포럼은 기존 허리우드 극장 3개관 중 2개관을 임차하며 각각 480석과 300석의 규모를 자랑하는 예술영화관이 됐다. 당시 기획·운영은 임재철 영화평론가가 맡았다. 필름포럼은 2008년 4월 이화여대 후문으로 이사했고, 서울아트시네마는 2015년 3월까지만 낙원상가 내에서 운영되다가 계약이 만료되어 인근 서울극장으로 위치를 옮겼다.

실버세대를 위한 영화문화의 공간으로

허리우드 극장 입구의 돼지국밥 골목

인사동 거리와 탑골공원에 인접한 허리우드 극장은 젊은 층과 외국인 관광객, 노인 인구에게 모두 접근성이 높다. 따라서 서울아트시네마가 계약을 맺었던 2015년까지 예술영화를 즐기는 젊은 시네필이 방문하기에 어렵지 않은 곳이었다. 2009년 개관한 실버영화관 역시 노인 인구가 높은 인근 거리 일대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지속 가능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6년 8월에는 육의전 빌딩부터 낙원상가까지 이어지는 ‘송해길’이 만들어졌다. 낙원동에서 오래 활동했던 고 송해 선생의 이름을 딴 것이다. 낙원상가 입구에는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는 돼지국밥 식당들이 줄지어 있어 이곳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돼지국밥 골목 옆 낙원상가 입구 계단

현재 허리우드 극장은 ‘낙원악기상가’로 명칭을 변경한 건물 4층에서 임차 형태로 개별 극장에게 공간을 내주고 있다. 극장 앞에 위치한 광장은 허리우드 극장 시절부터 각종 공연 및 행사가 열렸던 공간이다. 현재는 노인들을 위한 쉼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작은 정원으로 인테리어를 바꿨다.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허리우드 클래식-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추억을 파는 극장은 2009년 1월 이곳에 문을 열었다. 바로 옆에 자리한 낭만극장은 서울아트시네마가 떠난 자리에 2015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필름포럼이 이사한 후 공연장으로 활용되던 기존 허리우드 극장의 상층, 낙원상가 5층에 해당하는 공간은 현재 ‘모두의 극장’이란 이름으로 추억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허리우드 극장 입구의 정원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추억을 파는 극장에 소속된 직원의 90% 이상은 노년층이다. 오전, 오후 그리고 주 3일 로테이션으로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어 고용노동부로부터 60대 이상 노년층을 채용하고 사회공헌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 야외매표소
※ 5층은 공연장인 "모두의 극장"으로 활용 중


인터뷰: 김은주 대표(추억을 파는 극장 대표, 헐리우드 클래식-실버영화관 운영)
 
실버영화관을 운영 중인 (주)추억을 파는 극장 김은주 대표

임수연_낙원상가에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이 입주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세요.
김은주_원래는 필름포럼과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는데, 필름포럼이 먼저 이사를 한 뒤 그 자리에 제가 하는 ㈜추억을 파는 극장이 들어오게 됐어요. 서울아트시네마가 이사를 한 뒤에는 낭만극장이 입주했습니다. 현재는 ㈜추억을 파는 극장에서는 영화관을, 낭만극장에서는 영화관 1개관과 공연장을 운영합니다. 처음 극장을 대관하게 됐을 땐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하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나 고민이 있었어요. <더티 댄싱> <영웅본색> <미션> 이런 옛날 영화들을 상영을 해볼까 해서 왔는데, 사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노인 관객들이 대거 오시는 거예요. 그때 그분들이 옛날 영화를 갈망하는 눈을 봤고, 그 눈을 제가 뿌리칠 수 없었어요. 여러 조건이 맞아 떨어져서 2009년 1월 실버영화관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임수연_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김은주_낭만극장 대표님은 2013년 관객으로 처음 만났어요. 은행에서 오래 일을 하시고 퇴직한 직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시길래 실버영화관과 같은 결을 갖고 있는 극장을 운영해보시라고 제안드렸어요. 그래서 2015년 서울아트시네마가 떠난 자리에 낭만극장이 문을 열게 됐습니다. 실버영화관이 영화만 상영한다면, 낭만극장은 영화도 상영하고 공연도 합니다. 실버영화관은 7~80대를 대상으로 상영한다면, 낭만극장은 그보다는 젊은 영화들도 틀어요. 그래서 낭만극장에서는 도전해볼 만한 영화들도 틉니다. 저희가 히트했던 대작 위주로 진행한다면, 낭만극장은 ‘오드리 헵번’전, ‘존 웨인’전, ‘윌리엄 웰먼’ 특집전 같은 기획전 위주로 프로그램을 짭니다.
 
실버영화관(좌)과 낭만극장(우) 입구

임수연_실버영화관의 상영 프로그램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김은주_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종이에 써서 집어넣는 함이 있어요. 이를 토대로 저작권이 협의된 작품들을 추립니다. 아직은 이 시장의 저변이 확 넓어진 건 아니기 때문에 마니아성 영화보다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노년층들이 좋아하는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주로 언급됩니다. 

임수연_공간 인테리어 측면에서 어떤 부분을 신경 쓰고 있습니까.
김은주_코로나 이전에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미세먼지였어요. 전 시대에 비해 폐렴으로 돌아가시는 노인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만큼 미세먼지에 굉장히 취약하다는 거죠. 실버영화관도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원과 같은 극장을 만들려고 했어요. 노인을 위한 극장이라고 초라하고 허름할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거죠. 영화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삶의 질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식물들로 장식된 4층 로비 벽면

임수연_이곳을 찾는 노년 관객들의 성향은 어떤가요. 
김은주_눈을 뜨면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되게 행복하신가 봐요. 부산에서 표를 끊어 올라오셔서 굳이 티켓까지 보여주시면서 “자리가 없으면 서서 볼 거다” 라고 하세요. 여기 오시는 분들은 극장 매표소에 있는 박스에 사식 넣듯 자꾸 초콜릿, 과자 같은 것을 집어넣으세요. 어떤 날은 집에서 재배했다면서 감자를 엄청 삶아갖고 오시고, 사과나 곶감을 보내시기도 해요. 일반 극장은 관객과 소통할 일이 없는데 저희는 관객과 쌍방향 소통을 상당히 많이 한다는 게 굉장히 독특하죠.
 
실버영화관 내부 코로나로 인해 격석으로 좌석을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임수연_실버영화관에서 일하는 직원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김은주_㈜추억을 파는 극장에는 30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중 10% 미만이고 나머지는 다 노인 분들이에요. 병원도 가셔야 하고 스케줄이 많아요. 그래서 오전과 오후, 그리고 주 3일 로테이션으로 업무를 나누느라 많은 사람들이 근무를 하게 됐어요. 또 저희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어요. 고용노동부에서 60대 이상 경험자들이 현장에 파견 나가 일을 할 수 있게끔 돈을 주고 지원하는데, 그렇게 사회공헌 일자리로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죠.

임수연_상영환경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면?
김은주_아쉬운 건 필름으로 계속 상영을 하고 싶지만 전 세계적으로 필름이 공급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필름으로 영화를 틀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다행인 건 필름의 거의 마지막 시대에 가장 좋은 필름으로 고전 명작을 많이 구입했어요. 만약 <사운드 오브 뮤직>을 상영한다면 저희가 갖고 있는 거의 원판에 가까운 필름으로 트는 게 가장 화질이 좋을 거예요. 필름비는 한편당 500만원, 번역과 통관까지 합치면 1000만원 이상 드는데 2004~2005년쯤 작품을 대거 구입했습니다.
 
실버영화관 영사실 내부와 영사기

임수연_앞으로 이 공간이 사람들에게 계속 기억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요.
김은주_예산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지 않을까요. 실버영화관이 멀티플렉스는 아니지만 멀티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했던 영화 키드 세대가 지금은 노인 세대가 됐어요. 이분들이 좀더 품격 있는 노년을 맞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친구가 돼서 항상 곁을 지켜줘야 해요. 어려운 것부터 가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시도를 해 나가려고 해요. 극장이 사라지면 안 되기 때문에 영진위에서 다양한 예산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김종준 대표(낭만극장 운영)
 
낭만극장 김종준 대표

임수연_대표님은 과거 허리우드 극장에 대한 추억이 있을 법한 세대입니다. 그 기억이 낭만극장을 운영하는데 영향을 미쳤나요.
김종준_제가 62학번입니다. 60~70년대에는 영화를 관람하는 게 제일 좋은 취미였습니다.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도 영화 보는 게 제일 큰 행사였죠. 500원, 1000원이면 영화도 보고 불고기도 먹을 수 있었죠. 그때 기억 때문에 영화도 지금까지 좋아하는 거예요. 어느덧 저도 늙었으니까, 노인들의 행복을 위해 아지트를 만들고 외로움을 덜어드리고자 낭만극장을 열었습니다.

임수연_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의 프로그램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김종준_차이는 없어요. 코로나19 전에는 관객이 1500~2000명씩 왔어요. 한 극장에서 프로그램 한번 할 때 3~4일 정도 상영하거든요. 여기 오는 관객들은 오늘은 낭만극장에서, 내일은 실버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식으로 하다 보면 일주일에 영화를 4~5편 봐요. 그래서 시너지 효과가 좋아요. 내가 영화관에 가야 사는 것 같다고도 하시고요. 서대문의 청춘극장도 김은주 대표가 맡고 있는데, 거기까지 티켓 2000원으로 서울시로부터 위탁을 받아서 영화를 틀고 있습니다.

임수연_낭만극장과 공연장을 함께 운영하고 계세요. 5층은 언제부터 공연장으로 만드신 건가요.
김종준_2년 정도? 그 전에는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다른 공연팀이 있었는데 몇 천 명씩 와서 공연을 봤어요. 그러다 코로나 때문에 중국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하니까 저희가 국내 공연을 하는 곳으로 만든 거예요. 예전에는 일주일에 2~3번씩 공연을 했어요. 낙원상가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악기상가가 있잖아요. 악기상들이 자기 고객들에게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로 소개하면 저희가 대여를 해주기도 했죠. 지금은 극장 2개관이 각각 300석, 공연장이 400석, 총 1000석입니다. 
 
5층 공연장 모두의 극장 내부

임수연_낭만극장과 실버영화관이 공유하는 라운지를 꾸밀 때 특히 어떤 점에 신경 쓰셨나요.
김종준_영화를 안 보시는 분들도 로비에 와서 즐기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식당에서 간단한 음료와 간식도 팔았어요. 공기 정화를 위해 공기청정기도 설치했습니다. 

임수연_낭만극장을 주로 찾는 관객들은 대체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김종준_가장 많은 건 80대에요.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70대였는데 그분들이 지금은 80대가 됐을 테니까요. 5~6년 전에는 90대 관객이 오면 신기해서 따로 모셨는데, 지금은 예사롭지 않은 일입니다. 가장 많은 건 80대, 그 다음이 70대, 그 다음이 90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60대 관객이 가장 적습니다. 대체로 50년대부터 60년대 초,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보시던 분들이 많습니다.
 
낭만극장 내부

임수연_튼튼하게 지은 만큼 건물 자체는 앞으로도 보존될 수 있겠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영화관이 계속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종준_60~70년대에는 영화를 많이 봤지만 80~90년대에는 야외에 나가서 골프도 치고 다른 여가활동을 많이 하게 됐어요. 앞으로 베이비부머 세대를 흡수하기 위해 공연장에서 베이비부머 연예인들이 공연을 많이 하게끔 하는 게 낭만극장의 숙제이자 목표에요. 추억의 명화를 트는 일은 70~80대가 80~90대가 되고 나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끌어들여야 해요. 
 
필자: 임수연(씨네21)
사진촬영: 최성열(씨네21)
인터뷰 일자: 2022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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