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전달하는 방식 피아노 프리즘, 2021

by.박동수(영화평론가) 2022-10-28조회 3,458

일반적으로 영화의 내레이션은 “대사가 아니나 직접적으로 영화의 내용을 해설하는 말”1)로 정의된다. 영화 속 캐릭터와 별개의 해설자가 등장해 사건을 해설한다거나, 대사로 전달하기 어색한 정보 혹은 인물의 속마음을 1인칭 보이스오버로 전달하는 등의 방식으로 활용되곤 한다. 다큐멘터리에서의 내레이션은 주로 후자의 방식을 택한다. 화면에 더해 추가적인 정보를 전달하거나, 감독 자신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거나. 배리어 프리 화면해설은 "시각장애인에게 영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소리로 화면을 보여주는 것'"2) 이다. 이는 화면에서 보이는 것 이상의 정보를 전달하거나, 1인칭으로 화자의 속마음을 발화하는 내레이션과 구별된다. 무엇보다 화면해설에는 객관성이 요구된다. 프랑스 화면해설방송헌장은 다음과 같이 객관성의 기준을 제시한다. 개인적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내용을 명확히 전달해야하며, 화면해설자가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선 안 되며, 설명 내용을 명료하고 압축적으로 구성해야 한다.3)

<피아노 프리즘>(2021)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영화는 모든 한국어 사용자를 위해 화면해설과 음향자막이 추가된 배리어 프리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꽤나 독특한 효과를 가져온다. 배리어 프리 버전이 동시에 제작되어 일반 버전의 영화와 동시 개봉했던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2010)과 같은 사례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배리어 프리 버전은 사후적으로 제작된다. 한 차례 완성된 영화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별도로 제작되는 방식이다. 경우에 따라 영화의 감독이 직접 음성 화면해설의 연출을 맡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다만 감독이 직접 자신의 작품에 음성해설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배리어 프리 음성해설에선 화면 속 인물을 이름이나 외모, 직책으로 묘사한다. 가령 <기억의 전쟁>(2018)의 초반부 시민법정 장면에서 “법복을 입은 세 명의 판사”라 해설한다거나, <학교 가는 길>(2021)에서 카메라를 든 감독을 제작진이라 명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오재형 감독의 음성해설은 영화의 연출자이자 주인공인 자신을 그대로 노출한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오재형”, “주인공”, “감독” 등으로 지칭되었을 화면 속 오재형 감독은 “나”로 지칭된다. 감독 자신이 등장하는 영화의 첫 장면의 화면해설은 "잡다한 물건들이 많은 방, 잠옷 차림의 저는 가운데에 서서 허리 스트레칭을 합니다."라며 자신을 “저”로 지칭하고 있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이러한 이는 익숙한 사적 다큐멘터리 혹은 1인칭 다큐멘터리의 기법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 프리즘> 속 화면해설 내레이션은 ‘내레이션’보단 ‘화면해설’의 기능이 최우선 목적이다. 다만 영화의 연출자이자 주인공이며 내레이터인 오재형 감독의 화면해설은 첫 문단에서 제시된 객관성의 기준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위배한다. “나”라는 지칭이 등장하는 순간 이것은 화면해설과 내레이션 사이에서 진동하게 된다. 

<피아노 프리즘>이라는 영화의 내용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이 영화는 회화에서 영화, 피아노 등으로 이어지는 오재형 감독 자신의 예술적 궤적에 관한 기록임과 동시에, 감독 자신에 관한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통해 오재형 감독의 거의 모든 단편영화를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 <쇼팽 이미지 에튀드>(2008), <강정 오이군>(2015), <덩어리>(2016), <블라인드 필름>(2016), <봄날>(2018), <화가의 숲>(2019), <보이지 않는 도시들>(2021) 등 오재형 감독이 여러 영화제와 전시에서 선보여온 작품들이 <피아노 프리즘> 곳곳에 등장한다. 오재형 감독의 작업은 2020년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진행된 개인전 <피아노 프리즘: 보이지 않는 도시들>로, 그리고 개인전과 공연을 준비하는 자신에 관한 기록인 영화 <피아노 프리즘>으로 한데 모인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댄스 필름,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등이 뒤섞여 있는 이 작품들을 하나로 묶긴 어려워 보인다. 영화들의 다양한 형식은 회화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피아노로 이동하는 오재형의 다종다양한 관심사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피아노 프리즘>은 그러한 자신의 과거 작업들을 포괄하는 피아노 공연을 선보이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번복가능성을 내포한 화가 은퇴식을 꾸리고, 70살 노인이 될 때까지 피아노를 치겠다 다짐하며, 공황장애의 기억을 고백하고, 강정·밀양·용산·광화문 등에서 벌어진 투쟁과 집회에 연대한다. 다만 이 영화는 이러한 주제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않는다. <피아노 프리즘>은 오재형이라는 개인에 관한, 다양한 장르를 횡단하고 혼합하는 예술가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다.

당연하지만 여기서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란 진술은 <피아노 프리즘>이 한 예술가의 자아도취라거나, 자기 홍보를 위한 작품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적 다큐멘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1인칭의 시선으로 전개”함과 동시에,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모두를 향해 “예술적 발언”을 한다 . 이러한 관점에서 <피아노 프리즘>은 근 10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경향 속에 놓인다. 동시에, “공적으로 발화되는 ‘예술적 발언’인 자신의 영화를 어떻게 발화할 것인가?”라는 첨예한 질문을 던지고 하나의 답변을 제출하고 있다.
 

다시 배리어 프리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피아노 프리즘>의 음성해설은 감독 본인이 직접 내레이터로 참여하고 있다. 때문에 종종 사적 다큐멘터리에서의 내레이션과 구별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 “나”라는 지칭을 통해 여타 영화들의 내레이션 개념과 배리어 프리 음성해설 사이의 구분을 흐려 놓는다. <피아노 프리즘>의 음성해설은 “나”라는 시각적 이미지의 청각적 확장이다. 반대로 자막해설은 시각적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는 것을 해설한다. 음성해설이 오로지 청각적으로만 영화를 접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자막해설은 오로지 시각적으로만 영화를 접하는 상황을 가정한다. 배리어 프리 영화는 가시적이지 않은 시각 이미지의 전달과 가청적이지 않은 청각 이미지의 전달이라는 양측의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여야 한다. 

오재형 감독은 그 과제를 자처하여 수행한다. <피아노 프리즘>은 감독 자신의 예술적 발화를 모든 이에게 닿게 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오재형”이라는, “나”라고 지칭되는 자신을 가능한 모든 이에게 선보이고자 하는, 자신의 예술적 작업은 물론 그 작업을 생산해낸 과정과 예술의 주체인 자신 자체를 전달하는 행위다. 때문에 <피아노 프리즘>을 감독 자신이 사회 혹은 세상이라 할 수 있는 것과 맞부딪히며 경험해온 것을 예술적으로 전달해온 작업의 집합이라고 할 때,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배리어 프리라는 형식은 “나”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예술형식에 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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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미학용어사전』(프랭크 E. 비버, 1995), 『영화용어사전』(김혜리 외 3인, 1999), 『영화사전』(김광철, 장병원, 2004) 등의 정의를 참고하였다.
2)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상제작론』, 김정희, 산지니, 2018, 87p.
3) 앞의 책, 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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