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김군 강상우, 2018

by.남태우(대구경북시네마테크 대표) 2020-02-21조회 6,467
김군 스틸
처음 이 영화를 접하게 되었을 때 영화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왜 이영화가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영화가 최근만 해도 <택시운전사>(장훈, 2017)가 나왔고 이전에도 이미 여러 형태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많은 작품이 나온 데다 역사적으로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된 지가 수십 년이 지났는데 과연 어떤 새로운 시선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라면 극적 장치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도 많지 않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전혀 경험하거나 가까이 접할 수 있었던 세대도 아닌 젊은 감독의 작품이라니…….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게 된 첫 번째 계기이자 믿음은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작이라는 사실이었다. 영화제의 권위에 기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영화제가 지금까지 보여준 영화선택의 숨결과 강고한 시선을 믿었고 심사위원뿐 아니라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와 또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지지라는 것에서 나름의 객관성을 부여 받은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극우논객으로 잘 알려진 지만원씨가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 특수군이 적극 개입해 활동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1988년 광주청문회부터 이미 진실이 상당부분 밝혀졌고 5.18특별법도 제정되었고 쿠데타의 장본인인 전두환이 20여 년 전 사형선고까지 받은 마당에 새삼스레 저런 억지 주장을 하는 근거가 뭔지 참으로 황당한 궁금증이 생겨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법원이 지만원씨에게 2억 원이 넘는 명예훼손 손해배상금을 피해자들에 지급하라고 판결이 나 이 부분은 완전히 허위사실임이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유튜브 등에 이런 가짜뉴스가 넘치고 있고 이를 믿는 이들이 또 다시 전파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러한 허위사실로 유포자가 손해배상금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에서 악의적 역사팔이가 얼마나 해로운가는 역으로 증명되었지만 유수의 대기업을 비롯해 국가정보원까지 이런 매체에 광고가 실리고 있으니 과연 이 영화 <김군>(강상우, 2018)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 지가 더 궁금해 졌다. 또한 지만원씨가 주장한 바로 그 김군이 북한 특수군이 아니라는 사실은 취재 초기 이미 강상우 감독도 알았다고 하니 그는 그 이후 김군이라는 제명으로 이 영화를 어떻게 전개했을 지에 대한 의문도 깊어졌다. 
 

영화의 내용은 극히 간단하다. 포스터에 보이는 바로 그 신원미상의 인물인 김군이 누구인지 그는 왜 거기에 있었는지 등을 알아보겠다는 젊은 감독의 패기가 무려 4년이나 이어지면서 이 영화가 완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만원씨의 광주민주화운동 북한 특수군 개입설이라는 대립항이 나오면서 영화가 좀 더 긴장감을 가지게 된 것도 웃픈 현실이지만 영화는 이를 증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 십분 발휘되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많은 이들이 왜 시민군이 되어야 했던가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이렇게 절실하게 담아낸다는 것은 어떤 영화적 재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자 범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체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인터뷰이이자 주인공이자 또 다른 김군이었던 이들은 계엄철폐나 독재타도와 같은 거대 담론을 주장한 것도 아니고 군부의 정치가 한국사회에 끼쳐온 폐해에 대해 사회과학적 인식으로 무장한 지식인들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했던 이들이 자신의 이웃과 시민들이 군부에 무참히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 본연의 의로움과 정의로움으로 떨쳐 일어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을 <김군>은 보여주고 있다. 감독 역시 김군이 누구인가를 꼭 밝혀내겠다기보다는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그 시대를 살아간 김군이라는 보편적 시민에 대해 다가간 듯하다. 이것이 영화적 성취로 이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과 빵과 김밥을 나누어주고 먹던 풍경이나 그 살벌한 상황에서도 그저 같이 다니고 서로를 위하던 모습이 너무 좋았다는 어느 시민군의 말처럼 인간이라면 응당 느껴야할 자연스런 감정과 선한 정서가 그 시대 김군으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역사적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도 <김군>이 와 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적어도 오늘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상반된 주장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도 평화롭게 시위를 벌일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광주민주화운동에 깊은 고마움을 표시해야한다. 다시 평범함을 빌어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시민군이 당시 공포보다는 행복감을 느꼈고 시위에 참여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지만 그 이후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취직도 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에서 <김군>은 우리에게 뭉클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울러 거창한 장치나 높은 제작비가 아니라 단순하고 집요하고 깊이있는 작가정신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극히 당연한 그러나 지금의 영화제작환경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진실을 영화 <김군>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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