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닭도리탕 오재형, 2019

by.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2019-08-30조회 2,023
모스크바 닭도리탕 스틸
오재형 감독은 주로 다른 예술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쇼팽이미지에튀드>(2008), <강정 오이군>(2015), <덩어리>(2016), <블라인드 필름>(2016), <봄날>(2018)과 같은 그의 영화는 때로는 애니메이션, 회화, 음악, 춤, 퍼포먼스 중 하나를 지향하지만, 때로는 여러 다양한 예술 장르들이 뒤섞이는 상황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창작자로서의 오재형은 보수적이면서도 급진적이다. 그는 기존의 어떤 예술의 순수성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이 다른 것과 뒤섞여 오염되는 결과를 낳더라도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순수하면서도 불순하다. 

비교적 최근에 공개된 <모스크바 닭도리탕>은 서로 이질적인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를 조합해 자아의 내면이 외부의 낯선 세계와 만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은 오재형 감독이 어머니와 함께 떠난 북유럽 패키지여행에 기초한 것이다. 영화는 두서없이 모스크바, 코펜하겐, 오슬로, 스톡홀름, 헬싱키 등에서 찍은 영상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제목은 실제 오재형 감독이 어머니와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어느 식당에서 닭도리탕이 만찬으로 나온 것에 착안했다고 한다. 오재형 감독에게는 이국적인 장소에서 익숙한 음식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잠시 등장하는 모스크바에 위치한 닭도리탕이 나오는 그 식당은 한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한 가운데 금발의 외국인이 어눌한 발음으로 부른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의 닭도리탕과 대중가요는 그 자신의 뿌리를 잃고 모스크바로 강제 이주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사물들이 고정된 장소를 잃고 새로운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는 말과도 같으며 영화는 바로 그 논리를 따라서 이미지들을 배치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침투가 벌어진다. 서로 다른 성격의 것들을 대위법적으로 배치시키는 이러한 연출 방식은 약 8분 남짓한 러닝 타임 동안 영화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적용된다. 영화가 시작하면 모차르트의 <주를 찬양하라(Laudate Dominium)>는 곡이 흐르고, 갓 잠에서 깬 것 같은 목소리로 맥락 없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출자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들려오고, 이러한 사운드 또는 텍스트들과 함께 여행 중에 찍은 영상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에서 단연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영상이다. 간혹 감독은 여행 중에 찍은 영상을 고풍스러운 느낌의 액자 속에 집어넣는다. 그것은 무성 영화 시절 화면 프레임 가장 자리에 화려한 장식을 입혀 놓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겉보기에 평범한 이미지들은 액자화된 프레임과의 그것의 장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예술적인 가치를 획득한다. 마치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둘러싼 화려한 액자인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 관광객 무리는 미술관을 방문해서 여러 작품을 관람한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그 관광객들이 본 작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아마도 오재형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 또한 그 그림의 정체에는 무심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오늘날 모든 사물들의 가치는 그것이 놓여 있는 장소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재형 감독은 이방인 혹은 관광객의 눈으로 바라보는 낯선 세계의 사물들은 그것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그저 낯설고, 이국적이고, 신비롭고, 경이로울 뿐이라는 것을 꼬집는다.
 
감독 자신을 포함한 관광객들의 시선과 위치는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모차르트의 곡이 자아내는 장중한 분위기는 북유럽의 관광 명소와 그곳을 집단적으로 점거하듯이 배회하는 한국 관광객들의 몸짓과 계속적으로 충돌한다. 복장만 놓고 봤을 때 한국의 어느 동네 뒷산을 올라야 더 어울릴 것 같은 한국 관광객들은 명화가 놓여 있는 미술관, 값비싼 상품들이 놓여 있는 상점, 도시민들이 산보하는 거리와 강변을 문자 그대로 점유한다. 이들은 흡사 점령군이나 게릴라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바다와 대지를 건넜고, 버스를 타고 도시의 거리를 가로질렀고, 유람선을 타고 강물의 흐름을 거슬렀다. 그들은 낯선 세계에 틈입하는 침입자들이다.
 
한편, <모스크바 닭도리탕>은 관객들로 하여금 꿈의 요소들을 해석하는 정신분석학자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둔다. 이를 위해 마련된 장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단연 이 영화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다. 오재형 감독의 목소리를 빌어 전달되고 있는 무의식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흡사 초현실주의의 자동기법을 차용한 것 같은 이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꿈속에서 본 장면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파편화된 상태로 흩뿌려 놓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의미의 완전한 폐기보다는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험에 더 가깝다. 그 두서없는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꿈속에서 ‘나’는 천을 잡아당겨주는 사람이었고, 어느 날 자신의 고용주의 와이프와 함께 초대장을 받아 어느 연회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수많은 연예인들이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음식이 차려진 뷔페가 있었다. 그러던 중 연회장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사람들은 합창을 하고 있었고, 줄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중국 왕에게 샌드위치 먹는 법을 배운다. 이러한 비논리적이고 이야기는 낯선 장소에 서 있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묘사된 것이며 그 서술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뭔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는 전체를 관통하는 차원에서 상승의 궤적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승의 궤적과 그것에 대한 감각은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에 등장하는 하나의 푸티지를 통해서 보다 구체화된다. 실제 이 영상은 스페인 극단 라 푸라 델 바우스(La fura dels baus)의 공연 <휴먼 넷(Human Net)>을 찍은 것이다. 그 공연의 핵심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긴 줄로 몸을 묶고 다시 그 줄을 거대한 기구 장치에 연결한 다음 공중에서 곡예를 펼치는 데 있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이 퍼포먼스는 음화로 처리되거나 화질이 저하된 상태로 오재형 감독의 작품 속에 기입되었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지시하는 높은 곳과 꼭대기는 공중에서 곡예를 펼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천상의 세계에 다다르려는 열망을 암시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모스크바 닭도리탕>은 어둡고 무거운 지하 세계로부터 밝고 가벼운 천상의 세계로 수직 상승하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 게다가 그 상승의 이미지가 홀로 외로이 비상하는 것이 아닌 다 함께 비상하는 형상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집단적인 꿈을 구체화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상승하는 이미지만이 아니라 여전히 지상에 머물고 있는 어떤 사람의 이미지 또한 포함한다는 의심이 든다. 다시 영화의 출발점으로 돌아가자 보자. 오재형이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가장 먼저 발화한 것은 “꿈에서 나는 천을 대신 잡아당겨주는 사람이었다”였다. 그리고 그가 꿈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연회장의 높은 곳에서 줄을 당기는 사람들이었다. 그 줄잡이들은 하늘로 비상하는 일군의 무리들을 돕기 위해서 자신들은 지상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만 했다. 그들은 조력자이다. 그들은 타인들의 비상을 돕고, 그리하여  천국의 기운이 현세에 드리울 수 있도록 한다. 예술은 늘 영웅이나 주인공 곁에 조력자를 두었다. 조르조 아감벤은 여러 예술 혹은 문학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조력자(조수)들에게서 메시아적인 시간이 존재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조수는 사라지는 것의 형상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맺는 관계의 형상이다. 이 관계는 집단적 삶뿐만 아니라 개인적 삶에 있어서 매 순간 망각된 모든 것과 관련된다.” 아감벤의 지적처럼, 조력자는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운데 다른 세계가 도래하는 것을 받아들일 여유를 갖고 있는 자들이다. <모스크바 닭도리탕>을 포함해 오재형 감독이 자신의 전작들에서 줄기차게 그려왔던 조력자들은 어두컴컴한 망각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가 도래하기를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어쩌면 그 조력자들이야 말로 오재형 감독이 꿈속에서 찾고자 하는 영웅의 형상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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