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진주머리방 강유가람, 2015

by.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장) 2016-01-26조회 3,242
진주머리방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작품의 배경은 미용실이다. 익숙하고 친근한 공간에는 오늘도 반가운 손님들이 머물고, 주인공 영미는 정성스레 머리를 매만진다. 그러던 중 불쑥 들어온 이들, 그들은 미래의 이곳 주인이다. 즉 슨 ‘진주머리방’은 곧 문을 닫게 된다는 말씀. 천장을 두드리고 집기를 만져보며 인테리어 얘기에 열중하는 그들의 대화에 영미의 표정은 굳어만 간다. 급기야 그녀가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면서 영화는 종결된다. 거창한 사건을 배제하고 작은 미용실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해프닝을 포착하고 있는 <진주머리방>은 6분가량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영화 속 이야기만큼이나 단출한 형식이다.

영화는 강유가람 감독의 작품으로 ‘두 번째 영화제작을 위한 모임’에서 제작되었다. 단체는 영화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몇몇 여성감독들의 자발적인 커뮤니티로 워크숍을 통해 영화 제작 교육을 하고, 서로 간에 협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불리한 제작 여건으로 우선하여 이야기의 대상이 된 것은 가까운 지역일 것이다. <진주머리방>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기획되었고, 마포구 연남동에 실재하는 미용실이 영화의 주 공간이 된다. 홍대 권역은 최근 몇 년 사이 더 빠르게 핫플레이스로 부상하였고, 천정부지로 오르는 임대료에 쫓겨난 상인들의 사연으로 흉흉하다. 실제로 동네 오래된 곳들이 새로운 카페와 술집, 식당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마을의 풍경이 바뀌는 것만큼 사람들도 변해간다. 어제 만났던 이웃을 내일도 볼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진주머리방>은 거시적인 도시변화의 문제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인 마포구 연남동은 더 나아가면 ‘두리반’과 ‘용산’과 같은 철거 이슈와 연결될 뿐만 아니라 부동산 신화를 고백했던 감독의 전작 <모래>의 배경인 강남 은마아파트와도 접속된다. 이윤을 따라 급변하는 도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놓지 않는 가운데, 가족 혹은 이웃을 통해 ‘나’로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감독의 변치 않는 미덕으로 보인다.

영화는 클로즈업 샷에서 출발하여 점차 확장되어 마침내 ‘진주머리방’의 간판과 미용실의 외형 전체를 담고 있는 전경 샷으로 발전한다. 도입부에 클로즈업 샷은 인물에 맞춰져 있기보다 낡은 집기에 포커싱 되어 있다. 기구에 대한 집중 샷은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어 사물로 하여금 시간을 읽게 한다. 인물 샷은 익숙한 미용실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데, 여기에선 그들의 대화가 주목된다. 아줌마들의 미용 신scene에선 이곳이 실용적인 생활의 공간이자 마음의 위안처이며 만남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하면서 미용실은 이내 불편한 공기로 메워지고 그들의 몇몇 행동은 새로운 변화가 가져오는 무례함을 상징한다. 엔딩 신에서 카메라는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외부로 나아가 미용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의 타이틀을 대신한다. ‘진주머리방’ 간판이 걸려 있는 미용실의 전경. 주인 영미가 언제나 그랬듯이 창을 깨끗이 닦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엔딩에서 더 나아가면 어떤 샷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마도 낡은 주거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들어선 상업지와 발랄한 옷차림에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탐방하는 관광객들을 만나지 않았을까? 그들과 영미가 또한 어떠한 소소한 해프닝을 벌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결국 더 멀리 나아가면 파괴를 일삼는 괴물 같은 도시를 마주할 터이다. 그러나 다만, <진주머리방>은 미용실을 비추는 전경 샷으로 영화의 임무를 마감한다. 이것은 누군가에겐 싱거운 결말로 읽힐지 모르겠으나, 한편으론 담백한 결말을 통해 주인공 영미의 마음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이슈로 소요하고 있는 도시 변화의 한 속성을 유머러스에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서울독립영화제2015에 초청 상영되었고,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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