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엄청난 상영경력의 작품이 한 편 있다. 독립애니메이션을 본다고 이야기하면서 아직 이 작품을 모른다면, 한 번쯤 의심의 눈길을 보내봐야 한다. 아마 향후 몇 년간 이 작품의 기록을 깰 수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작년 12월 현재까지 이 작품을 상영한 영화제만 59개. 물론, 곧 개최되는(2016년 1월 22일) 미국의 슬램댄스 영화제 상영은 제외한 숫자이다. 아무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상영되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작품은 바로 <
심경>(
김승희, 2014)이다.
청량감. 어느 산속에 작은 상자 같은 공간이 있다. 반쯤 누운 자세의 그녀는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듯 살며시 눈을 감고 있다. 조용하다고 하기에는 풀벌레 소리가 사방을 채우고, 소란스럽다 하기에는 이미지가 정적이다. 애니메이션보다는 회화 같은 느낌이 더 강한 이 한 장의 이미지는 작품에 청량감을 더한다. 어느 여름 숲 속의 깊은 밤일까? 작품의 시작과 끝의 배경이 주는 청량감이 짧은 작품임에도 마음속 어딘가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내 무엇인가를 열심히 조립하는 그녀. 마음 심(心)의 거울 경(鏡)이라는 제목처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안의 세계는 욕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세계다. 이상을 좇는 것은 마치 외줄을 타는 것 마냥 불안하고 그녀는 상처를 안고 번번이 줄에서 미끄러진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의 껍데기를 벗고 알몸으로 줄을 달리기 시작하고 그녀가 생과 사를 마주하였을 때 펼쳐지는 광경은 만화경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만화경 안은 다소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조각들, 파편들이 들어있다. 그것은 마치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일 수도 있고, 외면하고 싶었던 상처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 부딪히고 움직이면서 거울에 반사되어 만들어내는 세상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녀 역시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상처, 아픔들이 모두 모여 ‘그녀’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작품에 쓰인 재료도 흥미롭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박스들이 아닌가. 심지어 박스의 접혀있던 흔적까지 그대로 배경에 드러난다.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거울을 표현하기 위해 구멍을 뚫은 박스를 겹쳐서 공간감을 표현했다. 거칠고 투박한 박스의 질감이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꾸며진 아름다움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 더 정겹다. 첫 장면의 굵은 선이 회화적이었다면, 마음속 세상은 세밀한 선을 사용하여 두 공간의 차이를 드러냈다.
독립애니메이션 -나아가 어떠한 창작영역에서든-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다른 세계에 자극을 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
심경>은 신선함이 있다. 투박하면서도 솔직한 작품이다. 작품을 만들면서 감독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작업하지 않았을까? 다 만들고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첫 작품 <
심경>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김승희 감독. 작년 9월에 열린 인디애니페스트 2015 영화제에서 데뷔상에 해당하는 초록이상을 수상하였다. 벌써부터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