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와 대상의 관계. 즉 다큐멘터리스트는 자신의 카메라 앞에 놓인 대상을 어떻게 기록 (혹은 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다큐멘터리 윤리와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일단 카메라 앞에 객관적인 실체가 놓여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카메라를 위해 그 대상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인위적인 연출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논의를 포함한다. 특히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이러한 논쟁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그런데 만약 카메라 앞에 기록할 실체적 대상이 없다면 어떨까? 존재하는 것은 다큐멘터리스트가 촬영하고자 하는 실제 세계의 인물과 사건이 아니라 과거 누군가에 의해 촬영된 푸티지 뿐이고, 감독의 중심 작업은 대상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뉴스릴이나 푸티지를 편집하는 것 뿐이라면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그러한 작업을 다큐멘터리라 할수 있는가? 또 그러한 작품에 대해 다큐멘터리 윤리를 논할수 있을까?
흔히 컴필레이션 필름(compilation film)이라 명명되는 이러한 작업은 분명히 다큐멘터리 영토 안에서 논의되는 장르다. 한국에서는 ‘편찬영화’ ‘발췌영화’라는 명칭으로 번역되기도 했던 이 형식의 대표작은 에스퍼 셔브의 <로마노프 황실의 몰락 The Fall of the Romanov Dynasty>(소비에트, 1927)이다. 짜르 시절에 황실 홍보용으로 제작되어 반혁명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뉴스릴들을 셔브가 새로운 사회주의 소비에트 시대의 이념에 맞춰 편집해 완전히 혁명적인 영화로 만들어 낸 것이 <로마노프 황실의 몰락>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비주류 작업을 꾸준히 하고있는 이가 있는데 바로
김경만 감독이다. 그의 대표작인 <
각하의 만수무강>(2002)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촬영된 홍보영상들을 효과적으로 편집하여 ‘독재자 이승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냄으로써 애초의 푸티지가 주장하는 내용과 상반된 해석을 만들어낸다. 정부 홍보영화 기록물에서 걸러낸 수많은 영상들을 독특하게 이어붙이고 여기에 간자막을 적절하게 삽입함으로써 영화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적 해석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벌려 놓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공적 역사로 통용되던 역사적 자료들을 동시대의 역사, 정치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대안역사를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업에도 ‘다큐멘터리 윤리’와 관련된 논쟁이 개입될 여지가 있을까? 극단적으로 감독 스스로 촬영한 분량이 전혀 없는 <
각하의 만수무강>에서 감독의 관점은 존재하는가? 물론이다.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대기위해 적당히 푸티지를 이용하는 다른 영화들보다 이 영화는 훨씬 더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자신이 다루는 대상(뉴스릴, 파운드 푸티지)에 대해 논평하고 개입한다 이러한 방식은 자연스럽게 풍자와 아이러니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영화들은 또다른 방향에서 다큐멘터리의 객관성이란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유쾌하게 질문한다. (<각하의 만수무강>은
김경만 감독의 단편 콜렉션 DVD <하지 말아야 할것들>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