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야마 신지를 함부로 추모하지 않기 위해서

by.하스미 시게히코(영화평론가) 2022-09-29조회 4,330

※ 이 글은 2022년 10월 11일(화)부터 19일(수)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되는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미완의 사가: 아오야마 신지(1964-2022) 추모전’과 연계한 기획입니다. 기획전에 대한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428

아직 건강했던 즈음의 모습이나 목소리의 억양 등을 부족하나마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생각에 고인 화장을 한 채로 말도 없이 누워 있는 아오야마 신지--그건 터무니없이 아름다운 표정이었다고 후에 들었다--의 마지막 모습을 접하는 등의 일은 이 서글픈 늙은이에게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에, 그 마음을 배우자인 도요타 마호에게 전화로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다부지게 대응하는 마호의 씩씩함에는 그저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오야마 신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스스로 금할 수밖에 없었던 노령의 나는 그 시각, 식이 행해지고 있을 공간을 생각하면서 어느 일간지 덕분에 영화작가로서의 그의 특이한 매력과 생각지도 못한 훌륭함을 이것저것 쓰고 있었지만, 쌓이는 생각과 그것을 전하려는 말이 신문 특유의 행수와 글자수의 제한에 막혀 마냥 공전할 수밖에 없었고, 생각처럼 글이 잘 진행될 리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날도 끝날 무렵에는 역시 피곤한 나머지 축 늘어진 채 일하던 책상에서 벗어나 소파로 도망쳐, 담배를 물어야 할지 아니면 TV 수상기를 향해 리모컨 버튼을 눌러야 할지 잠시 고민한 끝에, 결국 아마도 태생적인 나태함 때문일 거라고 생각되지만, 이렇다 할 확실한 이유도 없이 심야 흡연과 심야 TV 화면 점등을 거의 동시에 시작하고 말았다.

그러자 작은 화면에는 뭔가 돌계단 같은 경사진 공간에 서 있다가 앉아 있다가 하는 남녀가 비쳤는데, 아무래도 연속극의 마지막회스러운 그 화면 구도가 하나하나 완벽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심야의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치고는 극히 드문 일이지만 이것은 숏을 찍을 수 있는 감독의 작품이구나 싶어 묘한 흥분을 느끼면서, 이야기의 줄거리도 작중 인물들의 관계도 전혀 모른 채 뜻하지 않게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 화면의 연쇄에는 어딘지 모르게 아오야마 신지적인 부분도 있어, 도대체 누가 이런 드라마를 찍었는지 궁금증이 커졌고, 마지막에 흐르는 캐스트와 스태프 이름의 연쇄를 눈여겨보다 보니, <시쥬카라>(シジュウカラ)라고 하는 제목인 것 같은 그 드라마의 연출가 이름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大九明子’(오오쿠 아키코)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름은 그날 오후 집에 도착한 단행본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필름아트사, 2022)의 목차에서도 봤던 이름이어서 그 사실에 새삼 놀랐고, 발행사의 편집자인 다나카 류스케 씨에게 메일로 문의했더니, 그 사람은 영화 <제멋대로 떨고 있어>(2017) 등을 통해 관객을 매료시킨 여성감독이라고 알려줘서, 나 자신의 무지--그것을 나이 탓이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를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바로 그다음 날 아침부터 오오쿠 아키코 감독과 메일 교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이메일 교환을 통해 감동을 받고, 더불어 알게 된 것은 <시쥬카라>의 연출가가 영화미학교 1기 수료생으로 아오야마 신지를 스승으로 추앙했다는 사실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오야마 신지의 장례식 날 심야에 완전한 우연으로, 아오야마 세미나 출신자가 연출한 ‘양질’이라고 하는 말에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극상’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마음이 깊이 움직여 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아오야마 자신이 그 명함--그런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알 길이 없지만--을 곁들여, 이 여성 감독을 나에게 소개해준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 DVD를 그 자리에서 즉시 구입한 것은 물론이다.

앞서 언급한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에는 아오야마 신지 또한 마치야마 히로미(町山広美)와의 대담 「영화의 틀은 이미 사라졌다」(映画の箍はすでに外れている)를 실었기 때문에, 오오쿠 아키코 감독은 자신이 쓴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특별 강의」가 스승 아오야마 신지에게 읽히게 될지도 몰라 멋쩍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스승인 아오야마 신지의 서거로 인해 그 기회는 영원히 상실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거의 불합리하게 우리들의 곁을 떠난 아오야마 신지는, 말로 하지는 않았으나 오오쿠 아키코가 만든 탁월한 숏의 연쇄를 마치 의도하지 않은 유언처럼 나에게 알려준 것이 되었으므로, ‘아오야마 신지, 고맙다’라고 심야에 고독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는 이 후기 고령자에게는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선물이었다.

아오야마 신지는 릿쿄대학 시절의 나의 제자라고 되어 있다. 그것은 확실히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형뻘인 구로사와 기요시나 만다 구니토시 등의 세대처럼 그들이 만든 8㎜ 필름 작품을 수업 중에 상영하거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해서 영화 얘기를 하고, 그 후에도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격의 없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것은 그때 나 자신이 릿쿄대학의 교사직을 이미 그만두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비상근강사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는 제도적인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오야마 신지라는 이름은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을 인식한 것은 훨씬 뒤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아테네 프랑세에서 열린 다니엘 슈미트 작품 상영회 때, 그의 조감독이었던 아오야마 신지로부터 조용히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이 풍성한 장발을 어깨에 휘날리고 있던 그의 얼굴을 인식한 첫 번째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름을 특별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문학부 1학년이었을 때 쓴 학기말 리포트가 무척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영화에 대한 소론이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영화의 “눈”은 오즈 야스지로의 그것이었다’라고 쓰기 시작해, ‘그 따뜻함이 두렵고, 그 다정함이 공포를 증폭시키는 것이다’라고 끝맺었듯이, 그 ‘따뜻함’과 ‘두려움’, 그리고 ‘다정함’과 ‘공포’와의 변증법적 기술(記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을, 대학 1학년 후기의 리포트이기 때문에 갓 스무 살이 된 젊은이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는 것에, 교사로서의 여유를 넘어선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대부분의 리포트는 거의 처분해 버렸는데, 〈a〉보다도 훨씬 뛰어난 〈A〉라는 평가가 기록되어 있는 그 짧은 글이 아직도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은, 이 ‘아오야마 신지’라고 하는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뛰어난 글쟁이이기도 했다. 그것은 걸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유레카>(2000)의 소설판을 통해, 누군가가 쓴 『백작부인』 같은 것보다도 15년 정도 전에 이미 미시마유키오상을 수상한 것에서 엿볼 수 있음에 틀림없다. 또 그것과는 별개로, 예를 들면 근저인 『다카라가이케의 가라앉지 않는 거북--한 영화 작가의 일기 2016-2020』(boid, 2022)의 어디라도 좋은 단 한 페이지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오야마의 글재주는 누가 봐도 확실한 것이다. 또한 그는 뛰어난 비평가였으며 그 비평적 눈의 선명함과 강렬함은 이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영화작가 아오야마 신지의 죽음,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아오야마 신지의 죽음은 현대 일본의 가장 뛰어난 영화평론가의 죽음 그 자체도 의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비평가로서의 측면은 구로사와 기요시와 나와의 공저 『영화장화』(리틀모어, 2011)에서의 긴 시간에 걸친 토론을 통해서 매번 느끼고 있던 것에 다름이 아니며, 그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은 이미 『아오야마 신지와 아베 가즈시게와 나카하라 마사야의 시네콘!』(리틀모어, 2004) 등을 통해서도 충분할 정도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단순히 영화를 잘 찍는 감독에 그치지 않고, 뛰어난 언어로 영화를 말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비평가였던 것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의 마치야마 히로미와의 대담에서, 마치야마 히로미가 언급한 칼 드레이어의 <게르투르드>(1964)를 놓고 “현대영화의 기선을 잡은 <게르투르드>는 누구에게나 넘어야 할 ‘영봉’임에는 틀림없다”면서도 보다 현대성이 강한 <아네트> 같은 영화는 “<게르투르드>의 엄격한 가치 기준으로 따지면, 오히려 그 경지에서의 머뭇거림을 그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상기하면서, 이 같은 정확하기 짝이 없는 가치판단을 내세울 수 있는 비평가가 지금 몇 명 있는지, 적이 염려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오야마 신지와는 2월 하순까지 이메일로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신경 써서 보내준, 걸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구름 위에 살다>(2020)를 아내와 나란히 보면서 소파에 몸을 맡기는 다베 미카코의 몸놀림이 터무니없이 아름답다고 감탄하던 아내의 반응을 전하자 아오야마 신지는 순순히 기뻐해줬다.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 추모글을 쓰게 되면서 아오야마 신지가 찍은 몇 편의 작품을 DVD로 다시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극히 일부를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때문에, 전부 도중에 보는 것을 그만뒀다. 예를 들면, <헬프리스>(1996)에 몇 번인가 삽입된 기타큐슈의 어떤 공장의 무인 숏.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 전혀 아니다. 또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 숏의 적확한 삽입이 눈물을 자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 피사체를 향해야 할 몇 개의 앵글 중에서, 이것 하나밖에 없다고 하는 적확하기 짝이 없는 카메라의 위치를 아오야마 신지가 선택하고 있다고 하는 그 절대적인 올바름이, 눈물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러한 점으로부터, 내가 아오야마 신지의 ‘눈’을 깊게 신뢰하게 된 계기인 <셀레브레이트 시네마 101>(1996)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VHS 테이프로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두려워하는 그 예스러운 장치에 낡은 테이프를 삽입했더니 갑자기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기묘한 소리가 기계로부터 흘러나오며 어느 버튼을 눌러도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테이프를 꺼내려 해도 금속제 뚜껑이 닫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때까지는 간신히 기능하고 있었던—사실 『존 포드론』의 집필 때문에 그의 TV 작품을 보기 위해서 몇 번이나 사용하고 있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 기재는, 아오야마 신지 때문에 기능 부전에 빠져 버렸으니, 부디 책임을 져달라고 말하고 싶은 바다.

다행히도 지금은 VHS로 봐야 할 작품이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오야마 신지 이 사람아’라고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자네는 우리 집의 낡은 VHS 재생장치를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다네. 얼마나 밉살스러운 남자인가.

하기야 『다카라가이케의 가라앉지 않는 거북』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아오야마 신지의 비평적 선명함과 강렬함이 다소 무뎌지는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수시로 그렇게 지명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나 자신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순간이다.

2018년 월드컵 때 그와 메일을 교환하다가 모드리치를 남군 장교에 비유한 것은 틀림없이 바로 나였다. 실제로 아오야마 신지는 그 비유를 보고 이렇게 썼다. ‘잠이 부족한 나날에 대해 보답받았다고 할까, 내가 보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가르쳐 주셔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렇다. 나는 모드리치 덕분에 무의식적으로 남북전쟁을 그리는 포드와 페킨파의 서부극을 월드컵에 겹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매우 납득이 가는 해설’(p.189)이라고 반응하고 있다.

맹세코 말하지만, 그렇게 쓴 나의 의도를 이해해 주는 것은 이 좁지 않은 세계에서도 아오야마 신지 한 명밖에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에 대한 은밀한 연애편지 같은 것이었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그 일을 자랑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그를 울려 버린 적도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낮에 도착한 《문학계》에 실린 「존 포드론 제1장-II. 수목」을 단숨에 읽었다. 첫 페이지부터 눈물샘이 느슨해지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말 없는 사나이>를 거쳐 <일곱 여인> 부분에 접어들었을 때, 사정을 모른 채 옆에 있던 여배우가 “웬 오열?”이라며 놀라워했다. 이것은 나 자신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시게오미 군과 관련된 일이 깊게 관계하고 있는 것 같다. 외아들을 잃은 분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p.422)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오열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써주는 사람은 아오야마 신지밖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확신하고, 나 또한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미우라 하루마를 <말 없는 사나이>의 모린 오하라처럼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터무니없이 감동적인 <도쿄공원>(2011)을 찍고 난 직후였다고 생각되는데, 시게오미가 스즈키 다쿠지 감독의 <나는 고양이 스토커>(2009)나 스가누마 에이지 감독의 <속삭임>(2009)의 음악 작업을 끝낸 이후 몸이 약간 좋지 않아 처음으로 입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문병을 가서 그 병실에 가까이 다가갔더니 안에서 쾌활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들어가기를 망설이다가 되돌아가려고 했을 때, 그 목소리의 주인이 아오야마 신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당분간 젊은이들끼리 대화를 즐기도록 놔두자고 생각하고 대기실로 돌아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신진 작곡가인 시게오미와, 그의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를 아내로 둔 영화작가 사이에는, 도요타 마호를 둘러싼 무수한 화제가 있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분이 지나도, 반 시간이 지나도, 결국은 1시간이 지나도, 아득한 병실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1시간 반 정도 후에야 야구 모자를 쓴 아오야마 신지가 복도를 지나며 ‘아아, 와 계셨습니까’라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라고 애매하게 대답하자, ‘아아, 시게오미 군, 아주 건강해 보였습니다’라고 수줍게 말하고 그곳을 떠났다. 병실에서 나를 맞아준 시게오미는 시게오미대로, 몸이 나아지면 함께 영화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진심 어린 미소를 지은 채, 아오야마 신지로부터 차기작의 음악 작업을 의뢰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오지 않았고, 아오야마 신지의 수줍은 표정도, 그 통통 튀는 웃음소리도, 그와의 긴 대화를 진심으로 즐기던 시게오미의 자랑스러운 미소도, 이제는 영원히 상실되고 말았다. 그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머지않아 86세가 되어 가는 이 후기 고령자는, 이를 위한 어떠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아오야마 신지를 함부로 추모하지 않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신초」2022년 6월호)


필자 - 하스미 시게히코: 일본의 문학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 영화 분야 저서로는 『영상의 시학』(1979), 『감독 오즈 야스지로』(1992), 『영화의 신화학』(1996), 『고다르 혁명』(2005), 『보기 레슨: 영화사 특별 강의』(2020), 『쇼트란 무엇인가』(2022), 『존포드론』(2022) 등이 있다.
번역 -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박진희

※ 이 글의 무료 게재를 허락해주신 「신초」 편집부와 하스미 시게히코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この文の無料掲載をお許しいただいた「新潮」の編集部と蓮實重彦様にお礼を申し上げます。)

※ 이 글의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note.com/monthly_shincho/n/n442dd74c8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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