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로로 열리는 세상 OA, 2016

by.김시선(영화평론가) 2021-09-15조회 11,009

‘넷플릭스’하면 떠오르는 작품을 뽑으라면, 딱 하나만 말하기가 내심 아쉽다. 오락으로 치면 조폐국을 터는 <종이의 집>이 재밌고, 긴장감으로 따지면 <마인드 헌터>를 따라갈 작품이 많지 않으며, 역사와 인간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놓고선 <로마>를 빼놓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여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넷플릭스가 2016년 1월 7일 한국에 진출한 그 시점으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머리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장면을 뽑으라면 그게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렇다면, 내 답은 딱 하나다. ‘담담한 표정으로 자살하는 한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The OA>라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The OA>는 휴대폰으로 찍힌 영상으로 시작한다. 가로 화면 중앙에, 휴대폰으로 찍힌 세로 영상이 틀어진다. 한 여성이 자동차 틈 사이를 헤집고 막다른 난간에 선다. 세로 화면이라 그 옆에 뭐가 있는지 보이진 않지만, 아마도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떨어지면 죽는다. 휴대폰 주인인 아이는 소리친다. “엄마, 난간을 넘었어요!” 차를 급히 멈춘 엄마는 여성과 눈이 마주친다. 이상하게도 여성의 표정은 두려움보단 단호해 보인다. “안 돼!” 엄마는 급히 말리지만 여성은 망설이지 않는다. 곧이어 아이가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뛰어내렸어요”
 

작품이 시작한 지 30초 만에 일어난 일. 엄마와 아이 그리고 우리는, 차 안에서 한 여성이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해 버린다.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 하나. ‘여성은 왜 자살하려고 한 것일까?’ 이 질문은 기나긴 이야기의 끝에서 이렇게 바뀐다. ’여성은 단지 자신이 가야 할 세계로 이동하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지금은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휴대폰 세로 화면 촬영으로 잘린 여성의 우측엔 강이 아니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부모를 통해 동화책을 보게 된다. 그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잠이 들기 전 듣고, 가끔 꿈에서 그 세상을 탐험하곤 했다. 기억나진 않지만 그걸 진실이라 믿었던 때도 있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 오즈 야스지로 영화가 사실은 꽤 재밌는 스릴러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엔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아침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셰이브 오브 워터>나 <옥자>를 봐도 영화의 고리타분한 철학만 끄집어낼 뿐, 꿈같은 거짓말을 더는 믿지 않게 됐을 지도 모른다. 이게 어른이 되는 거라면, 참 슬픈 일이다.

그 순간 생각나는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믿음. 모든 예술은 진실과 거짓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며 우리의 동심(?)을 끄집어내는 기술이라고. 그 대단한 피카소 역시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를 다시 어린아이로 만들 거짓말 같은 작품이 필요했다. 난간에서 뛰어내린 후 지금 막 눈을 뜬 여성의 이름은 ‘프레이리’. 7년 동안 실종된 딸을 만나게 된 노부부는 당황하는데, 실은 프레이리가 맹인이었기 때문이다. 7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프레이리는 앞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며, 자살은 또 왜 하려고 한 것일까? 나처럼 그녀의 부모도 그게 너무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다.
 

집에 돌아온 프레이리는 안정을 취하기도 전에 이상한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마을 주변을 맴돌며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소외된 5명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늦은 밤, 프레이리 말에 따라 자신의 집 문을 열어둔 친구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에 모인다. 곧이어 친구들 눈을 감긴 프레이리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부모처럼, 자신이 7년 동안 겪은 무섭지만 신비로운 이야기를 한 페이지씩 넘기듯 들려준다. 이때부터 <The OA>는 프레이리의 입을 통해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러시아 부호의 딸로 태어나 죽음을 경험한 이야기를 거쳐 사후세계를 연구하는 박사에게 납치된 이야기까지. 온통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그녀의 존재다. 프레이리는 자신의 진짜 이름은 ‘오에이’이며 정체는 ‘천사’라고 말한다. 천사라고? 듣고도 믿기 힘든 존재가 아닌가.

자, 이쯤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왜 휴대폰으로 찍은 ‘오에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일까. 혹시, 이 30초짜리 영상 안에 아직 숨겨진 진실이 더 있다고 믿는 것일까?

요즘 들어,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 일이 빈번해졌다고 한다. 휴대폰이 이미 존재하는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휴대폰을 가로로 돌리지 않고 ‘세로’로 영상을 찍고 휴대폰 앱으로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거나 친구들끼리 돌려본다고. 어른들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영상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그들을 더 끈끈하게 묶어준다. 거기엔 우리가 믿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어른들이 돈이 될 것 같은 ‘메타버스’란 단어에 매몰됐을 때, 아이들은 이미 그들 만이 머무는 세상을 따로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The OA>는 바로 어른들에게 소외되고, 버려진 아이들 세상에 들어가는 ‘문’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 문은 작품의 첫 장면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단지 우리가 그 문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다시 30초. 이 영상은 캠코더나 DSLR이 아닌 휴대폰으로, 아이에 의해 찍힌다. 그러니까 그 바쁜 도로 위에서 정처 없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오에이’를 발견한 건, 어른이 아니라 아이다. 더 정확하게는 세로로 찍힌 영상을 통해서, 지금 우리는 아이의 눈으로 드러난 세상을 잠깐이라도 체험해보는 거다. 그래서 촬영도 이전 시대가 고수한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찍힌다. 영상 속에서 어른은 자신의 아이에게 잔소리하듯 ‘안 돼!’라고 가르치지만 화면 속 아이(오에이는 몸이 컸을 뿐이다)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군요’라는 표정으로 뛰어내린다. 유튜브에서 이 영상을 보고 7년 만에 딸을 발견한 노부부의 모습도 절대 우연이 아니다. 노부부는 병원에서 딸을 먼저 본 게 아니라 영상으로 먼저 만났다. 단지 이해하지 못했을 뿐. 오에이는 다시 한번 어른들에게 손짓하는 것이다. 세로로 열린 이 문으로 들어오세요. 프레이리를 이해하고 싶었으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딸을 이번만큼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문을 열었다면, ‘여성은 왜 자살하려고 한 것일까’라는 질문은 끝에서 이렇게 바뀔 것이다. 오에이가 건너간 세상엔 무엇이 존재할까.

노부부는,
나는,
어른들은,
그 세로로 된 문을 열수 있을까?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이 기막힌 동화책을 본 우린,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린다. 휴대폰에 찍혀 거짓말처럼 돌아온 프레이리처럼, 오에이가 된 프레이리의 동화는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게다가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와 유사한 내용이 담긴 소설책들이 발견되자 우리의 믿음은 급격히 흔들린다. 역시, 그럼 그렇지 애들이 뭘 알아. 현실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딨어.

천사는 존재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읽는 이야기는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잊고 지낸 아이들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선 오에이가 다섯 아이들에게 알려준 것처럼 문을 열고 늦은 밤, ‘오에이’가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혹시, 문을 열었다면? 어디에 있든, 지금 <The OA>를 틀면 된다. 그때! 오에이는 당신에게 속삭일 것이다.

“내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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