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민김의 집은 어디인가?

by.이용철(영화평론가) 2021-01-29조회 7,147

하나, 김정민의 영화를 보았다.

<감자>(2018)가 2019년에 가장 뜨거웠던 단편영화 중 한 편이라는 거, 나는 몰랐다. 당연히 김정민이란 감독의 이름도 알 리 없었다. 그러다 <긴 밤>(2020)이란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2020년에 열린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절대악몽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 은근히 <기생충>(2019)에 딴지를 거는 듯한 영화에 매혹당하는 데는 단 몇 분이면 족했다. 너무나 예쁜 컬러 – 근래 김정민이 만드는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다 – 로 포장된 세계는 아마도 반지하나 지하로 보이는 어떤 공간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기괴한 행태, 혹은 사건은 페미니스트들이 기겁하고 입을 막을 그런 류의 것이다. 당연히 영화제마다 받아들이는 형국이 극과 극으로 다를 수밖에 없을 터, 사실 그것은 김정민이란 감독이 그간 만들어온 수십 편의 단편영화가 겪었을 수난의 한 예에 불과하다.

내가 아는 한 제일 먼저 나온 김정민의 영화는 <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라는 제목의 2016년 작품이다. ‘홍상수 영화’라니. 홍상수에 관한 영화인가 싶었는데 그야말로 홍상수 영화를 따라가며 흉내 낸 그런 영화다. 극 중 대사를 빌리자면 ‘어설프게 따라하는 것보다 똑같이 베끼는 게 영화제 취향에 맞을 것 같다’라는 논지다. 영화제 취향을 어설프게 간파한 죄인지, <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가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아마도 영화제의 예심을 보는 수많은 사람에게 비웃음을 사며 여기저기 떠돌다 사라진, 그런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김정민이 방향을 튼 거 같지는 않다. 노골적인 베끼기는 아니어도 특정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거나 오마주를 바친 듯한 영화의 리스트는 끝도 없이 전개되었다. 내가 대충 감을 잡은 감독의 이름만 나열하더라도 ‘홍상수, 봉준호, 왕가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장 뤽 고다르, 오즈 야스지로, 기타노 다케시, 스탠리 큐브릭, 폴 토마스 앤더슨, 허준호, 이마무라 쇼헤이, 미카엘 하네케’ 등이다. 하나같이 위대한 거장의 이름이니 창피함을 무릅쓴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 참 겁도 없다 싶다.

그런 경향의 작품 가운데 피식대며 본 작품도 있고, 썩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다. 2018년 작품 <세 아들>은 후자에 해당한다. 4:3 화면비에 흑백으로 찍은 카메라의 눈높이가 정확하게 오즈 야스지로의 그것과 일치하고, 제목(특히 영어 제목 - A Winter Afternoon)이나 음악도 영락없이 오즈의 그것이다. 만약 오즈가 이 영화를 본다면 네 인물이 빚는 관계의 이야기에 슬며시 미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 단, 온전히 오즈의 인장만 박힌 것도 아니다. 김정민의 감성과, 어쩔 수 없이 끼어드는 21세기 청년의 분위기가 이건 디지털영화라고 말한다. 물론 김정민이 그런 영화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여기저기를 찔러대는 시도가 별로 바뀌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색채를 갖춘 작품도 하나둘씩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감자>가 그런 작품이다. 
 
감자, 고구마밭에 쓰러진 두남자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는 한 남자

다시 말하거니와, 5년에 걸쳐 어림잡아 스물다섯 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근작인 <감자>와 <긴 밤> 외에 주목을 받은 영화는 드물다. ‘숏컷 시리즈’라 이름 붙인 영화들은 습작처럼 보이고 완결성이 아쉬운 터라 그간 영화제에서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왼다리>(2019)와 <첩첩산중>(2019)처럼 느슨하게 연결된 영화의 경우 나란히 보지 않으면 매력을 놓쳤을 수도 있다. 이렇게 이유를 따져 보면 너무나 많은 (영화제) 불합격의 사유를 꺼낼 수 있겠으나, 그중 가장 큰 것 하나를 들자면 ‘이단성(異端性)’ 때문이라 하겠다.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 아래의 앨범 재킷을 먼저 보았으면 한다. 그룹 ‘스틸리 댄’의 명반 시대를 연 1972년 앨범 <Can’t Buy a Thrill>의 재킷이다.
 
Can't Buy a Thrill 의 앨범 재킷

위에서 잠시 언급한 김정민 특유의 색감이 궁금하다면 이 앨범의 재킷을 보면 된다. 노랗고 빨간 색깔에 변형을 가해 어딘지 인공적이고 조잡한 인상을 주는데, 김정민은 여기에 파스텔 톤을 좀 더 강화해 ‘이것이 김정민의 세계다’라고 주장한다. 위 재킷에서 컬러보다 더 신경 써서 보아야 할 건 소재다. ‘거리의 여성, 나체의 남자와 여자, 욕망을 은유하는 싸구려 물품’은 재킷의 컬러와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포스트 히피 시대에나 어울릴 것들인 게 사실이다. 스틸리 댄의 앨범 재킷이 종종 육감적인 소재를 다루긴 하지만, 이 앨범의 키치적 취향은 다른 앨범 재킷의 고상한 톤과 거리가 멀다. 21세기에 저런 재킷을 앨범의 커버로 사용하는 팔푼이는 없을 게다. 김정민의 영화가 저런 소재나 주제를 다루지 않지만, 시대와 주변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고 생산해 내는 그의 영화와, 위의 재킷이 주는 인상이 스무드하게 오버랩된다. 이상한 세계의 앨리스의 눈으로 현실의 세계를 보려는 정신 나간 시도. 심지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살짝 다룰 때에도 현실감보다 생뚱맞은 시선을 들이대곤 한다. 굳이 김정민의 영화를 독립영화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주류 독립영화의 경향과 그의 영화는 어떤 연결점이 없다. ‘똑같은 고민, 지배적인 정서, 하나의 목소리’가 반복되는 독립영화와도 거리가 먼, 김정민의 영화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발견된다. 만듦새에서 부족할지 몰라도 나는 그의 개성을 찬양한다. 게다가 그는 한 해에 최소 다섯 편 정도의 영화를 쏟아낸다. 그건 열정의 다른 얼굴이다. 아무도 안 봐주는데 이렇게 미치도록 영화를 만들어내는 열정, 무기력한 영화들 사이에서 그 에너지가 어찌 각별하지 않겠나.
 
긴밤, 땀을 흘리며 엎드려 있는 남자

둘, 김정민의 집을 찾아서.

몇 개월 전, 어찌어찌 <감자>와 <긴 밤>을 본 뒤로 나는 김정민이란 감독에 대해 호기심을 품기 시작했다. 당시엔 그가 그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우연히 지인이 그를 한 영화제에 초대했다는 걸 알게 돼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다. 짐작했듯이 영화와 별로 상관없는 학교를 나와 주변 사람들을 모아 영화를 찍는다고 했다. 진짜 발견은 유튜브에서 일어났다. 거기에 그는 ‘정민김’이란 집을 지어 그와 친구들이 찍어온 영화 전부를 공개해 두었다(<감자>와 <긴 밤>은 판권이 팔린 건지 제외됐다). 유튜브의 거대한 세계에서 김정민이란 이름으로 집을 지었다간 검색해도 쉬 찾기 힘들 텐데, 정민김으로 검색하면 그가 세운 영화의 집이 바로 뜬다. 동영상 항목을 누르면 스물다섯 편이 넘는 영화와 영상이 쭉 나열된다. 보통은 영화 속 이미지 하나를 따서 영화를 소개하기 마련인데, 김정민은 영화와 어울릴 만한 이미지를 따로 구해 썸네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아주 예쁜 디자인 하우스의 홈페이지 같은 인상을 준다. 듣기로, 심리학을 전공한 서른 청년이라는데, 예쁘게 세워놓은 유튜브의 집과 과감하고 와일드한 영화 중 그의 본디 모습이 어디에 가까울지 마구 궁금해진다.

1990년대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김정민은 필름과 거리가 먼 세대다. 그가 열 살을 지날 즈음 세상의 영화는 디지털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러니 극장에서 필름으로 영화를 보는 행위가 그에게 익숙하다면 거짓말이다. 당연히 그즈음 영화 매체는 디지털을 화두로 삼아 영화의 미래를 논의했다. 초기에 디지털로 찍은 초기의 박철수의 영화에 대고 비판했던 글들이 기억난다. 그 영화는 디지털의 자세로 찍지 못했다고 뭇매를 맞았다. 대상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느니, 카메라의 움직임이 필름의 그것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느니, 그 영화는 그런 비판을 들어야 했다. 지금 그 평자들이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들이 짧은 시선으로 예상하고 그렸던 디지털 영화가 나오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영화 산업이 디지털로 재편된 현재, 대다수의 영화는 그들이 말했던 영화와 전혀 딴판이다. 적어도 이미지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디지털 시대의 영화는 밋밋하고 시시해졌다. 극장에 걸리는 대중영화 사이에서 독특한 이미지를 발견하는 건 필름 시대와 비교해 더 힘들어졌다. 필름에서 벗어나 뭔가 혁명적인 이미지가 나올 거라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가, 디지털은 그냥 ‘표준화된 컬러와 이미지’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시대로 발전했다. 
 
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 술자리에 얘기하는 세 남자와 한 여자

앞서 말했듯이 김정민은 필름 시대의 영화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고전적인 필름 시대의 영화와 뮤직비디오 같은 비디오 시대의 이미지 사이에 위치한다. 필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만, 동시대의 디지털로 영화를 만드는 데 별로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 같지 않다. 필름의 질감을 흉내 낸 영화도 만들고, 다수의 독립영화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디지털 질감의 영화도 만들면서 그는 어느덧 김정민스러운 디지털 영화를 하나씩 내놓는 중이다. 물론 내가 본 그것들이 최후의 완성된 형태는 아닐 것이다. 김정민스러운 컬러를 보여준다고 해서, 김정민스러운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여준다고 해서, 김정민스러운 간략한 편집을 보여준다고 해서 이게 김정민의 디지털 영화다, 라고 말할 생각은 아직 없다. 내가 아는 한 그는 고작 4년에서 5년 정도 영화를 만들어온 초보 작가일 따름이다. 무어 그리 대단한 영화를 만들었겠나. 그렇다면 인터넷, 유튜브에 있는 집을 찾아가면서까지 김정민이란 감독의 영화에 왜 호기심을 보이는지 나는 설명해야만 한다.

대답은 그가 영화를 생산하고 관객과 만나는 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는 현재 자신의 포지션을 영화감독이라는 데 두고 있으며, 그 직업에 맞게 꾸준히 영화를 찍는 게 자신의 본령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렇게 영화를 찍다 경지에 오르면 다행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감독이 영화만 찍다 죽었다고 해서 욕을 들을 일은 없다. 코로나 시대에 영화와 극장의 운명을 두고 여러 예측이 오간다. 흥미로운 말씀도 있고 별것도 아닌 걸 대단한 양 예언한 글도 읽었다. 지금은 습관이 변하는 시간이다. 그게 언제 어떻게 문화를 형성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사실은 어떤 문화가 형성되리라는 것뿐이다. 관객의 수가 줄어든 것을, 극장이 문을 닫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나는 거꾸로, 우리가 그동안 너무 많은 영화를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마을마다 극장이 들어선 것이, 골목마다 들어선 교회만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의 영화 과소비가 극장을 편의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간에도 김정민은 멈추지 않고 영화를 찍는다. 아마 이런 시기를 반영한 영화를 찍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가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는 <다큐멘터리: 일렉트릭 러브>라는 괴상한 영화를 만들었고, 그걸 유튜브의 자기 집에 선물처럼 올려두었다. 향후 영화와 영화 문화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내겐 김정민 같은 감독이 영화를 찍는다는 것으로 족하다. 평범한 감독이 만든 아무 감흥 없는 영화 열 편보다, 내가 사랑하는 감독의 영화 한 편 한 편이 더 소중하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김정민은 그렇게 만든 영화들로 자기 집을 만든다. 그게 꼭 극장이 아닌들 무슨 상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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