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영화제 ‘피칭’에 대한 그렇고 저런 생각

by.김화범(인디스토리 제작/기획팀장) 2014-04-29조회 3,974
DocMontevideo의 2013년 다큐멘터리 피칭 현장 사진

‘어느 순간엔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피칭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 문장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피칭은 영화를 제작하는 행위에서 무수히 이뤄지는 과정이다. 프로듀서나 감독이 투자자를 만나고, 배우를 만나고, 스텝을 만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피칭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피칭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라, 피칭행위가 영화제라는 공적인 ‘장’에서 일종의 ‘제도’로서 자리를 잡게 되는 과정에 느꼈던 일종의 불편한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어 첫 문장을 썼다. 

‘피칭’이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영화를 드러내고, 투자 혹은 제작지원을 받는 일이다. 모 영화제에서 피칭을 처음 시작 할 때 주변의 다큐 만드는 감독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그 이유는 피칭이라는 것 자체가 불특정 다수관객과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과 자신의 영화를 드러내야 하는 것 - 낯선 경험을 감내해야 하는 것, 자신을 전시해야 한다는 일종의 당혹감의 발로였으리라. 하지만, 이런 감정은 제작지원이라도 받아서라도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제작자나 감독들이 찬밥 더운밥을 가려 먹을 처지는 아닌지라, 나 또한 감독을 독려해서 ‘이 정도는 우리가 해야 하지 않냐’고 설득했다. 어느새 당연히 치러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영화제 제작지원 말고도 기관에서 진행하는 제작지원에도 피칭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불편함 혹은 불편한 어떤 감정이 남아 있다. 

올해 초『콰이어트』(수전 케인. 알에이치코리아)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서, 외향성을 강조하는 사회 - 결국 자기 계발로 귀착되는 거짓 멘토/힐링사회 - 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내 경험으로 비춰보기 시작했다. 영화제 개막식이나 무슨 밤에 초대되어 가야 하는 날은 영화 일을 가진 나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누군가와 만나서 ‘교류’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머리를 아프게 하고, 나를 ‘전시’해야 한다는 사실과 누군가와 비교되는 것 -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 이들에게 느끼는 열등의식에 시달리는 중이다. 낯선 이들이 가득한 경쟁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성격의 특정 부분들을 이용하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피칭이라는 것은 결국 외향성이라는 성격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일종의 우리 시대의 강박증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어느 순간 자리 잡게 된 피칭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서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을 전시하는 일과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들은 이런 감정적 소비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큐를 만드는 사람들, 특히 홀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는 피칭이 피곤함을 넘어서 불편하다.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피칭의 장점이 있다고. 피칭의 장점 중에 거론되는 자신의 기획을 객관화시켜볼 수 있고, 멘토들의 도움으로 좀 더 나은 기획으로 영화가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 굳이 자신의 기획을 객관화라는 이름으로 난도질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멘토들에게 받는 뜬금없는 지적으로 열등감에 시달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시간에 좀 더 자신의 기획에 집중하고 사색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영화제 피칭은 영화제 컨벤션한 과정에서 나름 스펙타클하게 보여주기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는 영화제의 욕망이다. 좋은 영화를 만나고 싶다면 감독을 핀 조명 아래에 세워놓고 누가 누가 잘하나 식의 단순한 전시 혹은 쇼잉은 지양되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영화제 피칭행사보다는 좀 더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방식으로 형식의 변화를 우선해야 되고(객석과 발표자 간의 거리를 없애는 라운드 테이블 방식 혹은 각 프로젝트별 소규모 릴레이 토크 등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질적으로는 특정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참여자 주체적으로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유동적이고 다층적으로 형식이 조율되기를 기대해본다. 

* 사진설명: DocMontevideo의 2013년 다큐멘터리 피칭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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