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7월 4일 맥 세네트가 슬랩스틱 코미디의 폭소공장(爆笑工場) 키스톤 스튜디오를 세우다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9-01-07조회 3,200
영화 <In the clutches of the gang>(1914)에서의 키스톤 경관들. 맨 외 ㄴ쪽 전화기를 든 배우가 포드 스털링, 맨 오른쪽 배우가 로스코 아버클이다.

영화사상 가장 웃기고, 가장 긴장되며, 가장 부조리하고, 가장 기괴하며, 가장 미친 장르는 무성영화 시대 슬랩스틱 코미디일 것이다. 영화사는 이 장르를 ‘코카인의 에덴’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때에는 특수효과가 없었으며, 촬영하는 쪽과 연기하는 배우는 목숨을 걸고 위험 속에서 우리를 웃긴다. 그래서 웃다가도 어느 순간 영화 속의 촬영 현장이 걱정되면서 보다 말고 얼어붙기까지 한다. 이 장르를 발명한 맥 세네트(Mack Sennett)는 영화사상 가장 미친 괴인(怪人)이며 이 영화들을 쉴 새 없이 제작한 키스톤 스튜디오(Keystone Studio)는 말 그대로 ‘폭소공장(爆笑工場)’이었다.

마이클 ‘맥’ 세네트는 캐나다 퀘벡 지역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으로 건너왔다. 보드빌 무대를 본 다음 이 세계에 눈을 떴고 D.W 그리피스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한 다음 몇 편의 영화에서 조감독을 하면서 영화를 배웠다. 그리고 바이오그래프에서 거의 전천후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배우이자 가수였고, 댄서이며 광대였고, 세트 디자이너이자 영화 연출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재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맥 세네트는 경마에 빠졌고 빚에 쫓기게 되었다. 그는 돈을 빌린 (뉴욕 모션 픽처스 컴퍼니 소유주인) 찰스 O. 보만과 (배우이자 작가인) 아담 케슬을 뉴욕 14번가에서 만났다. 어떻게 홀렸는지는 모르지만 맥 세네트는 미친 소리를 했다. “내가 그리피스 스튜디오보다 더 많은 수익을 거둘 겁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맥 세네트에게 제안했다. “우리에게 빌린 100달러는 잊기로 하게, 대신 우리가 2,500 달러를 투자할 테니 스튜디오를 차리세.” 1912년 7월 4일 캘리포니아 에덴데일에 키스톤 스튜디오가 세워졌다. 아마 제일 당황한 사람은 맥 세네트였을 것이다.

맥 세네트
맥 세네트

오늘날 키스톤 스튜디오의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거의 실험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맥 세네트는 웃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사람이었다. 그는 1915년까지 420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영화들 한 편 한 편에 거의 목숨을 건 개그와 추격전, 차에 매달려 달리기, 공중에서 떨어지기, 건물과 건물 사이 뛰어넘기, 기차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찻길에 매어놓은 인질 소동극, 하여튼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개그 퍼포먼스를 발명해냈다. 맥 세네트는 새로운 재능을 끌어들이는 데도 망설이지 않았다. 무대 개그를 하던 찰리 채플린, 도회풍의 해럴드 로이드, 마리 드레스던, 매이블 노만드, 로스코 아버클, 레이먼드 그리피스, 포드 스털링, 해리 랭던, 그리고 위대한 글로리아 스완슨을 카메라 앞에 세워놓고 위기에 처넣은 다음 웃겼다. 그중에서도 맥 세네트의 발명 가운데 백미는 ‘키스톤 경관들(Keystone Cops)’이다. 경관 배우 다섯 명은 엄숙한 표정으로 매달리고 쓰러지고 자빠지면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그들은 조연이었고 악당이었으며 희생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채플린은 이들을 마음껏 골려먹는 단편들을 연달아 연출했다. 채플린은 ‘키스톤 경관들’에게 쫓기는 방랑자를 연기하면서 이 앙상블의 개그 소동을 통해 자기 스타일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해럴드 로이드도 경쟁하듯이 그들을 놀리면서 요리조리 도망 다녔다. 이건 마치 미친 스승이 위대한 제자들을 거느리고 할 수 있는 끝까지 가본 유일무이한 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슬랩스틱 코미디들이 바다를 건너 파리에 도착했을 때 당시 지식인 카페의 예술가들은 세상을 카오스의 지경으로 걷잡을 수 없게 몰아넣는 끝없는 단편들 앞에서 자신들이 입으로만 떠들던 초현실주의의 스펙터클이 펼쳐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탄식해야만 했다. 누군가 찬사를 바쳤다. 키스톤 스튜디오는 술 취한 디오니소스의 광란에 가까운 웃음으로 가득 찬 곳이었음에 틀림없다. 니체가 조금만 더 살아서 이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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