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나영 편집기사의 모리편집실을 찾아서 편집실 24시

by.문석(자유기고가) 2018-09-06조회 2,459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누군가 “이제 몇 분 남지 않았어! 서둘러야 해!”라고 외치면 “제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그런 살벌하고 피 튀기는 전장을 상상했다. 하지만 보통의 사무실보다 평온한 분위기의 이곳에서는 나지막한 대화와 짤깍거리는 마우스 소리만 흘러나왔다. 경기도 일산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 자리한 남나영 편집기사의 모리편집실은 머릿속에서 그리던 상황과 전혀 딴판이었다. 방금 막 들어온 촬영본을 후다닥 편집해서 곧바로 송출해야 하는 방송 편집실을 떠올린 건 방송국 배경 드라마가 남긴 영향 때문이었을 것. 모리편집실은 아무래도 방송보다 작업 호흡이 훨씬 긴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곳인 만큼 차분함과 함께 치밀함 또한 느껴졌다. 게다가 우리가 방문한 시점이 한 달여 동안 이뤄진 <스윙키즈>(강형철, 2018) 편집 작업의 마무리 단계였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스윙키즈>는 6·25전쟁이 벌어진 1951년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우연히 탭댄스에 빠진 북한군 병사 로기수(도경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안나푸르나필름의 이안나 대표와 함께 모리편집실을 찾은 강형철 감독(왼쪽)은 남나영 기사와 편집 작업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강형철 감독은 데뷔작인 <과속스캔들>(2008)을 시작으로 <써니>(2011), <타짜-신의 손>(2014), 그리고 이번 <스윙키즈>까지 모두 남나영 기사와 함께 편집 작업을 해왔다. “<과속스캔들> 당시 후반작업 시간이 부족해 1~2주 만에 편집을 모두 끝내야 했다. 편집실에서 매일 밤을 새우며 작업하다 보니 엄청나게 친해졌다. 일종의 전우애가 쌓여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는 게 강 감독의 회상이다.

_ “편집은 감독이 마치 영화를 잘 찍은 양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말하는  강형철 감독은 남나영 기사가 “NG 컷까지 잘 찾아 디테일하게 작업해줘 현장에서 어렵게 찍은 그림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게 해준다”고 말한다. 또 남 기사가 상업영화 편집자로서 영화를 재밌게 해주는 기술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다치지 않게 한다는 것, 즉 감독의 의도가 틀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_ 남나영 기사가 편집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비선형편집(NLE) 소프트웨어의 원조 격인 아비드(Avid)다. 파이널 컷 프로와 프리미어 같은 다른 편집 프로그램을 두고 굳이 아비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남 기사는 “오래전부터 써서 손에 익어서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고 말한다. 편집조수들이 촬영 소스를 정리해주면 이를 바탕으로 작업에 들어간다. 영화의 내러티브 순서대로 촬영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보니, 촬영본이 순서대로 20신 정도가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작업에 들어간다.

_ 편집기사에게 편집은 외로운 싸움이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감독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콘티 작업에도 관여하지만 첫 번째 편집본(first cut)을 만드는 것은 오롯이 편집기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반영된 현장편집본이 있긴 하지만, 편집기사 입장에서는 참고 대상의 의미만 가질 뿐이다. 남나영 기사는 일반 영화의 경우 촬영이 완전히 끝난 지 2주 뒤쯤, 규모가 큰 영화의 경우 1개월 정도 뒤에 첫 번째 편집본을 완성한다. 이 편집본을 감독, 프로듀서 등과 함께 시사한 뒤 본격적인 편집 작업을 시작한다.

_ 편집 작업에 돌입하면 편집기사는 물론이고 감독, 프로듀서 또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감독은 “심판받는 죄인의 느낌을 갖게 되고”(강형철), 프로듀서는 감독의 의견뿐 아니라 투자사의 의중까지 고려해야 한다. 편집기사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남나영 기사의 경우 매일 오후 1시 정도부터 일을 시작해 6~7시쯤 끝낸다고 한다. 물론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나는 게 아니다. 남 기사는 그날 논의된 것을 바탕으로 집에 가서 다양한 버전의 편집본을 만든다. 당연히 남 기사 입장에서는 “본편집이 시작되면 개인적인 일은 모두 뒤로 미루고 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_ 모리편집실에서 편집조수로 근무하는 하미라 씨와 조윤정 씨. 두 사람의 어깨는 결코 가볍지 않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데이터 팀에서 서버에 올려놓은 촬영본 파일을 받아 일일이 정리해야 한다. 모리편집실에서 쓰는 프로그램 아비드의 경우 mov파일을 불러들여서 mxf파일로 변환해야 하는 탓에 조금 더 까다롭다. 변환이 끝난 뒤에는 영상을 신과 컷으로, 또 ‘오케이컷’과 ‘킵 컷’으로 분류하고 이를 정리해서 사운드와 싱크(sync: 영상과 음향 신호를 동조시키는 것) 작업을 한다. 현장편집본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편집기사가 편집을 마치면, 이 파일을 믹싱, CG, DI 팀 등에 각기 다른 포맷으로 변환해서 보내야 한다. 하미라 씨는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의 거의 모든 과정에 관여해 영화 전체의 흐름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_ 모리편집실이 자리한 빛마루 방송지원센터는 방송 분야에 특화된 공간이다 보니 편집실이 여러 개로 작게 나누어져 있다. 모리편집실은 현재 메인 편집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실 2개와 보조 편집 작업실 2개 등 모두 4개의 방을 사용한다. 메인 작업실이 2개인 것은 두 편의 영화 편집을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_ 모리편집실은 그동안 작업한 편집본을 하드디스크에 담아 보관 중이다. 남나영 기사의 데뷔작인 <몽정기>(정초신, 2002)부터 <아라한 장풍대작전>(류승완, 2004),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2008), <김씨 표류기>(이해준, 2009), <완득이>(이한, 2011) 등이 담겨 있다. 이 편집본은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하는데, 곧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개봉 10주년을 맞아 이 편집본을 다시 쓸 계획이다.

_ 편집조수들은 촬영본의 슬레이트를 기준으로 파일을 정리한다. 스크립트와 현장편집본 또한 중요한 레퍼런스가 된다.

사진 김하영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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