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눈길> 이나정 감독 인터뷰

by.「영화천국」 편집팀 2017-05-10조회 1,828
이나정 감독의 <눈길>(2017년 3월 1일 개봉)은 기존의 ‘위안부’ 소재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재현하면서도 피해자들 간의 연대와 치유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곁을 지키며 그 잔혹한 시간을 살아낸 소녀들, 고향 땅을 그리며 하얀 설원을 하염없이 걷던 두 주인공의 모습에선 아픔보다 실낱같은 희망이 더 절절하게 전해진다. 그리고 이 작은 희망은 곧 현재로 이어진다. 비극은 되풀이되고 상처는 채 아물지 않았지만, 지금 여기에도 연대하고 위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야기
이다혜 : 인터뷰를 앞두고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2015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무려 아홉 분이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남은 생존자는 서른여덟 분뿐이다. <눈길>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나정 : 나와 입봉작부터 같이했던 작가님이 위안부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계셨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께서 고령에 접어들면서 별세 소식이 점점 자주 들려오기 시작하자, 더 늦기 전에 이 작품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셔서 시작하게 됐다.
이다혜 : 처음부터 두 소녀의 이야기를 구상했나?
이나정 : <귀향>(조정래, 2015)이 개봉하기 전의 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2014년 초였던 것 같다. 작가님과 위안부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고, 처음에는 광복 이후 세 여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획했다. 사람들은 위안부 하면 으레 할머니와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우리는 서른 살 여자 주인공을 상상했다. 위안부 피해자였던 여자와 홀로 조선땅에 남은 일본 여자, 이 둘이 폭력의 현장에 내던져진 한 여자아이를 구출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이다혜 : 신선한 이야기인데, 왜 방향을 바꾸게 되었나?
이나정 : 신선한 느낌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 구성이나 표현방식에 있어 멋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영화적 완성도나 이야기로서의 몰입도는 더 높을지 몰라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을 알려야 한다는 목표를 떠올리면서 가장 전형적이고 쉬운 이야기로 돌아갔다. 아직도 이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이제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외면해버리는 경우도 많고. 그들에게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다혜 : <눈길>은 2014년 KBS에서 2부작 드라마로 방송된 작품을 재편집한 작품이다. 흔한 경우는 아닌데, 어떤 계기로 극장개봉을 하게 됐나?
이나정 : 3·1절 특집극으로 제작됐지만, 처음부터 영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TV 콘텐츠는 아무도 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적어도 인권영화제 등을 통해 해외 상영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방송 스태프와 영화 스태프가 섞인 팀을 구성했고, 시나리오도 영화 호흡으로 써 내려갔다. 조금이나마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위안부 문제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이다혜 : 중요한 대목은 거의 그대로이긴 하지만, 영화 버전과 드라마 버전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나정 : 영화 버전은 7~8분 정도 분량을 덜어냈고, 전부 다시 편집했다. 드라마의 경우 언제 채널이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컷이 짧고, 그나마도 모든 신에 포인트를 줘야 한다. 10분 동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칙 같은 게 있다. 하지만 영화는 집중도가 다르더라. 긴 호흡으로 감정을 쌓아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이다혜 : 시나리오 단계에서 자료 조사는 어떻게 했는지?
이나정 : 작가님과 함께 수요집회, 나눔의 집에 몇 차례 찾아갔다. 하지만 할머님들께 직접 당시의 일을 여쭤보지는 않았다. 그 상처를 굳이 다시 들추고 싶지도 않았고, 이미 엄청나게 많은 수기가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수기와 외국인들이 작성한 위안부 관련 자료를 열심히 찾아 읽었다.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일제강점기의 10대 소녀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영상자료원에 가서 당시의 다큐멘터리나 영화 같은 영상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이다혜 :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이나정 : 피해자 수기를 읽으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와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남몰래 좋아하던 오빠에 대한 애타는 마음, 엄마에게 말 못하고 끌려온 것에 대한 걱정, 집에 가만히 숨어 있었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 고향에 돌아가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바람 같은 것들… 그 나이대의 소녀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소박한 피해자들의 면면을 알게 될수록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참 생경한 부분도 있었다. 영상자료원에서 <수업료>(최인규·방한준, 1940)를 봤는데,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의 행동과 생각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너무나 서정적이고 따뜻한 조선의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소년이 “노래나 부를까?” 하더니 갑자기 일본 군가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또, 그때는 우리말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교문을 나서는 순간 “아, 이제 조선말 써도 되지” 하면서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는 모습도 영화에 나온다. “걔 일본어 발음 좋지 않니?” “어릴 적에 일본에서 살다 왔대”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일본의 문화가 동경의 대상이었던 거다. 그래서 영애(김새론)의 일본어 발음에 더 신경을 썼다.
이다혜 : 그런 디테일을 반영했다는 게 굉장히 용기 있게 느껴졌다. 말씀하신 것처럼 영애는 일본어도 잘하고, 일본의 도시 이름을 술술 외울 만큼 공부도 잘한다. 나중에 일본 유학을 결심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 모든 게 기존의 위안부 소재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배제하던 것들이다. 일제강점기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보여주면 피해자같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 순수한 아이들, 강제로 연행당하는 아이들의 모습만 그려왔던 게 아닌가 싶다. 조선의 아이이면서도 충실한 일본의 신민으로 교육받아온 영애의 캐릭터는 그래서 더욱 신선했다.
이나정 :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분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아이들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물어보더라는 거다. 기뻐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거다. 기록에 따르면 1940~45년 일본군에 끌려간 여자아이 수가 4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빠와 아들은 징용되고 엄마는 군수공장 정신대로, 딸은 위안부로… 가족 전체가 다 끌려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끌려가기 전까지 아이들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더라. 이질적으로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다혜 : 주인공 종분(김향기)과 영애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성향도 극과 극이다. 그런데 영화 초반에 노인이 된 종분(김영옥)이 영애의 이름을 빌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사실을 어떤 반전의 장치로 활용해볼 생각은 없었나?
이나정 : 그런 식의 반전극을 구성할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다만 아주 다른, 양극단에 있는 아이들이 사실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위안소로 향하는 기차에는 전국 각지의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런데 나이도, 살아온 배경도 모두 다른 이 아이들이 열차 한 칸에 갇히면 그때부터는 운명공동체가 되어버리더라.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했다. 실제 위안부 피해자 중에도 피해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시는 분이 많다. 실제 피해자는 40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공식적으로 등록된 피해자는 몇 분 안 계신 것처럼.
이다혜 : 그러고 보니 극 중에서 종분이가 “몸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어떻게 하니?” 하자 영애는 “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엄마한테도 말 안 할 거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할머님들의 모습이 아닌 더 많은 이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숨길 수밖에 없도록 만든 건 결국 우리 사회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기도 했고. 노인 종분의 옆집에 살고 있는 소녀 은수(조수향)도 사회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어딘가 영애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나정 :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던 그 잔혹한 시대에도 서로 의지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살았던 아이들이 바로 영애와 종분이다. 은수 또한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아이다. 보호자도 없고, 월셋방에서도 곧 쫓겨날 처지다. 하지만 가출한 아이들을 집에 들여 숙박비를 받는가 하면 그것도 여의치 않자 결국 유흥업소에 나가기도 하는 등,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영애와 종분, 그리고 은수는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닮은 부분이 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
이다혜 :<눈길>은 위안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 기존의 위안부 소재 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른 지점이 있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피해자들이 겪었던 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은유적인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이나정 : 작가님과 약속한 게 있다. 폭력적인 장면을 스펙터클한 영화적 장치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실제 피해자들이 겪었던 일은 더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고 해도 이 영화의 목적은 그 아픔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께서는 여전히 아린 상처를 품고 살아가시는데, 그 상처를 볼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성인 여배우가 연기하게 되면 혹시라도 성적인 느낌을 줄까 봐 처음부터 미성년자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물론 막상 10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보니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미성년자 배우와 함께 성적인 장면이나 폭력적인 장면을 촬영할 경우 어떻게 해야 배우들에게 2차적인 피해가 가지 않는지 해외 사례와 매뉴얼을 찾아보고 열심히 공부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 두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일본군과 위안부 아이들이 함께 있는 장면은 따로 찍은 뒤 이어붙였다. 군인들이 사용한 콘돔(당시에는 ‘사쿠’라 불렀다)을 모아서 손빨래하는 장면도 소품 없이 대야에 물만 받아놓고 촬영했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 한 명이 순수한 조선 소녀 한 명을 짓밟은 사건이 아니다. 개인과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군국주의의 폐해를 조명해야 했기 때문에 일본군은 가능한 한 실루엣이나 조각난 모습으로 등장시켰다. 특히 한복을 입은 꽃 같은 소녀가 일본군에 의해 더럽혀진 구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했는데,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부러 민복을 입혔다. 고증에 의하면 실제로도 한복보다는 민복을 많이 입었다고 하더라. 많은 분께서 위안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간접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묘사했다고 말씀해주시지만, 솔직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옥 같은 위안소에도 일상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잔인한 시간 속에서도 어렵게 구한 주전부리를 나눠 먹고, 수다를 떨고, 책을 읽기도 하며 일상을 살아냈다. 하지만 나는 그 평범한 일상이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린 소녀들이 사쿠와 모포를 소독하는 모습, 허리띠를 풀고 웃으면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일본군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이다혜 전적으로 동의한다. 성적 가해가 이뤄지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장에서도 남성 스태프와 여성 스태프의 견해가 갈렸다. 여성 스태프들은 허리띠를 푸는 듯한 동작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남성 스태프들 사이에선 너무 정제해서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이다혜 : 영애가 임신하자 유산시키기 위해 강제로 약을 먹이는 장면이 특히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나정 : 실제로 위안부는 인간이 아닌 군수품으로 여겨졌고 군수품으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바로 소각 처리됐는데,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심한 일을 많이 당했다. 영애가 약을 먹는 장면을 굳이 넣은 이유는 영애와 종분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종분에게는 살아 돌아가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고, 그것을 위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영애는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거니?”라며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한다.
이다혜 :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돌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살아 남아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거라면 영애와 종분은 서로에게 바로 그 이유가 됐다. 그 부분에서 「소공녀」를 활용한 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나정 : 종분은 아마도 첫사랑일, 영애의 오빠가 선물한 「소공녀」를 몰래 간직해왔다. 그리고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영애에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영애가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내놓은 방법이었을 거다. 실제로 그때 「소공녀」가 출간됐고 널리 읽혔다고 하는데, 이들이 처한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유럽 어딘가의 이야기가 잠시나마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일종의 판타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다혜 : 그런 면에서 보면 결국 <눈길>은 피해자인 두 여자아이가 서로를 구명하는 흔치 않은 서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끈끈한 연대는 훗날 노인 종분과 은수의 관계로까지 이어진다. 이는 어쩌면 여성 감독이 연출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강점인 것 같기도 하다.
이나정 : <눈길>을 이끌어가는 중심 축은 어린 종분과 영애가 겪었던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작가님은 한발 더 나아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연대의 이야기에 힘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나도 그 부분에 충분히 공감했고. 언젠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 한 분이 과거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손을 내밀며 “당신의 아픔을 안다. 우리 그래도 함께 살아보자”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처럼 역사로부터,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이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를 조명하려 노력했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비극은 되풀이된다
이다혜 : 남성 캐릭터의 역할은 어떻게 설정했나? 영애가 위안소에서 탈출을 결심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어린 일본 병사 같은 경우 더 비중 있는 역할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나정 : ‘가미카제’로의 전출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미카제로 가게 된 소년병에게는 20일 정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는데, 그동안 위안소에 틀어박혀 위안부 소녀와 함께 울기도 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나눈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그런 상황을 떠올리며 어린 일본 병사 역할을 구상했다. 그런데 이 소년병에게 좀처럼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병이 영애와 종분의 탈출을 도와주는 장면을 간단히 축약해버렸다. 작은 가해자이자 거대한 피해자인 이 소년을 내가 소화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참고로 드라마 작업을 할 때도 주위에서 “어쩌면 이렇게 남성 캐릭터를 도구적으로 이용하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성 캐릭터들이 필요한 역할만 한 뒤 빠르게 사라져버린다고(웃음).
이다혜 : 연속극에서는 남성 캐릭터가 소모적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실장님’ 아니면 존재의 가치가 없는(웃음). 그런데 그건 사실은 그간의 남성 중심 서사에서 여성들이 소모되던 방식이기도 하다. (이나정 드라마의 주 타깃이 여성 시청자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성 중심적인 관점과 인물, 이야기가 다뤄지는 것 같다.) 캐스팅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없었나?
이나정 : 각본을 쓸 때부터 종분이는 누가 봐도 향기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도도한 영애도 새론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도 두 배우가 흔쾌히 수락해줬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면 본인들이 하고 싶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고 했다. 원래 학창 시절에 애국심도 강하고 정의감도 더 타오르지 않나. 두 배우는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이 문제를 널리 알리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다혜 : 김향기 배우와 김새론 배우는 종분과 영애 그 자체로 보일 만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감독님의 디렉션이 궁금할 정도였다.
이나정 : 솔직히 별다른 디렉션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종분이가 엄마와 동생을 부르며 우는 신이 첫 촬영 장면이었는데, 나는 지옥 같은 위안소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종분이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향기가 예상보다 너무 목놓아 울더라. 그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영화를 완성하고 보니 이해가 됐다. 그 끔찍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씩씩하기만 했던 종분이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순간이자 참았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장면이었던 거다. 연출자인 나보다도 향기가 종분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웃음). 반대로 영애가 죽는 장면을 연기할 때의 새론이는 내 예상과는 달리 너무 차분했다. (이다혜 개인적으로는 <눈길>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 중 하나가 영애의 죽음 신이다.) 죽음을 앞둔 영애의 모습이 너무나 고고하고 아름답고 처연했다. 조금 더 아파할 줄 알았는데, 새론이는 죽어가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마지막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메시지를 주고 떠나는 영애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줬다. 역시 잘하는구나, 감탄했다.
이다혜 :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 특히 해외 관객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
이나정 : 2015년 이탈리아상 TV드라마-TV영화 부문 본선에 진출했을 때 위안부 문제가 사실이 아니라며 NHK에서 반대하는 성명을 낸 일이 있었다. 그때 심사위원장님이 한·일 입장에서 이 영화를 바라보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도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인신매매 사건이 발생하고, IS에서 성노예로 살던 소녀들이 집단자살을 하는 등 이런 문제들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고. 동시대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그 말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이다혜 : 결국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비극은 되풀이된다. 우리도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거대한 비극이 있을 때 그 문제에 대해 끝까지 파헤치고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덮어두고자 하는 흐름이 분명히 있다. <눈길>은 그것에 대항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이나정 :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모든 약자의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길>이 관객 분들께 이런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일시 | 2017년 4월 4일(화)
참석자 | 이나정 감독, 이다혜 「씨네21」 기자
기록 및 정리 | 조아라 「영화천국」 편집부
사진 | 권영탕 포토그래퍼
촬영 협조 | 까사밀 압구정점 www.hotellacas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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