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2010

by.홍효숙(BIFF 프로그래머) 2011-08-03조회 2,222
청계천 메들리

<청계천 메들리>는 표면적으로는 일제 강점기에 고철 공장을 운영하시던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감독은 어릴 적부터 반복되는 악몽의 원인을 찾아 서울 청계천 금속공방 뒷골목을 헤매고, 그 원인을 일본에서 고철 공장을 하다 해방 후 청계천에서 자리잡은 할아버지에게 두면서 자신의 뿌리를 할아버지에게서, 할아버지의 뿌리를 한국 근대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는 한 축으로는 청계천에서 실패한 감독의 할아버지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소환한다면 다른 한 축으로는 현재 청계천을 거점으로 살아가는 ‘청계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청계천의 소멸을 응시한다. 작은 부품에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 공간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성공의 공간이자 실패의 공간이자 악몽의 공간인 것이다. 

영화는 청계천이라는 공간을 거점으로 쇠의 다양한 ‘변주’를 메들리한다. 쇠의 이미지에서부터 시작한 영화는 청계천 골목길을 따라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으로 이어지고, 그가 상주한 청계천은 다시 감독의 악몽과 연동되어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로 넘어간다. 
일종의 메들리처럼 끝난 듯 시작하고, 멈춘 듯 이어지고, 반복 속에 변주되는 되어 조각들의 파편이자 동시에 전체인 모습으로 순환하고 있다. <청계천 메들리>의 청계천과 쇠는 역사와 기억임과 동시에 우리의 순환하는 삶과 닮아 있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인 쇠를 이미지와 근현대사의 공간으로 청계천을 감독 개인의 사적인 흐름으로 풀어간다. 이는 영화 중반부의 나레이션에서 드러난다. “…공교롭게도 이 곳 (청계천)은 할아버지가 실패한 장소네…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운명일까. 남의 실패가 내 성공으로 이어지고, 항상 패배감이 맴도는 곳을 쫓아다니며 죽음을 선포하는 것…” 
이렇게 영화는 청계천을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적 공간에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그리고 다큐멘터리 연출가 자신의 작업 이야기로 넘나들고 있다. 다시 말해, 쇠의 이미지를 통해 쇠의 표면에 반사된 ‘나’의 이미지를 반추하는 방식이다. 

공간을 통해 기억과 역사를 메들리하는 <청계천 메들리>는 영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확장한다. 청계천의 녹슨 철과 빠른 산업화 속 기계 이미지를 악몽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면서 이미지, 사운드, 내러티브 구조 모두에 실험성을 가미한다. 또 한편으로는 공적 담론으로 존재하는 상징적 공간과 공적 기억을 사적이고 주관적인 흐름으로 펼치면서 2000년대 이후 한국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의 영역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