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아스트]2. 리우자인 Jiayin Liu 고요한 테이블 위에 담긴 우주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3-03-11조회 3,607

그런 다음 나는 중국에서 한 명을 선택하고 싶다. 21세기에 등장해서 이미 거장이 된 왕빙(王兵)은 여기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 그 대신 이 자리에 리우자인(劉伽茵)을 방어할 생각이다. 나는 맨 처음 이 귀여운 소녀가 23살에 찍은 <옥스하이드> 1편을 보고 어리둥절할 만큼 괴이하게 생각되었다. 등장인물은 리우자인과 그녀의 부모가 전부다. 아버지는 소가죽 가방을 만들어 파는데 도무지 장사할 마음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아버지와, 아버지가 못마땅한 어머니와, 어머니의 편을 드는 리우자인이 서로 소소하게 말싸움을 하는 게 영화의 전부다. 이걸 일상생활이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할 만큼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으로 밀어붙이는 이 영화는 2.35 사이즈로 1시간 50분 동안 23개의 쇼트로 진행된다. 리우자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런 다음 다시 4년 후에 <옥스하이드Ⅱ>에서는 2시간 15분 동안 고작 9개의 쇼트로 부모님과 함께 리우자인이 만두피를 빚는 이야기를 찍는다. 그들은 종종 말다툼을 하고 의견이 갈리며 서로를 비난하면서 하나씩 빚어간다. 정말 다른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당신도 중국식 만두를 만들 수만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그냥 그 과정만을 찍는다. 여기에는 어떤 갈등도 없고, 그렇다고 이걸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리우자인의 가정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때 리우자인은 어느 순간 마법을 만들어낸다. 좁은 방 안에서 어떤 다른 장면도 없이 오로지 이 한정 없을 것만 같은 만두 빚는 장면을 보다가 문득 이 작은 테이블 위에 중국인들이 살아가는 우주가 담기는 것만 같은 놀라운 인상을 받게 된다. 그렇다. 식당 테이블이란 그 나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이며, 방식이며, 질서이며, 우주인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고 오해했고, (하지만 매우 기괴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다) 리우자인을 만난 다음 이 영화가 극영화의 방법으로 찍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참으로 신기한 극영화다). 리우자인은 이제까지 우리가 본 적 없는 미니멀리즘 영화를 발명한 것이다.

종종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항상 새로운 시네아스트들은 그 죽음 속에서 태어나 불사조처럼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켜왔다. 아마도 많은 이름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이 두 사람의 다음 영화가 빨리 보고 싶다. 그들은 더 멀리 점핑할 것이다. 그때 단지 그들의 영화가 아니라 21세기의 영화가 그만큼 더 멀리 나아갈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말소의 작가주의를 방어하고 싶다.

필자 추천작
<옥스하이드 II>(2009)
리우자인의 가족은 만두를 먹기 위해서 만두피를 만들 생각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책상에 앉고 (이 영화의 감독이자 촬영, 녹음, 편집을 한) 리우자인도 그 곁에 앉는다. 그런 다음 만두피를 빚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만두피를 제대로 빚는 것일까. 리우자인은 책상에 자를 들고 오고 어머니는 비웃으며 자기 손으로 빚기 시작하고 아버지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잔소리를 해가며 만두피를 빚기 시작한다. 영화 전체를 그들의 작은 집 작은 방 안의 책상에서 모두 찍었다. 화면 사이즈 2.35의 시네마스코프로 할 수 있는 한 넓게 잡은 이 방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롱 테이크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중국인들의 삶의 우주가 펼쳐지는 한 방식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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