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영화]한국 청춘영화의 아이콘, 레전드가 되다 한국 청춘스타의 효시, 신성일

by.이길성(영화사연구자) 2011-03-11조회 2,878

영화가 대중문화의 정점에 있었던 1950년대 후반기와 1960년대는 사회적으로는 근대화라는 절대적인 명제가 모든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영화는 시청각적 체험으로 근대적인 것 혹은 도시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미리 경험하게 해주는 훌륭한 매체였다. 박봉의 샐러리맨이지만 주인공들은 종종 응접실과 침대가 있는 양식 생활을 하고 있으며, 상류층 자녀들은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스릴을 즐겼다. 명동의 쇼윈도는 유럽과 미국 제품으로 가득하고 늘씬한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은 쇼핑백을 들고 다니며 생경한 물건을 척척 사들었다.

청년들의 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아낸 청춘영화

영화에서 보이는 이 모든 장면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서울이 전시하고 있는 도시문화와 소비문화는 영화 관람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개봉관들이 쇼핑과 문화의 중심지인 종로와 명동에 포진하고 있었던 것은 이러한 욕망과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영화는 대중의 욕망을 재빨리 포착하지만, 또한 영화가 가진 대중성과 통속성은 사회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들을 안전한 상업적인 서사로 전환시킨다. 1950년대 후반기 영화가 포착한 여성의 욕망은 아프레걸과 미망인의 문제로 우회되었고, 1960년대 중반 청년들의 반항과 사회에 대한 저항은 청춘영화라는 장르로 외화되었다. 그 욕망들의 존재를 가시화할 수 는 있지만 기성세대의 인내를 넘어서는 욕망은 제어되고 포박 당한다. ‘자유부인’은 결국 남편에게 용서를 빌며 무릎을 꿇고, 사회적 용인의 테두리를 벗어난 여인들은 자살이나 사고 같은 극단적 방법으로 처벌되었다. 마찬가지로 계급의 벽을 넘어서려는 사랑은 둘의 자살로 끝을 맺고 눈부시게 높이 솟은 빌딩을 한걸음에 올라서려 했던 청년은 완공되지 않은 건물에서 떨어진다. 이렇듯 한 시기를 풍미했던 멜로드라마나 청춘영화들은 욕망의 유혹적인 전시와 기존 윤리의 고수라는 이중적 잣대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청춘을 제목에 포함시키고 기성세대에 반항하며 질주하는 청년들을 그려낸 작품은 1950년대부터 꾸준히 등장했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까지 멜로드라마나 홈드라마의 자장 내에서 지나치게(?) 발랄한 여대생이나 불운한 환경으로 인해 반항하는 청년으로 한정되어 있던 신세대가 본격적으로 ‘청춘영화’라는 명확하게 구획되는 장르를 통해 인식된 것은 김기덕 감독의 <가정교사>(1963)였다. 이후 같은 일본 원작자의 작품인 <청춘교실>(김수용, 1963)을 통해서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한 청춘영화는 1964년 가장 흥행에 성공한 <맨발의 청춘>을 제작하면서 이 시기 가장 인기 있는 장르가 되었다. 그러나 흥행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비평계에서 청춘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탐탁지 않았다. 일단 청춘영화의 시작을 알린 <가정교사>와 <청춘교실>은 당시 한국에서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일본작가 이시자카 요지로(石坂洋次리)의 소설이었다. 또한 <가정교사>와 더불어 <맨발의 청춘>의 원작인 <진흙속의 순정>은 두 작품 모두 태양족 영화의 거장 나카하라 코우의 작품이었다. 일본영화의 표절시비가 한창 논란이 되었던 그 시기에 이 작품들은 일본색에 대한 논쟁거리의 주요한 타깃이 되었다. 또한 <청춘교실>을 필두로 등장한 스포츠카의 질주, 바에서의 광란의 댄스파티, 무절제한 생활과 파격적인 성모랄 등은 한국적 현실이 제거된 무국적적인 장면이라는 냉소와 힐난을 들었다.

계급 격차의 박탈감을 말하다

1964년 청춘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이 등장했고 거리의 건달이자 반항아인 두수의 이미지는 이전의 어느 작품보다 강렬하게 관객의 관심을 끌었다. 거리의 고아인 두수의 건들거리며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한 염세주의적 태도의 반항은 당대 대중을 사로잡았다.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한 달 용돈이 만원이 넘는 호사스러운 대학생은 아직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지 못했지만, 두수가 절감하는 데이트 비용도 없는 가난과 더불어 클래식 음악감상의 불편함과 양식먹는 법에 대한 무지 등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계급격차의 위화감은 당시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었다. 그것은 성공을 꿈꾸며 도시로 올라온 당시의 수많은 청년의 표상이기도 했고 또한 도시가 그들에게 안겨준 실패와 좌절에 대한 비분이기도 했다. <맨발의 청춘>을 기점으로 1965년과 1966년의 청춘영화는 건달이나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성공을 꿈꾸는 가난한 대학생의 일그러진 욕망을 담는 작품이 주조를 이루었다. <초우>의 철수는 자동차 정비사이지만 사장아들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불란서 대사집의 식모인 영희는 자신을 대사의 딸이라고 믿는 철수의 오해를 굳이 바로잡지 않는다. 결국 영희가 불란서 대사집의 식모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꿈이 한순간 무너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 철수는 폭력적으로 그녀의 인생을 망가뜨린다. 이러한 결말은 이전의 청춘영화에서 순애에 대한 낭만을 버리지 않는 것에 반해 충격적이다.

이처럼 청춘영화는 196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의 반항을 사회적인 문제로 연결하는 작품이 주조를 이룬다. <학사주점>이나 <적자인생>에는 대학생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출세나 부에 대한 집념과 그 과정에서 보이는 빗나간 욕망은 <초우>나 <맨발의 청춘>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절망에 빠뜨린다. 그리고 후반기 청춘영화에 등장하는 건달이나 깡패로 표현되는 하층계급의 청년들은 계층적인 박탈감과 출구가 없는 도시의 냉정함에 저항하다가 파멸한다. 사회에 편입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불러낸 결말이 더욱 비극적이다.

1960년대 청춘영화의 중심, 신성일

청춘영화가 한국사회의 가장 격정적인 시기의 젊은이들을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성공은 대부분 신성일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이전까지 욕망과 왜곡된 집념의 인물들은 대부분 악인이었고 처벌에 대해 대중은 냉혹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청춘영화의 독보적인 주인공 신성일은 자신의 욕망을 집요하게 추구하지만 또한 그의 모습은 연민을 느끼게 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감성은 전 세대의 스타배우였던 김진규나 최무룡, 동시기 활약했던 신영균에게서는 배어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악인이지만 연민을 느끼게하는 역할은 신성일 외에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경이적인 경쟁을 뚫고 신필름의 신인배우 모집에 합격한 것은 본인의 회고에서처럼 수많은 후보자 중에서 단번에 그의 외모의 출중함을 알아본 이형표 감독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로맨스 빠빠>(신상옥, 1960) 등 몇몇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하던 그가 확연하게 개성을 발휘한 것은 극동흥업의 <아낌없이 주련다>(유현목, 1962)이었다.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무려 열한 살 차이가 나는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청년을 맡은 신성일은 동시기 다른 남성스타에게서는 볼 수 없는 발랄함과 육감적인 매력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청춘영화에서 구축한 그의 아성은 가족의 든든한 큰아들이나 고뇌에 싸인 지식인을 주로 연기한 김진규나 반항적인 이미지는 있지만 역시 인텔리적 이미지를 버리지 못하는 최무룡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들의 연기가 오랜 무대생활 속에서 나온 연기자로서의 표정이 있다면 신성일은 연기 경험이 전무하지만 자신이 가진 생생한 청춘의 감성을 끌어올리는 배우였다.

더구나 청춘영화는 일종의 새로운 문화의 표본이었다.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당대 젊은이들의 문화는 스포츠카와 댄스홀 같은 것으로도 묘사되었지만,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도전적인 스포츠 머리, 하얀 가죽점퍼와 몸에 달라붙은 청바지, 그리고 날렵한 구두 같은 소품 속에서도 드러난다. 제임스딘의 영향임이 분명한 하위문화적인 패션과 소품은 신성일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성일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분위기는 단순한 유행이나 패션이 아니라 기존 가치와 체계를 부정하는 태도가 만들어낸 저항의 상징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또한 넓지만 정체적인 느낌와 권태로 둘러싸인 요안나의 집과 다르게 신성일의 협소한 아파트는 핀업걸과 말론 브랜도의 사진으로 도배되어있으며, 벽을 이용한 자투리 공간이 침대가 되고 화장대가 되고 부엌이 되는 유머를 활용해 가난과 젊음의 경쾌함을 묘하게 공존시킨다.

그가 가진 배우로서의 장점은 단순히 그가 잘생긴 젊은 배우라는 점에만 있지 않다. 신성일에게는 여타 배우가 갖지 못한 도발적인 성적 매력이 있었다. 이것은 자신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아낌없이 주련다>에서부터 증명되었다. 연상의 여인이 운명적으로 끌리는 그의 육체적 매력은 이전의 남성스타와는 다른 지점에 놓여 있었다. 그가 스타 아이콘으로 활약했던 청춘영화가 성적 표현 수위(그것이 대사거나 장면이거나)로 자주 논란을 빚었다는 것과 제목에 ‘육체’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새로운 영화가 내포하는 욕망의 부분을 드러낸다.

신성일은 청춘영화를 통해 성장했고 스타가 되었으며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청춘영화는 기성세대에 도전하는 새로운 영화였지만 정치적 진보성이나 예술적 자의식을 가진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가 드리운 음영과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인식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그들이 내지르고 싶은 모든 욕망과 분노를 신성일이 대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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