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세기를 넘는 강렬한 진동 <바보 선언>(이장호, 1984)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1-01-11조회 3,217
바보 선언

90학번인 나에게 1980년대는, 분명 살긴 했지만 미지의 시간대였다. 그 10년 동안 나는 학생이었고, 거리보다는 교실에서 세상을 이해했다. 몇몇 사건이 기억나긴 한다. 계엄령으로 집 근처 길에 단 한 사람도 다니지 않는 날이 있었고, 중학교 땐 여의도광장에 나가 외국 순방길에서 돌아오는 대통령을 향해 태극기도 꽤나 흔들었다. 고등학교 땐 인근엔 대학교가 있어서 데모 구경을 숱하게 했고, 집 앞 골목에서 백골단에게 두들겨 맞는 대학생을 보기도 했다. 고3 땐 전교조에 가입한 국어 선생님과 윤리 선생님이 잘렸다. 하지만 이 모든 기억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1980년대라는 ‘시대’를 모르고 살았다.

내가 <바보 선언>(1984)이라는 영화를 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제목은 어렴풋이 들었지만, 비디오 대여점 한구석에 두꺼운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그 영화를 선뜻 집어 들 용기는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왜 그 영화를 선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영화, 앞부분에 대사 안 나오는데 그거 테이프가 잘못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원래 그런 거니까 괜히 다시 가져오지 마세요.” 대여점 주인 아줌마의 충고가 생각날 뿐이다.
별 기대 없이 만난 이장호 감독의 <바보 선언>은 나에게 이미 완료된 1980년대를 비로소 알려준 영화다. 나에게 그 영화는 파격적인 다큐멘터리이자 충격 영상이었다. 영화는 그 시작부터 ‘깬다’. 펜과 크레파스로 거칠게 그린 그림, 어린이(이장호 감독의 아들인 이누리)의 내레이션, 국악과 전자음이 뒤섞인 사운드, 그리고 이장호 감독이 직접 출연한 첫 장면. 그는 옥상 위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이때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신음 소리처럼 감독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활…동…사…진…멸…종…위…기….” 이 영화는 감독이 자살하는 심정으로 만든 영화였고, 단 5분 만으로도 나는 뒤통수를 강타당한 듯한 얼얼함을 느꼈다.

<바보 선언>에서 어떤 스토리를 추출해내려는 것만큼 ‘바보’ 짓도 없을 것이다. 김명곤이 맡은 동칠이(영화 내내 ‘똥칠이’로 발음되는)와 혜영이(이보희) 그리고 육덕이(이희성)가 남한 사회를 횡단하는 <바보 선언>은 기승전결을 무시하는 ‘공간의 영화’다. 옥상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카메라는 이화여대 앞을 거쳐 창녀촌을 지나 청량리 역 앞으로 달려가고, 탁 트인 바닷가에서 어두컴컴한 고급 요정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혜영의 죽음을 맞이한다. 동칠이와 육덕이는 푸른 들판에서 혜영이의 진혼제를 지내고, 여의도광장에서 몸부림치듯 춤을 춘다.

<바보 선언>을 다시 보면서,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이 영화가 일종의 SF(라는 표현이 조금 그렇다면), 적어도 ‘미래적 관점의 영화’라는 것. “옛날 한 옛날 20세기가 끝날 무렵 우리나라에 동칠이라는 바보 같은 어른이 살았습니다”라는 어린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바보 동칠이와 육덕이 같은 훌륭한 조상이 있어서 우리나라는 행복합니다”라는 다소 역설적인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이 영화는 21세기, 어쩌면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는 1980년대 풍경이다.

흥미로운 건 2010년에 만나는 1984년 영화 <바보 선언>이, 사반세기가 넘는 시차를 두고 강렬하게 진동하며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진정한 클래식이다. 여전히 옥상은 죽음의 공간이고, 자본주의는 그 천민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동칠이와 육덕이는 비오는 날 창녀촌의 어느 담벼락 밑에 추레하게 쪼그려 앉아 있는데, 그 정서가 낯설지 않은 건 우리가 지금도 가난한 자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의도광장에서 그들의 시선에 포커스 아웃 상태로 잡히는 국회의사당의 모습은, 마치 지금의 정치 상황을 예언이라도 한 듯해서 씁쓸하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스포츠에만 열광하고 영화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시대, 아니 이젠 스포츠 경기처럼 영화의 스코어에만 관심을 가지는 ‘활동사진 멸종위기’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바보 선언>이 심금을 울리는 또 하나의 요소는 ‘소리’다. 당시 한국 사회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뒤흔들던 전자오락의 사운드는 국악이나 각종 효과음과 몽타주를 이루며 카오스의 세계를 만든다. ‘새타령’과 팝은 뒤엉킨다. 식민지 가요 ‘감격 시대’의 반어법, “달캉달캉~”으로 시작하는 구전가요의 은유법, 정처 없는 그들의 뒷모습에 깔리는 국악가요 ‘어디로 갈거나’의 직유법은 거의 대사가 없는 이 영화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공간인 여의도광장에서 장엄한 찬송가 ‘어느 민족 누구게나’가 흐를 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이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소년의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고, 관객의 감정도 한 음씩 고조된다.

<어둠의 자식들>(1981)의 속편을 만들려고 하다가 사전 심의에서 제목과 시나리오의 전면 수정 지시를 받았고, 제작 편수를 채워야 수입 쿼터를 받을 수 있기에 한 달 안에 만들어야 했던 영화. 그래서 제목도 엉터리로, 시나리오도 엉터리로 써서 일단 심의를 통과한 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영화 문법을 정반대로 뒤집어 만든 영화. 배우들을 청량리역 광장에 풀어놓고 카메라는 숨겨놓은 채 촬영했던 영화. 망가진 시대에 일부러 망치려는 듯 만든 <바보 선언>은 형식과 내용 모두 저항하는, 한국영화사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러닝타임이다.

언젠가 이장호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이 영화에 대해 “전두환 독재 정권과 내가 함께 만든 영화”라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면서 10여 년이 흐른 후에 만든 <천재 선언>(1995)에 대해 “<바보 선언>에 절실한 저항의 에너지가 있었다면, <천재 선언>은 강력한 동기가 없이 <바보 선언>을 추억하는 영화였다”며 반성했다. 절실한 심정으로 선언했던 영화 <바보 선언>. 아마도 이토록 절규하는 영화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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