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 감독의 <방범대원 용팔이> (1976) 우리의 애환을 대변했던 사나이를 찾아서

by.오승욱(영화감독) 2010-05-10조회 1,944
방범대원 용팔이

찬바람이 부는 한밤중의 종로 뒷골목. 한복 저고리를 입은 사내가 골목의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나가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온 용팔이인데 말시, 여그 종로 바닥에서 제일 센 놈이 뉘기여?” 하고 소리를 지른다. 종로 바닥의 주먹깨나 쓰는 깡패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저건 또 어디서 굴러온 개뼉따구야?” 하며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었다가 용팔이의 무쇠주먹 한 방에 나뒹군다. 의기양양해진 용팔이 또 누구 없느냐고 으스댄다. 이때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나선다. 종로바닥의 황제, 김두한이다. 싸움이 시작되고 막상막하. 하지만 검은 가죽장갑을 낀 김두한이 목장갑을 낀 용팔이보다 조금 더 셌다. 종로 거리에 큰 대자로 뻗은 용팔이를 김두한이 일으켜 세우자, 용팔이 깨끗하게 자신이 졌다 인정하고 김두한을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한다. 김두한은 껄껄 웃으며 좋은 동생이 생겼다며 좋아한다.

김두한의 영웅담을 그린 <팔도 사나이>의 한 장면이다. 이렇게 1960년대와 70년대 초를 주름잡은 영웅이 한 명 탄생했다. 1960년대 중반, 저 멀리 이탈리아에서 만든 웨스턴에서 이상하고 야비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놈이 주인공으로 나선다. 그가 바로 목에 걸린 현상금만 수천 달러이고, 사기, 강간, 좀도둑, 살인,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범죄란 범죄는 다 저질렀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가난한 주인공 일라이 워락이다. 이 룸펜 프롤레타리아 캐릭터가 이탈리아 웨스텐의 새로운 주인공 캐릭터로 등극해 수많은 아류를 만들어내다가 결국 <석양의 갱들>의 로드 스타이거에서 정점을 찍고 사라졌듯이, 1960년대 말, 대한민국에서도 멋진 주인공 김두한(장동휘)를 제치고, 전라도에서 맨주먹 하나로 올라와 구수한 사투리를 입에 담고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하는 부리부리한 눈의 사내답게 생긴 용팔이 박노식이 종횡무진 활약을 시작한 것이다. <팔도 사나이>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용팔이는 <돌아온 팔도 사나이>에서는 아예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번에 등장한 용팔이는 더 이상 깡패가 아니다. 그는 개과천선해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개발도상국의 험난한 시기를 땀을 흘리며 온몸으로 살아내려는 그런 주인공으로 탄생한 것이다. 용팔이는 지난날 주먹으로 살아가던 과거를 씻어버리고 올바르게 살고자 굽신거리고, 참고 또 참으며 가난한 아내와 살 지상의 방 한 칸과 내일 아침에 먹을 멸치 대가리와 꽁보리밥 한 덩이를 위해 동대문에서 신촌 서강대까지 사과 상자를 짊어지고 아현동 고개를 오른다. 전라도에서 맨주먹, 맨발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서울로 올라온 20대의 용팔이는 눈 감으면 코를 베어간다는 그 무서운 서울에서 성공했다는 그 누군가의 말을 믿고 굴비를 가져와 팔려다 사기를 당하고, 먼저 올라온 고향 후배를 찾아가면 그는 세탁소의 주인이 아니라 기껏 종업원일 뿐이고, 잘 곳이 없어서 세탁소 다림판 위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맨주먹으로 왔다>), 택시 운전사가 되기도 하고(<운전수 용팔이>), 유령회사에 취직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신입사원 용팔이>). 그들은 고향 땅이 보일까 남산 위에 올라 남 몰래 눈물을 흘리며 억척같이 맨 몸뚱이 하나로 1970년대를 살아갔던 것이다.

70년대 초 쏟아져 나온 용팔이가 주인공인 영화들은 팔도 사나이 시리즈, 용팔이 시리즈로 거듭 만들어진다. 급기야 <예비군 팔도 사나이>에서는 박노식이 아닌 남궁원이 용팔이가 되어 석양이 물드는 지평선에서 예비군 군복을 입고 트랙터를 타면서 산업 역군이 되어 우리도 잘살 수 있다며 희망에 차 달리기도 하고, 맨주먹 시리즈로 좌충우돌하기도 한다. 용팔이 시리즈가 뜸해질 1970년대 중반에 등장한 영화가 바로 <방범대원 용팔이>다. 언제나처럼 용팔이 박노식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포스터의 전면에 나선 이 영화는 대학생들이 등장해 시대의 암울한 공기를 담아내는 청년문화의 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별들의 고향>이 공전의 히트를 날리고, 김두한 시리즈의 이대근이 새로운 액션 스타로 등극한 무렵, 용팔이 영화들이 자취를 감춘 그 어느 날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등장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 역시 <방범대원 용팔이>의 포스터를 보고는 “에이, 아직도 용팔이?” 하고 피식 웃으며 얼마 전 동네 골목길에서 술에 취해 방범대원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방범비 제대로 내라며 온 동네를 상대로 싸움을 걸어 한 30분 동안 노래도 하고 오줌도 싸고, 웃기도 하다가 제풀에 지쳐 사라져버린 방범대장 아저씨의 외설스럽게 새하얀 상반신을 생각했던 것이다. 영화에서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보려던 용팔이는 범죄에 말려들어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고, 죗값을 치른 후 그는 제2의 개과천선을 하고 거리로 돌아온다. 그는 낮에는 연탄배달, 밤에는 방범대원을 하며 서울에서 자기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언제 적 용팔이인가? 그 5년 사이에 이미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1960년대 말 서울로 올라온 사내들은 이제 판잣집에 단칸방 하나라도 마련해서 한숨을 돌렸지만, 이후에 올라온 새로운 세대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는 창수와 버스 안내양을 하다 한 팔을 잃고 창녀촌으로 흘러들어간 비운의 여인 영자였다(<영자의 전성시대>). 수많은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들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해 서울에서 자리 잡기 위해 각성제를 먹으며 공장에서 일하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용팔이 박노식은 이 영화 다음에 만든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 이후,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은막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몇 년 후, 1983년. <돌아온 용팔이>로 다시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용팔이 박노식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서울로 돌아온 사내로 출연한다. 용팔이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196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 무일푼 남성들의 욕망과 분노, 좌절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가난한 남성들의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나의 아버지와 삼촌들 역시 맨 주먹으로 서울에서 자리를 잡아 집 한 칸을 마련하고 자식들 공부시키고, 그러다 누구는 이민을 가고, 그랬던 것이다. 1970년대 말에 등장한 호스테스 영화들이 대한민국 여성의 수난사이듯이. 훼손 상태가 너무 심해서 복원 계획에서 밀린 <방범대원 용팔이>가 복원된다면 그 기념으로 용팔이가 주인공인 영화들만을 모아 상영해 그 고단했던 1960년대 말 70년대의 남성들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산에 올라가 운동을 하다보면 그 시절의 용팔이 세대 아저씨들이 아들 딸 낳아 잘 길러내고 이제는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운동기구를 서로 차지하려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그런 모습을 본다. 하하 참. 용팔이 아저씨들. 여전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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