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김수용을 기억하다 - 정지영 (only web)

by.정지영(영화감독) 2010-03-15조회 1,221
김수용

지난 2월 14일 설날, 매년 그랬듯이 나는 동료감독 몇 명과 함께 김수용감독님께 세배를 갔다. 이미 영상자료원의 원고 청탁을 받아놓은 터이기에 좋은 글깜이라도 얻어 볼까하고 슬그머니 여쭤보았다.

“감독님께서는 만드신 작품중 스스로 베스트5를 꼽는다면 어떤 작품들을 꼽으시겠습니까?”

남산 기슭 판자촌에 모여 사는 소위 삼팔따라지라 불리우는 월남한 피난민들의 애환을 그려 평가받은 <혈맥>,남편을 풍랑에 빼앗긴 바닷가 아낙네들의 운명을 처연한 영상미로 녹여낸 <갯마을>,소년 가장 이윤복의 일기를 토대로 아이의 역경어린 삶을 그려 전국을 울린<저 하늘에도 슬픔이>, 한국전쟁의 비극을 지리산 자락 산촌 여인들의 갈등에 집약시킨 <산불>, 실험적인 프래쉬백등 새로운 영상언어로 현대인의 무기력증을 그려낸 <안개>, 군부대 사격훈련장에서 나오는 포탄 파편을 수입원으로 살아가는 실향민의 비극을 그린<사격장의 아이들>등 60년대 작품들과, 70년대에 내가 조감독으로 참여한, 베트남 난민의 상실감과 비극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조명한 <가위바위보>, 허위의식과 체면의 굴레 속에서 피로감을 느낀 여류명사의 일탈을 그린 <화려한 외출>, 3대에 걸친 한국여성의 변화와 질곡을 미스터리 기법으로 쫓은 <사랑의 조건>등이 내 머리 속을 번개처럼 스쳐가고 있는데, 그런 내 머리 속의 연상을 차단이라도 하겠다는 듯 감독님께서 손부터 내저으셨다.

“모두 창피하고 부끄럽고...이제 제대로 하나 해야지!”

아무리 우문이었지만 뜻 밖의 대답이었다.

“이 사람아, 어떻게 딱 다섯 편만 뽑아내나, 다른 자식들 섭섭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내가 쑥스러워 머리라도 긁적였을텐데, 당신의 자식 109편에 대한 사랑을 한꺼번에 부정하다니...평소에 자랑을 자랑 아닌 유머로 신나고 재미있게 하시던 감독님 아니신가...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감독님의 계속되는 말씀을 듣고서야 나는 그 대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감독님께서는 오래전부터 두 편의 작품을 구상해 오셨다. 두 편 다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을 성적 본능을 통해 질문하는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즉, ‘모두 창피하고 부끄럽고’는 수식어였고, ‘이제 제대로 하나 해야지’에 방점이 있었던 것이다. 109편에 대한 부정은 당신이 기획하고 계신 새 작품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80대 청년 김수용.

그는 요즘도 새로 나오는 영화들을 꼬박꼬박 챙겨보며,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영화 트렌드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요즘 젊은 감독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는가, 이 시기에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표현할 새롭고도 적절한 영상언어는 어떠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있다. 일찌기 그의 젊음을 눈치챈 평론가 김영진은 <내사랑 시네마>(김수용감독 회고록) 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수용의 영화를 우리가 과거형으로만 묘사하는 것이 온당할까....그의 영화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줄 것도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원고를 김수용감독과의 추억담으로 채우기를 포기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내 사랑 시네마>에서 그가 쓴 머리글 마무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는 지금도 메가폰을 들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꿈에 시달리고 있다”

감독님! 그 꿈이 현실이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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