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받이>의 엔딩을 기억하시나요? 임권택, 1986

by.맹수진(영화평론가) 2010-03-16조회 5,290

혹시 영화 <씨받이>의 엔딩을 기억하는가? 아들을 빼앗긴 옥녀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스스로 목숨을 거둔 현장. 흰 적삼과 치마 차림에 팔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허공에 매달려 있는 그녀의 뻣뻣하게 굳은 몸. 그녀의 머리는 프레임 상단부를 경계로 화면에서 잘려져 있는데, 마치 프레임의 상단부 틀이 단두대의 칼날이 되어 그녀의 목을 내리치기라도 한 것처럼 관객에게는 허공에 매달려 미동도 않는 목 아랫부분만 보일 뿐이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등장한 이 충격적인 자살 장면은 자진(自盡) 형식을 취한 그녀의 죽음이 사실은 사회에 의한 타살이라는 것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나는 한국영화에서 이렇게 차갑고 충격적인 엔딩을 보지 못했다. 공포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공포영화의 물리적 충격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시각효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기를 낳자마자 어미 손에 이끌려 양반가에서 쫓겨나는 장면에 바로 이어 붙여놓은 이 자진 장면에는 관객에게 일말의 연민이나 감정을 추스릴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연출자의 비정한 손길이 확연하게 배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차갑기 짝이 없는 영화다. “헉!” 하는 비명이 새어나오기도 전에 서둘러 영화를 끝내버리는 결말에는 일체의 온정주의나 감정 과잉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감독의 결기마저 느껴진다.

1980년대의 임권택 감독은 그렇게 냉정했다. 포근하고 온화한 인상의 감독에게 이토록 차갑고 냉정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숨어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1980년대 임권택의 영화는 참으로 차가웠다. 비단 <씨받이>뿐 아니라 <길소뜸>처럼 송길한 작가와 함께했던 이 시기의 작품들에는 한결같이 암흑의 시대에 시퍼렇게 날 서 있던 임권택 감독의 내면 풍경이 잘 드러나 있다.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른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보다 이 시기의 영화들에 유독 끌리는 것은 그 엄격하고 차가운 인식을 거리낌없이 영상으로 풀어놓은 거침없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나는 1980년대 후반 이 영화를 처음 본 순간부터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엔딩에 대한 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렬했지만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오리엔탈리즘’의 느낌을 크게 뛰어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강수연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당시 유럽의 사회문제로 부각되던 대리모 문제와 운 좋게 맞물렸기 때문이지 전적으로 그녀의 연기 덕분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영화가 화제가 된 이유 역시 서구인들이 동양의 기이하고 야만적인 풍속에서 자신들의 사회문제를 읽어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말하자면 이 영화가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뒤로 몇 차례 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서서히 이 영화에 빠져들어갔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던 어린 여자아이가 성에 눈뜨는 과정을 어쩌면 이리도 경제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어쩌면 이렇게 냉혹한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전에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야 비로소 나는 이 영화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옥녀의 환하게 빛나는 얼굴. 인물들을 겹겹이 둘러싼 양반가의 장중한 건축물. 영화의 공간을 짓누르는 어둡고 습한 공기. 이 영화의 미장센은 ‘잔혹한 아름다움’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아름다움이 이렇게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는 것. 이 영화는 그 모순형용의 훌륭한 사례다.

거장이 되어 드라마에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기 시작한 임권택보다 일체의 온기를 제거한 채 냉정한 시선을 잃지 않던 80년대의 영화를 나는 더 좋아한다. 과거의 풍속으로 우회하는 순간에조차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대의 기운을 녹여낸 서릿발처럼 차가운 이 영화가 나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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