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 교수의 <사당동 더하기 22, 디렉터스 컷> 최초 공개 현장 달동네에 관한 22년간의 기록

by.민병현(한국영상자료원 경영기획부) 2009-11-06조회 1,031
<사당동 더하기 22, 디렉터스 컷> 최초 공개 현장

지난 9월 19일, 시네마테크KOFA에서 특별한 행사가 마련됐다. 빈민가족 3대의 삶과 일상을 무려 22년 동안 기록한 조은(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감독의 <사당동 더하기 22, 디렉터스 컷>을 상영한 것. 이 영화는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90분 버전의 <사당동 더하기 22>를 4시간 분량으로 재편집 것으로 시네마테크KOFA 특별상영회에서 최초 공개되었다. 상영 후에는 조은 감독을 초청,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진행됐고, 영화학도뿐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는 관객이 객석을 메웠다.

<사당동 더하기 22>는 애초 장시간 촬영을 목적으로 한 연구 프로젝트도, 빈민가정의 생애사를 관찰하기 위한 연구도 아니었다. 1983년 유니세프는 철거지역 아동에 대한 연구를 1년간 진행할 사람을 찾고 있었고, 당시 사회학자였던 조은 교수는 그 지역 아동들의 건강과 안전 등에 관심을 갖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은 교수는 그 지역의 아동들뿐 아니라 ‘철거지역’이라는 서울의, 나아가 한국 사회의 팽창사를 보여주는 공간에서 지내는 그들의 일상과 지역민들의 생애를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중간 연구 결과를 토대로 프로젝트 기간이 연장되었고, 조은 교수는 빈민지역 아동에 대한 관심을 넘어 이들의 주거 문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주거 문제가 해결된다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은 교수의 고민과 함께 사진과 동영상은 사당동을 떠나 상계동의 임대아파트를 얻게 된 한 할머니의 일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1980년대 초반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영상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조차 쉽게 구할 수 없었고, 녹취와 사진 촬영이 당시 상황을 기록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던 중 동국대학교 영화과 교수의 도움으로 촬영용 베타카메라를 지원받았고, 사회학과에서 촬영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촬영을 도왔다.

시작할 때만 해도 한 가족에 대한 인터뷰와 그들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 전부였지만 20년 넘게 꾸준히 축적된 자료들은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라고 하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는 우리 사회가 가족과 개인을 어떻게 속박하는지를 치밀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촬영을 하면서 조은 교수는 사회학 연구자로서 본인의 연구에 맞게 ‘철거가 잘 진행’된 것은 운이 좋았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면 ‘철거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기에 큰 딜레마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쌓인 영상과 사진자료들을 본인 연구를 위해서만 갖고 있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었고, 30~40분 분량을 편집해 학과 수업에 활용했다. 당시 이 영상의 제목은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다>였고, 두 번째 편집본의 제목은 사진이 리얼리티를 얼마나 반영하는지에 대한 관심 때문 때문에 <사진엔 가난이 없다>였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에 사전 제작 지원을 요청해 영화에 가깝게 편집했고, 이 영화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국회특별상영회를 거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전으로 다시 관객들과 만났다.

별도의 진행 없이 조은 감독이 단독으로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이렇게 처음 철거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친절한 설명에서부터 <사당동더하기 22>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진 관객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조은 감독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세심한 답변으로 관객들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빈민 문제 혹은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제안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조은 감독은 “우리 사회는 이미 많은 부분 다문화 가정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도록 포장되었다. 하지만 정작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가장 안 된, 그리고 다문화에 대해 훈련과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 없이 기본적인 욕망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다문화 가정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양극화에 대한 해결책을 이론적으로 대답할 수 있겠지만 해결책을 제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치밀하게 일상에 들어와 있는데 어느 순간 특정한 방법으로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나한테 묻기 보다는 영화를 보고 본인이 생각하는 것들을 느꼈으면 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교수라는 직책을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조은 감독은 불편한 점도 많았고, 연구 초반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시간이 지날수록 배려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아울러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나니 심지어 촬영을 맡은 학생이 카메라를 안가지고 갔던 적도 있다. 그들이 편해진 것도 있지만 친분을 유지하고 나서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미안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고 답해 많은 여운을 남겼다.

조은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내내 <사당동 더하기 22>의 영상과 시각효과는 이 영화를 보는 부차적 문제이며 영화를 보고 느끼는 시각과 방법론을 강조했다. 깔끔한 영상과 구성은 실력 있는 프로듀서와 방송작가에 의해 잘 구성되고, 편집될 수 있지만 연구자의 진지한 고민과 함께 빈민가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촬영했기에 그와는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장기간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조은 감독은 “사회학자의 호기심”이었다고 답했다. 이 호기심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4시간 분량의 편집본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삶과 사고, 이를 바라보는 인터뷰어의 질문과 시선은 몇 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또 반복되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촬영 장비와 촬영하는 사람들은 바뀔지언정 20년 전, 10년 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빈곤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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