活動寫眞 辯士, 美國遊覽記 변사, 미국을 가다 ①

by.모은영(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부) 2009-11-06조회 1,060
청춘의 십자로

이번에는 미국이다. 2008년 시네마테크KOFA 개관 기념작으로 첫선을 보인 이후 제천, 충무로, 부산 등 국내 영화제에서 연이어 소개되며 호평받았던 <청춘의 십자로> 변사 공연이 바다 건너 미국의 관객과 만났다. 지난 10월, 제 47회 뉴욕영화제 특별이벤트로 초청, 상영된 것. 영화와 공연이 함께하는 낯설지만 매혹적인 경험을 한 현지 관객들은 스크린 안과 밖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는 변사의 능청스러운 말솜씨에 말 그대로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링컨센터에서 예일대까지 짧지만 흥미진진했던 5박 7일간의 무성영화 변사 미국 유람기 제 1탄, “지금부터 시작하것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악당들을 향해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기는 여주인공.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선 한 여인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는가 싶더니 이윽고 카메라가 그녀의 몸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때, 영화 속 인물들의 사연을 구구절절 풀어놓던 ‘변사’가 던지는 한마디, “어허, 음란한 카메라 워크로다.” 순간 긴장으로 가득하던 극장 안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관객들의 폭소와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하다.

눈으로 보고 귀로만 듣던 영화 속 장면들을 직접 들려주는 ‘변사(辯士)’가 있고 그 옆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는 악단, 그리고 영화 시작과 끝, 혹은 사이로 존재했던 크고 작은 공연들. 한때는 영화가 틀어지던 극장의 당연한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기록이나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경험을 재현한 <청춘의 십자로> 변사 상영이 진행되는 극장 안은 언제나 그랬듯 그날 역시 관객들의 폭소와 환성, 박수로 가득했다.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변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극장이 떠나갈 듯 웃고 환호하는 그들이 바다 건너 미국의 관객들이었다는 것이다.

2009년 10월 3일, 이렇게 <청춘의 십자로>와 미국 관객의 만남은 이루어졌지만, 사실 <청춘의 십자로> 미국 공연이 추진된 것은 훨씬 오래전부터였다. 연구를 위해 한국에 머물다 <청춘의 십자로> 공연을 보게 된 프린스턴 대학의 영화과 교수가 미국 공연 가능성을 타진해온 것. 이어 지난해 MOMA에서 있었던 일제강점기 조선영화 상영을 함께 진행했던 ‘코리아 소사이어티’측에서 프린스턴, 하버드, 예일 대학 등을 순회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미국 공연의 가닥이 잡히는 듯했다. 공연 시기와 규모, 예산 분담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의견차이가 어쩌면 당연한 어려움이었다면 갑작스러운 경제 한파에 따른 미국 경기 악화는 예상치 못한 변수이기도 했다. 이러저런 이유로 프린스턴과 하버드 대학의 공연이 취소됐지만, 뉴욕영화제에서의 상영이 확정되면서 영화제 기간인10월에 맞춰 뉴욕영화제와 예일대학에서의 공연이 최종 결정되었다.

막상 미국 공연이 결정되자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고의 공연을 만들기 위한 팀을 꾸리는 것부터 문제였다. 김태용 감독을 필두로 이제는 그가 아니라면 ‘변사’를 누가 할까 싶은 <청춘의 십자로> 주임변사 조희봉과 감성적인 주제음악을 작곡한 박천휘 감독, 한국뮤지컬대상 음악감독상 수상자이기도 한 변희석 음악감독, 다재다능한 작곡가 겸 연주자이자 가수인 신지아 등 기존 멤버들을 주축으로 유학에서 막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뮤지컬계의 프리마돈나 조정은과 최근 <불꽃처럼 나비처럼>으로 영화 관객에게도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뮤지컬 스타 최재웅 등 막강 멤버들이 새롭게 가세하며 언제나 그랬듯 영화와 공연, 연극을 아우르는 최고의 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관건은 역시 장면 하나, 대사 하나까지 모두 ‘변사’의 설명으로 진행되는 공연의 내용을 타국의 관객, 그것도 자막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 관객에게 어떻게 제대로 전달할 것인지였다. 변사의 모든 해설을 영어로 번역하자는 의견에서, 아예 변사가 영어로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까지 분분했지만 이에 대한 김태용 감독과 제작진의 기본적인 생각은 동일했다. 설령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변사의 에너지와 감정만으로 영화의 진심을 전달하자는 것, 그래서 상영시간 동안 변사와 밴드,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특별한 영화적 체험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이에 최소한의 영어자막을 통해 주인공들의 이름과 관계, 극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자막번역을 정리하기로 했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이후 몇 달간, 어떻게 그 시간을 겪었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0월 1일, 우리 10여 명의 공연팀은 마침내 뉴욕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실전을 앞두고 산재한 갖가지 문제와 싸워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또 다른 도전의 서막이었지만 말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찾아간 링컨센터, 뉴욕영화제가 한창인 그곳에서 <청춘의 십자로>는 메인 상영관인 엘리스 툴리 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메인 상영관이다보니 하루 종일 상영 일정이 잡혀 있던 터라 연습시간이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상영 전날의 2~3시간 남짓, 그리고 상영 시작 전 1시간 반 정도가 전부였다. 리허설 시간이 거의 없음을 미리 통보받았던지라 서울에서부터 상영관의 도면 등을 구해 동선을 짜고 음향과 조명 디자인 등 기술세팅을 준비해왔지만 막상 상영관에 도착하니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변사 책상도 엉뚱한 것이 준비되어 있고, 서울에서 가져간 소품인 스탠드 하나 무대 위에 올려놓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제부터 의견을 조율하고 무대를 만들어 가야 할 이들은 미국 스태프가 아니었던가. 영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박천휘 감독이 졸지에 통역자 겸 음향감독이 되어 1000석이 넘는 커다란 상영관을 동분서주 뛰어 다니고 있고, 시설 좋은 상영관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미국 스태프들의 스타일인지 ‘이것 먼저 세팅 끝낸 후, 하나씩 하나씩’ 원칙을 고수하는 그들로 인해 밴드 멤버들은 악기 한번 못 만지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한시가 아까운 리허설 시간이 세팅으로 다 흘러간 판. 그렇게 약속된 시간을 40여 분 남기고 마침내 리허설이 시작된다. 그들의 지나친 여유 혹은 넘치는 자부심에 기분이 조금 상하기 시작할 무렵, 상영관 가득 듀엣곡을 부르는 배우들의 목소리와 연주가 울려 퍼지고, 그 풍부한 울림과 조화로운 음향에 절로 마음이 풀어지니 그들의 자부심도 언뜻 이해가 된다. 마이크를 대고 목소리를 가다듬던 우리의 재치 가득한 변사가 한마디 보탠다. “난 또 누가 내 목소리로 더빙해주는 줄 알았네….”

처음 시작과 영화 두 장면, 남녀배우들의 듀엣곡 두 곡 겨우 맞춰봤을 뿐인데 약속된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버린다. 이제는 극장을 비워줘야 할 시간. 쫓기듯 극장 밖을 나서며 찜찜함과 불안감이 모두를 압박한다. 상영시간도 토요일 오전 11시라니, 도대체 그 시간에 누가 올 것이며, 1000석 극장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게다가 내일은 하필 추석을 맞아 대규모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 한국 교민 대부분은 그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첩보까지 받은 터였다. 그 말인즉 ‘변사’를 알고 있는 한국 관객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렸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영화제 담당자는 태평스럽기까지 하다. “어제 <오즈의 마법사> 70주년 복원작도 11시에 상영했는데, 객석이 거의 다 찼으니 걱정 말라”는 것. 아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위로라고 하는 말인가.

시간은 있지만 연습할 장소도 방법도 찾기 힘든 상황, 그래도 일단 숙소로 돌아와 미리 녹음해온 반주와 상영본을 보며 변사와 배우 등 파트별로 각자 연습을 하며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밤 11시, 사정상 뒤늦게 출발한 김태용 감독이 숙소에 도착하고 짧은 회의를 통해 다음날의 일정을 확인하며 다시 한번 전의를 다진다. 내일은 바로 실전의 날, 내일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무성영화와 특별하고 매혹적인 만남을 경험을 하게 될 터이니, 조금은 낯선 관객들과의 만남을 상상하며 그렇게 뉴욕에서의 두 번째 날이 흘러간다.

※ 뉴욕 링컨센터와 예일대학 공연, 모든 것이 극과 극이었던 두 공연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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