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용 감독의 1974년작 <돌아온 외다리> 챠리 셸의 멋진 발차기를 추억하며

by.오승욱(영화감독) 2009-09-24조회 2,316
돌아온 외다리

무시무시한 싸움 실력을 지닌 세 사나이가 마을에 나타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몇 해 전까지 뒷골목 건달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상하이 호랑이를 찾아내는 것이다. 상하이 호랑이의 행방을 좇는 그들이 찾아낸 정보가 좀 이상하다. 상하이 호랑이의 가장 최근 행적은 콩알만한 어린것과 줄넘기하고 놀았다는 것이다. 이게 뭐지? 혹시 상하이 호랑이는 어린이들의 다정한 친구? 드디어 알아낸 상하이 호랑이의 행적은 약장수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장면이 바뀌고, 약장수 아저씨가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면서 상품을 팔기 전에 잠깐! 상하이 호랑이의 무술 실력을 보여주면서 여흥을 돋우고 다시 약을 팔겠다는 갸륵한 마음 씀씀이를 보여준다. 보통 약장수 아저씨들은 차력사의 무술 실력을 손님을 끌기 위해 맛보기로 조금만 보여주고, 잠깐! 하고는 약을 파는 것이 그 세계의 상술이 아니던가? 하여튼 약장수와 피에로 아저씨가 두께 5센티미터는 넘을 것 같은 두꺼운 송판을 들고 자세를 취하며 상하이 호랑이를 부른다.

약장수 신이 시작될 때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공터 한 귀퉁이에 자리한 텐트였다. 저건 1970년대 청춘 영화에서 젊은 애들이 산이나 바다로 놀러 갈 때 항상 가지고 다니던 그런 것 아냐? 어떻게 일제하의 상하이에 텐트가? 워 워, 저 멀리 나무 사이로 아파트가 보여도 여긴 상하이라고 하는데 험상궂은 얼굴의 세 사나이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 다니고, 약장수 아저씨가 손님들에게 특별 보너스로 송판 격파 시범을 보이기 위해 불러낸 바로 영화 <돌아온 외다리>의 주인공 챠리 셸이 텐트 안에서 불쑥 나온다. 아! 우리의 주인공이 드디어 등장하는데, 그는 휘청거리면서 커다란 술병을 입에 물고 벌컥벌컥 들이켠다. 상하이 호랑이는 술주정뱅이가 된 것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술주정뱅이라도 호랑이는 호랑이일 거라고 생각하는 차 그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송판을 향해 킥을 날리는데, 아뿔싸. 그의 번개 같은 왼발의 길이가 30센티미터 모자라 송판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풀썩 땅바닥에 먼지를 일으키며 넘어져서는 그대로 코를 골며 잠이 든다. 오호 통재라! 그 옛날 상하이 호랑이가 이제는 종이 호랑이, 아니 술주정뱅이가 되었구나. 그를 찾아내서 죽이려 했던 세 명의 무시무시한 사나이들도 혀를 찰 만큼 불쌍한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천하의 상하이 호랑이 챠리 셸은 왜 저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바로 사나이 배수천 때문이다.

1970년대 한국 태권 영화의 최고 악역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고속도로처럼 훤히 벗어진 대머리. 독사 같은 두 눈. 1970년대에 만들어진 거의 모든 한국 액션 영화의 악당이란 악당 역은 거의 모두 그의 차지였다. <무장해제>에서 살아서 펄떡거리는 금붕어를 산 채로 씹 어 삼키며 조선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는 일본군 대좌로 나와 열연하고, 당시 그 어떤 악역보다 더 악랄한 표정으로 착한 주인공들에게 증오와 분노의 포스를 레이저 광선처럼 쏘아대던 바로 그 사나이 배수천 때문이다. <돌아온 외다리>에서도 그의 악역 연기는 대단하다. 보잘것없는 일본 낭인에 불과하던 그가 음모를 꾸며 상하이 호랑이를 죄의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상하이 호랑이의 아내를 겁탈하고, 상하이 건달의 최고봉이며 상하이 호랑이의 양아버지를 총으로 쏘아 죽인 뒤,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며 하얀 삼각팬티 차림으로 권총을 들고 미쳐 날뛰는 그의 연기는 어마어마한 포스를 내뿜는다. 아마도 그에 필적하는 광기의 연기를 찾아보려면 저 멀리 할리우드로 가서 <스카페이스>에서 알 파치노가 마약을 코로 들이쉬며 총을 들고 날뛰는 장면이나, <백열>에서 제임스 케그니가 유조탑에 올라 “엄마 내가 세상의 맨 꼭대기에 올랐어요!”라고 외치는 장면 정도가 될 것이다. 하하하. 믿거나 말거나. 하여튼 양아버지도 잃고, 아내도 잃고, 아내의 오빠이자 친구를 배수천의 음모에 속아 죽이게 된 상하이 호랑이는 술주정뱅이로 밑바닥을 헤매다 꿈에도 못 잊던 아내가 배수천에게 강 간당하고, 그에게 납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배수천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아내를 되찾으려는 챠리 셸의 분노의 왼발은 적의 양쪽 뺨따귀를 열 다섯 방씩 숨 돌릴 새 없이 가격하는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여기까지. 불행하게도 의문의 사나이 권용문에게 오히려 당해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배수천과 그의 졸개들은 상하이 호랑이의 무시무시한 왼발을 아예 못쓰게 만들어버린다. 아하! 왼발을 못쓰게 된 상하이 호랑이가 외다리로 적들을 물리치겠는걸 하는데, 웬걸? 의문의 사나이 권용문은 역시나 독립군이었고 상하이 호랑이에게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라는 감동에 찬 연설을 하여, 왼발을 못쓰게 된 상하이 호랑이는 내가 다쳤는지 누가 봤어? 하며 시치미 뚝 떼고 조국 독립의 투지 때문인지 두 다리로 멀쩡하게 배수천을 무찌른다. 뭐야? 뭐가 돌아온 외다리란 거야? 두 다리로 잘 싸우는구먼 하는 불만은 잠시 접어두자. 나는 챠리 셸 주연, 이두용 감독의 태권 영화 시리즈를 나중에 만들어진 순서로 보았다.

재재개봉관에서 시리즈의 마지막 편 <배신자>를 보았고, 동시 상영관에서 <속. 돌아온 외다리>와 <분노의 왼발>.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재상영된 <죽엄의 다리>, <돌아온 외다리> 그리고 시리즈의 첫 작품인 <용호대련>을 제일 마지막에 보았다. 따라서 나는 <돌아온 외다리>보다 <속. 돌아온 외다리>를 먼저 본 것이다. <속. 돌아온 외다리>에서 챠리 셸은 진짜로 외다리가 된다. 한 발로 서서 싸울 수는 없기에 무쇠로 만든 의족을 만들어 차고, 돌려차기 한방으로 악당들을 명왕성으로 날려버린다. 홍콩에는 외팔이가 있고, 대한민국에는 무쇠다리를 장착한 무적의 외다리가 있다. <돌아온 외다리>는 사실 <속. 돌아온 외다리>를 위한 예고편에 불과했던 것이다.

<속. 돌아온 외다리>에서 진짜 외다리로 싸우는 챠리 셸의 멋진 모습을 만날 것이니, 챠리 셸이 다리가 못쓰게 되었는데도 멀쩡하게 두 다리로 싸운다 해도 우리 용서하기로 하자. 하프네가 방식의 테크니스코프로 촬영된 챠리 셸 주연, 이두용 감독의 태권 시리즈는 지금까지 볼 수 없는 영화들이었다. 다행히도 하프네가 방식의 테크니스코프 영화들이 복원되고 있고 그 리스트 중 하나가 <돌아온 외다리>다.

내가 꿈꾸는 DVD 박스 세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챠리 셸 주연 이두용 감독의 태권 영화 여섯 편이 모두 복원되어 들어있는 초호화 박스 세트다. 챠리 셸의 멋진 발차기가 담긴 아름다 운 흑백의 스틸 사진들과 챠리 셸과 한국 액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던 우락부락한 토종 얼굴의 아저씨들, 이두용 감독의 인터뷰가 담긴 그런 박스 세트는 언제나 만들어질까? 언젠가는 꼭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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