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야성 감독의 <로켓트는 발사됐다> (1997)

by.정윤철(영화감독) 2009-09-24조회 687
로켓트는 발사됐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1997년,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쉬리>가 나오면서 한국영화의 붐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 초저예산으로 만든 괴상한 제목의 영화가 한 편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바로 이 영화 <로켓트는 발사됐다>이다. 외계에서 날아온 듯한 이 엉뚱한 영화는 감독 최야성이 당시 28세에 찍은 다섯 번째(!) 장편 영화다. (군대에 갔다 오느라 좀 쉬었다고 한다) 영화의 내용은 직접 감독으로 이 영화에 출연한 최야성 감독이 영화를 찍기 위해 출연진 및 스태프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심지어 영화 속 영화 제목도 똑같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아니고 연출된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크랭크인을 하기 위한 고사 장면으로 끝나니, 결국 영화 속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가 실제 스토리가 되는 셈이다. 최야성 감독은 이 영화를 찍을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대문에서 옷을 싼값에 떼어다 파는 땡장사를 했는데 이런 모습은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영화의 첫 장면은 블랙화면 속에서 그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 목소리로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최야성인데요. 이번에 완전히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영화적 승부를 걸어보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시죠?” 이 전화 속 대사는 캐스팅을 하려고 하는 인물들 (김보성, 독고영재, 박준규, 허준호, 최종원, 김용, 정광태 등)을 만날 때마다 되풀이되는데, ‘승부’라는 단어가 가끔 ‘쇼부’로 바뀌는 정도의 차이일 뿐, 최 감독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쪽 팔려 하는 기색도 없이 사람들을 로켓트 안에 마구 태운다. “저 친구가 땡장사 크게 한다지?

아마 옷이 한 10만 장쯤 있다지?” “영화감독도 한다며?” 이렇게 수군대는 동대문 상인들을 뒤로한 채 로켓트를 발사하기 위한 최 감독의 눈물 나는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지만, 그러나 정작 찍으려고 하는 <로켓트는 발사됐다>는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는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도 과거형으로 제목을 쓴 이유는 그래서가 아닐까?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새 발사되어버린 로켓트처럼 영화도 끝나는 형국이니 말이다. 결국 이 영화가 ‘로켓트’를 발사하기 위해 생고생을 하는 감독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라면, 그 ‘로켓트’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는 이에 대해서도 역시 전혀 설명해주지 않지만, (크랭크인 신이 마지막에 나오고 바로 실제 영화가 물리적으로 끝나므로) 영화 속 주인공이자 실제 영화의 감독인 최야성이 끊임없이 내뱉는 야심적 대사를 계속 듣다보면 이상한 진심과 열정이 느껴진다. 더 이상 이에 대해 물어본다면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대체 두 사람이 기다리는 게 뭐죠?” 라고 묻는 것과 같은 우문이 아닐까? 우린 똑같이 땡장사를 거쳐 한국영화 최고의 제작자로 성공했지만 지금은 추락한 누군가를 알고 있다. 그가 다시 땡장사를 할 각오로 영화계로 귀환할 순 없을까? 최야성 감독은 이번에 일곱 번째 영화를 찍는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최 감독이 촬영기사를 만나서 이렇게 대사를 하는 장면이다. “자 이제부터 극중 영화감독이 촬영기사를 만나는 바로 지금 이 대사까지는 성우 목소리가 나오고 바로 다음 장면부터는 실제 감독의 목소리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진 성우 더빙이었다! ) 다음 신이 펼쳐지고, 최 감독은 어느 새 카페에서 독고영재와 허준호를 캐스팅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 그리고 목소리는 어느 새 최 감독 자신의 실제 목소리로 바뀌어 있다. 그는 진지하게 그들에게 말한다. “세계 영화적으로 처음 시도되는 주인공 목소리의 대반전이라고 할까요? A급 물감으로 A급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듯, 돈으로만 A급 예술적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건 아니죠.” 어리둥절한 독고영재와 허준호의 넋 나간 표정이 압권이다. 그러나 늦었다. 이미 카메라는 돌고 있고, 그들은 영화에 포획되었으며, 로켓트는 발사됐다. 나로호보다 12년 먼저, 힘차게 우주로 말이다. 땡장사 감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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