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누이, 현숙한 부인” 김신재

by.최소원(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2008-09-01조회 2,004

김신재는 30~40년대를 주도했던 영화인 최인규 감독의 ‘아내’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단단한 이미지 구축으로 문예봉과 함께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성장했다. 1937년 남편 최인규가 녹음 스텝으로 참여한 안석영 감독의 <심청>에서 단역으로 데뷔했고, 1938년 윤봉춘 감독의 <도생록>에서 주연을 맡으며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윤봉춘 감독이 김신재를 기용한 이유로 “우울이 없는 여배우”라 했듯이 명랑함과 귀여움은 배우 김신재를 이루는 중요한 이미지였다. 이와 함께 문예봉은 ‘현모양처’, 김신재는 ‘현숙한 부인’이라는 칭호가 따라다녔는데, 이는 신일선 등의 기존의 ‘허영과 스캔들로 얼룩졌던’ 조선의 여배우와 확실히 차별되며 세대교체를 이루는 지점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총동원체제 하에서 1940년 조선영화령이 공표되고 ‘영화인 등록제’가 시행되면서 영화배우들도 ‘관리’ 대상이 되었다. 가난하고 폐병을 앓는 남편을 보살피며 인고하는 문예봉과 문란한 남편의 스캔들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김신재는 사생활이 공적인 영역까지 확대되었던, 시대가 요구하는 미덕을 갖춘 스타였다. 김신재는 <집 없는 천사>(1941)와 <사랑과 맹서>(1945)에서 애타게 동생을 찾는 누이로, <조선해협>(1943)과 <망루의 결사대>(1943)에서는 발랄하고 적극적인 신여성 타입의 여동생을 연기했고 ‘만년소녀’의 이미지를 굳히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국전쟁 때 최인규 감독이 납북된 후 부산에서 다방을 운영하기도 했던 김신재는 1980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정지우)까지 이어지는 40여년의 연기 인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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