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실 문창현, 2018

by.채희숙(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2018-10-23
기프실 스틸

<기프실>은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오랜 주제였으며 근래에는 다양한 미학적 접근을 통해 문제시되고 있는, 장소 박탈과 기억 투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댐 건설이 결정되고 감독의 할머니가 살아온 마을 ‘기프실’은 수몰 지구에 포함되었다. 공사가 시작되고 감독은 더 이상 생명을 일구지 말라고 경작금지안내판이 붙은 기프실에서의 삶을 쫓는다. 상실이 예정된 이 마을에는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삶의 역사를 담은 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으로서 생의 리듬을 관할하고 관계를 축적한다. 영화는 터전이 되어주는 공간의 의미를 잘 기억하고, 이를 통해 장소 잃은 삶을 질문하기 위한 기록이다.

마을에서는 이런저런 의례가 열린다. 영주댐 착공식이나 자전거 대회같이 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는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며 지역의 일을 유용하는 국회의원의 연설이 울려 퍼진다. 반면 곧 폐교되는 평은 초등학교 총동창회 운동회에서는 대선배 졸업생 할아버지가 오랜 추억을 돌이키며 연설을 하고 마지막 초등학생들이 단상에 선다. 운동회는 이제 사라질 마을이 한동네 사람들 공통의 기억을 만드는 곳임을 상기시키는 의식이기도 하다. 한편 할머니의 장례식은 가족의 기억을 갱신하는 동시에 감독이 간직하고 있는 오랜 기억을 불러들인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내밀한 마음을 고백하고, 할머니를 쫓는 그 마음은 마을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도 닿는다. 그 불안은 내가 어떤 존재를 붙잡지 못하고 영원히 상실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기프실 스틸

첫 번째 의례에서 우리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용되는 경박하거나 낯선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두 의례인 운동회와 장례식에서는 마을 공동의 기억과 한 개인의 기억이 교차하는 터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에 기록되는 마지막 의례는 오랜 홈비디오에 담겨 있는 신년 잔치다. 이 홈비디오에서 집의 앞마당에는 웃음을 나누는 가족과 건강한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와 마당을 잃은 가족이 할머니의 장례식 이후로 또다시 모여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기프실 스틸

기프실의 기록은 가족사에서 출발하지만, 국가권력에 의해 파괴되는 현장을 보고하고 그곳과 직접 관계를 맺어나간다. 또 감독의 내레이션은 개인에게 고유한 경험과 감정의 영역에서 마을을 상실하는 문제에 접근한다. 사적 다큐나 에세이, 또는 퍼포먼스 등 사회적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여러 층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근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시도들을 오가면서 <기프실>의 기억은 점점 단단해진다.

영화에서 기억되는 장소란 우선 모이고 쌓이는 곳이다. 터전을 잃는다는 것은 가족의 장소를 잃는 일이며 사람 사이 관계와 역사 지속의 중심을 잃는 일이다. 터전을 잃는다는 것은 삶을 경작하고 수확할 집을 잃는 일이다.

할머니가 무당새로 집에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따라 감독의 의식은 돌아올 검푸른 무당새의 날갯짓과 기프실을 떠올린다. 생전에 자주 서던 거울 앞에 한동안 머무는 무당새를 보면서 감독의 어머니는 연신 새가 곱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고운 무당새는 철거된 집과 이윽고 잠기게 될 마을 앞에서 머물 곳을 잃고 헤맬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감독과 노미 할머니의 관계가 관통하고 있다. 노미 할머니와 감독이 누워서 함께 TV를 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언뜻 의아하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구체적인 정보를 전하거나 이야기의 전개를 이끌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우리가 쉽게 의미화하기 힘든 집에서의 시간을 담고 있다. 한 공간을 나누는 삶이란 왕왕 별일 없이 흐르는 시간을 공유한다. 이 장면에 앞서 면서기 집 할머니와의 인터뷰 중에도 의아한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할머니만을 담던 화면 중간에 들어오는 그것은 인터뷰 중인 감독을 비롯하여 카메라가 세팅된 전체 모습을 한 화면에 담고 있는 풀숏이다. 

꼭 필요한지 묻게 되는 이러한 장면들에는 공통적으로 감독이 스크린에 있고, 그것은 할머니와의 거리를 드러낸다. 오프닝과 엔딩 장면에서도 감독은 기프실의 기록에 등장한다. 감독은 계속 <기프실>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감독은 멀리 바라본 기프실의 풍경에서 시작해 마주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인터뷰를 거쳐 시간을 나누는 관계에 이르렀다. 마을에 쌓인 삶이란 이렇게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품고 있다. 감독은 베이고 절단되어 모래가 흘러내리는 산의 모습처럼 사라져가는 마을 및 개발의 풍경과 대립하여 삶의 장소를 다시 자신의 관계 속에서 복원하고 기록한다. 

기프실 스틸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감독은 장소를 박탈당한 후의 할머니들을 따라간다. 그리고 영화는 경작이 계속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기억은 단절되거나 멈추지 않았다. 땅은 댐에 갇혀버렸지만, 기억을 간직한 손길과 발걸음은 안 좋은 토질에서도 험한 비탈길에서도 다시금 경작을 시작하고 있다. 땅에 쐐기 박혔던 경작금지안내판은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뿌리 뽑히고, 영화는 상실감 대신 기억의 투쟁을 껴안는다. 이 경작을 응원하는 감독의 퍼포먼스는 기프실과 감독의 거리를 더욱 밀착시킨다. 함께 살아가는 땅을 일구고자 하는 영화의 의지가 앞으로 경작해가야 할 우리의 미래에 기억의 싹을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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