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개척단 이조훈, 2018

by.이승민(다큐멘터리 연구자) 2018-06-08
서산개척단

국가와 국민,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일까?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아니 역사의 현장에 살고 있는 지금도 늘 되묻는 질문이다. 종종 국가와 국민은 상생이라는 이름하에 국가를 위해 국민을 희생시켜왔다. 국가의 이름으로 권력을 손에 쥔 집단이 프레임을 만들고, 그로인해 가장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본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과 부담을 전담시키는 이 잔인한 구조는 피해자들로 하여금 차마 말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상처와 부끄러움으로 치부되면서 이중으로 고통과 책임을 전가한다.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정권 직후 혁명정신을 내세워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거리의 부랑아를 강제로 개척단에 동원한 사건을 다룬다. 사회정화와 국토개발을 전면에 내세운 채 사회적 약자들을 강제 노역시키고 약속한 땅조차 배분하지 않은 국가폭력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피해자는 사회적 상처를 개인의 상처로 간주하며 긴 시간 침묵하며 살아왔다. <서산개척단>은 은폐된 과거 사건을 고발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서산개척단에 동원된 사람들의 상처를 사회적 상처로 인지하게 한다. 산 자에게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죽은 자에게는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서산개척단>을 세 층위로 풀어본다면, 고발과 각성 그리고 애도가 아닐까. 
 
서산개척단

1. 고발  

영화는 박정희 정권이 구축한 개발 신화의 허상을 일깨운다. 서산개척단 사건은 마치 부패한 대한민국의 축소판처럼, 국토 개발과 경제발전의 신화 이면에 도사린 착취와 음모, 부정부패를 파헤쳐내고 있다. 사회적 대재난인 6·25로 인해 부모를 잃거나 가정을 잃은 청년들을 부랑아로 몰고, 이들을 개척단에 강제 수용하여 ‘아버지 사랑, 어머니 사랑매’로 일궈낸 땅이 서산개척단이다. 

개척단 구성의 이면 때문일까? 영화 속에 감독이 개척단 생존자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인터뷰하는 순간, 감정이 복잡해진다. 부모 잃은 이들에게 부모 역을 해준다며 부모 사랑의 매로 폭행을 가하는 국가와 영화 속에서 대상에게 다가가는 감독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아버지’라는 호명은 영화가 품고 있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양가성을 일깨워낸다. 이처럼 영화는 은폐된 역사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건을 감각해 통증을 유발하는 힘을 갖는다.  
 
서산개척단
 
2. 각성  

영화는 피해자들이 사건을 ‘사회적 상처’로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부끄러움과 믿음에서 시작한다. “(인터뷰) 다 안 한다잖아... 창피해서 안 한다잖아.” “박근혜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그래도 혹시 아버지가 저질러 놓은 일이기 때문에 마무리 좀 해주려나 하는 기대를 걸고 인터뷰하는 거야.” 개인의 일로 치부해 숨기고 말하지 못한 시간, 그런 동시에 국가를 여전히 믿고 바로잡아주기를 기대하는 그 어떤 지점에 피해자들은 놓여있다. 이같은 태도는 영화가 진행되는 속에서도 계속된다. 국가기록원에서 땅 배분 문서를 보고도, 다른 지역 개척단을 만나보고도 “관계자들이 이런 것을 못 봤을 거란 말이지.”라며 국가를 믿는다. 이어 그는 국가를 향해 호소문을 쓴다. 평생 국가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송구함과 미안함을 전제로 국가에게 글을 쓴다. 영화는 사회적 상처를 개인화하고 침묵하고 국가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믿는 피해자의 위치를 포착하고 이를 풀어내는 통로 역할을 한다. 마침내 영화는 피해자들이 은폐된 경험을 사회적 상처로 인지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모아 발화한다. 58년 만에 국회 앞에서 집회하는 서산 주민의 모습이 인상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산개척단

3. 애도  

영화는 산 자의 억울함 뿐 아니라 존재감 없이 사라진 죽은 자도 함께 한다. 영화는 하늘에서 서산개척지를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언뜻 보면, 서산개척지의 지형을 보여주는 장면 같지만 영화는 소리를 통해 그게 다가 아님을 감지하게 한다. 서산개척지를 내려다보는 시선의 주체가 마치 서산을 맴도는 혼령 같기 때문이다. 이는 타이틀 장면 이후 바로 이어지는 제사 장면으로 보다 명료해진다. 위태롭게 맴도는 서산 개척지 위 시선들은 이상범의 울음 장면 이후 안정을 찾아간다. 서산에서 죽음을 부인하던 이상범은 차마 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이어지는 울음을 통해 몸으로 진실을 말한다. 죽음이 인정된 후, 영화는 존재감 없이 사라진 이들의 존재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산평화공원묘지로 보여준다. 묘지에 담배로 재를 올리고, 마침내 영화는 “이름없이 죽어간 개척단원들에게 바칩니다”로 마무리한다. 

<서산개척단>은 직접적인 제목처럼, 은폐된 서산개척단 사건을 고발하지만, 이와 동시에 산 자의 억울함을, 죽은 자를 향한 애도를 담아낸 작품이다. 사건의 고발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만을 강조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건을 알리되 통증과 애도를 감각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되묻게 한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해서,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할까?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할까? 후자의 국가를 꿈꾸는 게 꿈이 아니길.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