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권택을 만난 곳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08-05-04조회 2,283

​​​​​​​고마움은 빙빙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만일 영상자료원이 없었다면 나는 임권택 감독님과의 두 번째 인터뷰 책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자료원에서 가진 핸드프린팅 행사에서 감독님은 “내 영화중 30편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 생각은 그 반대이다. 그 30편의 존재야말로 임권택이라는 감독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임권택이라는 한 감독이 영화에 대한 그 어떤 배움도 없이 온전하게 그 스스로의 배움만으로 자기의 영화 세계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말 그대로 시행착오의 대가. 나는 그 과정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영화관은 지구상에서 한국영상자료원 뿐이었다. 나는 감독님과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해 여름 내내 자료원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떤 영화는 정말 나빴다. 어떤 영화는 발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영화는 숨은 보석이었다. 나는 감독님 앞에서 그 영화를 만든 감독님 자신보다 더 확신에 차서 질문을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감독님은 그 영화를 삼십년 전에 만들었고 나는 그 영화를 어제 보았으니까! 만일 내게 임권택감독님에 관한 한 당신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두 가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나는 감독님의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자료원에 소장된 영화들이다. 다만 여전히 온전하게 임권택 감독님을 인터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00편의 영화중에서 27편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빈칸을 채워서 다시 한 번 감독님께 질문하고 싶다. 그러므로 내 부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내가 온전하게 다시 한 번 모두 질문할 때까지 감독님이 건강하시길 소망한다. 다른 하나는 자료원에서 하루 빨리 그 빈 목록을 하여튼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당신들께서 좀 더 힘을 내주었으면 고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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