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영화제] <청춘의 십자로>의 영화사적 의미

by.김종원(영화사 연구자) 2008-05-03조회 312
청춘의 십자로 스틸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년, 안종화 감독)의 발굴은 그동안 한국영상자료원이 의욕적으로 진행한 해방 전 우리영화 찾기 사업의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근년에 이르러 중국 등지에서 찾아낸 <미몽(迷夢)>(1936년, 양주남) 등 일련의 발성영화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필름의 발굴은 첫째, 무성영화 말기 우리 영화의 형태와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계기를 가져 왔다. 이는 1935년 <춘향전>의 개봉과 함께 발성영화 시대를 여는 시점을 앞두고 제작된 완숙기의 무성영화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둘째, 그동안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이름만 전해지는 <아리랑>(1926년)의 여주인공 신일선(申一仙)이나 <낙화유수>(1927년)의 이원용(李源鎔), <잘 있거라>(1927년)의 김연실(金蓮實)과 같은 무성영화 초기의 이름난 배우들이 출연하여 처음으로 그 면모를 드러낸 점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김연실과 나운규를 기용하여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1930년), <종로>(1933년) 두 편을 연출한 양철(梁哲)이 ‘특별출연’ 형태로 등장했다. 셋째, 데뷔작 <꽃 장사>(1930년) 이후 1960년 최종작인 <견우직녀>에 이르기까지 12편의 영화를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편도 남기지 못한 안종화 감독의 초기 영화를 보게 되는 각별한 감회가 있다. 넷째, 지금까지 해외의 문화 관련 보존 기관에서 우리의 필름을 찾아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국내의 민간인에게서 입수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청춘의 십자로>는 그간 발굴한 발성영화의 프린트판과는 차원이 다른 오리지널 네가 필름이어서 영화사적 의의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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