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코메디: 다 웃자고 하는 얘기 김곡,김선, 2012

by.김이환(소설가,독립영화 칼럼니스트) 2013-11-22조회 3,567
코메디: 다 웃자고 하는 얘기

한때 인기 있었으나 이제는 잊힌 코미디언이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자신의 가난한 삶을 스스로 조롱하며 농담으로 만드는 동안 관객들은 폭소를 터트리지만, 웃음소리만 들릴 뿐 관객의 얼굴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코미디언이 무대에서 내려오면 농담으로 웃어넘긴 삶은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딸아이를 데리러 보육원으로 갔다가 직원에게 돈을 독촉당하고, 그는 아내가 집을 나가서 돈이 없다며 농담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만 직원은 `안 웃긴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이제 그는 분유도 기저귀도 없는 집에서 아기와 긴 오후를 보내야 한다.

돈이 없어 편의점에서 담배와 맥주를 한꺼번에 사지 못하는 장면,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 주인공의 모습이 브라운관에 반사되는 장면 등에서, 영화는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예술가의 초라한 삶과, 사회 안전망이 없는 우리 시대 저소득 가정의 비극적인 모습을 중첩한다. 주인공이 머무는 거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질러지는데, 이는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동시에 곡사의 이전 영화 <시간의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의 힘든 삶은 블랙 코미디에서 가끔 호러로 진입하며, 이것이 이야기의 뒷면에 어두운 비밀이 숨어있는 복선을 암시하는지, 아니면 그저 코미디와 호러를 오가는 주인공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인지 초반에는 눈치채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닫혀 있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영화는 호러로 돌변한다.

목을 맨 아내의 시체 앞에서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그것도 단지 담배 한 갑을 받아내기 위해 아내를 웃겨야 한다. 그가 아내 앞에서 펼치는 공연은 가족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 죄책감을 지우고 싶은 속죄의 몸부림으로도 보이고, 자신은 아내와 아기처럼 죽지 않고 살아남고 싶다는 발버둥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끝없이 뭔가를 요구하는 아기를 교살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가 원하던 박수갈채를 환청으로 듣는다.

결말에 도착하면 코미디언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고 더 고통스러운 삶으로 추락했을 뿐인데도, 마치 긴 하루를 홀가분하게 마무리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오후를 흘려보내다가 문득 종이를 꺼내 새로운 코미디를 메모하고는 웃음을 터트린다. 끔찍한 삶도 ‘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코미디언의 모습에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우리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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