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얼굴들 이강현, 2017

by.성상민(문화평론가) 2018-02-19조회 1,612
얼굴들 스틸이미지

이강현의 작품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를 고르자면 ‘불친절함’일 것이다. 그의 첫 다큐멘터리 <파산의 기술記述>을 비롯해 첫 장편 다큐멘터리였던 <보라> 모두 쉽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강현은 대다수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사 구조를 택하는 대신, 좀처럼 연관성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제시하며 의미를 재구축하는 길을 계속 택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그의 다큐멘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작품 속의 풍경과 공간, 그리고 인터뷰 시퀀스들이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계속 신경을 쓰며 읽어야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진입 장벽은 이강현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깊게 고민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단서이기도 했다. 그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순간들 속에서 맥락과 규칙성을 발견하며 눈으로 쉽게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원인을 짚어냈다.

그가 처음으로 만든 장편 극영화인 <얼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정한 서사성을 기대하고 <얼굴들>을 봤다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마치 그가 만들었던 다큐멘터리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영화는 좀처럼 일반적인 형태의 극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 명의 배우들이 출연해 각자의 이야기들이 드러나지만, 이 작품은 극히 일부의 시퀀스를 제외하면 이 주인공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는 물론 인물들이 대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마치 관객은 가상의 시공간에 갑작스럽게 소환되어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듣고 있는 셈이다.

대신 영화는 그 ‘극히 일부의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정보들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단서를 발견하게 하고, 작품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묘사하는 장면들을 통해서 각자의 행동 방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서서히 파헤치게 만든다. <얼굴들>은 고등학교 행정실 직원이었던 기선(박종환)과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의 길을 택한 혜진(김새벽)의 삶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한때 연인 사이였다. 기선은 무척이나 사려 깊은 인물이다. 학교 졸업 앨범에 사용하려 찍은 사진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는 축구부 학생 진수(윤종석) 혼자만이 제대로 사진을 촬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이후로 기선은 진수에게 큰 관심을 기울인다. 축구부에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를 묻는 사소한 행동부터 시작해 축구부 활동 때문에 제대로 학급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진수가 학급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반면 혜진은 자기주장이 무척이나 확고한 인물이다. 가급적이면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돌려서 말하는 기선과 달리 혜진은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또렷하게 말하고 관철시키려 노력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작은 식당에 자신의 퇴직금까지 부어가며 앞으로의 살 길을 모색하는 혜진은 어머니와 식당의 리모델링을 두고 약간의 갈등에 직면한다. 그 전까지 큰 문제없이 그럭저럭 동네 어귀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것에 만족하는 어머니와 달리 혜진은 좀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메뉴 구성과 리모델링을 통해 매출이 증대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단순한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온갖 조미료를 배합하며 맛의 황금비율을 찾는 것은 물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어머니의 식당이 성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기선은 다른 사람까지 챙겨줄 정도로 무척이나 인간적인 사람이고, 혜진은 자기와 가족의 생존에 목을 매는 이해타산적인 인물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그렇게 관객들이 믿으려 하는 순간에서 인물들의 다른 면모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기선은 타인에게 신경을 쓰지만, 정말로 타인이 어떠한 삶을 살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접근하지 않는다. 기선은 남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이해는 겉으로 바라보는 표면적인 면모에만 머물러 있을 따름이다. 혜진 역시 성공을 위해 삶의 거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지만, 그 성공을 위한 순간 뒤에는 수많은 실패의 순간 역시 있음을 작품은 넌지시 비춘다. 이러한 태도의 디테일들은 두 등장인물이 각자 삶의 균열적인 지점에 놓일 때 보이는 서로 상반된 자세와도 이어진다.

이러한 대비점들은 작품이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택배기사 현수(백수장)를 통해 더욱 가시화된다. 행정실을 그만두고 사보 제작회사 직원이 된 기선은 사보에 게재할 기사의 인터뷰를 위해 현수를 찾아간다. 기선이 바라본 현수의 모습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패러글라이딩 같은 취미에도 관심을 아끼지 않으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이다. 그런 현수의 삶에 감명을 받은 기선은 어떻게든 현수의 삶을 담은 인터뷰가 사보에 실릴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선은 현수가 ‘택배기사’로써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현수는 스스로 택배 일거리를 찾아서 영업을 뛰는 것은 물론, 매일마다 밀려드는 택배 물량을 제시간에 처리하기 위해 생활의 리듬도 조금씩 뒤틀린다. 현수는 그렇게 조금씩 피로해지는 삶을 기선에게 말하지 않고, 기선 역시 현수의 노동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접근을 하지 않는다. 도리어 현수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혜진이 택배 수령자의 입장에서 택배 기사로써 바쁘게 돌아다니는 현수의 노동과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접할 따름이다.

마치 이강현의 전작 <보라>가 여러 유형의 관계와 일상의 편린들을 직조하며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 놓인 현실과 접근법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묘사했듯 <얼굴들> 역시 피상적인 접근 이상으로 다가서지 못하는 관계의 문제를 짚고 있다. 단지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낯설게 다가올 뿐이다. 하지만 이강현이 문제에 다가서는 이러한 방법론이야 말로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작품보다 더욱 현실에 가까이 접근하는 ‘초현실’적인 방식이 아닐까. 우리가 놓인 실제 삶의 모습 대개는 그다지 극적이지도 않고, 도식적으로도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 대신 이리저리 파편화된 일상 속에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구조로써 놓여있을 뿐이다. 이강현이 만든 두 편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이러한 삶의 구조를 자신의 작품으로 그대로 가져오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얼굴들>은 그 작업을 픽션의 형태로도 펼치려는 또 하나의 실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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