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해제

현재통용제명: 콰이 강의 다리
수입개봉명: 콰이江의 다리
원제: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제작년도: 1957
제작사: 콜럼비아 픽쳐스(Columbia Pictures)–호라이즌 픽쳐스(Horizon Pictures) / 미국-영국
감독: 데이비드 린(David Lean)
출연진: 알렉 기네스(Alec Guinness), 윌리엄 홀든(William Holden), 잭 호킨스(Jack Hawkins), 하야카와 셋슈(雪洲早川, Sessue Hayakawa)
수입사: 한국예술영화주식회사
개봉극장: 피카디리극장
개봉일: 1962.11.03.


전단지 구성 및 특이사항
이 전단의 경우 단일 영화전단이 아니라, 엄밀하게는 1962년 10월 리모델링(“內外新裝”)과 개명(서울키네마 → 반도극장 → 피카디리극장)을 거쳐 재개관한 피카디리극장의 외화개봉 기념으로 발행된 소책자이다.  따라서 <콰이강의 다리> 외의 다른 영화들도 소개되어 있으며, 일반적인 영화전단과는 체제와 구성이 다르다. 하지만 전체 8면 가운데 <콰이강의 다리>와 관련된 내용이 3면(전면광고 포함)이나 된다는 점에서 당시 피카디리극장 측이 <콰이강의 다리>를 재개관 특작으로 생각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자 했음이 명백하므로, 이 역시 <콰이강의 다리> 전단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먼저 1면에는 <피카디리극장 내외신장 외화 재개봉기념>이라는 소책자의 제목과 1962년 10월이라는 날짜가 기입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당시 피카디리극장의 모습을 묘사한 일러스트가 수록되어 있다. 2면에는 당시 피카디리극장의 사장이었던 김손준(金遜俊)의 명의로 된 <인사의 말씀>이 게재되어 있는데, 본래 방화(邦畵, 한국영화) 전용관이었던 반도극장을 외화전문 개봉관으로 재발족했다는 사실과 함께, 한국예술영화주식회사를 비롯한 국내의 여러 영화수입사들과 제휴하여 양질의 외화를 선보일 것임을 홍보하고 있다. 3면에는 <혁신 신장 기념의 제 1 거탄!>이라는 제호 아래 피카디리극장에서 외국영화로 첫 선을 보인 리처드 위드마크(Richard Widmark) 주연의 <후로그멘 The Frogmen(1951)>에 대한 소개가 있다. 

<콰이강의 다리>에 관한 내용은 제 4면과 5면에 걸쳐 있는데, 파란색 단색조 인쇄로 “약진하는 피카디리 극장이 계속해서 보내드릴 세기적 거작!”이라는 홍보문구와 함께 영화의 주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담고 있으며, 영화의 해설 및 줄거리 소개를 싣고 있다. 6면에는 <근일 연속적으로 개봉될 명화!>라는 제목 하에, <콰이강의 다리>를 비롯하여 <황야의 7인 The Magnificent Seven(1960)>, <다윗과 골리앗 David and Goliath(1960)>, <페페 Pepe(1960)>, <비애 A Kiss Before Dying(1956)>, <엘 시드 El Cid(1961)>, <제7기동부대 Flat Top(1952)>, <남태평양 목선작전 The Wackiest Ship in the Army(1960)> 등이 개봉 예정임을 홍보하고 있다. 7면에는 새롭게 리모델링을 거친 피카디리극장의 내부 좌석배치도를 수록하였고, 마지막 뒷표지에 해당하는 8면에는 <콰이강의 다리> 포스터의 축쇄본을 단색으로 인쇄하였다. “미, 일, 영의 상이한 군인정신과 전쟁의 광기성을 묘파(描破)하여 전세계를 감동시킨 불멸의 초 대명작!”, “박력과 감동의 세기적 거편! 당당 3시간 상영!” 등의 홍보문구를 수록하였다. 이 소책자는 1960년대 서울의 주요 극장이었던 피카디리극장의 초기 운영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외화 상영 실태와 배급, 홍보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매우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줄거리
1943년, 태국의 정글 속에 자리잡은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 송치되어 온 영국 육군 공병대의 니콜슨 대령(알렉 기네스)은 수용소장인 사이토 대령(하야카와 셋슈)의 비인간적인 처사와 제네바 협정을 무시하며 장교들까지 강제 노역을 시키려는 명령에 당당한 태도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는다. 독방에 감금되면서까지 자기 휘하 공병대 장병들에 대한 처우 개선의 유리한 조건을 획득한 후, 니콜슨은 영국인이 일본인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계속 실패만 거듭하고 있는 콰이강의 급류 위의 철도 교량 건설을 아예 자신이 작정하고 완성시키기로 한다. 

한편, 수용소를 탈출하여 영국군에게 구출된 미국 해군인 시어즈(윌리엄 홀든)는 일개 사병에 불과한데도 소령 계급으로 위장한 것이 발각 당하면서, 영국군에게 의가사제대를 약속 받는 대신 특수부대를 안내하여 콰이강의 다리를 파괴하고자 포로수용소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교량을 폭파하려던 이들의 계획은 물이 빠진 교량 아래에 드러난 도화선을 본 니콜슨에 의해 발각되면서 영국군 특수부대와 일본군 사이에 난전(亂戰)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다리를 완성시켰다는 자부심에 사로잡힌 니콜슨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결국 니콜슨이 보는 앞에서 시어즈는 일본군에게 사살되고, 특수부대원 조이스(제프리 혼)가 칼로 사이토를 죽이지만, 당황한 니콜슨이 조이스와 몸싸움을 벌이던 중 일본군의 총을 맞고 조이스가 죽으면서 폭파 계획은 완전히 난장판이 된다. 일본의 군용열차가 교량을 향해서 달려오는 와중에 황망한 상태에 빠진 니콜슨 대령은 영국군 특수부대의 대장인 워든 중령(잭 호킨스)이 쏜 박격포 파편에 맞고 비틀거리다 폭파장치에 쓰러져 죽고, 교량 아래에 묻은 폭탄은 마침내 폭파된다. 일본군의 군용 열차는 강바닥으로 추락하고 콰이강의 급류는 열차를 삼켜버린다.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영국군 의무장교 클립튼(제임스 도널드)는 “이건 미친 짓이야, 미친 짓!” 하며 뇌까린다. (출처: IMDb)


NOTE
프랑스 소설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게 생포되어 2년 간의 포로생활을 했던 피에르 불(Pierre Boulle)의 소설 <콰이강의 다리 Le Pont de la Rivière Kwaï(1952)>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이 영화는 미국과 영국의 프로덕션 팀이 스리랑카와 버마 등지의 현지 로케이션을 거쳐 2년 반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1957년 10월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 개봉하여 양국에서 그 해 최대의 수익을 기록하며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본래 이 영화는 195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 총 7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으나, 당시 각본상을 수상한 피에르 불이 실제로 각본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실제 각본가가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으로 이른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칼 포어먼 (Carl Foreman)과 마이클 윌슨(Michael Wilson)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69년에 수상이 취소되었다. 한편 무성영화 시대인 1910년대부터 이국적인 유혹자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며 할리우드의 스타로 군림했으나 발성영화의 도래 이후 영어 억양 문제로 한동안 활동하지 못하던 일본인 배우 하야카와 셋슈(雪洲早川)의 컴백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서울 피카디리극장과 대구 아카데미극장, 부산 현대극장에서 1962년 11월 3일에 동시 개봉하였는데, 피카디리극장의 경우 11월 3일부터 12월 24일까지 장기상영되어 그 해의 화제작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듬해인 1963년 1월 명동극장을 시작으로 2월 아데네극장, 3월 동대문극장, 4월 우미관, 5월 봉래극장, 6월 중부극장에서 거의 매일 연속으로 상영되며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석지훈(영화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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