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서류를 통해 본 1960년대 후반 코미디영화 II - <내 것이 더 좋아>(이형표, 1969)를 중심으로 -

by.박선영(고려대학교) 2018-07-02
내것이 더 좋아 스틸- 구봉서 서영춘
「검열서류를 통해 본 1960년대 후반 코미디영화 I」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대복덕방> 사건으로 한창 강화된 검열 속에서, <내것이 더 좋아>는 세 차례에 걸친 시나리오 검열과 실사검열 이후의 (조건부) 상영허가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대본의 상당 부분이 삭제되거나 수정되어야할 것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필름 자체에는 검열의 흔적이 그다지 기입되지 않았으며, 그럼으로써 서영춘 코미디의 ‘불온함’을 잘 드러낸 영화였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 이 영화는 구봉서와 서영춘이 공동주연을 맡고 있으나 서영춘이 여장남자 역할을 하면서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서영춘 코미디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영춘이 중심인물을 맡았던 <내 것이 더 좋아>는 ‘저속’을 검열 차원에서 단속했다는 의미에서, 매우 문제적인 영화였다.  

한국영화사에서 1968년부터 1971년은 ‘섹스영화’가 ‘폭발’했던 시기였다. 특히 1969년에는 ‘섹스’가 한국영화의 주류로 부상했다고 할 수 있는데, 남성동성애를 다룬 김수용 감독의 <시발점>과 동성애적 표현 수위가 상당히 높았던 신상옥 감독의 <내시> 등이 이 해 제작된 영화들이었다. 또한, 이 해 이형표, 신상옥, 박종호는 외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 제작되었던 <내 것이 더 좋아>는 동성애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제기하는 영화였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한 성춘(서영춘)은 가진 돈을 몽땅 소매치기 당한 뒤,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봉수(구봉서)에게 얹혀 살게 된다. 봉수는 성춘 만한 덩치를 가진 ‘여편네’와 함께 살다가 얼마 전 헤어진 상태로, 하숙집 아주머니가 맞선을 주선한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자 얼결에 성춘을 시골에서 올라온 ‘본 마누라’라고 소개한다. 이때부터 여장을 하게 된 성춘은 봉수와 함께 살면서 자신의 여성성을 마음껏 뽐낸다. 한편, 맞은 편 집에 살고 있는 부부 역시 여성 동성애 부부로, 두 쌍의 동성 부부가 엮이게 되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성춘은 부부 중 아내 역할을 하는 분임(고은아)에게 마음을 두고, 그녀에게 “정상적인 부부”의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성춘은 분임과, 봉수는 강자(이금희)와 연결되면서 두 쌍의 동성 커플은 두 쌍의 남녀 커플로 ‘정상화’된다. 

그런데 제작신고 시 제출했던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이와 상당히 다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하루만 재워주겠다고 성춘을 집으로 데려 갔던 봉수가 먼저 성춘에게 “마누라”가 될 것을 제안하는 다음의 장면이다.

#20. 봉수의 방

성춘: ... 근데 혼자 사세유?
봉수: 그래 한달 전에 내쫓았어! 난 여자라면 신물이 난다구! 여편네라구 어디서 바가지만 박박 긁구 귀찮구 재수없는 존재란 말야.. 

하다가 성춘을 천천히 뜯어본다.

성춘: 뭐가 잘못 됐시유?
봉수: 너 밥도 잘한다고 했지?
성춘: 그쯤이야 누워 코풀기지 뭐유. 힛힛... 
봉수: 그럼 너 내 마누라 안돼볼래?
성춘: 예? 마누라유? 제가유? 아이고메... 남자가 어찌 여자가 된단 말이예유?
봉수: 그럼 넌 아내로서 언제까지나 이 집에서 살아두 되는 거야
성춘: 허지만 난 가수가 될려고 왔지, 아내가 될려고온 건 아닌데유?
봉수: 야 여기 살면서 저 전축으로 열심히 배워서 가수가 되는 길을 더듬어 보는 거야!
성춘: 오라 그것도 좋은 생각이유!
봉수: 그럼 우리 간단히 초례나 올릴까?
성춘: 어떻게유?
봉수: 찬물 떠놓고 올리면 되는 거지. 예식장에 갈 필요가 없잖아. 
성춘: 허지만 여자옷도 한 벌 없는데.
봉수: 옷이 왜 없겠니. 봐라 보구만 죽으라구!

하며 양복장 문을 드르륵 열어 보인다. 쪼옥 걸려있는 옷가지들.

봉수: 양장에 한복에 수두룩하다! 먼저 살던 여편네가 등치가 너만 했으니까 잘 맞을거야. 아무거나 골라 입으라구. 난 냉수 떠올게. 

하며 나간다. 놓여지는 냉수 한 그릇. 
밤이다. 정한수 떠놓고 마주서서 예를 올리고 있는 봉수와 성춘.
봉수가 절하면 성춘도 절하고. 

봉수: 우리 두 부부 일생을 화목하게 지내도록 해 주시고 아들 딸 낳고 백년해로하게 해 주시옵소서. 
성춘: 여봐. 아들 딸을 어떻게 낳아
봉수: 글쎄 우선 그렇게 해두는 거야. 자! 식은 끝났구.... 사랑의 선물로 키쓰나 한 번 하자!

하며 성춘의 뺨에 입술을 갖다댄다.

봉수: 아이 따거! 야 수염이나 좀 깎어라!
성춘: 정말 별꼴이야... 에이 퇴!
봉수: 여보 이제부터 우린 부부야. 남편 말 잘 듣고 착한 아내가 되라구!

이어지는 첫날 밤, 봉수와 성춘이 자고 있는데, “서로 다리와 다리를 엉키구 부둥켜 안고 자고 있는 두 사람의 꼴이 가관”이다. 다음 날 아침 봉수는 “그럼 다녀오리다”하는 인사와 함께 성춘의 뺨에 뽀뽀를 하고 출근하며, 퇴근하는 길에는 성춘에게 주기 위해 “케키집”에 들러 “케키상자”를 들고 나온다. 현재 남아 있는 영화에서는 이 장면들이 모두 삭제되었으며, 봉수가 성춘을 끊임없이 ‘이 새끼야’ 등으로 칭하고 구박하는 장면과 대사로 대치되었다. 두 사람이 애정을 표현하거나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장면 역시 성춘을 귀찮아하고 내보내고 싶어하는 봉수의 대사들로 바뀌는데, 검열 이후 재녹음된 이 대사들은 화면의 입모양과 동조되지 않는다.

한편, 맞은 편 집에 살고 있는 여성 동성애 부부에 대해서는 ‘부부’임을 암시할 수 있는 모든 단어들을 지워져 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는 처음 분임과 강자를 본 성춘이 부부냐고 묻자 봉수는 “그야 부부지만 예사 부부가 아니지”, “동성연애를 하고 있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동성연애가 뭐냐고 묻는 성춘에게 “여자끼리 남편이 되구 여편네가 되구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거지.”라고 대답한다. 

오리지널 시나리오
오리지널 시나리오-2
(그림 1) <내 것이 더 좋아>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신 #20

분임-강자 부부의 성적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는 이 대화는 영화에서 저들이 부부냐고 묻는 성춘의 질문에 “아니야. 둘 다 여자야.”라는 봉수의 대답으로 부정되고 축소된다. ‘부부’라는 표현이나 ‘남편’이라고 칭하는 분임의 대사 역시 ‘강자 씨’ 등의 일반적인 호칭으로 대치되며, 이들의 관계를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들도 대부분 삭제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애정 표현 또한 거의 삭제된다.
 
그런데 여성 커플의 다정한 장면이 대부분 삭제된 것과 달리, 남성 커플의 애정 행각은 좀 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성춘이 “여보 나 예쁘지? 난 당신이 좋아 죽겠어”라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 노래 자랑 대회에 나가 ‘코미디언 서영춘’의 레퍼토리 중 하나인 “삐빠빠룰라”를 부를 때 다정하게 봉수의 이름을 부르고 “여보”라고 칭하는 장면, 팔짱을 끼고 음식을 서로 먹여주며 데이트 하는 장면 등 이들의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은 그대로 남겨진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오가는 서영춘의 행위가 ‘코믹함’을 위해 상당수 남겨질 수 있었던 반면 여성 동성애를 묘사하는 장면은 삭제되어야 했다는 점에서, 당대 검열이 구분했던 ‘불온’의 위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  

다시 검열 서류로 돌아가 보자. 전술했듯이, 이 영화는 제작신고 시 시나리오 검열에서 제작불가 통보를 받았다. 무엇보다 남장여자, 여장남자를 등장시켜 동성애 커플을 다뤘다는 것과 여장남자의 ‘저속한 행동’이 문제가 되었으며,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돈을 안 내는 도주 및 사기 행각, 도둑놈의 도둑질 행위, 깡패들의 돈 갈취 행위 등도 불가의 사유로 지적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검열에 의해 여장 남자의 저속한 행위로 규정되어 삭제되어야 할 것으로 구체적으로 지적된 것들이 매우 일상적인 행위들이며 또한 이 영화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검열에서 지적한 ‘저속한 행동’에는 빨래하는 것, 시장보고 음식하는 것, “식모노릇”, 마사지 하는 것, 여장남자의 부부생활, 산부인과 소동, 얼굴을 할퀴는 등의 난동, 남장 여인 부부 침실에 뛰어드는 행위가 포함된다.

각본심의의견-1
각본심의의견-2
각본심의의견-3
각본심의의견-4
각본심의의견-5
각본심의의견-6
(그림 2) 작성자 불명, 「극영화 “내 것이 더 좋아” 각본심의의견」, 1968.11.(추정)
이 심의의견서는 ‘씨나리오검토의견’이라는 제목이 명시된, 일정한 형식이 있는 문서
네 건(심사 날짜가 11월로 되어 있는 것 두 건, 심사 날짜가 12월로 되어 있고 ‘재심분’이라고 표기된 것 두 건)과 달리
수기로 쓰여 있으며 특정한 문서의 형식이 없다.
그리고 당부의견에서 영화 제작 ‘불가 또는 개작 통보’ 중 불가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두고 있다.
  
제작 불가 판정을 받은 한 달 뒤인 12월 10일, 제작자인 합동영화사의 곽정환은 27곳의 대사를 삭제하거나 삽입했다고 하면서, 시나리오의 재심을 요청했다. 현재 남아 있는 서류상으로 볼 때, 이 영화는 12월 14일 시나리오검토의견에서 또 다시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12월 23일 검토에서는 제작 ‘가’ 판정을 받았다. 재검토 이후 10일 간의 공백을 두고 다시 한 번 검토가 이루어진 것인데, 12월 26일 제작사에 통보된 「제작신고수리 및 시정사항통보」에 “12월 23일에 제출된 극영화 ‘내것이 더 좋아’에 대한 검토”라고 명시된 것으로 미루어, 이 문건은 12월 14일 이루어졌던 재검토에서 제작 불가 판정을 받은 이후 한 차례 더 수정이 이루어진 뒤 세 번째 시나리오 검열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12월 26일에 통보된 검열의 내용에서 지적하는 바 역시 그 이전에 적시되었던 불가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작신고수리 및 시정사항 통보-1
제작신고수리 및 시정사항 통보-2
제작신고수리 및 시정사항 통보-3
(그림 3) 공보부, 「극영화 “내 것이 더 좋아” 제작신고수리 및 시정사항 통보」, 1968.12.26.)     

이 통보서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수정된 시나리오 중 12곳을 더 삭제하거나 시정하도록 요청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지적은 “동성끼리 부부를 가장하여 생활하는 설정 자체가 불건전”하기 때문에 “모든 장면 묘사는 어디까지나 가벼운 넌센스 코메디 스타일의 텃치로 건전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동성 부부관계의 애정 묘사 등 비정상적인 표현을 일체 삭제”하라고 주문한다. 또한 “여장남자의 저속하고 추잡한 모든 장면이나 대사를 건전하게 시정”하고 “동성부부가 서로 성감을 느끼는 듯한 일체의 묘사를 삭제하거나 달리 시정”하도록 지시한다. 

이는 곧 동성애는 그 자체가 “불건전”하고 “비정상적”인 것이므로, 삭제되어야 하거나 혹은 “가벼운 넌센스 코메디 스타일의 텃취”로 그려질 때만 “건전”하게 취급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즉, ‘동성 부부’라는 설정 자체가 없어지면 이 영화의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제작이 불가능한데, 제작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동성애자 부부’임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벼운 넌센스 코메디 스타일의 텃취”를 통해 이 영화의 불온함을 가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벼운 넌센스 코메디”의 웃음 유발 장치로 활용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요소들은 ‘저급’하므로 삭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결국 검열이 요구하는 바를 모두 지키면서 코미디영화의 형식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이 영화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딜레마 속에 놓인 이 영화가 살아남은 방식이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들을 포함하여 재검열을 위해 자진 삭제하였다고 제시한 부분을 제외하고, 제작신고 수리 시 시정사항으로 통보된 내용들, 그리고 필름 검열합격 후 삭제 또는 단축할 제한사항으로 지적된 26개의 장면 또는 대사 대부분이 필름에 남아있다. 
 
“내 것이 더 좋아” 검열합격-1
“내 것이 더 좋아” 검열합격-2
“내 것이 더 좋아” 검열합격-3
(그림 4) 공보부, 「장편영화 “내 것이 더 좋아” 검열합격」, 1968.12.31.

서류에 따르면 심지어 이 영화는 사전제작 위반작이었는데, 1차 개작 이후에도 두 차례에 걸친 시나리오 검열과 실사 검열을 거치면서 “불건전”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지적되어 ‘시정’ 혹은 ‘삭제’되어야 했던 부분들은 대부분 서류상으로만 삭제되었던 것이다. 임검까지 가능했던 당시의 검열 속에서 ‘저속’하므로 삭제되어야 했던 이 영화는 삭제되지 않은 ‘저속’함으로 남은 경우였다.  

서영춘 코미디와의 비교를 위해 이 영화와 거의 동시기에 제작되었던 구봉서의 코미디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 후반 구봉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남자와 기생>(심우섭, 1969)이나 <남자 식모>(심우섭, 1968), 그리고 <남자 미용사>(심우섭, 1968)는 검열에서 훨씬 관대한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들에서 구봉서는 여장을 하고 시장을 보며, 청소와 식사준비, 바느질 등의 집안일을 도맡고 마사지를 하기도 한다. 특히 <남자와 기생>에서 구봉서는 여장을 하고 요정에서 남성들에게 술과 웃음을 파는 기생 역할을 맡는다. 그럼에도 검열에서 구봉서의 코미디는 서영춘의 코미디와 결이 다른 것으로 취급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구봉서의 ‘남자 시리즈’는 검열에서 대체로 ‘건전’하며 ‘명랑’한 ‘풍자 코미디’로 평가 받았다. <남자기생>은 제목이 “너무나 직선적인 퇴영적 인상”이 강하므로 “건전한 이메지의 것”으로 개제하라는 지적에 따라 <남자와 기생>으로 변경되었고 그 외 섹슈얼리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들에 ‘주의’를 요하면서 “각별히 저속하지 않게 묘사”할 것을 주문하는 정도가 검열에서 지적된 내용이었다. 

극영화 “남자 기생” 각본심의결과통고서
(그림 5)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극영화 “남자 기생” 각본심의결과통고서」, 1968.9.14. 

<남자 식모>에서는 여성 식모들을 비하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듯한 발언들, 예를 들어 “식모 주제에”, “예쁜 식모라도”, “여자 식모들 살맛이 나는데” 등의 대사 등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을 제외하면, 제명에 대한 언급 정도가 검열에서 지적한 사항이었다. “제명은 일기경박하고 저속한 감 불무하나 작품자체가 코메디텃취이고 주인공이 남성이기 때문에 원제명을 인정”한다는 것 정도의 언급이 있을 뿐이다. 

극영화 “남자식모” 각본심의결과보고서
(그림 6)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극영화 “남자식모” 각본심의결과보고서」, 1968.3.29.
1967년까지 ‘씨나리오심의의견서’ 또는 ‘각본심의의견서’였던 사전 시나리오 검열서류는
1968년 초 ‘각본심의결과보고서’를 거쳐 1968년 4월 이후 ‘각본심의결과통고서’로 변모했다.
 
한편, <남자와 기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남자기생 태호(구봉서)가 요정에서 술 마시는 남자들을 앞에 놓고 춤과 노래로 풍자하는 대목인데, 검열에서 일부 삭제되었다. 삭제된 부분은 “네놈들 때문에 우리들은 돈벌이 잘 되지만 너희들도 국가를 위해 무언가 할 생각을 해 보아라”라는 대사였는데, 노골적으로 교훈을 설파하는 구절이 삭제된 것이다. 검열 서류에서 따로 적시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 대사가 삭제된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코미디 영화에서 ‘국가’를 거론하는 것 자체의 ‘불온함’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진 삭제의 구절은 차치하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봉서 코미디에 대한 지적들은 서영춘 코미디가 ‘저속함’을 이유로 검열에 의해 제지되었던 것과 다른 결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즉, 구봉서가 영화에서 여장을 하거나 여자들의 직업(<남자 식모>, <남자 미용사>)에 도전하는 것은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타락한 사업가’나 ‘일부 유한계급의 여성들’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므로 대체로 “건전”하고 “명랑”한 것으로 규정되었던 것이다. 반면, 서영춘의 여장은 이와 다른 위치에 놓인다. <내 것이 더 좋아>의 마지막 부분, 봉수와 크게 싸우고 집을 나가는 장면에서 성춘은, 

내가 여태 갈 데가 없어 안간 줄 알아유! 너 인생이 불쌍해서 못갔다! 네 놈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여자 구실하다 그 좋은 육체마저 요렇게 갈비처럼 살이 쏙 빠졌다! 먹고 싶은 오징어 다리 하나 안 사먹고 하고 싶은 가수 한 번 못하고 너 구린내 나는 양말쪽 깁느라고 허송세월만 했어!

라고 화를 낸다. 생계를 위해서만 여장을 한 것이 아니라 봉수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함께 살고 있었음을 고백한 성춘의 문제적 위치는 ‘남자시리즈’의 구봉서의 행위와 달리 ‘위험’하고 ‘불온’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성춘은 분임과 있는 장면에서는 남성성을 과시하지만, 봉수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항상 풀 메이크업에 브래지어까지 갖춰 예쁜 옷을 차려 입고 목소리도 가냘프게 변조하는 등 여성성을 적극 드러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느끼는 대상도 의미심장하다. 남성의 역할을 맡았던 이들끼리, 여성의 역할을 맡았던 이들끼리 사랑을 느껴 파트너를 바꾸는 마지막 씬은 ‘정상화’되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동성애적 코드이다. 우여곡절 끝에, 삭제하라는 모든 부분을 삭제하지는 않은 채 개봉된 이 영화에는 검열로도 채 다 삭제하지 못한 ‘불건전한’ 성적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이영일은 󰡔한국영화전사󰡕(2004)에서 1960년대 후반이 “저속취향의 풍조”를 보이는 “이상 현상”의 시기였다고 규정하면서 <여자가 더 좋아>(김기풍, 1965)가 “서민대중 관객의 저속취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영일이 건전한sound 코미디로 언급했던 것이 사회적 교훈, 경구를 풍자적으로 그린 코미디들임을 감안할 때, 1960년대 후반 코미디가 ‘저속취향’이라고 단정한 이면에는 ‘풍자’하거나, 적어도 ‘풍속’을 그리는 ‘건전’한 코미디가 코미디의 위계상 상위에 놓인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당대를 살았던 평론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영일을 비롯한 당대 평론가들이 이 시기의 코미디를 ‘저속취향’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 코미디들이, 당대 검열의 언어를 통해 말하자면, 국가가 규율한 ‘명랑’과 ‘건전’으로 수렴되지 않는다고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서민대중’의 ‘취향’을 형성할 정도의 대중적 파급력과 일종의 장르성을 가진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서영춘이 영화에서 담당했던 역할들이 주로 시골에서 올라온, 성적 정체성이 모호한 노동계급의 남성이었다는 점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서영춘 코미디의 특성은 그가 맡은 캐릭터들의 성적, 계급적 위상에서 잘 드러난다. 

먼저, 서영춘의 젠더 형상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는 경우(<여자가 더 좋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부장으로 복권되면서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결말(<내 것이 더 좋아>)이라고 해도, 서영춘의 코미디에는 ‘시각적’으로는 여성적인 포지션을 포기하지 않는 이른바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그로테스크한 신체’가 중심에 놓인다. 서영춘의 ‘그로테스크한 신체’는 회복되지 않은 ‘남성성’과 포기되지 않은 ‘여성성’의 기묘한 공존을 시각적으로 전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적 모호함은 특히 1960년대 후반이라는 경직된 시대에 맞닥뜨렸을 때 한층 더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서영춘의 코미디가 직업, 젠더, 섹슈얼리티, 가족과 같이 사회적으로 규정된 규범 및 영역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독해될 여지를 남기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구봉서의 코미디가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남성성’을 재설정하면서 종결될 때, 서영춘 코미디는 ‘도착적’ 남성성과 성적 에너지를 드러냄으로써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서영춘 캐릭터의 계급성과 이로부터 비롯된 언어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술했듯이 서영춘은 주로 시골에서 상경하여 곤란에 처한 구직자 역할이나 실직자, 수위, 중국집 배달부, 세탁소 직원 등 도시 하층계급의 저임금 노동자 역할을 맡으면서 비속어, 욕설, 그리고 욕망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한 날 것 그대로의 언어를 사용했다. ‘저속’한 언어를 활용한 코미디는 ‘건전’한 코미디가 줄 수 없는 해방감과 일탈의 만족을 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다소 뻔뻔할 정도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비속한 언어로 감정을 표출함으로 인해, 서영춘이 맡은 캐릭터들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가거나 간혹 골탕을 먹게 될 때도, 불쌍한 느낌과 연민을 자아내기 보다는 관객들에게 통쾌한 느낌을 주었다. 굳이 비교해서 말하자면, 동일시와 위안의 즐거움이 구봉서 코미디의 몫이었다면, 가학과 위반의 쾌감이 바로 서영춘 코미디의 존재 이유였던 것이다. 

요컨대, 서영춘의 코미디는 성정체성이 모호한 여장 남자, 시골에서 올라온 노동계급의 남성, 비속어와 욕설, 성적 뉘앙스가 담긴 저급한 언어의 사용 등으로 ‘저속’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정서의 규율’로서의 ‘명랑’과 ‘건전’을 벗어나는 위반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서영춘의 “그로테스크한 신체”와 하층 계급 남성의 ‘상’스럽고 생생한 언어는 “성스러운 것, 두려운 것, 권력, 지배체제”로부터의 “해방”1)을 선사해주는 것이자 ‘불온한’ 공범자로서의 웃음을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서영춘의 코미디 스타일은 검열을 통해 ‘저속함’으로 규정되었으나 시대가 강제했던 ‘명랑’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명랑’을 구현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럼으로써 그로테스크한 웃음과 위반의 쾌락을 근간으로 했던 서영춘 코미디는 ‘명랑하라’는 시대적 명제와 더불어 공생할 수 있었다. 

1) 게리 솔 모슨, 캐릴 에머슨 지음, 󰡔바흐친의 산문학󰡕, 2006.

* 참고문헌
게리 솔 모슨, 캐릴 에머슨 지음, 오문석, 차승기, 이진형 옮김,
󰡔바흐친의 산문학󰡕, 책세상, 2006.
박선영, 「1960년대 후반 코미디영화의 ‘명랑’과 ‘저속’ - 서영춘코미디의 불온함과 검열의 문제」, 한국극예술학회,
󰡔한국극예술연구󰡕51집, 2016.  
이영일,
󰡔한국영화전사󰡕(개정증보판), 도서출판소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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