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삼
Lee Hwa-sam / 李化三 / 1911  ~ 
대표분야
제작/기획, 배우
활동년대
19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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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수우 (안종화, 1948)
우르러라 창공(원제:仰げ大空) (김영화, 1943) 개장수 남자
창공(원제:돌쇠) (이규환, 1941) 돌쇠
무정 (박기채, 1939)
풍년기 (이병일, 1938)

주요경력

1935년 조선예술좌 동인
1936년 조선연극협회 회원
1938년 낭만좌 좌원
1945년 극단 전선 단원
1946년 극예술원 동인
1947년 극예술협회 동인
1949년 극단 신예술무대 단원
1950년 신극협의회 동인

기타정보

주요기타작품
1950년 <원술랑> (연출)
수상내역(기타)
1939년 제2회 동아일보 연극경연대회 우수연기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1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실업중학을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2부대 문과를 졸업했다(문화포털). 1929년 조선어극단 입단을 통해 연극에 데뷔했으며, 1935년 동경 츠키지소극장을 중심으로 재일본 조선인 유학생들이 창립한 조선예술좌에 동인으로 참여했다(동아일보). 귀국하여서는 1936년 조선연극협회, 1938년 낭만좌 등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문화포털). 1940년 협동예술좌 소속으로 있으면서 영화에 눈을 돌린 그는 이규환이 연출한 <창공>(원제: 돌쇠)의 제작을 맡는 동시에 주연으로 출연했다(조선일보a, b). 해방 후 1947년 유치진을 주축으로 설립된 극예술협회(극협)가 1950년 국립극장 설립과 함께 그 전속 극단 신극협의회(신협)로 흡수되자, 이화삼은 신협의 국립극장 개관기념공연 <원술랑>(1950.4.30.)의 공동연출을 맡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경향신문). 그러나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17일에 인민군에 납치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소식을 알 수 없다(납북인사DB).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39년 3월 9일자 5면
조선일보a 1940년 2월 27일자 4면
조선일보b 1940년 6월 7일자 4면
경향신문 1981년 4월 25일자 9면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 http://www.culture.go.kr/art/knowledge/directory.jsp
(사)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납북인사DB http://www.625.in/abductdb.php?c_kind=a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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