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Jeong Min / 鄭珉 / 1923  ~ 
본명
정동민 (Jeong Dong-min)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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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호반의 메아리 (박남수, 1978)
해돋는 언덕 (한상훈, 1977) 민규의 부
난중일기 (장일호, 1977) 권율
흑야 (이두용, 1975) 고노인(명수의 부)
나는 어떡하라고 (박태원, 1975) 강사장(신아의 부)
꽃상여 (김기덕, 1974) 한주사(태진의 부)
지구여 멈춰라 내리고 싶다 (이재웅, 1974) 오사장(경아의 부)
서로 좋아해 (주동진, 1974)
여로 (김기, 1973) 최주사(영구의 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김묵, 1972) 중구

주요경력

1946년 극단 문화극장(文化劇場) 단원
1947년 불교예술동맹(佛敎藝術同盟) 회원
1960년 대한영화배우협회(大韓映畵排優協會) 이사, 연극협의회(演劇協議會) 회원
1963년 동국극회(東國劇會) 총무, 불교문화예술원(佛敎文化藝術院) 이사
1964년 극단 현대극장(現代劇場) 부대표
1967년 연극협의회(演劇協議會) 감사
1970년 연극협의회(演劇協議會) 부이사장
1978년 불가에 귀의, 법명 무염(無染)
1983년 연출자의 설득에 KBS 1TV 드라마 <개국>에 보우대사 역으로 출연

기타정보

주요기타작품
1968년 TBC <엄마의 일기>
1971년 KBS <먹구름 흰구름>
1972년 KBS <여로>
1983년 KBS <개국(開國)> 등

연극
1946년 <불>
1950년 <돌아온 사람들>
1960년 <피는 밤에도 자지 않는다>
1964년 <뜨겁고 위험한 애정>
1969년 <석가> 등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3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정동민(鄭東珉)이다. 동국대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했다(국제영화, 김기제). 대학 재학 당시부터 무대생활을 시작하여 극단 문화극장(文化劇場) 등에서 활동했다(국제영화, 경향신문). 1947년 임운학 감독의 16mm 영화 <그들이 가는길>에 출연했다고 하나, 본격적으로 영화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안종화 감독의 1956년작 <사도세자>에 출연하면서부터이다(김기제). 이후 1978년까지 꾸준히 여러 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김기덕의 <오늘은 왕>(1966), 이성구의 <일월>(1967) 등에서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동아일보b, c). 연극계에서도 활발히 활동을 이어나가 1964년 극단 현대극장(現代劇場) 부대표, 1970년 연극협의회(演劇協議會)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동아일보a, 매일경제). 해방 직후 불교예술동맹(佛敎藝術同盟)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1978년 돌연 삭발을 하고 속세를 떠나 승려로 귀의했으며, 이후 승려 역할로 방송극에 출연하기도 했다(자유신문, 동아일보d).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46년 12월 11일자 2면
동아일보 1964년 4월 9일자 5면
동아일보 1966년 8월 18일자 6면
동아일보 1967년 7월 6일자 5면
동아일보 1983년 1월 14일자 12면
매일경제 1970년 2월 4일자 4면
자유신문 1947년 8월 3일자 2면
韓國映畵排優百人選(二), 『국제영화』제4권 제8호(1958년 9월 발행).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200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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