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남
Nam Gi-nam / 南基男 / 1942  ~  2019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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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동자대소동 (남기남,정창욱, 2010)
바리바리짱 (남기남,정창욱, 2005)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 (남기남,정창욱, 2003)
너없는 나 (남기남, 2002)
망치를 든 짱구와 땡칠이 (남기남, 1998)
월하의 공동묘지 (남기남, 1996)
헤드폰을 벗어라 (남기남, 1994)
소녀 18세 (남기남, 1993)
씨내리 (남기남, 1992)
머저리와 도둑놈 (남기남, 1992)

주요경력

1959년 배우가 되기 위해 상경한 후 10여 년 간 영화계에서 조감독 생활을 거침
1972년 <내 딸아 울지마라>로 감독 데뷔
2009년 영화의 날 공로영화인상 수상

기타정보

기타이름
南奇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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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42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17세 때인 1959년 배우가 되고 싶어서 무작정 상경했으나, 명동의 다방에서 최무룡을 직접 보고는 본인 인물 정도로는 배우는 안 되겠다 싶어 연출로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서울신문b). 서라벌 예술대학을 졸업했으며, 1960년 한형모 감독의 <왕자 호동과 낙랑 공주>의 연출부에 들어가면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이후 장일호, 변장호, 임원식 감독 등의 작품에서 조감독을 하며 연출 공부를 했고, 영화 입문 12년째에 멜로드라마 <내 딸아 울지 마라>(1972)로 감독 데뷔한다. 1972년 데뷔 이후 액션, 쿵후, 코미디 영화 등 다수의 영화를 찍었으며, 2010년대까지 40여 년의 감독 경력 동안 백편이 넘는 영화를 감독했는데,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낮은 예산 규모 내에 작업하기로 정평 나있는 본인의 스타일을 두고 본인 스스로 '남보다 빨리 찍는다', '기한은 딱 맞춘다', '남은 힘있는 한 찍겠다'이라는 삼행시를 짓기도 한다(씨네21). 1989년에 감독한 <영구와 땡칠이>는 200만 전후(혹자는 270만이라고 까지도 보는) 관객이 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이어지는 시리즈 역시 모두 성공한다(서울신문a). 1990년대부터 직접 제작도 하였지만, 1996년 30여억 원을 들여 제작하고, 1998년에서야 개봉한 <천년환생>의 흥행 실패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다시 재기하여 <너 없는 나>(2002),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2003), <바리바리짱>(2005), <동자대소동>(2010)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친다.

* 참고문헌
서울신문a 2011년 1월 8일
서울신문b 2011년 1월 18일
전정윤, "<바리바리 짱> 남기남 감독", 『씨네21』, 517호(2005년 8월 25일)

[작성: 전민성 ]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42년 4월 7일 전라남도 광주 출생. 본적은 광주광역시 충장로5가 69번지. 광주상고를 졸업한 후 서라벌 예대 졸업. 1960년 12월 한형모 감독의 <왕자 호동과 낙랑 공주> 연출부에 입문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내디뎠으며, 이후 이규환, 조긍하, 하한수, 신경균, 장일호, 변장호, 임원식 등 많은 감독 밑에서 연출 수업을 쌓은 그는 12년이라는 조연출 생활을 끝내고 1972년 10월 김지미, 태현실, 이대엽, 허장강, 아역 배우 김정훈을 주연으로 한 <내 딸아 울지 마라>로 데뷔하게 된다.
데뷔한 직후 <사나이의 눈물>을 촬영하다가 제작자의 불의의 사고로 작품을 중단하고 홍콩으로 건너가 2년 동안 활동하다가 1976년부터 한국에서 감독을 다시 시작하여 액션영화와 코믹 영화를 위주로 지금까지 9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미스터 O>(1977) <불타는 소림사>(1978) <신정무문>(1978) <평양맨발>(1980) <열번 찍어 안 넘어간 사나이>(1980) <사형삼걸>(1981) <평양 박치기>(1982) <나 이렇게 산다우>(1983) <서울은 여자를 좋아해>(1987) <영구와 땡칠이 소림사 가다>(1989) <영구와 황금박쥐>(1991) <머저리와 도둑놈>(1998) 등이 있다.
그의 영화는 너무나 급하게 찍어서 엉성한 부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흥행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그의 최고 흥행작으로는 <영구와 땡칠이>(1989)를 들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정확한 기록을 알 수 없지만, 비공식적으로 당시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라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평양맨발>(1980)이 흥행에서 대박을 터뜨려 1980년 정부에서 뽑은 영화감독으로 3개월간 미국 LA 할리우드로 연구까지 가는 행운을 잡기도 했으며, 1982년 기자들이 뽑은 감독으로 은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TV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들과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2003)를 연출했는데, 예전 흥행에 미치지 못하는 기록이었지만, 나름대로는 선전했다고 할 수 있다.
탁월한 작품을 남긴 감독은 아니다. 그래서 평론가나 관객들에게 주목을 받은 감독도 아니지만, 특유의 빨리 찍는 것을 무기로 한국의 ‘에드우드’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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