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걸
Lee Mun-geol / 李文杰 / 1935  ~ 
대표분야
특수효과
데뷔작품
지평선 1961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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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1960년대 한국영화의 스펙터클을 말한다 (이종은, 2007)
소품 :
동굴속의 애욕 (강범구, 1964)
안개낀 거리 (강범구, 1963)
싸우는 사자들 (김묵, 1962)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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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35년 5월 14일 일본 나가노켄 출생
1943년 일본 나가노켄 미나미사구 우수다마치 우수다국민학교 입학
1946년 해방 후 한국 울산에 정착
1947년 울산 복산국민학교 4학년 편입학
1949년 복산국민학교 졸업
1950년 울산중학교 입학
1952년 대구 대건중학교 편입
1954년 대구 서고등학교 입학
1956년 논산 제2훈련소 입소. 20사단 수색중대 상황계
1959년 육군 제5사단 만기제대
1960년 한흥영화사 제작부 입사
1961년 <지평선>에서 처음 특수효과 맡음
1964년 독립하여 특수효과 시작. <소만국경>으로 크레딧에 처음 특수효과 담당자로 이름을 올림
1980년 국방부 장관 감사패
1989년 육군전투과학교장 감사패
1990년 국군홍보관리소 감사패
2002년 한국영화인협회 공로상

기타정보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이문걸은 특수효과분야의 개척자이자 산증인이다. 그는 1935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한국으로 왔다. 1956년 군에 입대해 병기계와 장비공급 담당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 영화계에서 일하고 있던 동생 이예남의 권유로 한흥영화사 제작부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당시 한흥영화사에서는 정창화, 김묵, 임권택 감독 등이 대륙물과 액션영화를 주로 만들고 있었다. 이문걸은 제작부에 소속되어 이들 영화에 등장하는 총기나 무기류 소품을 담당했다.
이문걸이 특수효과로 참여한 첫 작품은 정창화 감독의 <지평선>(1961)이었다. 그는 임권택 감독의 데뷔작인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에도 참여했다. 당시 특수효과는 전쟁영화에서 총기, 폭탄과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루었다. 총기 다루는 것에서부터 국내 특수효과가 시작된 것이다. 1960년대 초에는 특수효과가 영화의 한 분야로 인정을 받지 못해 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었다. 때문에 이문걸은 <소만국경>(1964)에서야 특수효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한흥영화사 부도 후에 그는 특수효과로 독립했다.
특수효과에 대한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던 당시 영화계에서 그는 영화를 찍어가면서 축척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특수효과분야를 개척했다. 그는 해외 특수효과팀과의 협업을 통해서 특수효과분야의 교류에도 힘썼다. 국내 최초의 SF영화 <대괴수 용가리>(1967)는 일본 특수효과팀이 참여한 작품이었는데 일본 특수효과팀으로부터 미니어처 고속촬영과 폭파작업 노하우 등을 배우기도 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미국 전쟁 영화 <오, 인천!>(1982)을 통해서는 선진 특수효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는 700여 편의 극영화와 <배달의 기수> 등 60여 편의 군 홍보 영화, 「전우」, 「조선왕조 오백년」 등 4~500여 편의 TV 드라마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했다(한국영화사연구소).

* 참고문헌
한국영화사연구소,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2』,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이채, 2006, 294~336쪽.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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