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웅
Gang Tae-ung / 康太雄 / 1929  ~ 
대표분야
감독, 배우
활동년대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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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콩쥐 팥쥐 (강태웅, 1977)
흥부와 놀부 (강태웅, 1967)
금지된 입술 (강태웅, 1965)
백의천사와 꼽추 (강태웅, 1959)

주요경력

1949년 영화공부를 위해 도일
1950년 일본대학 예술학부 영화학과 입학
덴츠(電通)사 인형영화제작소에서 모치나가 감독의 도제로 일함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9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1949년 7월 영화에 뜻을 품고 일본 유학 길에 올라, 니혼대학 예술학부 영화학과에 입학한다. 유학 생활이 시작될 무렵, 한국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학교를 졸업한 후에 일본서 조감독 생활을 하려하지만 뜻처럼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게 되었고, 결국 기록영화를 만드는 회사에 제3조수로 들어가 영화계에 입문한다. 그러던 중, 한번은 광고회사인 덴츠(電通)사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마침 조감독을 구하고 있던 모치나가 타디히토(持永只仁)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게 된다. 모치나가 타다히토 감독은 당시 중국과 일본의 영화계에 있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그 아래에서 1년간 조감독을 하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익힌다(애니메이툰). 그 후 귀국하여 만든 영화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의 멜로드라마로 <백의 천사와 꼽추>(1959)로 이 작품의 연출과 주연을 맡았고, 두 번째 연출작 역시 실사영화인 <금지된 입술>(1966)이었다. 이 두 작품을 거치는 동안,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전>(1967)이 만들어져 크게 히트를 하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한국영화감독사전). 그렇게 제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가 <흥부와 놀부>(1967)이고, 그 다음 영화가 <콩쥐 팥쥐>(1977)이다.

* 참고문헌
People-강태웅 감독, 『애니메이툰』 90호(2011년 3월 29일)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황미요조]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9년 8월 28일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 영화를 배우고 싶어 1949년 현해탄을 건너가 1950년 일본대학 예술학부 영화학과에 입학 한 강 감독은 일본 덴츠사의 인형 영화제작소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모치나가 감독의 도제가 되었다. 그렇게 인형극을 배운 강태웅 감독의 국내 데뷔작은 인형극이 아니었다. 당시 국내 상황은 인형극을 연출할 만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뷔작은 통속극인 <백의천사와 꼽추>(1959)였다. 꼽추였으나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 한 간호사를 짝사랑하게 되는데,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결혼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이다. 특이한 것은 이 영화의 주연이 강태웅 감독이라는 점이다. 차기작 <금지된 입술>(1966) 역시 통속극이었다. 신성일, 엄앵란, 김승호가 출연한 이 영화는 연인간의 오해가 불러오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두 편의 멜로드라마를 통해 영화적 경력을 쌓은 그는 드디어 인형극을 제작하게 된다. 그런 배경에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전>(1967)의 역할이 컸다. 각본, 감독, 인형 제작을 담당한 인형극 <흥부와 놀부>(1967)는 강 감독이 가장 아끼는 영화이다. 인형의 관절과 마디에 움직일 수 있는 메아링을 넣어서 한 커트 한 커트 촬영한 이 영화는 제 5회 청룡영화상 비극(悲劇)영화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강 감독은 고전을 인형극으로 다시 연출했다. 유현목 감독이 제작한 <콩쥐 팥쥐>(1977)가 그것이다.
1996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그의 인형극 <흥부와 놀부>, <콩쥐 팥쥐>를 재 조명한 바 있다. 강태웅 감독은 초창기 한국 인형극이 척박하던 시절 터전을 닦은, 한국 인형극의 선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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